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2)
우다다다 달리던 캐롯이 다음에 들른 곳은 롤 아저씨네 빵집.
땅그랑!
문 위의 종이 흔들릴 정도로 열어젖힌 캐롯을 마주한 것은 이제 어엿한 20대 숙녀가 되어 버린 에밀리아였다.
“캐롯?”
“안녕? 에밀리아.”
“캐롯!”
와다닥 달려온 에밀리아가 캐롯을 껴안았다.
아하하 웃어 버린 캐롯이 그녀의 등을 쓸어주는데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 롤도 눈시울을 적시며 달려왔다.
“캐롯! 이 녀석아!”
“으하하! 그래도 다행이야! 7년밖에 안 지나서! 다들 아직 살아 있어!”
반가워하는 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캐롯이 에밀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와! 에밀리아, 키 엄청 커졌다. 참! 결혼은 했어? 남자 친구는?”
에밀리아가 뒤로 땋아 내린 긴 머리카락을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캐롯이 약속했던 머리카락을 가져가 주지 않아서 아직 혼자지 뭐예요.”
“기억하고 있었구나! 좋아! 다음은 너로 할게! 꼭이야! 좀 있다가 또 봐요! 나 이제 주인님 보러 가야 함!”
빵집 문을 박차고 나선 캐롯은 드디어 7년 만에 공방으로 돌아왔다.
냄새며 모양이며 옛날이랑 똑같다.
다른 점이라면 앞마당 귀퉁이에 가정집들이 들어섰다는 것.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캐롯은 살금살금 6번 창고로 향했다.
땅땅땅!
안에서 누군가 작업 중인지 망치질 소리가 정겹다.
빼꼼 문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7년 전과 다름없는 거인이 자리에 앉은 채 무언가를 다듬고 있었다.
으히히 웃음 지은 캐롯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방으로 들어섰다.
“와! 이번 모험은 정말 길었지 뭐야?”
평소처럼 의뢰를 해결하고 지쳐 돌아온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캐롯은 총총 크랭크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둘러본 공방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는 아니었다.
이것저것 가구 배치 정도는 달라진 상태였고, 묘하게 사람 사는 모양이 짙은 채였다.
그러니까 어질러진 상태였다.
“틀림없이 아리에테의 소행일 거야. 정리 정돈 좀 하라고 몇 번을 일러줘야 해.”
어질러진 공방의 모습에 캐롯은 크랭크를 보러 가다 말고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며 왜 굴러다니는지 모를 장난감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크랭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작업에 매진 중.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산을 떨던 캐롯은 정리를 끝마치고 나서야 그에게로 다가가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부터 뭐 해?”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크랭크는 묵묵부답, 그래서 직접 말을 걸어보았다.
이윽고 뒤를 돌아본 크랭크는 잠깐 그윽한 눈빛을 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일감을 주물렀다.
그리고 대답했다.
“다녀왔니?”
“응! 나 돌아왔어. 들어봐봐! 굉장했다고?”
신이 난 캐롯이 드래곤과의 무용담을 떠들어대려는데 갑자기 확 몸을 돌린 크랭크가 캐롯을 끌어안아 버렸다.
“우업?”
“캐롯?! 정말 캐롯이냐? 이럴 수가!”
투구를 벗어 던진 크랭크는 가슴에서 떼어낸 캐롯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다시 한 번 더 끌어안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질끈 감은 눈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스며 나올 정도였다.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크흐윽!”
짧은 팔을 들어 그의 등을 두드려 준 캐롯이 으히히 웃음 지었다.
“흐헤헤! 맞아, 드래곤과의 사투에서 내가 기어코 돌아왔어. 그리고 주인님을 찾아왔다고, 기특하지?”
크랭크는 대답 대신 캐롯과 얼굴을 비비며 그 작은 몸을 보듬어 주었다.
이런 식의 감정 표현이 적은 크랭크였기에 캐롯도 푸근하게 웃으며 그에게 잠시간 안겨 있었다.
그런 주인님과 자동인형의 극적인 상봉 중에 방해꾼이 들이닥쳤다.
“아빠, 심부름 다녀왔……? 어어? 그 애는 누구야?”
“잉? 아빠?”
크랭크에게 안겨 있던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으로 들어선 소녀를 바라보았다.
금발, 파란 눈, 하얀 피부, 그리고, 저 얼굴!
캐롯이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악하하! 해냈구나! 크랭크! 해냈어! 이거 좀 놔봐!”
크랭크의 감격을 힘으로 벌린 캐롯이 와다다 달려가더니 자기와 꼭 닮은 소녀를 마주했다.
눈동자 색과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거의 쌍둥이라도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소녀도 놀라서 주춤거렸다.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소녀를 살피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크랭크는 투구를 벗은 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를 엄청나게 닮아 버렸네? 이제 엄마를 맞춰볼게! 두구두구두! 아리에테야! 맞지? 이 금발하고 눈매! 그 녀석 아니면 안된다고!”
몹시 쑥스러웠는지 크랭크는 투구를 주워 다시 머리에 썼다.
“어, 음. 맞아.”
“우효오오오! 으쟈아아! 신님! 내가 미우실 테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으하하하!”
똑같이 생긴 애가 혼자서 발광하는 것이 무서웠는지 훌쩍이던 소녀는 도도도 달려 크랭크에게 매달렸다.
“아빠! 아빠!”
으히히 웃어 버린 캐롯은 사이 좋은 부녀지간을 감상했다.
크랭크가 딸애에게 캐롯을 소개했다.
“캐롯이란다. 아빠의 자동인형. 내내 이야기했던.”
“캐롯? 엄마가 들려주던 그 이야기 속 주인공?”
소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놀라는 모습조차 캐롯과 똑닮았다.
안쪽으로 달려간 소녀는 이야기책을 잔뜩 가져와서 가리켰다.
“이거 전부 너야?”
“응! 이거 전부 나야. 네 아빠랑 나랑, 엄마랑 난리를 부리던 때지. 그립네. 그런데 너 이름은 뭐야?”
“캐롤.”
캐롯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크랭크는 투구를 돌리려다 캐롯과 마주했다.
“나는 말렸다.”
“그럴 줄 알았어.”
다시 캐롤을 바라본 캐롯이 히히 웃어 버렸다.
“반가워 캐롤. 나는 캐롯이야. 네 아빠랑, 엄마랑 같이 모험을 했어.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응응! 알아! 엄마가 밤마다 이야기해 줬어.”
얼굴이 똑같다 보니 익숙해지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가아앙! 끼이기긱!
그때쯤 커다란 자동 이륜차가 미끄러지듯 마당으로 들어섰다.
서둘러 내린 금발 여자가 공방으로 들이닥쳤다.
“캐롯이! 캐롯이 돌아왔다면서! 어디에 있어! 어디에!”
안으로 들어와 보니 딸내미가 둘이 되어 있다.
7년 전 삼나무 숲에서 겪었던 도플갱어 사건을 떠올린 아리에테가 기겁하더니 물었다.
“캐, 캐롯? 캐롤인가?”
히히 웃음 지은 캐롯이 캐롤과 두 손을 마주 잡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네 딸이게?”
“에잇! 둘 다 내 딸이다!”
와락 덤벼든 아리에테는 둘 모두를 부둥켜안았다가 울음까지 터트렸다.
“으아아앙! 너만, 너만 남겨두고 가서 미안해! 미안해 캐롯! 으우우!”
“울보 마왕에 이어 울보 기사네.”
“엄마 왜 울어? 울지 마아아아앙!”
울보들에게 둘러싸인 캐롯이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주인님! 도움! 도움!”
“크크큭, 하하하하!”
웃음 코드가 이상한 거인은 이 상황에서 그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아이구! 울지 마! 그리고 웃지 마!”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감격에 겨운 환영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캐롯은 느긋하게 크랭크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메르카바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쎄 나와보니 7년이나 지났지 뭐야?”
“그랬군. 중간에 동력이 끊어졌을 때 방치한 게 아닐까?”
“내 이 드래곤을 당장에!”
울컥한 아리에테를 바라본 캐롯은 정신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몰라보겠네, 아리에테 맞지? 이제 몇 살이야? 키가 좀 더 커진 것 같은데.”
“음, 그러냐? 이제 29살이다. 우리 여보야랑 4살 차이지.”
29살이 된 아리에테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어리숙한 여기사의 모습은 완숙미가 더해진 베테랑 여기사로 탈바꿈되었다.
게다가 7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왼쪽 눈가에 긴 상처도 하나 생겼고.
“채찍 하나 들면 잘 어울릴 여왕님 같아졌네. 그런데 여보야?”
큰딸을 품에 안은 아리에테가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우고 콧바람을 뿜어냈다.
반면 크랭크는 몹시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니, 너 근육은 싫다면서?”
“애들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만 입맛은 바뀌게 마련이지. 여기 캐롤이 큰 딸이고 아래로 아들이 셋 더 있다. 그리고 뱃속에 하나 더.”
놀란 캐롯이 콧구멍을 마구 벌렁거리며 뒤통수로는 주인님의 가슴을 두드렸다.
콩콩-!
“호곡?! 어이어이! 크랭크! 애가 다섯이라고?”
크랭크는 이제 두 손으로 투구를 가리고 있었다.
굉장하다는 표정을 지어준 캐롯이 주변을 살피며 또 다른 가족의 이름을 불렀다.
“맞다. 투나는? 투나가 안 보이네?”
아리에테와 크랭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캐롤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리에테가 입을 열었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첩이라든가 두 번째 부인이라도 상관없었다. 본가에서도 그럴 운명이었고.”
“에엥? 무슨 소리야?”
크랭크가 답했다.
“투나는 집을 나갔다. 편지 한 장 남겨놓고.”
캐롯이 돌아오지 않게 되자 죄책감에 빠진 아리에테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고, 크랭크도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내내 캐롯을 기다리며 지금 완성된 상회 건물에 기거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덜컥 캐롤이 생겨 버렸지.”
아리에테가 거들었다.
“네가 없어지고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었지,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숙면에 들 수 있었어. 그래서 계속 졸라댔다.”
몹시 부끄러워진 크랭크는 다시 두 손으로 투구를 덮었다.
캐롤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같은 얼굴의 캐롯이 사나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것과는 참 대비된다.
아리에테는 계속 말했다.
“그러다 임신을 숨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어.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투나는 정말 기뻐하면서 축하해 줬어. 캐롤을 받아준 것도 투나였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져 편지를 가져온 크랭크가 말을 이었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3달쯤 되었을까? 집을 나가 버렸어.”
편지를 받아 든 캐롯이 그걸 펼쳐 내용을 읽었다.
긴 내용이었데, 요약하면 함께해서 즐거웠으며, 두 사람의 행복을 빈다는 내용이었다.
추신, 퇴직금으로 샤를을 받아 갈게, 으히힛.
캐롯이 코를 벌렁이며 편지를 흔들었다.
“말더듬이에 좀 바보 같아도 눈치는 꽤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샤를은 어떻게 데려갔어?”
크랭크가 투구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게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한 것인지.”
“가계약 상태니까. 요령껏 후벼판 게 아닐까?”
“투나에게 그런 용의주도함이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캐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나 나름의 배려였구나. 기특하네. 어, 미리 못 박아두지만 나는 양보하지 않을 거야? 이건 네 남편이기 전에 내 주인님이거든?”
“무……! 그런 건 당연하다! 독점 따위 당치도 않아! 지금이라도 투나에게 말해주고 싶어. 같이 나눠 먹어도 괜찮다고.”
“프하하!”
캐롯이 배를 잡고 웃어 버렸다.
크랭크는 콧방귀 소리를 내면서 팔짱을 끼었다.
“나는 로멘티스트다. 여자는 하나면 족해.”
입을 꾹 다문 아리에테의 얼굴이 확 달아올라 버렸다.
캐롯은 그걸 보고 더 크게 웃었다.
크랭크는 계속 떠들었다.
“덧붙여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알고 있으니 거기까지만 해라! 모처럼 후한 점수를 주려 했는데 당신은 항상 끝이 시원찮아!”
티격태격하는 크랭크와 아리에테를 보고 캐롯이 눈을 반짝였다.
“호이이이, 이건 이것대로 보기 좋네. 좀 더 해봐.”
아리에테는 크랭크를 슬쩍 올려다보고는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캐롯이 캐롤을 보고 물었다.
“캐롤, 엄마 아빠 사이 좋아?”
“응, 사이 엄청 좋아.”
가족 흉내를 내다 부부가 되어 버린 둘은 서로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버렸다.
캐롯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7년이 지났지만 난 이 결혼 찬성일세!”
짝짝짝!
누군가가 열심히 손뼉을 쳤는데 캐롤이었다.
모두가 흐뭇해진 그때 크랭크가 주먹을 내밀었다.
“돌아와서 정말로 기쁘다. 잘 돌아왔어. 기다리고 있었다.”
“와! 이거 오랜만이네.”
캐롯이 크랭크의 주먹에 주먹을 마주 대자 아리에테도 의수로 된 팔을 내밀었다.
“나도다. 이제 밤마다 크랭크나 캐롤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겠어. 장거리 의뢰도 한결 손쉽겠구나.”
“호우우우예에에! 크랭크으으?”
“흠흠, 애도 있으니 좀.”
몸을 쑥 내민 캐롤이 다 안다는 듯이 모두의 주먹이 모인 곳에 작은 손바닥을 덮었다.
“나도 알아. 엄마는 아빠나 날 안고 자야 잠이 잘 온데.”
“오구오구, 그럼요. 당연하죠. 쿄쿄쿄.”
알 거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던 발칙한 자동인형이 음흉하게 웃더니 아리에테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요즘은 뭘 하고 지내? 여전히 모험가하고 있어? 던전은? 다른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
“들으면 놀랄 이야기가 아주 많아. 위대한 모험가가 돌아왔으니 오늘은 파티를 벌이자. 모험단 멤버들과 길드 사람들 다 불러서, 그렇지? 여보야?”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껴둔 몬스터 고기를 꺼낼 때가 왔구나. 모두를 초대하자.”
“오오!”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고 캐롯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아하하! 좋네! 오늘은 파티!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즐거운 모험은 이대로 쭉 계속되는 거야!”
Fin
지금까지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찾아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이걸로 끝이 아니고 에필로그가 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