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98화 (298/329)

298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사랑의 국경선! (7)

다시 휴전선 마을, 남부 겨울 출장을 대비해 차량에 준비 물자를 다 실어놨던 겨울 기사단의 파티는 그 상태 그대로 휴전선 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성벽 밖으로 달려 나간 캐롯은 휴전선 너머를 보고 환호성을 질러 버렸다.

“호오오옥! 마족이다! 처음 보는 마족이 잔뜩 있어!”

그러자 결계 감옥에 앉아 있던 마족들이 시선을 돌리거나 했다.

“뭐냐? 시끄러운 꼬마네.”

빨간 선을 폴짝 뛰어넘은 캐롯은 바닥에 그려진 원 안에 모여 앉아 있는 마족에게로 다가갔다.

먼저 날개 달린 도마뱀 인간, 이어서 남자 마족들.

“에? 이건 사람 아니에요?”

그들을 감시하던 경비병이 대답했다.

“아니다. 마왕의 아들은 머리에 뿔이 없다더군.”

“마마마마! 마왕의 아들!? 그래서 이렇게 훈남 일색이구나!”

훈남 일색이라는 말에 당사자들은 잘난 척을 시작했고, 지켜보던 경비병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너도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멋진 여자가 되겠구나. 그때 이 몸이 사귀어 주도록 하지. 영광으로 알고 기다리거라.”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무엇? 역시 마왕의 아들이야!”

프하하 웃던 캐롯은 이제 그들의 재미있는 꼬락서니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왜 다들 허리에 밧줄을 묶어 놨어요?”

그들 허리에 묶인 밧줄은 휴전선 바깥쪽에 대기 중인 오토마톤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팔짱을 끼고 걸어온 헤리슨이 대답했다.

“탈출하는 순간 선 밖으로 잡아당겨서 지옥을 맛보여주려고.”

“맞다! 마족은 선을 넘지 못하지? 안녕하세요, 헤리슨.”

“안녕 못해.”

헤리슨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녀를 올려다보던 캐롯이 고개를 기울이며 걱정했다.

“와, 얼굴이 엉망이에요. 잠은 제대로 주무시고 계세요?”

“너라면 이 상황에 잠이 오겠냐?”

“그건 그래요. 케케케.”

뚜둑!

이마에 핏줄이 돋아난 헤리슨이 캐롯을 붙잡아 들더니 마구 흔들어댔다.

탈탈탈!

“우워어오오옷!”

그러는 사이에도 휴전선 마을로는 모험가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동 수단이 없는 자들은 경비대에서 수송 마차나 차량을 제공하여 무장 병력으로 등록된 인원을 실어 날랐다.

모험가 길드에서 그들에게 제시한 퀘스트는 다음과 같다.

휴전선 마을을 사수하여 방주 도시 아르곤을 지켜내라!

* * *

“물론이다!”

파티 리더를 모아 놓은 회의실, 주먹을 불끈 쥔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크랭크가 한 손으로 투구를 가리고 남은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저희 리더가 실례했습니다. 계속하시지요.”

헛기침을 조금 한 경비대 장교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해금했다.

대부분 뒷이야기로 들려오는 사실들.

“쯧! 멍청한 녀석들이 아랫도리 잘못 놀려서 지금 이 사달이 난 거잖아? 누구야? 낯짝이나 좀 보자고!”

“맞아! 무장 병력 총동원령 때문에 지금 남부 출장은 고사하고 동네가 날아가게 생겼어!”

코를 벌렁거린 어떤 모험가는 다른 의미로 흥분했다.

“아니, 그전에 말이지. 마족 여자들이 그렇게 예쁜가? 그 정도야?”

“뭐야? 한 번도 본 적 없어?”

“나는 남부 출신이라서.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작전 설명회 중에 난데없이 마족 여자의 품평회가 일어났다.

거친 모험가가 침을 튀기며 떠들어댔다.

“아주 끝내 준다고! 게다가 우리랑 가치관이 달라서 매달리지도 않아! 하룻밤 상대론 그만이지!”

모험가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자 진행을 맡은 경비대원이 짧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새파란 젊은 장교의 목소리 따위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정신병자들에게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캉-! 찌이이잉!

맑은 쇳소리, 롱소드의 날이 떨리는 소리다.

직업상 위기에 민감한 사내들이 얼굴을 싹 바꿔 시퍼런 눈을 돌리자 칠판 옆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늙은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

“컥!”

“이, 이온 백작님.”

영주직과 백작 작위를 전부 아들에게 넘겼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영주님이나 백작님이라고 불러줬다.

그런 그가 현역 시절 사용하던 롱소드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말했다.

“하여튼 사내놈들은 여자 이야기라면 밤을 새우고도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지. 마족 여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사실 그건 암컷 사마귀야.”

모두가 얼떨떨한 얼굴로 마을 최고의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노령임에도 꼿꼿한 자세, 그의 곁으로는 그 시절 함께 싸웠던 구형 오토마톤까지 데리고 나왔다.

“지금이야 저쪽 수비대장도 바뀌었고, 헤리슨이 잘 구슬린 덕분에 조용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심심하면 이쪽으로 넘어와서 남자들을 붙잡아 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겁탈하거나.”

누군가가 짓궂은 소릴 했다.

“흐흐. 그건 오히려 좋은 게 아닙니까?”

“그뿐이면 상관없겠는데, 그리고서 전리품으로 물건을 잘라가 버리더군.”

히잇?!

가랑이 사이를 붙잡은 모두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힘이 인간보다 세다 보니 저항하기 힘들었다고 해. 그리고 붙들려 간 친구들은 어떻게 되느냐면, 마족들의 나라로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는 모양이야.”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물자 대기하고 있던 오토마톤이 장갑에 붙인 발화 마력석으로 불을 붙였다.

하얀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며 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놈들은 애 말고는 뭘 만들 줄 몰라서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잡아다 부리는 거야. 그걸 공물이라더군. 수도로 보내는 특산품이나 세금 비슷한 거지.”

“그러면 이번에 그 친구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꼭 부부 같은 모양으로 애를 지키려다 그랬다면서요?”

“그 친구 알아! 정찰병 겔이야! 마족 마누라는 이름이 쿠핀이래. 미인이라던데?”

담배를 입에 물고 킬킬거리던 이온 백작이 말을 이었다.

“인간도 특이한 놈이 있는데 마족이라고 그런 게 없겠는가? 어쩌다 둘이서 눈이 맞은 거지. 이 몸이 현역일 때도 드물지만 가끔 보였어.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지. 밀회를 즐기다가 붙잡혀서 다른 마족들에게 능욕당하는 거야. 마족 여편네는 그걸 보면서 울고, 푸시케 전의 수비대장이 그 짓을 참 좋아했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심취한 아이들처럼 모두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만 담배를 비벼 끈 이온 백작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부하 마족들이 서로를 감시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야. 나도 그리 생각했으니. 하지만 그렇게 안 했어. 되레 어느 날 자기들끼리 싸우더니 수비대장을 갈아 치워 버리더군.”

“오오오.”

거기에 우리도 좀 거들었고.

잠깐 옛일을 회상하던 이온 백작은 짧은 한숨을 내쉰 다음 손바닥을 두드렸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으니 정신 바짝들 차리도록. 모성애가 별로 없는 마족 여자에게 요즘 그게 생길 지경이니 말이야.”

그가 곁눈질로 잠자코 기다리던 장교를 부르더니 주름진 얼굴로 웃으며 말을 맺었다.

“지금부터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을 일러주겠네. 나갈 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야?”

짧은 이야기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의 수완을 보고 팔짱을 낀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남부의 판터 씨와 보이드 자작님도 같이 모이면 셋이서 멋진 파티가 되겠다.”

“그럼 파티 이름은 로망스 그레이 쯤이 되는 거냐?”

아리에테의 농담에 이온 백작이 눈을 번뜩였다.

“거기, 집중하지 못하겠나? 이봐, 저 금발 여기사의 파티에는 할당량의 두 배를 주도록.”

“옙.”

“아으아!”

아리에테가 급울상을 지어 버렸다.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작전 설명회가 끝나고 다들 맡은 임무를 위해 흩어졌다.

크랭크는 따로 불려가고, 혼자 돌아온 아리에테가 동료들의 행방을 찾다가 성벽 바깥에서 마족 꼬마들과 뛰어노는 캐롯을 발견했다.

“캐롯, 크랭크가 부른다. 그런데 거기 함부로 들어가도 되나?”

“괜찮아! 여기는 임시 포로 수용소 같은 곳이니까. 봐 보라고.”

캐롯의 말대로 휴전선이 지나는 공터에는 오토마톤을 비롯해 경비병들이 잔뜩 깔려서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도 다리를 쭉 내밀어 선을 건너 보았다.

착!

이제 마족들의 영역, 주변을 살피던 그녀가 두 손을 들어 보더니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구나.”

“휘유~! 금발 여기사잖아? 멋진데?”

“우와! 인간 금발 여기사! 제법 봐줄 만한 얼굴이야!”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가 동그란 선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캐롯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서 크랭크에게 전해라. 나는 마족도 홀리는 매력의 소유자라고 말이다. 못생긴 호박이나 바보가 아니라고 강하게 어필해 줘.”

그러자 사로잡혀 있던 마왕의 아들들이 역정을 내거나 추파를 던졌다.

“야! 금발 여기사! 그 정도는 아니거든?”

“이리 와서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지 않을래? 누가 널 호박 취급한다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어 버린 캐롯은 이제 두 팔을 벌리고 와다다 달리더니 선을 폴짝 뛰어넘었다.

그러자 빨간 선 근처로 몰려온 마족 아이들이 울상을 지었다.

“언니! 언니! 금방 와? 금방?”

“응! 놀고 있어! 잠깐 심부름 다녀올게! 아리에테! 다른 녀석들은 안쪽 동네에 구경 갔어!”

고개를 끄덕인 아리에테가 꼬마 아이들을 달랬다.

“금방 올 거다. 선 밖으로 나가지 마라.”

“야! 이쪽이랑 이야기하자고 이쪽!”

“마왕의 아드님들이 말을 거는데 말이야! 고개 좀 돌려보라고!”

그들의 계속된 추파에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렸다.

“마왕의 자제분들께서 말씀이 너무 상스럽지 않습니까?”

아무한테나 막말을 일삼는 버릇없는 아리에테가 요즘 철이 들었는지 존대를 붙여주자 그들이 킥킥거리며 대답했다.

“언젠가 세상은 어머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을 거다. 너도 순순히 포기하고 일찌감치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이 어때?”

“어머님?”

눈을 동그랗게 뜬 아리에테가 되물었다.

“마왕은 여자인가?”

마왕의 아들들은 대답 없이 히죽 웃기만 했다.

그러다 아리에테는 번데기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사람을 보고는 물었다.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신관이 치료해 주지 않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당신들의 신성 치료는 우리에게 독이거든요?”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리니 선한 인상의 청년이 앉아 있다가 손을 들었다.

그는 마왕의 14번째 아들로 이름은 쉬페르.

“반가워요. 우리들 금발 여기사는 처음 봐서.”

조금 한심해진 아리에테가 물었다.

“금발 여기사가 당신들에게 뭔가 했습니까?”

“100년 전에 마왕성으로 쳐들어온 용사가 금발 여기사였거든. 그런데 사실은 남자였데. 여장 남자.”

아리에테의 드러난 살갗에 소름이 쫙 돋아 버렸다.

“여, 여장 남자?”

“어머님 말씀으론 그랬다고 해.”

“마왕성 간부들도 충격과 공포였다던데. 킥킥!”

그러다 문득 마왕의 아들들 전부가 얼굴이 싹 굳어져서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잠깐만, 넌 여자 맞지? 그렇지?”

“크으윽! 이런 수치가! 얼굴과 가슴을 보면 모르겠냐! 나는 여자다!”

다행이라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쉰 청년들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결계만 아니면 덤벼들 기세였다.

“너 남자 친구는 있어?”

“있어도 입후보한다!”

“자식들이 내가 먼저 물었어! 얌전히 형님에게 양보해!”

“형님은 놀구 있네! 그런 건 인간들이나 따지는 거다!”

마왕의 아들이라기에 잔뜩 긴장했던 아리에테는 애들처럼 툭탁툭탁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모습에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다 죽여 버릴 테다. 끄으으윽.”

붕대를 칭칭 동여맨 번데기의 섬뜩한 중얼거림은 사그라들었던 그녀의 긴장감을 다시 원상 복귀시켜 놓았다.

꼬마 하나가 아리에테의 다리에 매달렸다.

“무서워. 저 오빠 내 친구 발로 찼어.”

애들이 겁먹은 것을 본 쉬페르가 주먹을 들더니 옆에 누워 있는 번데기의 머리를 후려쳤다.

쾅-!

쥬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기절하자 그가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는다.

“자,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