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80화 (80/649)

80화. 저격 (1)

장목화는 테이블 뒤쪽에 이르렀다. 그러자 문과의 거리도 꽤 멀어졌다. 그녀는 틈새로 방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잔뜩 집중한 표정의 성건우와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였다. 그 후, 그녀는 컨트롤러 두 개, 검은 기계 한 대, 환하게 밝혀진 액정 화면까지 확인했다. 화면은 시시각각 기이하게 변하고 있었다.

순간 장목화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앞엔 그녀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장목화가 테이블 위로 고개 한번 내밀지 않고 큰 소리로 물었다.

“게임이요.”

성건우도 딱히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입꼬리를 뒤틀던 장목화는 경계심 가득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조금씩 일어났다. 하지만 방 안에 나타난 변화는 무엇도 없었다.

곧 상황을 파악하고 천천히 다가온 백새벽과 용여홍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재밌냐?”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질문부터 했다.

“재밌어요!”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뻔뻔한 대답에 장목화의 표정이 약간 굳으려던 그때, 그녀가 돌연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옆쪽의 그분은?”

“얘요? 새 친구입니다.”

성건우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여전히 게임 캐릭터만 보면서 답했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모두 경계심은 풀었지만, 언제든 피하거나 공격할 자세는 유지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폐허 도시에 자리한 빌딩 지하에 유적 사냥꾼을 자칭하는 성인 남자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데, 이제 겨우 일고여덟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있다니.

아이는 대체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 사이 성건우가 다시 소개를 이어나갔다.

“얘 이름은 수종이에요.”

‘수종이⋯⋯?’

용여홍은 흠칫했다. 일순 척추 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한 줄기 섬뜩한 빛이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선 순간, 귓가에 다시금 노파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너희는⋯⋯ 수종이를⋯⋯ 방해했어⋯⋯.’

이에 용여홍은 하마터면 곧장 방아쇠를 당길 뻔했지만, 다행히 다음 순간 성건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아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또 죽었네. 수종아, 난 이만 가야겠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또 보자.”

수종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돼? 다른 사람이랑 같이 게임을 한 건 너무 오랜만이란 말이야. 그들은 좀처럼 배우지를 못한다고.”

이것이 공동의 꿈이나 환각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던 장목화는 그 순간 이쪽으로 접근해오는 전기 신호 몇 가닥을 감지했다.

“조심해!”

그녀는 황급히 경고하는 한편 한 손으로 유탄발사기를 쳐들었다.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 각자 경계 태세를 갖추는 가운데, 성건우만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수종만 보며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아니면 우리랑 같이 밖으로 나갈래? 가서 우리 집에서 게임 같이하자. 그 김에 신선한 공기도 좀 마시고.”

몇 초간 고민하던 수종이 활짝 웃었다.

“좋아!”

아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목화는 전기 신호가 전진을 멈추고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신중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제 수종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빨간 책가방에 검은색 기계와 컨트롤러 등을 챙겨 넣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아이는 곧 책가방을 야무지게 메고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성건우를 올려다보았다.

“가자.”

성건우는 수종을 잠시 내려다보다 웃었다.

“가방까지 메니까 꼭 토마토 달걀 볶음 같네.”

“⋯⋯.”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건우가 이런 상황에, 저렇게도 기이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한 탓이었다.

수종은 고개 숙여 자신의 옷을 살피더니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토마토 달걀 볶음을 먹어본 지도 한참 됐어.”

“나도⋯⋯.”

성건우는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오른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이상한 표정을 드러내던 장목화는 이내 둘의 대화에 끼어들려 노력했다.

“나 그거 할 줄 알아. 굳이 달걀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황야에서 알을 구하긴 어렵지 않잖아. 토마토를 구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고민하던 수종이 말했다.

“천흥구에 아마 냉동 창고가 있을 거야. 그 안엔 토마토도 적잖게 있었어. 다 먹어버렸는지 어쨌는지, 아직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장목화는 적당한 때를 틈타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가보자. 일단은 여기서 나가야겠어.”

“그래.”

누구보다 먼저 답한 수종은 문으로 폴짝폴짝 달려갔다.

성건우는 빨간 책가방을 메고 통통 뛰어가는 아이를 보다가 말했다.

“제가 앞장설게요.”

“그래.”

장목화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이로써 전술 대형에서 장목화와 성건우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 * *

구조팀은 다시금 어둡고 적막한 복도를 걸었다. 빛 대부분은 대열 맨 뒤의 장목화가 제공했고, 벨트에 묶인 세 사람의 손전등은 아래쪽만 비췄다.

“빨리 움직여!”

수종은 수시로 뒤를 돌아보면서 구조팀을 재촉했다. 하지만 일행 모두 자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걸었다. 재차 재촉하던 수종은 한숨을 쉬었다.

“휴……. 전에 학교에서 가족 활동을 했을 때 우리 부모님도 이랬어. 저~기 맨 뒤에서 슬금슬금……. 한 발짝 뛰기라도 하면 어른 체면이 구겨지기라도 하나 봐.”

“가족 활동이 뭐야?”

성건우, 용여홍이 동시에 물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수종은 답하려 애쓰다 결국 포기했다.

“됐어, 너희들은 설명해줘도 몰라.”

그러던 사이, 일행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다섯 명 모두 무사히 비상 통로 입구에 도착했다.

장목화는 제 추측을 확신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1층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습격은 없었다. 일행은 아주 순조롭게 계단을 올라왔다. 이미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엘리베이터 로비가 훤히 보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장목화는 수종에게 부드럽지만, 살짝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좀 기다릴래? 우리한테 아직 처리할 일이 좀 남아있어서.”

장목화는 여기서 차으뜸의 계획을 막아야 한다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이어 수종이 뭐라 답하기 전, 성건우가 덧붙였다.

“우린 진짜 사격 게임을 할 거야. 방금 그 게임을 현실에서 하는 거지.”

순간 수종의 눈이 초롱초롱해졌지만, 금세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난 어린아이일 뿐이라 그렇게 위험한 게임을 하면 안 돼. 하지만 지켜볼 수는 있지!”

아이의 표정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꼭 성건우가 자신에게 권총 한 자루라도 넘겨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성건우도 그 생각을 읽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손뼉 치면서 파이팅해줘야 해!”

“알았어⋯⋯. 어디에서 기다리면 돼?”

시무룩해진 수종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이에 장목화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저기 앉아. 그럼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응.”

폴짝폴짝 뛰어 올라간 수종은 더러운 바닥에도 개의치 않은 듯 계단에 털썩 앉았다.

곧이어 장목화는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새벽아, 넌 수종이 옆에 엎드려 있어. 맞은편 엘리베이터 세 대가 네 몫이야. 때가 되면 우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서, 모든 엘리베이터가 이 층에 서게 할 거야. 문이 열리면 곧장 그 안에 있을 차으뜸을 저격해.

근데 조심해야 해. 차으뜸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습격을 피하려고 바닥에 엎드리거나 엘리베이터 천장에 매달려 몸을 최대한 웅크릴 수도 있고. 하여튼 뭐 아주 비정상적인 자세를 취할 테니까 조심해야 해.”

백새벽은 폐허 도시에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녀는 꽤 오랜 시간 진지하게 장목화가 이야기한 광경을 떠올려보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백새벽을 동요하게 한 것 같았다. 꼭 과거의 한 특정 경험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약간 표정 변화를 보이던 백새벽은 손을 뻗어 스카프를 잡아당겼다.

이제 장목화는 성건우를 향해 돌아서서, 이 비상 통로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머지 엘리베이터 세 대를 가리켰다.

“건우 넌 버튼을 누르고 이쪽 벽에 붙어. 너한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야. 새벽이가 차으뜸을 단번에 발견하지 못했을 상황이나 차으뜸이 치명상을 입지 않았을 상황을 대비해 새벽이를 돕는 거야.

그리고 빈 엘리베이터가 지나가고 나면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러.”

장목화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새벽이가 담당한 엘리베이터 세 대 중에 중간 엘리베이터로 갈 거야. 벽에 딱 붙어 있을 건데……. 음, 아무래도 꿇어앉아서 대기하는 게 좋겠지.

건우 네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 세 대가 내 담당이야. 만약에 뜻밖의 문제가 생겨서 네가 때맞춰 반응을 못 하면, 내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걸 누를게.

그리고 난 전기 신호 변화 감지에 최선을 다할게. 차으뜸이 어떤 엘리베이터에 탔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게.”

장목화가 이렇게 말을 끝내자, 용여홍이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저는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비상 통로를 가리켰다.

“그래, 훌륭하네. 그래도 팀원이라는 의식은 있구나. 여홍이 넌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감시해. 언제든 사격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해. 차으뜸이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예, 팀장님!”

용여홍은 여전히 긴장되고 불안하긴 했지만, 자신도 팀에 공헌할 수 있고, 또 팀장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 * *

지하 기계실 옆, 빌딩 배전실.

차으뜸은 손전등으로 어둑한 방을 비추고 있었다. 희미한 빛에 드러난 그의 표정은 참 인상적이었다. 몹시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차으뜸 스스로도 이렇게 목표를 쉽게 찾을 줄은 몰랐다. 물론 상당한 시간은 들였지만, 이곳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순조로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열광적인 팬들의 습격도 없었으며, 예상치 못한 일을 겪지도 않았다.

이는 그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차으뜸은 이 빌딩에 위험한 생물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난입해 실패한 이후, 방법을 바꿔 구조팀원을 조종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실 차으뜸은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지나치게 접근한다 싶으면 직접적인 사살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일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유는 몰라도, 일단 성공이 지척에 있으니 차으뜸도 더는 이 문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금속 골조에 싸인 두 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방으로 진입했다.

* * *

다시 비상 통로 입구.

팀원 모두에게 임무를 부여한 장목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어. 차으뜸의 매혹 능력의 범위가 좀 큰 편이야. 아까 계획대로면 차으뜸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새벽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그러니 그에 대한 준비도 미리 해둬야 해.

건우야, 무슨 방법 없을까? 없다면 여길 포기하고 빌딩 꼭대기로 올라가 차으뜸이 이곳을 떠날 때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수밖에 없어. 그때는 도시 조명도 일부 회복됐을 테니까.”

성건우는 옅게 미소 지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있어요. 근데 그러기 위해선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따로 능력을 걸어야 해요. 서로의 증인이 되는 상황에서의 효과는 대폭 떨어지거든요. 심지어는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근데 지하에 있었을 때는 안 그랬잖아.”

용여홍이 말했다.

“그때는 다들 매혹 능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잖아. 그래서 자발적으로 특정 문제를 무시하거나 강조할 수도 있었어. 무엇보다 내가 사용한 조건이 당시 우리 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었잖아. 결론도 그랬고.”

성건우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장목화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 최대한 빨리.”

“네, 팀장님. 저를 따라오세요.”

성건우가 엘리베이터 로비를 가리켰다.

“응.”

두 사람은 용여홍과 백새벽이 자신들을 볼 수도, 나누는 말을 들을 수도 없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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