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길드 고위층
그렇게 수십 미터를 나아갔을 무렵, 장목화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골목길에서 황급히 빠져나오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장목화는 즉각 한쪽 손을 뻗어 성건우를 가로막더니, 맞은편에 자리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탕!
총성 한 발과 함께 골목길에서 빠져나온 그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주위로 희고 붉은 액체가 튀자, 거리는 적막으로 굳어버렸다.
날카로운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온 건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난 후였다.
위드 시티 순찰대원들은 기관단총을 들고 총이 발사된 건물로 돌진했다. 몇몇은 거리 가장자리에 붙어 혹여나 또 있을 총격에 대비했다.
“꽤 전문적이네.”
장목화가 아주 냉정하게 습격자를 평가했다. 그녀는 이미 저격수가 건물 옥상에 자리해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이내 성건우는 한숨을 내쉬며 묘한 말을 내뱉었다.
“안타깝네요⋯⋯.”
“뭐가?”
장목화가 물었다.
“섬 하나만 더 극복했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성건우의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이 어려 있었다.
그 말에 장목화가 사우스 스트리트 폭과 건물 높이를 한번 살펴보았다.
“저격수가 4층에만 있었어도 그럴 수 있었겠네.”
사우스 스트리트의 폭은 대략 5~6미터, 3층 높이는 약 10마터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해 저격수가 4층에 있고 두 사람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다고 가정할 때, 성건우와 그 저격수의 직선거리는 12~3미터였다.
이는 양손 동작 불능 능력 영향 범위 안에 드는 거리였지만, 5층과 그 옥상은 이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성건우가 답하기 전, 장목화가 잠시 생각하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 능력을 생각 못 하고 있었어. 장애물이 많은 도시 안에선 주로 시가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어. 네 그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용할 거야.”
특히 위드 시티처럼 건물들이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서는 더욱 그랬다.
“안타깝네요⋯⋯.”
성건우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그 능력을 시험해볼 만할 때가 없어서?”
장목화가 물었다.
“예.”
언제나처럼 성건우의 솔직한 답이 이어지자, 장목화가 정색하며 경고했다.
“여긴 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각성자에게도 능력을 펼치기 좋은 곳이야.”
이곳은 건물들로 인해 사람들 간의 거리가 대폭 좁혀져 있기 때문이었다.
* * *
장목화와 성건우는 한담을 나누며 웨스트 스트리트에 진입한 후,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아직 이른 때라 그런지 길드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안에선 청소부 몇몇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목화는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이후 원래 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약간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회사 고위층에 대한 소개는 없네⋯⋯. 너무 불공평하고, 비공개적이야.”
반고 바이오에는 각 부처의 벽에 해당 부처의 주요 책임자와 관련 책임자에 대한 자료가 붙어 있었다.
성건우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위층에 있을지도 모르죠.”
“위층에 붙여놓으면 그걸 누가 볼 수 있겠어?”
장목화가 홀 가장자리에 놓인 긴 벤치에 앉으며 대꾸했다. 손을 마주 비비던 그녀가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춥네⋯⋯.”
“좀 움직이면 나아요.”
성건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피식 웃던 장목화가 웬일로 이렇게 평범한 대답을 하냐고 말하려는데, 다시 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춤을 추세요.”
장목화는 힘이 빠져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임무 마치면 휴가 줄게. 원하는 데 가서 원하는 만큼 춤 마음껏 춰.”
눈을 반짝이던 성건우가 즉각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해야 더 훌륭하고 빠르게 구조팀의 실종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수많은 유적 사냥꾼들이 홀로 들어섰다. 다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돈벌이가 될 임무를 고르러 온 것이었다.
길드의 직원들도 그제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자신의 자리로 향하거나 다양한 기계들을 작동시켰다.
이 광경을 보고, 장목화는 성건우와 함께 둥근 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옆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와 두 사람을 앞서나갔다. 그리고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한번 훑어보았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워낙 외모가 뛰어났다. 아무리 유적 사냥꾼 차림으로 간단히 위장했다고 한들, 밤중의 촛불처럼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형이었다.
그래서 남자도 두 사람에게 본능처럼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장목화와 성건우도 남자의 모습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의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었다. 성건우와 엇비슷한 키였다. 유적 사냥꾼은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보통 영양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그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체형이었다.
그는 짙은 검은색 트위드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는 검은색, 눈은 파란색이었다. 이목구비는 단정했지만 잘생겼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나이는 대충 30대 정도로 추정되었다.
대체적으로 남자는 애쉬랜드와 레드리버 인종의 특징을 겸비하고 있었다. 얼굴선이 짙은 편이었고 그중에서도 콧대는 특히 높았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선 신중함과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자가 창구 앞으로 가 사냥꾼 배지를 내밀 때까지 계속 눈으로 좇던 성건우가 갑자기 불쑥 입을 열었다.
“코가 지나치게 뾰족한 것도 좋은 건 아닌데⋯⋯.”
장목화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다가 낮게 웃었다.
“날이 추우면 코끝이 더 잘 빨개지니까?”
사실 남자는 꽤 괜찮게 생긴 편이었다. 절대 누군가에게 생김새로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나치게 빨개서 우습기까지 한 코끝뿐이었다.
“바깥바람이 상당히 차니까요.”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코끝을 문질렀다.
“이 홀에 막 들어왔을 때는 너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장목화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남자의 맞은편에 있던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두 손으로 사냥꾼 배지를 돌려주는 걸 보았다. 굉장히 공손한 태도였다.
‘지위가 꽤 높은가 보네.’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는 맨 끝에 자리한 창구로 향했다.
“제가 할게요.”
갑자기 성건우가 발을 빠르게 놀리며 그녀를 앞질러 갔다. 그에 장목화가 얼른 그를 막고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냐. 일반적인 건 나한테 맡겨. 넌 능력을 최대한 아껴야 해.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좋은 철은 좋은 칼을 만들 때 써야 하는 법이야.”
각성자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감추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적들에게 능력을 들킨다면 효력을 발휘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그 능력을 겨냥한 공격을 받기도 쉬웠다.
“예? 뭐라고요?”
성건우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되물었다.
“⋯⋯.”
이게 바로 역지사지인 걸까. 장목화가 다시 이를 악문 채 물었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니?”
성건우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예.”
“그럼 간단히 말할게.”
장목화는 곧장 목소리를 원래 크기로 되돌렸다.
“내가 한다고!”
그녀는 성건우가 항의할 틈도 주지 않고, 재깍 맨 끝 창구 앞으로 갔다.
* * *
창구엔 스무 살이 갓 넘은 듯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단발머리에 큰 눈을 가진 그녀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풍겼다.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엔 ‘소민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임무를 맡기려고요.”
장목화가 환하게 웃으며 목적을 밝혔다.
예쁘고, 예의 바르고, 당당한 장목화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다. 소민영 역시 그녀에게 매료돼 더 열정적으로 응대했다.
“어떤 임무를 맡기시겠습니까? 임무마다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달라요. 만약 신용 점수를 충분히 쌓은 사냥꾼의 보장을 받거나, 임무를 선포한 후 약속을 이행한 경력이 여러 차례 있다면 시간도 상당히 줄어들고요.”
“아주 간단해요. 아마 선생님도 할 수 있을걸요. 보수는 군용 통조림 하나예요.”
장목화가 웃으며 옷 안쪽에 미리 넣어둔 소고기 조림 통조림을 꺼냈다.
소민영은 제출된 보수에 한층 안심한 듯 미소를 보였다.
“맡기시려는 임무는 뭔가요?”
“길드 고위층들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저는 이제 막 신입 사냥꾼이 돼서 길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죠. 최대한 많은 걸 파악하고 싶네요.”
그리고 장목화는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는 눈짓을 보냈다.
소민영은 변함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티나 회장님께서 보안 등급이 매우 높은 비공개 임무를 몇 개 맡기기는 하셨지만, 그런 임무들은 신입 사냥꾼으로서는 접할 수 없는 거랍니다. 그러니 일단은 간단한 임무들을 통해 신용 점수를 쌓으세요. 이 임무는 정식 사냥꾼이 된 후에 다시 고려해보시는 게 좋겠어요.”
“크리스티나 회장⋯⋯.”
장목화는 그 이름을 한 번 되뇐 뒤 솔직하게 말했다.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비공개 임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네요. 봐요, 전 진짜 신입이라니까요? 길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고 하는 건, 자칫 잘못했다가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릴까 봐 겁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정보들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좀 받아주세요.”
소민영은 결국 장목화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위드 시티에서 500그램짜리 소고기 조림 통조림은 적어도 1오레이, 때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었다. 그렇기에 매달 월급이 30오레이가 안 되는 길드 직원에게는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이었다.
“뭐, 그렇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니까요. 크리스티나 회장님은 퍼스트 시티에서 파견된 부회장으로, 길드 본부와 다른 지역 간의 소통, 협조, 합작을 담당하고 계세요. 동시에 그분은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어려운 모든 임무를 장악하고, 비교적 급이 높은 사냥꾼들과 직접 연락하세요.”
“그분은 몇 살이시죠?”
장목화가 침착하게 물었다.
“30대세요. 긴 금발에 옅은 파란색 눈동자를 가지셨고요. 키는 딱 사냥꾼님 정도고, 상당히 명랑하신 편이세요.”
소민영은 장목화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리지 않도록, 크리스티나 회장의 특징을 알려주었다.
“음⋯⋯. 다른 고위층은요?”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성주를 겸하는 회장님 성함은 허양원이에요. 몇 년 전에 성주로 선출되셨는데, 나이는 저랑 많이 차이나지는 않아요.”
소민영이 상세하게 말했다.
이는 장목화도 알고 있는 정보였다. 심지어 그녀는 허양원이 바로 가장 위대한 성주로 칭송받는 허영덕의 손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허무공 역시 성주로 선출된 바 있었으나 마흔 살의 나이에 병으로 숨을 거뒀고, 당시 허양원은 겨우 열예닐곱 살에 불과했다.
소민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주로 재무와 검사를 담당하는 회장님께서는 거의 방문하지 않으시고 부하 관리 몇몇만 보내세요. 또 저희 길드에는 부회장님 두 분이 더 계세요. 한 분은 최은,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주윤봉이에요.
최 회장님께선 주로 저희, 그러니까 사냥꾼 길드의 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당하시고 주 회장님께선 안보와 길드 자체의 용병을 관리하세요. 여러분도 용병에 가담하실 수 있어요. 원한다면 언제든 나올 수도 있고요.”
“그 두 분은 어떻게 생겼나요?”
장목화의 목소리가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