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왕성! (6)
놀란 두 사람이 서둘러 종이봉투에 옥수수를 담아 내밀었다.
에탕다르는 가격도 제대로 쳐주었다.
“음음, 맛있군. 이건 네 거다.”
“헤에? 나는 오토마톤인디?”
구운 옥수수를 손에 들고 당황한 표정을 지은 캐롯을 보고 에탕다르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고는 옥수수 가게를 보고 말했다.
“맛있구나. 하여간 잘해봐라. 응원하마.”
수인 퍼리 일족의 대표 에탕다르, 사천왕 중에서 유일하게 상식인이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손을 흔들어 준 에탕다르는 옥수수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건 무슨 열매냐? 안쪽이 푸석거리는데.”
“에엑! 그건 겉에 낱알만 뜯어먹는 거예요. 펫하고 뱉어요. 펫!”
“이건 내 구강 구조상 먹기 불편한걸.”
캐롯이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옥수수를 앞니로 이렇게 갉아 먹으면 돼요. 다람쥐처럼! 음냐냐냐냠!”
“이렇게? 옴뇸뇸움움.”
마왕군 사천왕의 하나가 심심하면 경제특구를 시찰 다닌다는 소문은 이미 쫙 퍼진 상태, 그래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놀라진 않았으나 다들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 저 사람이 에탕다르인가? 동네 애들하고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걸.”
“늑대인간이 구운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네요. 보기 좋은데요?”
파티를 따라온 엘프 여자의 중얼거림에 여신관이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갑자기 버터 옥수수가 먹고 싶네요.”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신관님께 공물을 준비했습니다! 다들 하나씩 드시죠.”
갑옷 차림의 싹싹한 청년이 양손에 노란 옥수수 꼬지를 잔뜩 들고 와서 나눠주었다.
덕분에 옥수수 구이가 대호황, 그걸 굽는 마족 여편네는 감동하고 있었다.
“만약 마왕을 새로 뽑는다면! 나는 에탕다르를 지지하겠어! 얏호! 엄청 팔려! 남편! 이거 좀 더 가져와!”
에탕다르는 곧 상가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가게 하나하나를 다 돌아다니며 거기서 파는 거라면 뭐든 하나씩 사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족 아이들을 줄줄이 이끌고 다니게 되었다.
“감자에 이건 뭐냐? 아까 그 옥수수에서 나던 냄새인데.”
“소젖을 가공한 버터예요. 맛 좋고 몸에 좋은 기름 덩이 같은 거죠.”
“젖을 가공해? 놀랍군. 어떻게 하는 거지?”
전선 위의 참새처럼 통나무 위에 나란히 앉은 늑대인간과 캐롯, 마족 아이들은 즐겁게 웃으며 버터 감자를 퍼먹었다.
난생처음 군것질에 배부르게 먹고 있는 마족 꼬마들을 쳐다보던 캐롯이 에탕다르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근데 돈은 어디서 그렇게 났어요? 화폐단위가 다르지 않아요?”
“퍼리는 항상 돈이 많지.”
“이잉?”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에탕다르가 그릇과 수저를 노점 주인장에게 돌려줬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군것질 좌판을 열어본 마족 여자가 고마워했다.
어울리지 않게 앞치마까지 두르고 그릇을 정리하는 금발 사슴뿔 마족을 보던 늑대인간이 주위를 살폈다.
여기도 노점, 저기도 노점이다.
“노점을 하는 마족들이 꽤 많군. 전부 이곳 수비대원인가? 어떠냐? 할 만하냐?”
“신세 지고 있는 녀석의 말로는 우리는 인간사회화 훈련이 필요하다더군. 그래서 당분간 이걸 하게 됐다. 며칠 더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을 거다.”
에탕다르가 물었다.
“마왕군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 건가?”
수레에 설치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찜기는 마력 화로를 사용한 것으로 별다른 땔감이 필요 없었다.
그걸로 큼직큼직한 크랭크 감자를 삶던 마족 전사가 빙그레 웃었다.
“나는 꽤 오래 마왕군에 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것을 보았다. 사천왕 에탕다르, 괴물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냐? 무엇이 그걸 사람으로 만들지?”
뭔가 철학적인 질문에 애들의 입가를 닦아주던 캐롯의 귀가 휙 하고 커졌다.
고개를 좀 숙인 에탕다르가 물었다.
“뭔데?”
금발 사슴뿔 여마족이 대답하려는 찰나, 얼마 전 그녀의 집을 수리한 목수 모험가가 우연히 곁을 지나다가 소리쳤다.
“어? 금발 사슴뿔?”
“새끼가, 메이브라고 몇 번 말해야 하냐!”
이맛살을 일그러뜨린 메이브가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자 목수 모험가 플레인이 코를 벌렁거리더니 에탕다르의 눈치를 살폈다.
“아차차, 실례했구만. 이야기 도중에 미안하오.”
“아니, 차라리 잘됐다. 괴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 따위 듣고 싶지 않았거든. 호오! 이게 네 녀석 자동 인형인가?”
몸을 돌린 그는 모험가의 오토마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좀 작은데? 보통 이 정도인가?”
“하드 스킨 말고는 제일 큰 녀석이오만. 그래 봤자 3종류뿐이지만.”
“자세히 이야기해 봐.”
목수면서 오토마톤에 빠삭한 모험가가 요즘 최신 유행에 대해 떠들어대자 턱을 매만지며 듣던 에탕다르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너희들 발전했군.”
감자를 찌고 있는 수증기 너머로 모험가 플레인이 자기 오토마톤과 함께 그를 올려다보았다.
인간 대표라도 된 것인지 자신만만함이 엿보인다.
에탕다르는 다시 그의 오토마톤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오토마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소리는 뭐가 있을까?”
“글쎄……. 음, 구닥다리, 깡통, 고물 정도일 거요. 애초에 오토마톤이 모욕감을 느끼려면 사고회로가 엄청 높아야 하거든? 저 녀석처럼.”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으엣헴! 나 같은 베테랑스 오토마톤은 그 정도 도발에 굴하지 않아! 오토마톤을 놀리는 방법 중에 아주 좋은 게 있는데 하나 알려드림?”
그러더니 캐롯이 주머니를 뒤져 반짝이는 나사 하나를 내밀었다.
에탕다르가 그걸 집어 들자 입가에 손바닥을 세운 캐롯이 케케케 웃으며 말했다.
“그걸 보여주면서 진지하게 말해요. 이거 네 거 아니냐? 저쪽에 흘러 있던데?”
“흠!”
평소 마왕성의 어느 독설가 인형에게 쌓인 게 많았던 에탕다르가 코를 벌렁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당장 실험해 보겠다. 메이브라고 했나, 너도 잘해봐라. 응원하마.”
“에탕다르.”
애들을 이끌고 걷던 늑대인간이 뒤를 슥 돌아보았다.
마족 메이브가 찜기 수레 옆에서 몸을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다. 당신이 회담에서 우릴 감싸주었다지? 그 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에탕다르는 좀 놀라 버렸다.
뭔가 하는 짓이 인간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왕님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감사는 저 위에다 대고 해라.”
“그러냐?”
슬쩍 위를 올려다보고 고개를 내리니 늑대인간과 꼬마들은 이미 우르르 자리를 옮긴 뒤였다.
마저 식기를 정리하던 메이브는 여전히 수증기 너머로 보이는 얼굴을 발견하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플레인이 찜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봐 금발 사슴뿔, 집 고쳐준 답례로 하나 얻어먹을 수 있나?”
“너 이 새끼, 한 번 더 금발 사슴뿔이라고 하면 네 목을 잘라서 쪄 버릴 테다.”
그러면서 메이브는 뜨거운 찐 감자를 맨손으로 그릇에 던져 넣더니 칼집 내놓은 곳에 버터를 한 숟가락 떠넣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었다.
“앗! 저길 봐라.”
“응?”
플레인이 고개를 돌리자 마지막으로 거기다 침을 뱉은 다음 수저를 꽂아 내밀었다.
“다 됐다. 처먹어라.”
두 손으로 받아 든 플레인은 선 채로 버터 감자를 퍼먹더니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호옵호옵! 우우음! 와! 이거 맛있잖아? 담백하고 고소하고 특히 뒷맛이 부드러워. 이봐 금, 아니, 메이브. 이거 팔리겠어. 내 친구들도 좀 데려올게.”
“어, 음. 그, 그러냐?”
제 침을 핥으며 좋아하는 남자를 보고 확 달아오른 메이브는 갑자기 이상 성욕이 치솟는 걸 느껴 버렸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크랭크의 임시 솜사탕 가게입니다.”
상가 골목 안쪽 깊숙한 곳에는 크랭크의 장갑차량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의 탈의 앞치마에 솜사탕 기계를 돌리고 있는 그를 보고 캐롯이 프하하 웃더니 소개했다.
“갑작스럽겠지만 여기 있는 줄은 나도 몰랐어. 여기 우리 주인님. 나 만들어준 사람.”
“저자가?”
투구를 쓴 크랭크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는 아이들에게 검은 돌멩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텅스텐 원석이다. 중석이라고도 하지. 저쪽 공터에 널려 있다. 한 사람당 한 개씩, 이걸 가져오면 솜사탕을 주마. 오늘만 특별히.”
“와아아!”
시식단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고 홀로 남은 에탕다르의 검은 콧구멍이 마구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코트의 단추를 하나씩 풀면서 말했다.
“이봐, 투구 머리. 오늘 같은 날, 애들에게는 좀 공짜로 주지 않는 건가?”
푸른 늑대인간, 사천왕 에탕다르.
투구 안의 눈빛으로 그를 스캔한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나 몸은 에탕다르 쪽이 더 컸다. 그럼에도 둘은 좋은 대비를 이뤘다.
“너무 공짜로 베풀면 버릇이 없어집니다. 보상은 항상 노력 다음에 오는 것이라고 알려줘야 하지요. 흐으읍!”
“동감이다! 크르르륵!”
아이들을 따라갔던 캐롯이 돌아와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 또 시작이네!”
크랭크와 에탕다르가 근육미를 뽐냈다.
덕분에 주변을 구경 다니던 사람들이 기겁했고, 마족들은 코피를 터트리는 사태가 빚어졌다.
“바, 발정기는 지났지만, 뭐랄까. 음! 좋네!”
“츄르릅! 으음! 에탕다르다! 낭만 늑대!”
또 그때쯤 마왕령 경제특별구역의 시찰을 돌던 쥬세페 공주의 무리가 인파 속에서 나타났다.
대 인마 근육질에 모두가 입을 딸 벌렸다.
“저, 저!”
“흐으음! 참을 수 없군! 감히 공주님 앞에서! 들고 있어라.”
반백의 경호 책임자까지 나서서 전신에 힘을 주자 공주는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새로운 난입에 푸른 늑대인간 에탕다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흐으음! 너는 누구냐? 본좌는 마왕성 사천왕 중의 하나! 수인 퍼리 일족의 대표를 맡은 에탕다르!”
“이 몸은 리즈넷 왕국 제3왕녀 쥬세페 전하의 경호 책임자 레오파드! 본국의 공주님 앞이니 당장 소란을 멈추시오!”
에탕다르의 시선이 힐끔 돌려졌다.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화려한 금발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니까.
“늙은 몸으로 제법이군! 그대가 먼저 멈춰라!”
거대한 팔을 들어 올린 에탕다르가 업 도미날 앤 타이를 선보였다.
드러난 대흉근과 복근에 몰려온 뿔 마족 여자들에게 모종의 욕구가 폭발했다.
늑대인간 주제에 뇌쇄적인 눈빛도 한몫 거들었다.
더불어 크랭크 역시 자세를 바꿔 사이드 체스트를 선보이더니 외쳤다.
“위명 드래곤 슬레이어! 오토마톤 캐롯의 마스터! 모험가 크랭크! 끄으음! 반갑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먼저 몸에 힘을 뺀 것은 에탕다르, 이어서 자세를 푼 크랭크가 짧은 숨을 몰아쉬며 투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에탕다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크랭크 대신 솜사탕을 감아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캐롯이 고개를 들었다.
“엥? 솜사탕 드실래요?”
저 작은 것이?
다시 고개를 돌린 에탕다르가 물었다.
“누구를? 어디서? 언제?”
뭔가 실수가 있었나 싶었던 크랭크는 자기 입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야기책으로 풀릴 것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 달 전쯤 이젤리아에서, 그분은 자기를 메르카바라 칭하셨습니다.”
코트를 주섬주섬 껴 입은 에탕다르가 주머니에서 금화를 튕겨 주더니 말했다.
“여기 모두에게 그 하얀 솜덩이를,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다오.”
늑대인간의 소박한 한턱에 모두는 오오하는 소리를 냈으나 캐롯만은 역정을 부렸다.
“아이! 갑자기 주문이 이렇게 밀려서는!”
솜사탕을 핥으며 캐롯의 모험담을 전해 들은 에탕다르는 나무 막대기를 휙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거 없군. 하지만 그래도 대단하다. 드래곤에게 한 방 먹일 줄이야. 캐롯, 너를 다시 보았다. 나는 그냥 조그만 인형인 줄 알았지 뭐냐.”
나무 상자에 올라가 신나게 떠들어대던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콧대를 세웠다.
“으헷엠!”
에탕다르는 그걸 보고 피식 웃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영역 확장은 어떻게 됐지? 보러 가야겠다.”
“함께 가시죠.”
분홍색 솜사탕을 든 공주 전하가 말을 걸어왔다.
콧구멍을 좀 벌렁거린 에탕다르가 손바닥을 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여자는 관심 없다.”
“예?”
“그러니까, 네 발정기 상대가 되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경호진이 발작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