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44화 (244/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협동! 244 >

크랭크의 중얼거림을 들은 캐롯이 갑자기 멈췄다. 하지만 오랜만의 논리 오류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새에 바로 자가 수복되었다.

캐롯은 그만 머리를 절절 흔들어 버렸다.

정말, 키우기 힘든 녀석들이네.

신은 너희들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지? 언젠가 만나면 물어봐야지.

시간을 들여 사탕수수를 부글부글 끓이고 졸이자 녹인 설탕이 나왔다.

“이대로 식혀서 굳힌 다음 부수면 각설탕이 된다.”

오크들 사이에서 팔짱을 하고 구경 중인 델린저가 반갑게 외쳤다.

“오오! 그렇게 만드는 거였나? 사탕수수까지는 구했지만 설탕 만드는 방법은 나도 몰랐거든?”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는 이제 나무판 위에서 식고 있는 설탕 덩어리를 몇 조각 깨트려 주변의 오크들에게 나눠주었다.

“우오! 달다!”

“우호우호!”

입에 설탕 덩어리를 문 오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찌 되나 싶어 잠자코 팔짱을 끼고 있던 캐롯과 아리에테는 한심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걸 지켜보던 크랭크는 뭔가 재미있어졌다.

다시 몸을 돌린 그는 고쳐 놓은 그릇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뚝딱거리더니 또 이상한 도구를 만들어 냈다.

커다란 냄비 속에 말뚝 박힌 그릇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마스크 벗는 것을 포기한 아리에테가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크랭크, 우리는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러 온 것 같은데 말이다.”

투구를 돌린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더니 말했다.

“시온, 마스크 해제.”

착!

다시 얼굴이 드러나게 되자 아리에테가 분통을 터트렸다.

“왜 내 말은 듣지 않는, 우어업?”

크게 벌린 입에 큼직한 설탕 덩어리를 물려놓자 순진무구한 얼굴이 된 아리에테가 쩝쩝거리며 그걸 입안에서 놀리기 시작했다.

“어, 음, 거친 단맛이다. 맛있구나.”

“신경이 곤두설 땐 당분만 한 것이 없지. 그러니 너는 자주 먹어둬라.”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에테는 숨은 말뜻을 추려내고 다시 분노했다.

“너는 나를 바보 취급하지 안되는 병이라도 걸렸느냐!”

철썩철썩-!

등짝을 얻어맞으면서도 크랭크는 꿋꿋하게 남은 작업을 마무리했다.

뭘 만드는지 몰랐기에 다들 사이좋게 쩝쩝거리며 지켜보았다.

큼직한 냄비를 불 위에 올린 크랭크는 설탕 몇 조각을 그 안에 던져 넣은 다음 말뚝에 줄을 연결해서 캐롯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대쪽은 주변을 서성이는 오크 남자를 불러서 앉혔다.

오토마톤 꼬마와 오크 남자가 어색하게시리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크랭크가 설명했다.

“줄을 당겨라. 이걸 돌릴 거다.”

“어어? 이거 설마!”

“맞다.”

그리하여 자동인형과 오크의 협동이 시작되었다.

“영차! 영차! 이봐요! 오크 아저씨! 잘 맞춰!”

“오, 어오우!”

처음엔 조금 서툴렀지만 서로 합을 맞춰서 주거니 받거니 몸을 앞뒤로 움직이며 줄을 당겼다.

그럴수록 커다란 냄비 안에 설치된 말뚝 박힌 작은 냄비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하얀 실타래를 뿜어낸다.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잔뜩 꺾어와 냄비 곁에 쭈그려 앉은 크랭크가 그것을 요령껏 감아대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성된 물건은 가까이에 앉아 구경하던 작은 하프 오크 소녀에게 내밀어졌다.

그다음은 주변 여자 오크들, 남자 오크들, 여자 추장도 그것을 하나 받았다.

새하얀 구름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참 예뻐 보인다.

달콤한 향기에 자연스레 그것을 핥아본 오크들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모양과 맛에 눈물을 흘리는 오크도 있었다.

“달다! 달아! 많이! 아주 많이!”

“우호우호! 푹신푹신!”

다들 환호하면서 손에 쥔 하늘의 구름 조각을 핥아댔고, 캐롯이 윙크를 찡긋하며 말했다.

“솜사탕이라는 거야. 어때? 계약금은 이걸로 충분하려나.”

이후로의 협상은 신속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연락책은 캐롯이 맡았다. 크랭크가 오크 부족의 종마 델린저를 쳐다보았다.

“당신 글은 읽을 줄 아나?”

“어, 음. 조금?”

“모르는군. 하지만 그것도 방법이 있지. 연락하겠소.”

어둑어둑해진 저녁, 협상을 마친 세 사람이 오크 부락에서 몸을 돌렸다.

캐롯이 손을 흔들자 멀거니 서서 구경하다가 슬그머니 손을 흔드는 오크도 하나둘 보인다.

몸을 돌린 캐롯이 말했다.

“아까 델린저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이젤리아 오크도 아주아주 옛날에는 리즈넷 오크랑 비슷했다나 봐. 그러다 수컷이 적어져서 인간 남자를 납치하게 됐고 그게 지금에 온 거래.”

“그동안 델린저 같은 사람이 희생양이 된 것인가? 끔직하군.”

아리에테가 치를 떤다.

잠자코 그녀들의 뒤를 따라 걷던 크랭크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오크 부락으로 돌아가 델린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생각은 없소?”

멀거니 서서 그를 올려다보던 델린저가 갑자기 풋 하고 웃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받아준 오크들을 무슨 소린가 싶어 쳐다보고 있다.

그는 다시 크랭크의 앞에서 허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자네 모르는군? 나는 여기서 아주 괜찮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허튼소리 말고 어서 가. 나는 오늘 밤에도 바빠! 훅훅!”

이제 두 손으로 투구를 덮은 크랭크가 오크 부락민을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주고 저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캐롯에게 달려갔다.

“빨리 와! 이 굼벵이야!”

달이 뜬 밤, 밤의 초원을 느긋하게 걸으며 캐롯이 중얼거린다.

“무슨 말하고 왔어?”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봤지.”

“오! 뭐라던데?”

크랭크는 좀 머뭇대다가 말했다.

“자기는 지금부터 바쁘니 빨리 가라고 하더라.”

“푸흡! 콜록콜록-!”

단 걸 많이 먹는 바람에 목이 말라 버린 아리에테가 수통을 입에 대고 기울이다가 물을 뿜어내고 기침을 해 버렸다.

퍽퍽!

“크랭크읏!”

“아야, 아야, 아프다.”

앞장서서 걷던 캐롯이 빛이 솟아오르는 저 멀리 방주 도시를 보면서 말했다.

“아하하! 재미있네. 그래, 도시 밑바닥 인생보다 야생의 상위가 좋다는 말이구나?”

“사람은 누구나 위를 올려다보며 꿈을 꾼다. 그 다리가 현실의 시궁창에 빠져 있더라도 말이야. 본능이지.”

뒤를 돌아본 아리에테가 그 말을 듣고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너는 왜 굴러들어 온 기회를 차 버리는 거냐? 출세할 기회가 그리도 많았는데.”

“아리에테, 네 해석은 네 기준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성향에 대한 것이었다. 지위든 실력이든, 뭐든.”

조금 입을 다물었던 크랭크는 고요한 밤의 초원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도 지금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신한다. 바로 너희들이 있으므로 말이야. 내 자랑이다.”

뒤를 돌아본 캐롯과 당황한 아리에테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아리에테의 경우엔 생각도 없었는데 몸체의 시온이 그의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네 삶의 증거가 되어서 기뻐.”

“나도 그렇습니다. 마이스터 크랭크.”

오랜만에 들리는 시온의 목소리와 좀 쑥스러워진 아리에테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어, 나, 나도 그렇다. 으악! 부끄럽구나! 손발이 오그라드는구나!”

눈을 질끈 감은 아리에테의 외침에 캐롯이 깔깔 웃는다.

달빛을 머리에 올린 친절한 거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래, 다들, 내 삶의 증거가 되어 줘서 고맙다.”

히히 웃던 캐롯이 갑자기 날 선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말야, 이상하게 조용하네. 뭐 하나 나올 때 되지 않았어?”

“나도 그게 신기하다. 왜 이렇지?”

“개미가 다 잡아먹은 건가?”

어?

캐롯이 크랭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지금 나랑 같은 생각했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억측은 그만두자.”

“무슨 말인데? 무슨 말이냐!”

아리에테를 가만히 쳐다보던 캐롯과 크랭크가 몸을 돌리더니 훅훅 조깅하는 하는 기분으로 앞서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사가 버럭 외치며 뒤쫓는다.

“해외까지 나와서 달리기라니! 거기 서라!”

“아하하! 나 잡아봐라!”

시원한 달빛 아래에서 힘찬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늦은 저녁에야 마을에 도착한 아리에테는 바로 제이드 기사단장을 찾아가 오크 지원병에 대해 보고했다.

몬스터를 동원한 협공이라는 말에 당황한 그녀는 고민스러운 얼굴이 되더니 말했다.

“그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만.”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실례했습니다. 쉬십시오.”

집무실을 나서려는데 기사단장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내일, 귀빈이 방문하십니다. 그리 알고 있도록.”

“귀빈이요?”

돌아오자마자 작전 회의에 시달리느라 몹시 피곤한 얼굴이 된 기사단장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택배가 도착했다.

“주문하신 부품 배달왔습니다!”

“우와! 왔어!”

밤새 작업 중이던 정비 기사들이 좀비처럼 몰려들어 주문한 물건을 꺼내 보기 시작한다.

그중엔 크랭크도 있었다.

“이젤리아제 물건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지. 어디······.”

나무 상자에서 꺼낸 마력강화스프링을 양손으로 잡은 크랭크가 그 장력을 시험해 볼 생각으로 힘을 준다.

끼기긱!

그의 어깨와 팔뚝이 부풀며 스프링이 힘겹게 꺾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놀라운 탄성,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

신선한 눈빛을 한 크랭크는 본격적으로 힘을 주며 길쭉한 코일 스프링을 휘고 펴기를 반복했다.

“흐음! 흠! 좋은 당김, 아니, 탄성이다. 이거 운동이 되는걸.”

투구를 뒤집어쓴 근육남이 갑자기 웃통을 까고 땀을 번들거리며 스프링을 휘어대는 기괴한 모양에 슬슬 흠칫 놀라는 자들이 나타났다.

“흐음! 흠! 으으음!”

끼긱! 끽! 끼긱!

“보시오, 저 사람은 뭘 하는 거요?”

“또 시작했네.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출신지 명물 같은 거니까. 이거나 좀 옮깁시다.”

그를 아는 동향인들은 그러려니 했으나 그 꼴을 처음 본 이젤리아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랭크는 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비가 끝난 자동 갑옷을 수령하러 정비창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크랭크의 만행을 발견한 남녀 기사들의 눈빛이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하다.

눈동자에 하트 모양이 드러난 여기사 하나가 사납게 웃으며 입가를 손등으로 닦는다.

“쓰으읍! 크읏! 죽이는군! 저 삼각근! 승모근! 그리고 대흉근!”

“대체 뭐지? 저 운동 기구는?”

여기저기서 잔존 병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들 입고 있는 제복도 제각각, 하지만 그 마음은 하나같았다. 참 멋지고 아름다운 근육이지 않은가!

특히 남자들이 더 노골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급기야 윗옷을 벗어 던진 사내들이 그러라고 발주한 물건이 아닌 스프링을 주워 들더니 하나같이 힘겨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끼이기긱!

“끄으아아압!”

“으음! 이 탄성! 훌륭하다!”

“뭐가 이리 단단해?!”

“하하하! 우리나라의 공업력이 이 정도라오! 후움! 훔!”

크랭크를 주축으로 어이없는 차력쇼가 벌어지자 현지 정비단의 총책임자가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놈들아! 저리 가서 해!”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린 그는 마저 손에 잡고 있던 물건의 조립을 끝냈다. 그리고 완성품을 구경하던 캐롯에게 내밀었다.

“됐다. 밑에 그걸 당겨보거라.”

길쭉한 총신을 가진 신무기를 받아 살펴보던 캐롯이 총열 하단에 붙은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릭, 철커덕!

“오오!”

“마력강화스프링을 이렇게 손쉽게!”

감탄과 더불어 놀란 목소리도 나온다.

“너 이 녀석, 정말로 오토마톤이었어?”

대답 대신 히히 웃어준 캐롯은 정비 반장이 시키는 대로 창고 밖 기둥에 걸어놓은 개미 머리를 겨눴다.

퉁!

“우옥?!”

와장창!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묵직한 반동에 캐롯의 조그만 몸이 뒤로 획 날아가 선반에 처박혔다.

겨눴던 개미 머리는 박살이 나 버렸고, 대신 주변에 모인 기술진들은 상당한 위력에 환호를 질렀다.

“와! 성공! 성공이에요!”

“됐어! 으하하!”

선반을 부수고 쏟아진 잡동사니에 파묻혀 치마 속 물방울 호박 팬티를 드러낸 캐롯이 버둥거리며 외쳤다.

“나 좀 꺼내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