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화 (1/649)

1화. 공동 결혼

495층 C 구역, 녹회색 외벽에 각종 낙서가 되어있는 활동 센터.

예닐곱 명의 소녀들은 흥분과 기대, 혹은 긴장감이 어린 얼굴로 이곳에 들어왔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단순했으며, 색깔 역시 남색, 검은색, 흰색, 녹색 등으로 아주 단조로웠다. 그러나 가장 싱그러운 나이인 그들의 생김새만큼은 한 명 한 명 모두 아름다웠다.

그들은 이 층을 통틀어 하나뿐인 액정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맨 앞에 선 소녀가 못 참겠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에서 나한테 어떤 남편을 배정해줄까?”

“중요한 건 성격이지.”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녹색 윗옷에 남색 바지를 입은 소녀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대꾸했다.

유전자 개량 약물이 보급된 세상의 2세대인 그들은 장차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의 생김새나 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전부 다 보통 수준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동 결혼을 하는 사람에는 우리 또래뿐만이 아니라, 아내랑 사별한 남자들도 포함된다는 걸 잊었어? 그 사람들 중에는 태아 단계에서 유전자 개량을 거치지 않아 결함이 많은 사오십 대도 있다고.”

앞에 선 소녀가 다른 이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속한 회사에는 충분한 수의 신생아를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규정이 존재했다.

<누구든 만 20세가 되거나 고등 교육 기관을 졸업한 경우, 혹은 개인적으로 선택한 결혼 상대자가 없는 경우 회사에서 공동으로 배우자를 배급한다. 이에 따르지 않는 자는 질서 감독부의 처벌을 받는다. 초범은 에너지 배급량과 공헌점수가 깎이며, 재범은 회사에서 쫓겨나 애쉬랜드에서 자생자멸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직 아이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배우자를 잃었을 경우, 배우자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뒤에도 만 60세가 되지 않았다면 강제로 공동 결혼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차치하고, 다들 미래의 남편이 M급 가정 출신이었으면 하잖아?”

또 다른 소녀가 끼어들며 농담을 던졌다.

회사 내부 사람들은 세 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D1에서 D9까지의 D급 직원이었고, 두 번째는 총감독을 의미하는 M1부터 이사회 회원, 수석 과학자에 대응하는 M3까지의 M급 관리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등급에는 알파벳 코드가 붙는 대신, 빅보스라는 단 하나의 호칭만 존재했다. 이 등급에 속한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비밀스러운 한 여인이었다.

녹색 상의에 남색 바지를 입은 소녀가 입을 비죽였다.

“평범한 층 사람이 346층에서 349층에 사는 짝을 배정받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

346층부터 349층은 M급 관리자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에너지가 넉넉히 공급되는 데다 인당 주택 면적도 일반 직원들이 사는 층의 열 배 이상에 달했다. 게다가 이 네 개 층에는 자체적인 엘리베이터와 정수, 통풍, 배수 및 교육 시스템도 다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일반 직원들과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회사에 존재하는 대학이라고는 350층에 있는 대학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일반 직원의 아이들은 시험을 봐야만 일을 시작하거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관리자의 자식들은 시험을 보지 않고도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누구나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며, 어떻게든 관리자와 연을 맺어보려 했다.

한편 빅보스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 직원들은 그녀와의 접촉은 꿈도 꾸지 못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몰랐다. 그저 연말, 연초, 혹은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방송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빅보스의 눈에 들어 단번에 관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물론 드물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맨 앞에 선 소녀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계속 얘기했잖아, 학교에서 마음껏 연애하라고. 진가비 봐. 걔 남편은 졸업하자마자 물자관리부에 배정됐잖아.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는 집안 출신일걸!”

“조여름, 그게 네가 할 말이야? 그러는 넌 왜 연애 안 했는데?”

다른 소녀가 비웃듯 물었다.

“날 몰라서 그래? 난 뭐든 말로만 잘하는 게 특기잖아.”

조여름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럴 용기가 없었음을 인정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난 후, 녹색 상의에 남색 바지를 입은 소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조여름, 진가비의 남편네 집이 어느 등급이었는지 알아? 넌 걔랑 꽤 친했잖아.”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조여름이 잔뜩 낮춘 목소리로 답했다.

“듣기로는 안전부 작전반의 총감독이라던데.”

“우와⋯⋯.”

놀란 소녀들이 감탄하는 사이, 활동 센터의 문을 통해 한 무리의 젊은 사내들이 들어왔다.

두 무리는 서로를 몇 초간 살피다가 약간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남편, 혹은 부인이 될 사람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상대일지 아닐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75센티미터의 키에 머리를 짧게 자른 한 남자는 활동 센터 안의 오래된 테이블 여러 개와 테이블 주위의 벤치 의자, 등받이 의자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약간 불안한 듯 옆쪽의 동료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성건우, 회사에서 나한테 배정해준 아내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의 동료는 키가 185센티미터 정도에 달했으며, 눈썹이 곧은 데다 눈동자가 밝은 갈색인 남자였다. 또렷한 얼굴선을 가진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약간 헝클어진 채 이마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성건우라 불린 젊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배정부터 받고 난 다음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는 짙은 남색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불룩하게 튀어나온 팔근육 때문에 소매가 약간 끼는 듯 보여 남성미가 물씬 느껴졌다.

“하, 그렇게까지 재수가 없지는 않겠지! 이번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겨우 두 명 더 많을 뿐이라고.”

175센티미터의 키에 생김새가 비교적 평범한 사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나 말을 마친 그의 낯빛은 이내 어둡게 내려앉았다.

“날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 어쩌지.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키가 겨우 175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성적도 겨우 중간 정도고⋯⋯.”

성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네 이름이지.”

“내 이름? 용여홍이 왜? 아버지의 성 씨인 용과 어머니의 이름에 들어있는 홍 자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라고, 얼마나 의미 있고 좋아?”

용여홍은 의아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긴, 회사의 공동 결혼은 내 키가 얼만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따지지 않으니까. 소문에 따르면 혈연관계가 있는지만 따져 배제하고, 그 외에는 무작위로 배정한다더라. 헉, 설마 이름이 여성스럽다고 날 여자로 착각해서 나한테 남편을 붙여주는 건 아니겠지? 그럼 어떡하지?”

성건우는 용여홍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

“생식기 이식, 신경 재건 수술, 인공 자궁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그 말에 용여홍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어? 내 말은, 회사에서 실수할 리가 없다는 거야. 내 모든 자료에는 다 남자라고 나와 있다고. 성건우 너도 참 이상하다. 보통은 잘못된 배정에 대해 불복 신청을 하라고 하지 않나?”

성건우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 용여홍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왜 중요한 건데?”

“이름은 한 사람의 운명을 대표하잖아. 무작위로 배정되는 배우자가 어떤 사람일지는 그 운에 달려 있고.”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잠시 굳은 표정을 드러낸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네가 건설적인 제안을 할 리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뒤이어 그가 물었다.

“건우 넌 어떤 아내를 배정받았으면 좋겠는데?”

성건우가 살짝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필요 없어.

회사의 자원은 부족하고 애쉬랜드의 인류는 재난에 처한 상황이잖아. 기근, 감염, 변이, 짐승으로의 변화 등의 그늘이 여전히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결혼을 해?”

그러자 용여홍은 하, 하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갈수록 농담 실력이 느는 것 같다?”

그를 바라보던 성건우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난 이미 이번 공동 결혼에 대한 포기를 신청했어.”

“진심이야? 회사에서 그 신청을 받아들일 리 없잖아! 하하,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네!”

화들짝 놀랐던 여홍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막 말을 마쳤을 무렵, 495층 활동 센터를 주관하는 진현오가 그의 자리를 떠나 액정 화면 앞으로 다가가 조작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약간 비틀거리듯 걷는 이 노인은 일찍이 안전부에 소속되어 대외 작전을 책임지던 직원으로, 줄곧 D7의 조장 직을 맡아왔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안전부를 떠난 후, D8 경리로 승급되어 이 층의 활동 센터를 맡고 있었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진현오라는 이 노인의 과거가 상당히 궁금했다. 그래서 수시로 활동 센터로 놀러와 이것저것 묻곤 했지만, 진현오는 비밀 유지 조례를 엄격히 지켰다. 그는 내부 생태 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성장하고, 늙으면서 평생 지하 빌딩 밖으로 나가지 못해 진정한 하늘을 본 적 없는 일반 직원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만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좋아, 시작하지.”

진현오가 손에 쥔 컨트롤 패드를 꾹 누르자, 화면은 몇 번 깜빡이다가 미약한 빛을 발했다.

용여홍과 조여름을 비롯한 이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분배 결과를 기다렸다.

화면에 표시된 내용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 자신의 배우자를 확인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각 층의 활동 센터에는 그 층에 사는 사람들과 관련된 결과만 뜨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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