소설리스트

장야여화-136화 (136/649)

136화. 단서 추적

소민영은 찬찬히 고위층의 생김새를 떠올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최 회장님께서는 쉰 살이 채 안 되셨어요. 길드 직원 출신인데다가 한동안은 유적 사냥꾼으로 지낸 덕분에, 각각의 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죠. 흰머리는 없는데, 머리숱은 좀 적고, 호리호리한 편에 코가 좀 크세요.

주 회장님은 아마 마흔 살 정도 되셨을 거예요. 그분은 체형이 아주 우락부락하시죠. 그분 팔뚝이 제 허벅지만 할걸요? 거기다 머리도 짧게 깎아서 아주 거칠어 보이세요. 실제로는 친절한 분이지만요.”

예측한 나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 장목화가 다시 물었다.

“고위층은 그게 다인가요?”

소민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양 수석님도 계시죠. 그분은 저희 길드의 수석 사냥꾼이세요.”

수석 사냥꾼은 사냥꾼 길드 내의 명예로운 지위로, 각 지역당 딱 한 명뿐이었다. 또한 수석 사냥꾼은 현재 능력이 아닌, 경력 위주로 발탁됐다.

“그분 이름은 뭔가요?”

장목화가 물었다.

“양수영이요. 50대이신데, 따로 소개하지 않으면 평범한 어르신으로 보일 거예요. 하지만 그분은 길드가 막 설립됐을 당시에 가입하셔서 마스터 사냥꾼으로까지 승급하셨어요. 여태 셀 수 없이 많은 임무를 완수하셨죠.

지금은 신입 사냥꾼 훈련을 포함한 사냥꾼 길드의 교육을 담당하고 계세요. 수업이 열리면 한 번 등록해보세요. 학비는 명목상 비용일 뿐이라 부담되는 수준은 아닐 거예요.”

소민영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수석 사냥꾼 양수영도 일흔 살이 되지 않았다. 장목화는 그에 관한 질문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웃으며 물었다.

“다른 건 뭐 주의해야 할 거 없을까요?”

소민영은 다른 이야기들도 더 들려주었지만, 그사이 유적 사냥꾼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는 미소를 지으며 창구 구멍으로 군용 통조림을 밀어 넣어주었다.

“임무를 아주 훌륭하게 완수해주셨어요.”

소민영이 고개를 들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더니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필수적인 절차에는 따라야 해요. 그래야 이 임무를 전산에 업로드할 수 있거든요.”

업로드를 기다리는 소민영을 보고, 장목화가 잠시 고민 끝에 대답했다.

“‘길드에 대한 이해 보조’라고 하면 될까요?”

길드 고위층에 관한 정보를 노린 임무라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소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임무를 제출하고 심사에 통과시켰다. 뒤이어 자신의 사냥꾼 배지를 꺼내 가볍게 긁고 그 임무를 접수했다.

임무 완수 버튼을 누른 소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통조림을 받아들었다.

“다 됐습니다. 덕분에 신용 점수도 얻었네요. 사냥꾼님 신용 점수도 더해졌을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는 은밀한 암거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근데 방금 저 사람은 누구죠? 직원이 아주 공손한 태도로 대하던데.”

장목화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녀가 가리킨 사람은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입은 아까 그 남자였다.

소민영은 잠시 기억을 떠올리더니 낮게 깐 목소리로 답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어요.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았으면서도 벌써 고급 사냥꾼에 이르렀다는 사실뿐이에요.”

고급 사냥꾼은 마스터 사냥꾼 바로 아래 등급이었다. 그만한 급에 이르러 있다는 것은 그 남자의 자원과 인맥, 실력이 모두 출중하다는 뜻이었다.

‘고급 사냥꾼이라, 어떤 방면에서 고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을 휘둘렀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뒤쪽에 줄지어 선 사냥꾼들이 폭주하기 전 서둘러 질문을 마치곤, 홀 가장자리 벤치 구역으로 돌아갔다.

* * *

장목화는 사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성건우에게 말했다.

“나이에 맞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진병욱에게 길드 고위층 가족 관련 자료를 부탁해야겠어.”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고요.”

“직접 한 사람씩 다 찾아가서 임보경 무리를 만났는지 물어보자고?”

“예!”

성건우는 상당히 의욕적이었다.

그의 모습에 장목화가 실소를 터뜨렸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적들의 경계심만 높일 거라고, 진상을 밝히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말하겠지만, 뭐, 건우 너라면 얘기가 다르지.”

성건우는 이 세상 누구든 단시간에 의형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앞에선 누구도 거짓말을 한다거나 그를 배반할 수 없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보자. 그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곧장 위로 올라가지는 말자. 이렇게 큰 사냥꾼 길드라면 그 내부에 각성자와 유전자 개조자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해.”

“그들을 모조리 다 친구로 만들어버리면 되죠.”

“서로의 정체를 보장하는 순환을 형성하도록?”

장목화는 성건우가 말한 추리 광대의 유의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성건우와 친구가 되고, 주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위 파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실현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성건우가 시종일관 그와 함께하며 그가 맞닥뜨린 모든 사람과 일을 처리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플린처럼 이삼일 내내 성건우와 함께하면서 의형제가 되어 정을 깊이 쌓는다면 주위에서도 이 관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둘이 일정 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플린도 진상을 깨우치게 될 것이었다.

딱히 누군가가 의심하지 않아도, 무근자들이 이따금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때문에 진상이 드러나게 될 터였다. 이미 영향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도 이 때문에 추리 광대 능력을 남용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들이 사람을 죽여 입을 다물게 하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상, 능력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 마련이었다. 그런 실수를 깨달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성건우의 능력도 비밀에 부치긴 어려웠다.

게다가 이곳은 회사 내부가 아니었다. 폐쇄적이고, 기본적으로 매일 접촉하는 대상이 고정돼 있어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아니었다.

실제로 생명 제례 교단의 495층 교도들은 성건우가 정식 루트를 통해 입교했다고 생각했다. 그와 연루된 사람들이 모두 성건우에게 설득되어 순환 논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와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신도들은 본래 일상생활 속에서 접촉하는 이웃과 동료들에게 교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이 교단의 폐쇄성이 성건우가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데 도움이 된 셈이었다.

물론 현재 애쉬랜드의 통신 조건으로 볼 때 성건우가 지나치게 큰 소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한 지역에서 그가 가진 능력의 특징을 드러내도, 다른 곳에서는 얼마든지 평범한 사람인 척할 수 있었다.

이내 성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도전적인 일이긴 해요.”

“정말 그렇게 했다간 넌 길드 회장으로 추대될지도 모르겠는데?”

농담하던 장목화가 정색하며 표정을 바꿨다.

“이곳에 어떤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는지는 모르니까 과한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네 능력이 먹히지 않는 각성자가 있으면 어쩌려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추리는 못 하면서 너한테 반박할 생각만 하는 각성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소리를 못 들으면 글을 쓰면 되죠.”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지만, 그도 두 번째 해결 방안은 찾지 못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로도 통한다고? 그 능력의 핵심 조건은 대화가 아니라 교류였구나. 안타깝네⋯⋯.”

순간 한숨을 내쉬는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가 물었다.

“제가 수화를 모른다는 게요?”

장목화가 갑자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아니, 드디어 너도 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하는 때가 왔네. 그런 게 아니고 거리 제한이 있다는 게 안타까워서. 그런 제한이 없었다면 넌 전화나 전보를 통해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사람을 유도할 수 있었을 거잖아. 구세계에서는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보이스 피싱? 인터넷 바이러스?”

그때, 돌연 사냥꾼 길드의 홀이 소란스러워졌다.

장목화가 바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유적 사냥꾼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허공에 걸린 거대한 패널을 보고 있었다.

패널 위에서 느릿하게 흐르던 임무들은 딱 하나에 고정돼 멈춰 있었다.

[긴급 임무 : 유호중 총살 사건 단서 추적.

설명 : 11월 23일, 오전 7시 56분. 유호중이 사우스 스트리트에서 총살당해 현장에서 즉사함. 사건 장소는 레드실크 앨리로부터 3미터 떨어진 곳⋯⋯.

보수 : 심사 통과 후 유효한 단서임이 확인되는 대로 단서 하나당 최소 10오레이, 최대 500오레이.

임무 등급 : C, 신용 점수 100점.

요구 조건 : 제한 없음.

의뢰자 : 위드시티 도시 방위 사령부.]

공식 기구에서 내건 임무라 길드의 보장은 없었다. 위드 시티에는 유동 인구도 많고 무기 소지자도 많아서, 치안과 관련한 사건은 도시 방위군에서 담당했다.

이 임무에는 최대 500오레이가 걸려 있었다. 그 돈이면 평범한 가정이 위드 시티에서 1년을 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아주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최소 보수인 10오레이도 재정난에 빠진 유적 사냥꾼들의 숨통을 틔워주기에 충분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겐 보름치 밥값과 방값이었다.

유적 사냥꾼들은 대개 현금보다는 물자를 더 원하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 안에서 오레이는 거래하는 데 아무 지장도 없는 화폐였다. 가치가 조금 유동적이긴 해도 변동 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진 않았다.

장목화는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아까 발생한 그 사건이네.”

한편, 백새벽과 용여홍도 이미 사냥꾼 길드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백새벽 역시 입구 쪽 대형 패널을 올려다보며 낮게 혼잣말을 했다.

“유호중⋯⋯.”

“아는 사람이야?”

용여홍이 물었다.

백새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는 누군지 제대로 못 봐서 그 사람인지 몰랐어. 위드 시티 지하 시장에서 꽤 유명한 정보상이야.”

“정보상? 어쩐지⋯⋯.”

용여홍이 가진 제한적인 지식 속에서 정보상은 고위험 직군에 속했다.

그 시각,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는 다시 어딘가에서 시선을 멈췄다. 지금 옆문으로 들어오는 몇 사람이 있었다.

제일 앞의 여자는 장목화보다 살짝 작은 키에 카멜색 멜톤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금색 머리칼은 길게 늘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옅은 파란색이었다. 모공이 살짝 커서 피부도 꽤 거칠고 평범한 편이었지만, 나름의 느낌이 있는 30대 여성이었다.

장목화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현지 사냥꾼 길드 부회장, 크리스티나라고 추정했다. 길드 직원들도 그녀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추측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왔어.”

성건우도 목표를 확인한 뒤,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크리스티나 주위에 자리한, 검은 옷차림의 남자 세 명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한발 앞으로 나와 성건우를 막아서며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크리스티나 회장님.”

성건우가 그다지 유려하지 못한 레드리버어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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