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에필로그! (1)
캐롤이 태어나자 아이를 공방에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크랭크는 인근 거주 구역으로의 이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캐롯을 기다려야 한다며 아리에테가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공방 근처에 근사한 집을 새로 짓는 것이었다.
크랭크가 지은 집인지라 겉은 튼튼하고 속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집구경 중이던 캐롯이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신나게 소리쳤다.
“오오! 그럼 여기가 너희들 신혼집인 거네?”
“그렇게 되지. 하지만 잠만 잔다. 생활은 결국 공방에서 떠나질 못했어.”
캐롯이 킥킥 웃어댔다.
환영회 겸 바비큐 파티를 위해 아리에테는 모험단을 부르러 달려간 참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캐롯이 으히히 웃으며 크랭크에게 속닥였다.
“그래서 집사람이 살림은 잘해? 할 줄 아는 요리도 별로 없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로테에게 보모를 맡기려 했는데 애들만큼은 자기가 키울 거라면서 나름 열심히 노력했었다. 주력 요리 몇 개는 나보다 나을 정도지.”
크랭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질러진 집 안을 정리했다.
연신 깔깔거리던 캐롯과 졸졸 따라다니던 캐롤도 그걸 거들었다.
캐롤이 툴툴거렸다.
“어지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아빠! 나한테 맡겨! 따끔하게 일러줄 테야!”
빨랫감을 모으던 크랭크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큰딸을 바라보았다.
“그래 주겠니? 아빠 말은 잘 안 듣는구나.”
뱀 허물처럼 벗어 던진 옷가지를 개고 있던 캐롯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응? 뭐야뭐야? 이거 어지른 사람이 아리에테가 아냐?”
“아냐, 엄마는 집에서만큼은 아주 얌전해. 남동생들이 문제지.”
투구에 세로 주름이 간 크랭크가 손가락을 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들이 셋 있다. 아들이 셋, 누굴 닮았는지 아직 애들인데도 대단하지.”
“너희들 닮았겠지, 닮긴 누굴 닮아.”
투구를 숙인 크랭크가 끙하는 소릴 냈다.
그때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캐롯이 공방 입구를 어슬렁거리는 손님을 알아보았다.
“어어? 지오? 비타?”
두 남녀가 확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캐롯~! 어맛!”
“으어랏차차!”
만삭의 무거운 몸으로 도도도 달려오던 비타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것을 지오가 받쳐 냈다.
창문을 뛰어넘어 달려간 캐롯이 눈앞의 커다란 배를 가진 비타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비타아?”
“캐롯-!”
무릎을 꿇은 비타가 캐롯을 와락 껴안았다.
캐롤과 함께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아주 많이 안기게 될 거야.”
“우부부-! 우와! 비타! 이 배는 어떻게 된 거야?”
으히히 웃으며 고개를 든 비타가 지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사랑의 결실이죠!”
두 사람은 얼마 전 결혼했다.
하도 붙어 다니던 참이라 주변 사람들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캐롯이 그녀의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전에 개척민 마을에서 18살에 결혼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데 이거 좀 늦은 거지?”
“헤헤헤! 결혼한 신관은 임신하는 순간 신력이 사그라지니까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 했거든요. 하지만 우리 남편은 아직 현역이에요! 앞으로 나랑 애들이랑 먹여 살려 줄 거예요!”
지오는 모험단 초기 창설 멤버로서 겨울 기사단 제2반의 반장을 맡고 있었다.
“그렇구나. 코비는? 보리스는 모르핀이랑 살고 있는 걸 봤어.”
흐흐후후 웃던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보리스는 모르핀에게 코가 꿰어 제일 먼저 탈퇴해 버렸고, 코비도 비슷한 시기에 모험가를 그만두고 오토마톤 수리공을 거쳐 지금은 개척민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비타가 신나게 이야기했다.
“우리 캐롯에게 연수받은 첫날 고블린에게 습격당하던 마을에 들른 적 있었잖아요? 거기서 만난 아가씨랑 결혼해서 애가 셋이에요.”
“오우야. 다들 쑴풍쑴풍 잘도 낳네. 참고로 너희는?”
여전히 발랄한 비타 부인께서 음후후 웃더니 손가락을 폈다.
“이제 둘이요! 잔뜩 낳아서 모험단을 차리려고요.”
반면 지오는 얼굴에 세로 주름이 가 있었다.
“요즘 허리가 휠 것 같습니다.”
툭툭!
어느새 다가온 크랭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묵직한 투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세우자 지오도 허탈하게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곁의 비타는 그저 히히후후 웃고 있을 따름이었고.
이 와중에 캐롯은 두 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키는 이상한 행동을 벌였다.
아빠를 따라 나온 캐롤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캐롯 뭐해?”
“후으으으으음,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야. 으음, 극상의 아름다운 맛이야. 대리만족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아.”
캐롤이 주춤거리더니 걱정스러운 듯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아빠, 캐롯이 이상해.”
“그 녀석은 원래 그랬어.”
대답은 크랭크가 아니라 정겨운 목소리가 했다.
눈을 번쩍 뜬 캐롯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음! 이 낌세는! 토스트! 몰리 마법사단!”
길드에서 캐롯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인가 싶어 찾아와 본 몰리 마법사단의 친구들이었다.
새로운 얼굴도 몇 있었지만 대체로 예전과 다름없었다.
“캐롯-!”
호다닥 달려온 레나가 캐롯을 부둥켜안았고, 캐롯은 오토마톤이면서 비명을 질렀다.
뚜드드득-!
“호에에에?!”
“으갸아악! 부러져! 부러져! 레나! 그건 내가 아냐! 캐롤이야!”
깜짝 놀란 레나가 품 안에 있는 꼬마를 살폈다.
아는 사이인지 레나가 몹시 미안해하자 캐롤이 괜찮다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놀랍게도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른 게토가 흐뭇하게 웃었다.
“원, 캐롤 녀석 크는 걸 볼 때마다 캐롯이랑 닮아간다 생각했지만, 둘이 세워놓으니 쌍둥이 같은데?”
“이것이 바로 유전자의 힘이죠.”
두꺼운 팔뚝 근육을 선보인 크랭크의 대답에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자넨 애를 보고 난 후부터 사람이 좀 느긋해진 것 같구만.”
크랭크는 대답 없이 엄지만 세웠다.
하지만 모두는 저 투구 속의 얼굴은 분명 즐겁게 웃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캐롯이 후닥 끼어들었다.
“아니! 게토 대장님은 원래 대머리 아니었어요?”
머리카락을 멋지게 쓸어 넘긴 게토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가발이야, 장인이 대머리면 올리브 혼삿길에 지장을 줄지도 모른다고 집사람이 성화를 부려서 말이지.”
속사정을 전해 들은 캐롯이 배를 잡고 파하하 웃어 버렸다.
몰리 마법사단의 친구들도 다들 나이를 먹은 얼굴이었다.
게토 대장처럼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었고, 특히 애덤의 경우엔 체격이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레나만 아무런 변화 없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강화 인간은 안 늙어?”
“노화가 느리대. 애덤 부럽네.”
애덤도 웃으며 캐롯을 반겼다.
“하여튼 오랜만이야.”
캐롯은 대답 대신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배를 쑥 내밀며 도전적인 시선으로 웃었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자신만만한 그 모습만으로도 캐롯이 돌아왔다는 것을 다들 실감하고 즐거워했다.
캐롯이 그들을 살피며 물었다.
“정작 몰리가 안 보이는데? 방화 신관 에리스도.”
“몰리는 일 그만두고 마법 상점을 차렸어. 에리스도 결혼했고.”
게토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파티 주력 멤버가 동시에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아찔하더군.”
내심 미안했는지 이미스와 맺어진 유리가 머리를 긁적였고, 토스트는 시무룩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반지까지 사 와서 울면서 매달리는데 그거 아주 신기한 충격과 공포였지.”
“그 몰리가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녀석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토스트가 죽은 눈빛을 하고 중얼거렸다.
“여자가 울어도 봐주면 안돼. 그건 악어의 눈물이야. 요즘 빨리 안 들어온다고 잔소리가 늘었다니까. 용돈도 짜게 줘.”
모두가 하하호호 웃었다.
여전히 팀원을 통솔하는 게토 대장은 가발 덕분인지 수염까지 길렀는데도 그다지 늙지 않은 모습이었다.
리모가 거들었다.
“게토 대장은 원래 노안이라서 그래. 대신 올리브가 엄청 자랐지.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굉장한 아가씨가 되었어.”
“오오오! 정말?”
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요즘 게토 대장의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외출할 때는 아스칸을 데리고 다니라고 할 정도니까.”
모두의 근황을 들으며 캐롯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히히 웃었다.
그리고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뭔가 억하심정이 든 듯 두 손을 방방 흔들며 분통을 터트렸다.
“에이이! 왜 내가 없을 때 이렇게 재미난 일이 생긴 거야! 너희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하나도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어! 이 망할 드래곤! 내게 심술을 부리려 했다면 더없이 성공적이야!”
작은 인형의 울화통에 모두가 프하하 웃어댔다.
그러다 따라온 아스칸도 한마디 남겼다.
“돌아와서 기쁘다. 우리는 항상 작은 영웅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곤 묵직한 주먹을 내밀었다.
뾰로통해진 캐롯은 그 주먹에 제 주먹을 마주 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이 모두를 앞에 두고 도끼눈으로 외쳤다.
“자! 지금부터 바비큐 파티야! 온 김에 배불리 먹고 가도록 해! 아니, 아예 동네잔치를 벌이자! 그간 쌓인 이야기도 잔뜩 하자! 오늘은 집에 갈 생각하지 마! 이름하여 캐롯 오신 날!”
“오오오!”
때는 바야흐로 한여름, 공방 앞마당에서 캐롯의 귀환 환영회를 겸한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접하고 사실 확인차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나중에는 정말로 마을 축제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어느 용맹한 꼬마 인형의 귀환을 반겼고, 캐롯은 잔치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간 놓쳐왔던 이웃사촌들의 인사와 근황을 접했다.
해가 떨어진 느지막한 저녁, 겨울 기사단의 마법사가 반딧불 같은 빛무리를 일으켜 사방을 밝혀놓았다.
퐁퐁 날아다니는 빛 구슬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걸 보던 캐롯도 눈을 반짝였다.
“오! 잘하잖아?”
“스승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요.”
얼굴에 주근깨가 뿌려진 시골 소녀가 수줍게 웃어댔다.
개척민 마을에 의뢰차 갔다가 재능을 가진 소녀가 있어서 리슐리에가 데려왔다고 한다.
캐롯이 한참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 리슐리에는?”
“스승님은 이번 주 휴가세요. 수도 본가에 맞선 보러 가셨어요.”
“엣? 너 리슐리에 제자야?”
주근깨 소녀는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둘 사이에 나타난 아리에테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외쳤다.
“그뿐만이 아니다! 봐라! 총인원 60명! 여기 모인 녀석들이 전부 겨울 기사단이야! 너에게만은 자랑하고 싶구나!”
흥분한 아리에테의 손짓에 한참 고기를 굽거나 먹고 있던 젊은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장 인원 60여 명에 오토마톤까지 포함하니 상당한 위용을 자랑했다.
그들을 마주 보고 있던 캐롯 역시 놀라워했다.
“우와! 여기 사람 전부가? 잘 부탁해요. 여러분! 캐롯이에요! 어느 고상하고 심술 맞은 레드 드래곤과 7년간 사투를 벌이느라 늦어 버렸지 뭐예요.”
파티 겨울 기사단은 캐롯을 잃고 한때 와해 직전까지 갔으나, 어찌어찌 만성 수면 부족을 해결한 아리에테가 정신을 차린 후 초보 모험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보관 중인 캐롯 시리즈를 십분 활용,
7년이 지난 지금은 방주 도시 아르곤에서 손에 꼽는 대형 모험단으로 성장하였다.
게다가 캐롯의 그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까지 어른이 되어 모험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그들에겐 가히 전설의 귀환이었다.
모두가 우렁차게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드래곤 슬레이어!”
“으갹!”
함성에 놀란 캐롯이 아리에테에게 성화를 부렸다.
“네가 시킨 거지? 애들에게 이상한 거 가르쳐 주지 마! 나는 인형이라고!”
“여기선 아니다. 그리고 기분 좋았잖아?”
아리에테의 회심의 미소에 캐롯 역시 탐욕스런 웃음으로 대답했다.
“우효효-!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이 많은 인간님들이 나를 우러러봐 주다니 정말 최고로 멋진 기분이야.”
몸을 휙 돌린 캐롯이 모두를 향해 두 팔을 펼쳤다.
“와! 우리 파티가 이마만큼 커졌구나! 대단해! 여러분 반가워! 이제 나와 같이 모험을 하자!”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