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배우자 정보
활동 센터 안, 언제든 멈춰버릴 것처럼 오래된 괘종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소리와 함께 세 바퀴 반을 돌고 난 후에야, 화면에 마침내 한 줄 한 줄의 글자가 떠올랐다.
조여름을 비롯한 이들은 황급히 자신의 이름을 찾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확인한 결과에 만족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배정해주는 배우자는 그들에게 있어 평소에 치르는 시험처럼 그 결과가 지나치게 나쁘지만 않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이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그 외의 경우에도 자신의 배우자가 누구인지, 어느 층 사람인지, 부모가 어느 부 소속인지 알 수 없어 기껏해야 약간의 의아함을 느낄 뿐이었다. 전부 대학에 들어가 고등 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같은 학과의 학우, 그리고 같은 층에 사는 이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샅샅이, 자세히 화면을 살피던 용여홍이 작게 중얼거렸다.
“왜 내 이름은 없지?”
“네 이름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니까.”
곁에 있던 성건우가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
용여홍은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상대의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에 부합하여 이번 공동 결혼 대상에 강제적으로 오른 사람은 수천 명에 달했고, 그중 남자는 여자에 비해 겨우 두 명 더 많을 뿐이었다. 그러니 운이 심각하게 나쁘거나 이름이 나쁜 게 아니라면, 그 재수 없는 둘 중 한 명이 될 리 없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용여홍이 분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름도 없잖아!”
화면에는 성건우의 이름도 없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오른쪽 눈썹을 살짝 추켜 올렸다.
“말했잖아. 난 이미 이번 공동 결혼에 대한 포기 신청을 했다고.”
“그, 그, 그게 정말이야? 회사가 어, 어째서 그 신청을 받아준 거지⋯⋯?”
용여홍은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21년을 살아오면서 조건에 부합하는데도 공동 결혼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병상에 누워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이거나, 안전부의 대외 작전을 수행 중이라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등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신체가 건강하고 회사 내부에 속해 있으면서 조건에 부합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 규정을 위반할 수 없었다.
이는 회사의 직원에게 주어진 핵심 의무 중 하나였다.
너무나 놀라운 상황에 슬픔마저 잊은 용여홍이 곁에 있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너지 배급량이 줄어도 괜찮아?
그건 그나마 괜찮지, 가장 큰 문제는 공헌점수도 깎인다는 거야. 배불리 먹지 못하게 된다고! 우리 같은 D1은 매달 겨우 1800점밖에 못 받잖아. 일주일에 고기는 한 번 밖에 못 먹는 수준이지. 여기에서 3분의 1이 깎여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래?”
“회사에서 동의했어. 공헌점수는 깎이지 않을 거야.”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퍼뜩 뭔가를 떠올렸다.
만약 성건우가 정말로 이번 공동 결혼을 포기했다면, 그 대상 중 남성은 여성에 비해 딱 한 명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딱 한 명.
‘내가 그 딱 한 명뿐인 운 나쁜 놈이구나⋯⋯.’
반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용여홍의 마음속에서 짙은 슬픔이 끓어올랐다.
이때, 액정 화면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며 이 층의 주민들에게 배정된 배우자의 기본적인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해줬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보다 쉽게 자신의 배우자를 찾고, 질서감독부 산하의 각 질서감독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여름, 네 남편은 외부인이네!”
모두가 액정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소녀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색이 약간 어두워진 조여름이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장이경, 남성, 황야유랑자 출생, 25세, 3년 전 회사에 영입됨, 줄곧 양호한 모습을 보여옴, 신체 질환 없음, 622층 A구역 192호 주거, 직원등급은 D4, 전자카드번호는 04311029189⋯⋯.”
“진짜 외부인이네.”
소리에 이끌려 그쪽을 돌아보던 용여홍이 곧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회사가 정기적으로 황야유랑자를 영입하여 인력을 보충하고, 유전자를 개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인과 함께 일을 해본 사람도, 그들과 결혼한 사람도 없는 이 층의 주민들에게 이 상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조여름, 그래도 잘된 일이잖아. 이전에는 황야유랑자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D4 직원이라니까. 25살밖에 안 됐는데 대단하네!”
녹색 상의에 남색 바지를 입은 소녀가 위로하듯 말했다.
D4는 일반 직원에서 베테랑 직원, 고급 직원으로 승급된 이들이었다. 소형 연구 프로젝트의 보좌역이나 공장 생산 라인의 반장, 안전부 부대의 부조장, 각 층 특정 구역의 질서지도자를 맡을 수 있는 이들은 매달 D1에 비해 최소 2천 점이나 높은 공헌점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유전자 개량 효과는 그렇게 좋지 않은데⋯⋯.”
용여홍의 곁에 있던 다른 젊은 사내가 중얼거렸다.
이때 그는 화면에 떠오른 자신의 배우자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슬기, 여성, 출생 : 내부 직원, 나이 : 30세, 남편이 있었으나 5년 전 사망, 현재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중, 이번 공동 결혼에 자발적으로 참여 신청, 신체 질환 없음, 569층 B 구역 27호 주거, 직원등급 : D4, 전자카드 번호 : 01609052558.」
“양진원, 네 아내는 너보다 10살 더 많네⋯⋯.”
용여홍도 그 젊은 사내의 배우자 정보를 본 모양이었다.
양진원은 회사 내 대부분의 또래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희고 몸이 단단했다. 생김새는 준수한 편이었으나, 약간 중성적이면서도 내향적으로 보였다.
용여홍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진 양진원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잠시 후, 배정받은 배우자의 정보를 외운 이들은 속속들이 상대를 찾아 활동 센터를 떠나거나 찾아올 상대를 기다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양진원이 누구지?”
용여홍, 상건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양진원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데요, 왜 그러세요?”
활동 센터의 문을 열고 어느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성숙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는 소박하고 단순한 옷을 입었지만, 그 평범한 옷이 훌륭한 몸매를 숨겨주진 못했다.
“내가 주슬기야.”
자신을 주슬기라고 밝힌 여자는 양진원을 슥 훑어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너희 집에 가서 얘기를 좀 할까?”
흠칫 놀란 양진원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지금 가는 거 괜찮아?”
주슬기는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으며 물었다.
“네, 네.”
양진원은 대답을 하면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용여홍은 활동 센터를 떠나는 한 쌍의 부부를 멍하니 바라보다, 슬픔이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이제 어떡하지?”
성건우는 그를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위대한 사업이 널 기다리고 있어.”
“⋯⋯”
그 말에 용여홍의 얼굴이 구겨졌다.
“알아듣게 말해!”
성건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내년에 있을 공동 결혼을 기다리면 되잖아.”
“그래.”
용여홍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휴, 결혼 생각은 그만두자. 내일 좋은 직무에나 배치되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너 말이야, 갈수록 머리가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
동시에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그들을 기다리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미래를 직접적으로 결정짓는 직무 배정이었다. 모종의 특기가 있어 일찌감치 관련 부서에 배정된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대학 졸업자들은 회사에서 각 부서에 배정해 주는 걸 기다려야 했다.
활동 센터의 주관자 진현오는 액정 화면을 끄더니, 구세계의 한 유적에서 발굴한 원기둥 모양의 금속 물잔을 든 채 느릿하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를 발견한 용여홍은 성건우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생각하기에는 저희가 어느 부서에 배정될 것 같으세요?”
진현오는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한 뒤 그 질문에 답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방금 막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한 내근직에 배치되지. 결혼 대상이 없어서 당분간 아이를 낳지 않을 이들은 조금 위험한 직무에 배치될 테고.”
그러자 용여홍의 얼굴에 절망한 표정이 드러났다.
“집으로 가서 공동 결혼 결과를 부모님께 알려드려야겠어요.”
그는 성건우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울상이 된 얼굴로 활동 센터를 빠져나갔다.
“네 부모님은 아직 퇴근도 하지 않으셨잖아⋯⋯.”
성건우는 낮게 중얼거리며 용여홍의 뒤를 따라 바깥의 복도로 나갔다.
* * *
지하 빌딩 495층, 이곳에는 하늘이 없었다. 대신 층고가 4미터 정도 되는 천장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긴 튜브 형태의 등은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천장에 박혀 비교적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회사 내부 직원들에게는 이 가로등이 밝혀져 있을 때가 낮이었고, 꺼져 있을 때가 밤이었다.
성건우는 고개를 들어 전방의 가로등을 바라보다가 C 구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복도 양쪽의 방은 따닥따닥 붙어있어, 방과 방 사이의 간격이 2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마치 교과서에 나온 벌집을 평면으로 펼쳐놓은 것 같았다.
반면 이곳에 비하면 활동 센터는 광장처럼 넓었다.
두 개의 거리를 지나온 성건우의 앞에 상대적으로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열두 개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로 연구 구역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였다.
구세계로부터 비롯된 이 지하 건물 내, 생활 구역에서 공장 구역과 연구 구역, 그리고 좁은 의미의 내부 생태 구역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는 서로 나뉜 채 각 층의 다른 구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혼잡해지는 것과 뜻밖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관리 구역과 에너지 구역의 엘리베이터는 연구 구역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와 합쳐져 있었으며,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전자카드를 긁어 권한을 확인받아야 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던 성건우는 중앙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21이라는 숫자가 표시된 버튼을 눌렀다.
지금은 근무 시간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안정적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성건우는 전자카드를 꺼내 카드 리더기에 대고 긁었다.
그런 후에 3층을 가리키는 금속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