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9)
여러 가지 논란과 논의, 그리고 로비 끝에 경비대로 허가 공문이 내려졌다.
대북부 개척 사업의 준비 작업으로 마족에게도 자동 인형의 정식 판매를 허가한다.
공문의 첫 구절은 모험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대북부 개척 사업!
비록 아직 협의 중이지만 그 준비만큼은 착착 진행 중이었다.
아니, 현재로선 거의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이 소식은 상점 건물 공사에 한창인 크랭크의 망치질 속도를 높여 놓았다.
탕탕탕!
“내가 위원회라면 올겨울을 넘기고 싶지 않을 겁니다. 겨울에는 몬스터가 줄어드니 자원 탐사에 제격이지요. 적어도 내년 1월 중순에는 발표가 날 겁니다.”
마족 수비대가 사실상 와해된 지금, 인간 측 경비대에서 주변 경계를 다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장 병력 총동원령에 소환된 모험가들은 돌아가며 거기에 투입되는 중이었고.
지루한 순찰 대신 크랭크의 건물 공사에 따라온 코비가 자재를 옮기며 씩씩하게 외쳤다.
“남부 겨울 출장은 놓쳤지만! 북부 탐사는 가능한 참가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코비, 그러니 힘냅시다.”
크랭크의 말에 코비가 기쁘게 웃으며 엄지척을 선보였다.
크랭크가 할 말이 없으면 하던 짓인데 그게 요즘 공방의 유행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벌써 하고 있었냐? 내가 제일 빨리 온 줄 알았는데.”
별안간 들리는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건물 공사 일에 고용된 마족 인부가 자켓을 벗고 있었다.
반쯤 지어진 건물 안으로 뒤따라 들어온 것은 어제까지 만해도 경비를 서던 오토마톤.
마족 여자가 즐겁게 웃으며 자랑했다.
“케케케! 좀 봐줘라. 샀다! 내 인형이다! 으음! 이런 기분이구나.”
혀를 빼물고 사납게 웃는 그녀를 보고 크랭크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그녀의 오토마톤을 이리저리 살폈다.
“소문의 자동 인형 구매 1호 마족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그렇지. 꼬불쳐 뒀던 거 다 털어 넣었다. 당분간 빈털터리야. 일감 좀 많이 줘.”
크랭크가 물었다.
“유유, 당신은 이걸로 뭘 할 셈입니까?”
허리에 공구 벨트를 차던 마족 유유가 가만히 서 있는 오토마톤을 보면서 대답했다.
“뭐야, 너도 그런 걸 물어보냐? 말동무에 난로로도 쓰고, 일도 시키고, 쓸 곳이야 무궁무진하지.”
그리고 물도 떠다주고요.
투구 안, 크랭크의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
하지만 선은 확실히 그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오토마톤을 여기 일에 동원할 수는 없습니다.”
“에엥?! 정말이야?”
“법이 그렇습니다. 노동은 사람의 것입니다.”
“아니! 플레인 녀석의 인형은 잘만 부려 먹잖아!”
“그건 도구로 쓰고 있는 겁니다. 일당을 지급하진 않습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녘인데도 건물 공사에 동원된 일꾼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거기엔 목수 모험가 플레인과 금발 사슴뿔 메이브도 있었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뭐냐? 방금 나 부른 건가?”
곁에 따라온 버터 감자 메이브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유유, 너무 외로워서 오토마톤을 샀다면서? 미쳤구나.”
“남이사! 감자에 침 뱉어 팔다가 말아먹은 주제에 내 결정에 입 대지 마. 박수나 치라고! 박수나!”
짝짝짝!
킥킥 웃으며 메이브는 정말로 손뼉을 쳐주었다.
“잠깐이었지만 불티나게 팔렸었어. 지금도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고.”
“오웩오웩!”
플레인이 헛구역질 흉내를 내자 메이브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엎어져 버린 플레인은 버럭 역정을 냈다.
“위험하니 공사 현장에서는 장난치지 마라! 그 힘으로 사람을 걷어차지도 말고! 음식에 침을 뱉지도 마!”
사납게 웃으며 혀를 빼문 메이브가 킬킬거렸다.
“작업반장, 돈은 필요 없으니 여기 건물에서 식당을 하게 해줘. 처마 밑의 노점이라도 상관없다.”
“안돼! 또 요리에 침 뱉을 셈인 거다!”
“으하하! 좋다고 그걸 빨아먹던 놈들의 얼굴이 잊히질 않지 뭐냐!”
난장판을 앞에 둔 크랭크는 투구를 절절 흔들었다.
발광하던 둘은 곧 유유의 오토마톤에게 관심을 보였다.
무장은 반납했지만 전투복은 유유가 돈이 없어서 당분간 경비대의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 줬어?”
“990만.”
“990만? 버터 감자가 하나에 일천 리즈였으니까. 몇 개지?”
“셈도 못하냐? 990개다.”
“9,900개다, 이 바보들아.”
금발 사슴뿔 메이브가 기겁했다.
“버터 감자가 9,900개? 미치지 않고서야, 그 돈이면 널 데려가 모셔줄 인간 남자가 줄을 섰을 거다.”
인간 여자와 다를 바 없는 몸집으로 무거운 자재를 휙휙 들어 옮기던 유유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작업반장 말 못 들었냐? 돈은 수단일 뿐이라고. 야, 넌 내가 위험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구할 것입니다.”
유유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봤지?”
“하지만 여기 일에 일당을 줄 수는 없습니다. 모험가 일이라면 오토마톤 소유자에게 추가금을 더해주지만요.”
“음, 그런가? 다음 일은 수색대에나 들어가 볼까.”
크랭크가 망치질하며 말했다.
탕탕!
“건물이 완성되면 여길 거점으로 수집꾼을 고용할 겁니다. 그때 지원해 보시죠. 오토마톤 소유자는 1.5배 드릴 겁니다.”
“좋아! 야! 거들어라! 저걸 옮겨와!”
이제 도면을 살피던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유유, 제대로 이름을 붙여주십시오. 오토마톤도 사고체계가 인간과 비슷해서 호감도와 경험이 쌓이면 가끔 놀라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어, 예를 들면?”
“나처럼 되는 거야! 노가다 십장 캐롯 등장!”
갑자기 캐롯이 들이닥쳐서 소리를 뺙 질러대자 근처의 거주 구역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야! 땅콩! 좀 시끄럽다고!”
“미안해요! 하지만 잔인한 아침은 또 밝아 버렸어! 어서 출근을 서두르자고! 오늘도 강하고 힘찬 아침!”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대규모로 확장된 휴전선 마을을 비췄다.
그 빛무리 속에서 손나팔을 만들고 밝게 소리치는 꼬마 인형을 보고 마족 유유는 순전히 흥미 위주로 데려온 자기 오토마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저렇게 된단 말이지?
크랭크가 캐롯에게 주의를 주며 말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을 때와 잘 때는 건드리면 안된다. 그런데 경비는 어쩌고?”
“이번 순찰 구역이 마을 주변이야. 그래서 주인님 얼굴 보러 잠깐 들른 거지. 쑥쑥 올라가는 우리 건물도 볼 겸.”
뒷짐을 지고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캐롯이 히히 웃음 지었다.
그러다 곧 두 팔을 벌리고 한참 공사 중인 건물을 품에 안을 듯이 외쳤다.
“세상에! 드디어 우리가 건물주까지! 으하하! 보기만 해도 배불러! 여기 언제쯤 완성돼?”
도면을 펼치고 아침 햇살에 드러난 앙상한 기둥과 뼈대를 살피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탐사대가 출발 전까지 완성했으면 좋겠지만 늦어지면 나는 빠지겠다. 건물 완성이 더 중요해.”
“음, 모르핀이 그러던데. 인간들이라도 겨울에는 저길 들어갈 수 있데. 대부분 겨울잠에 들어 버린다더라고?”
고개를 휙 돌린 캐롯이 지나가는 사슴뿔 메이브에게 물었다.
“진짜예요?”
“뭐, 그렇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선 위로는 다시 밀림이 펼쳐져 있어. 최북단은 사시사철 여름이거든?”
“호오오우우예에에! 대빵 신기방기! 겨울 위에 다시 여름이라고? 어서 쳐들어가고 싶다! 쳐들어가서 그 모든 걸 이 두 눈에 담고 싶어!”
바로 그것이 나의 모험!
캐롯은 V자 손가락을 양 눈가에 대고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쾅! 쾅!
나무판자에 못을 한 방에 하나씩 때려 박던 메이브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원시림은 위험해. 너희들 세계의 몬스터는 장난 수준이야. 하여튼 가보면 알 거다.”
빠각!
“앗!”
삐끗한 그녀의 망치는 벽을 때려 버렸다. 푹 들어간 나무판자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목수 모험가 플레인이었다.
“좀 살살 두들기란 말이다! 초보 주제에 한 방에 박아 넣으려 하지 마!”
“네놈 볼기짝을 걷어차는 정도로?”
“그랬다간 벽이 박살 날 거다! 비켜봐라. 이 몸이 마법을 부려주마.”
망치를 든 메이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모르는구나. 선 안쪽인 이쪽에선 너희들 마법이 안 써져.”
미간을 찡그린 플레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게 아니라 내가 솜씨를 부려 네가 망가뜨린 이걸 말끔하게 고쳐보겠다는 소리였다. 어찌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냐?”
“자식이, 너야말로 앞으로 마족과 대화하려면 그런 에두른 표현은 하지 마. 가능한 직설적으로 말해. 내 침을 빨아 먹고 싶다고 확실히 말하라고.”
도끼눈을 뜬 플레인이 이빨을 드러냈다.
“메이쁘으으으으!!! 네 장난질에 토악질을 얼마나 했는지 알으앗!”
“아하하! 하하하하!”
사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를 둘의 장난질을 구경하며 같이 웃어주던 캐롯은 곧 몸을 돌리고 근무지 복귀를 선언했다.
“아리에테가 걱정할 거야! 이만 돌아가 볼게!”
“수고해라.”
“응!”
캐롯이 막 몸을 돌리려는데 입구로 일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뭐야? 다들 일찍들 나왔군?”
“오오, 드래곤 슬레이어잖아?”
“캐롯 님이시다!”
“오우예! 반가와요! 아저씨들! 우리 건물 잘 부탁해요!”
집 지어주는 사람들인지라 캐롯은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해주고 나서야 근무지로 달려갔다.
인부들이 도착하고 본격적인 공사 작업이 개시되었다.
공사는 선 안쪽뿐만 아니라 선 밖에도 진행되고 있었다.
영역을 확장하면서 원래 있던 경비단 건물까지 전부 마족들에게 빼앗긴 꼴인지라 휴전선 밖에 새로운 경비단이 들어서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넘치는 일감은 많은 사람을 불러들였다.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할 마왕성이 그 아래에 기회의 땅을 펼쳐 놓은 것이다.
* * *
아르곤 영주 저택의 집무실.
돈줄이 늘어난 덕에 바쁜 나날을 보내던 영주는 이날도 업무에 치여 일하다가 중요한 손님의 방문으로 잠시 한숨 돌리게 되었다.
찻잔을 앞에 둔 그가 퀭한 눈으로 밝게 웃음 지었다.
“중요 거점 건물이 완성되면 북부 원시림 개척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것입니다. 저쪽도 이 사업에 의욕적이라 거의 확실시 보고 있지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군요.”
사실인지라 영주는 웃어 버렸다.
그러다 영주가 맞은편에 앉은 자들에게 되물었다.
함께 사업을 추진 중인 영주도 상대측에 물어보기 껄끄러운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왕성은 여전히 그대로군요. 상황을 지켜보는 걸까요?”
마왕성은 그 상징성 때문에 거기 존재하는 것으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솔직히 다들 실무진 정도만 남겨 놓고 어서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함대를 끌고 온 엘프들이 대답했다.
“어찌 됐든 마왕성만 철수하면 이쪽도 함대를 물릴 겁니다. 그리고 오늘 찾아온 이유는 원시림 탐사대에 우리 측 인원도 포함해 주셨으면 합니다. 거긴 정말 미지의 땅이거든요. 정보 공유도 요청합니다.”
영주는 흔쾌히 허가했다.
숲을 좋아하는 엘프들까지 따라와 준다니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요 1년 사이 도시에 겹경사가 벌어지고 있어서 정말 이대로만 간다면 앞으로 좋은 일, 신나는 일만 가득할 것이라 여겼다.
에탕다르의 역습이 있기 전까지는.
* * *
청동문 게이트 앞에 팔짱을 낀 메르카바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그녀를 마주한 자들의 머릿속에 직접 소리가 울린다.
-전원, 준비는 되었느냐?
에탕다르를 선두로 엄선한 마족 특공대가 사악한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