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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07화 (307/329)

307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8)

그 시각 마왕성.

개인실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에탕다르는 커다란 수정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정구가 물었다.

-에탕다르, 꽤 피곤한 얼굴이지 않나?

귀찮다는 듯 목의 갈기를 벅벅 긁은 그가 중얼거렸다.

“마왕이 인형 놀이에 빠져서는 일거리를 전부 나한테 미루지 뭐냐. 오늘도 바빴다.”

수정구 안의 저쪽은 밤인지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그 속에서 짧은 웃음소리와 함께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사가 마왕을 망쳐 놓았다. 그러니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안된다.

팔짱을 낀 에탕다르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깊은 눈동자에 언젠가 공중 정원의 꽃밭을 가꾸던 마왕과 용사, 오토마톤 피아노가 잠깐 보이는 것 같다.

“음,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꼴에 둘이서 우리 눈을 속이고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 그럴듯하거든.”

잠깐 대답이 없던 수정구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탕다르, 우리는 약속을 지킨다. 네 일족은 새로운 사냥터를 얻을 것이다.

저쪽은 목소리뿐인지라 상대가 보일 리가 없는데도 에탕다르는 고개를 숙여 수정구를 들여다보았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쪽은 사천왕 자리를 걸었다. 약속이 틀리면 네 녀석 넓적다리뼈가 무사하지 못할 거야.”

수정구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경꾼을 이용하면 간단할 거다. 이건 마치 하늘이 주신 기회로군.

“언데드가 하느님도 믿고 그러냐?”

-믿는다. 다들 그분을 부르짖으며 이런 몰골이 되기 때문이지.

수정구 건너편에서 통신 중인 것은 마왕군 사천왕의 하나인 희망의 데스나이트, 에탕다르는 유쾌한 뼈다귀 기사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참고로 관계도는 언데드는 수인족을 싫어하고 수인족들은 언데드를 좋아한다. 이유는 썩은 고기와 뼈다귀를 씹을 수 있어서.

-방법은 네게 맡기겠다. 그 인형만 제거한다면 우리의 마왕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혹은 둘 다 없애도 상관없다.

깍지 낀 손에 턱을 바친 에탕다르가 물었다.

“사천왕의 다른 두 녀석은?”

-조건부 동의했다.

“좋아. 실행해 주지.”

희망의 데스나이트가 그를 축복하고 슬쩍 본심을 내비쳤다.

수정구의 어둠 속에서 칼날 같은 두 가닥의 푸른 눈매가 드러났다.

-그대의 무운을 빈다. 우리 함께 마왕님을 모시고 남쪽의 따뜻한 바다를 보러 가자.

칭-!

수정구 통신이 꺼졌다.

에탕다르는 찡그린 얼굴을 들었다.

“쓸데없이 멋진 척은 혼자서 다 하는군. 역시 이놈이 제일 미친 것 같아.”

그 뒤로 짧은 심호흡을 한 그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낡은 수첩을 펼치더니 한참 무언가를 찾다가 수정구 통신을 다시 작동시켰다.

츠팟!

아주 오래된 주소인데도 수정구에 빛이 떠오르고 놀랍게도 연결되어 버렸다.

수정구에 비친 곳은 어딘가의 가정집 거실 같은 곳이었다.

코를 바싹 들이대고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흠! 메르카바 님 계십니까? 에탕다르입니다. 메르카바 님?”

헛기침을 하며 몇 번 그렇게 부르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정부 차림의 인간 여자였는데 머리에 이상한 더듬이가 달렸다.

“권속이신가? 메르카바 님께 이 에탕다르가 찾는다고 전해주시겠소?”

수정구에 얼굴을 들이밀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곧 말도 없이 몸을 돌리더니 한참 후 목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소녀를 데리고 왔다.

에탕다르가 반색했다.

“오, 메르카바 님!”

뚱한 얼굴로 수정구에 얼굴을 들이댄 소녀가 그를 알아보고는 히죽 웃는다. 그러고는 입을 여는데 잔뜩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엑, 에, 에탄다루냐. 오, 오랜…… 쿨록콜록! 제길!

수정구를 옮기는 것인지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곧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메르카바와 그 아래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메이드 여자가 보인다.

메르카바는 그녀의 머리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여자의 입을 빌려 말했다.

“에탕다르. 오래간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입을 빌려준 여자는 무표정했지만 목소리만은 신난 채였다.

캐롯의 이야기를 떠올린 에탕다르가 정말인가 싶어 물어보았다.

“그 목소리는 어떻게 된 겁니까?”

-놀다가 다쳤다.

프헐헐 웃던 그가 수정구에 코를 들이댔다.

“제가 맞춰보지요. 이젤리아에서 캐롯이라는 꼬마 인형에게 당하신 게 아닌지?”

메르카바의 얼굴이 잔인하게 일그러지더니 곧 장난질에 취한 꼬마처럼 킬킬거린다.

-그 꼬마와 만났나?

“그랬습니다. 지금 이 지역 어딘가에 있을 테지요.”

빨간 머리를 산발한 소녀는 그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다만 그뿐, 분통을 터트리며 당장 찾아와 죽이겠다 떠들지는 않았다.

-800년 전쯤에 용사라는 난봉꾼에게 두들겨 맞아본 뒤로 이렇게 아파보긴 처음이다. 고통은 영혼에 유익한 것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느냐? 유명한 철학자가 한 말이었지.

레어가 하필 일족들의 보금자리 부근에 있어서 다들 그녀를 두려워하고 싫어했지만 에탕다르만은 취향이 비슷한 그녀를 좋아했다.

늑대인간이 히죽 웃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아니요. 아픈 건 싫거든요.”

-안락과 쾌락만 추구하며 살아도 되는 건 인간 정도지. 오래 사는 녀석들이 그걸 흉내 냈다간 글러 먹은 것이 되고 말아. 유념토록 해라. 하여간 반갑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네놈들과도 꽤 재미있었지.

에탕다르는 쓰게 웃어 버렸다.

“그때 저희는 정말 사활을 걸었습니다만.”

-집 주변의 개미들이 안타까워 내버려 뒀더니 세를 불려 집안까지 들어와 나를 쏘아대더군. 에탕다르, 나에겐 요즘 그런 일이 많구나.

집주인 메르카바의 중얼거림에 세입자 대표 에탕다르는 시선을 돌리고 끙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원래는 그녀의 땅이었다.

문제는 불어나 버린 이쪽이지.

게다가 지금은 식량 문제까지 겹친 상황이고.

하지만 메르카바는 다시 사악하게 웃음 지으며 물었다.

-다만 두려운 줄 모르고 이 몸에게 덤벼드는 호쾌한 녀석들의 도전은 언제나 새롭고 짜릿하지. 너희 마왕은 어찌 지내느냐?

에탕다르의 눈이 매섭게 빛난다.

때가 왔다.

“그것이 말입니다…….”

코를 좀 벌렁거리며 깍지 낀 손의 엄지손가락을 꿈지럭거리던 그가 긴 용건을 꺼냈다.

꿋꿋하게 그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준 메르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도 별수 없구나. 좋아, 우리 사이다. 네가 그럴 참이라면 나는 너를 지지하겠다. 대신 나의 레어 주변을 자치 지구로 인정해라. 알겠느냐? 자치 지구다.

드래곤 피어에 질려서 아무도 가까이 가질 않는데 자치 지구는 또 뭡니까?

어이없는 한편으로 에탕다르는 재미있어졌다.

“거기다 나라라도 세울 작정이십니까?”

-한때 드래곤 사이에서는 세계 창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간과했지.

수정구에 얼굴을 쑥 들이민 드래곤 레이디 메르카바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아느냐? 정원에 정원사가 없으면 꽃이든 나무든 다들 멋대로 자라 버린단다.

세계 창조? 정원사?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에탕다르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잔인하게 웃었다.

“드래곤에게는 정원사의 자질이 부족했습니까?”

-그래, 우리로서는 역부족이었다. 나를 포함해 다들 굽어살피는 걸 포기하고 말았지.

에탕다르가 강아지의 그것처럼 머리를 옆으로 슥슥 기울였다.

“없으면 그것도 하나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에 얼빠진 표정을 지어 버린 인간 소녀 모습의 메르카바가 갑자기 키히히 하고 웃기 시작했다.

-신을 만들어 보란 말이냐? 네놈은 여전히 웃기는 소리를 잘하는구나!

드래곤의 친구 사귀기는 박진감 넘친다.

그네들은 일단 대판 싸워보고 본성을 파악하여 이놈 괜찮다 싶으면 연락처를 남기는 식이다.

게다가 그렇게 인연을 튼 녀석들에겐 대단히 살갑게 대하는 의외의 면도 있었다.

가끔 이렇게 굉장한 정보를 떨구기도 하고.

이거 잘 구슬리면 영토 확보 플랜 B가 될 것 같다고 여기는데 건물주 메르카바는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으니 연습 삼아 나라 만들기부터 다시 한 번 해보려고 한다. 하다 질리면 네게 주마.

“알겠습니다. 원시림이 조금이라도 개발된다면 저희야 좋지요. 잘 운영하셔서 좋은 이웃으로 남아주십시오.”

당신만 없었다면!

혹은 멍청한 선조가 하필 드래곤 레어 부근에 터를 잡지만 않았다면!

에탕다르의 마음속 투덜거림까지는 읽지 못했는지 메르카바는 이제 진지한 얼굴을 수정구에 들이댔다.

-일이 어찌 되든 나는 내 보수를 챙길 것이다. 동의하는가?

세상의 진리와 지식을 탐독하고 논의하는 상대로 드래곤만큼 멋지고 든든한 친구는 없으나, 이해 득실이 걸린 일에서 그들은 몹시, 아주 몹시 까탈스러워진다.

다행히 그녀 레어 주변의 땅은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곳이라 해탈한 표정의 에탕다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메르카바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계약 성립이다. 내가 뭘 해주면 되겠냐? 계획은 있나?

본래대로 돌아온 에탕다르가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 * *

인마 경제특구는 나날이 발전했다.

겨울이지만 아직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지는 않았기에 상가 조성을 책임진 위원회에서는 인부들을 대규모로 불러들여 과격한 건축 공사 일정을 소화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선 밤에도 불을 켜고 공사에 한창이었다.

뚝딱거리는 망치 소리 요란한 휴전선 마을의 늦은 밤, 동거를 시작한 마족 여자와 인간 남자가 오두막 앞에서 알콩달콩한 신혼부부 흉내를 내고 있었다.

“야, 무슨 밤에도 일을 해? 밤에는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곧 눈이 엄청나게 내릴 거야. 싫어도 밤낮으로 같이 있게 될 거라고.”

“싫을 일은 없을 거거든? 너무 늦지 마!”

“추우니까 들어가!”

다시 일터로 달려가는 남자를 머리에 뿔 난 새댁이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히죽 웃으며 추파를 던졌다.

“워워, 보기 좋네. 달다 달아.”

“뭐야?”

애가 생기면 남편이 될 남자를 배웅한 여마족이 시퍼런 눈을 돌리자 예전 수비대원 동료가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너였냐? 흥! 부러우면 너도 하나 코 꿰던가.”

“야, 부럽다곤 안 했거든? 그리고 나는 생리적으로 뭔가 싫어. 내내 같이 살다니 징그럽지 않냐?”

“남이사, 그러는 넌 혼자 어쩔 생각이야?”

방한복을 껴입은 마족은 뭔가 생각하는 듯 위를 올려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일단 돈부터 좀 벌고 생각해 보려고. 여기는 돈이 힘이더라고? 그거면 뭐든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지나치는데 옛 동료가 물었다.

“너도 일하러 가?”

“아니, 친구 만나러.”

그녀가 말한 친구란 것은 가까운 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오토마톤이었다.

“어이, 오늘도 수고한다.”

“오늘도 오셨습니까.”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오토마톤이 지키고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안으로 들어온 마족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이놈들은 듣기 싫은 소리도 묵묵히 들어주거든?

훌륭한 감정 쓰레기통이 따로 없지.

“들어봐라, 역시 인간들은 재수가 없어.”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힘없는 것들을 발라 먹는 건 강자의 권리지 않겠냐?”

“그건 궤변입니다. 동시에 약탈 행위입니다. 체포 권한이 발동됩니다.”

고개를 돌리고 가만히 경비대 자동 인형을 바라보던 마족이 갑자기 히죽 웃더니 물었다.

“너도 돈이면 살 수 있는 거지? 얼마면 되냐? 응? 얼마면 돼?”

“오토마톤의 구매 문의는 가까운 대리점에 하시기 바랍니다.”

씩 웃으며 와하하 웃던 마족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돈 많이 모아서 꼭 널 데리러 올게.”

그리고선 멋지게 돌아가 버렸다.

가로등 아래에 서 있던 오토마톤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그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마족은 정말로 경비대를 찾아가 해당 자동 인형을 불하받아 버렸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월등한 신체 능력의 마족이 그걸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토마톤을 원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왜? 라는 의문을 가졌다.

마족은 구매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말동무, 아플 때 물이나 좀 떠다 줄 녀석.

자료를 검토하던 높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리 대답했다.

“마족도 쓸쓸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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