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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21화 (221/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성능 개량! (2) 221 >

도시의 마녀 공방에서 미리 이야기를 마쳤기 때문에 고르곤의 거처에 도착하자 지하 정원에 메이드 케이스 시리즈를 대동한 고르곤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지 않니?”

“그간 격조하였습니까.”

크랭크를 올려다보며 히죽 웃어준 고르곤이 캐롯을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놀리듯 음후후 웃어댔다.

“그래, 우리 꼬마 인형은 아주 만신창이가 다 됐네? 우쭈쭈?”

목발을 대고 갈고리를 매단 캐롯이 눈썹을 세웠다.

하지만 찾아온 목적이 있었기에 소리를 지르는 대신 공손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녀님, 마녀님, 마법사 오토마톤을 무찌를 힘이 필요해요. 부디 도와주세요.”

두 손을 흰 가운의 주머니에 찔러 넣은 고르곤이 고개를 쳐들고 우후하하 웃는다.

내내 살쾡이같이 하악거리는 캐롯이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입술을 삐죽 내민 캐롯이 고르곤을 향해 지금이라면 진짜 마녀 같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쩐지 눈이 반짝거린다.

“정말 듣고는 귀를 의심했지 뭐야? 오토마톤이 마법을 쓰다니! 궁금해! 어떻게 했을까나?”

“그거 말입니다만, 오토마톤에게 마법을 쓰게 하는 건 그렇게 어렵습니까?”

몸을 빙글 돌린 고르곤이 저택으로 향하며 말했다.

“애초에 오토마톤을 똑똑하게 만들면 말을 안 들어. 이 녀석처럼.”

“어엉? 내가 얼마나 주인님 말을 잘 듣는데! 안 듣는 건 네 말뿐이야!”

복도를 걷던 고르곤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놀랐지 뭐니.”

“제가 옮겼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 괜찮으니까 오라고 했지.”

연구실 겸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먼지가 풀풀 앉은 오토마톤의 몸체가 이미 작업대에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고르곤이 이걸 공짜로 제공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대가를 요구했다.

캐롯이 버럭 외쳤다.

“안돼! 우리 주인님 생명력 그만 빨아대!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런 거 아냐. 그 마도사 오토마톤 내가 한번 살펴보게 해 달라는 거지.”

크랭크가 대답하기도 전에 캐롯이 먼저 콜을 외쳤다.

“좋아! 말 바꾸기 없기!”

“좋아, 계약, 새끼손가락 걸고, 손도장도 찍고.”

둘이서 아주 짝짝꿍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크랭크는 7년 전 캐롯에게 부품을 나누어 준 오토마톤의 몸체를 살폈다.

들어간 기술이며 양식으로 볼 때 100년 전쯤, 시작 초기형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다른 군용 오토마톤의 몸체를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굳이 이 녀석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딸깍,

머리 장갑판을 떼어낸 크랭크는 수정석 부품이 몇 군데 빠져 있는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캐롯, 이것 좀 봐라.”

“뭔데?”

크랭크의 투구 옆으로 바싹 얼굴을 들이댄 캐롯이 뚜껑을 떼어낸 자동인형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보석 상자 같은 내부에 큼직한 문장이 하나 찍혀 있다.

제작자의 문장이라면 드문 것도 아니지만, 글씨체도 그렇고 뭔가 특이하다.

“저 문장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오호, 어디서 봤지? 난 잘 모르겠는데.”

크랭크가 수첩을 펼쳐서 보여준다.

“메크로의 봄바에게 똑같은 그림이 있었지.”

“오아! 그러고 보니! 뭐야, 그럼 이것도 그 이젤리아 오토마톤이야?”

“그런 게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까?”

팔짱을 한 고르곤은 대답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이 와중에 먼지가 잔뜩 쌓인 오토마톤을 보고 캐롯이 인상을 구겼다.

“그래서 너희들은 이 100년도 넘은 초구형을 내 몸으로 쓴다는 거지? 난 또 완전 생체 골격 같은 걸 기대했는데 말야. 케이스 시리즈처럼.”

다소곳이 서 있던 마녀의 메이드 케이스가 양 손가락을 V로 만들더니 윙크를 찡긋한다.

다만, 그 제작자 고르곤은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생체 골격이라니, 그러면 더 이상 오토마톤이라고 부를 수가 없어.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고. 딱 강화 인간처럼 되겠구나.”

빨간 머리 장신 소심녀 강화 인간 레나를 떠올린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는 강화 인간 하나는 아주 멀쩡했는데. 다른 사람 말도 잘 들었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다? 그 아이들은 자기 파트너가 없으면 오토마톤보다 못해.”

호오호오, 고개를 끄덕이던 캐롯이 쓸쓸하게 웃으면서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제 와 느끼는 거지만, 우리 주인님들은 참 혼자서 완벽하지 못한 녀석들뿐이구나.”

“음, 그게 그렇게 되나?”

크랭크가 투구를 기울이는 사이, 작업대 위에 올라간 오토마톤을 그윽한 시선으로 살피던 고르곤이 흐흐후후 웃으며 말했다.

“미적 기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런 나약한 생체 조직보다 이쪽이 훨씬 전투력이 높아. 무려 국가 발주의 특주품이었으니까.”

국가 발주?

크랭크와 캐롯이 궁금증을 드러냈으나 고르곤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너희들은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니?”

“그런 건 아닙니다. 어서 작업을 시작하시죠.”

캐롯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은 몸체의 점검을 시작했다.

먼지투성이 외부와는 다르게 내부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에 간단한 점검 후 바로 이식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업 전 크랭크는 캐롯을 의자에 앉혀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약속했다.

“반드시 너를 살려내겠다. 나를 믿고 동력을 꺼.”

가만히 크랭크를 바라보던 캐롯이 윙크를 찡긋하더니 하나 남은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물론, 나는 주인님의 자동 인형이니까.”

눈을 감은 캐롯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르곤이 음후후 웃으며 재빠르게 가발을 벗기고 두부 장갑판을 열어 화사한 보석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와! 잘 꾸며 놓았네! 그때 조금 알려준 것뿐인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걸작입니다.”

후후 웃던 고르곤이 캐롯의 머리에서 가장 큰 기억 수정을 뽑아냈다.

금색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검은색으로 빛나는 보석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결혼이라도 해서 네 아이가 태어나면 뭐라고 할 거니?”

크랭크의 대답은 고르곤의 폭소를 터트렸다.

하마터면 수정을 놓칠 뻔할 정도로.

“너희들은 내 인생 두 번째 걸작이라고 할 겁니다.”

“쁘아하하하!”

왁자지껄한 개조 작업이 끝나고, 캐롯이 마스터의 부름을 받고 눈을 떴다.

“캐롯, 일어나.”

칭-!

끼긱, 긱.

파란색 방열 가발을 늘어뜨린 오토마톤이 작업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수십 년 만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던 고르곤이 그걸 보고 빙그레 웃음 지었다.

전투복을 아직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장갑판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알몸이었다.

다만 얼굴만은 어느새 소프트 스킨이 씌워져 있었는데, 어린 소녀 캐롯이 만약 어른이 된다면 이런 느낌이 들 것 같다 싶은 얼굴이다.

어쨌든 대체로 미인.

“어머! 그 얼굴 아주 잘 어울리는걸?”

추억과 현실이 겹쳐서 보이는 고르곤이 한마디하자 손거울을 보다 말고 고개를 돌린 성인 사이즈 캐롯이 무표정한 인상을 곱게 찌푸렸다.

“이 마녀가.”

“음~! 와오오! 저 매도의 시선! 노노! 완전 노노야! 한번 안아 봐도 될까? 응? 응?”

대체 노노라는 오토마톤과 무슨 추억이 있는 것인지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는 마녀 고르곤을 보고 우거지상이 된 캐롯이었지만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 이러지? 신기한 기분이다.

찡그린 얼굴을 돌린 캐롯이 두 팔을 슬쩍 벌렸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느낌, 오하하 웃으며 달려간 고르곤이 딱딱한 캐롯의 품에 와락 안겼다.

“으으응-! 너무 좋아! 옛날 기분 난다!”

“징그럽다. 마녀야.”

“데헷.”

목소리도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한참 비벼대고 더듬는 마녀를 그만 떨어뜨린 캐롯은 고개를 돌리더니 팔짱을 하고 있는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슬쩍 팔을 벌렸다.

“주인님도 안아줄까?”

120㎝ 부근의 캐롯은 지금 180㎝ 언저리가 되었다. 그래서 크랭크의 턱 아래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크랭크는 캐롯을 안아주는 대신 구동 상태부터 점검했다.

앉았다가 일어서기도 해보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캐롯은 문득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원래 몸을 발견했다.

그 앞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은 어른 캐롯이 어린 캐롯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르곤이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무슨 기분이 들어?”

자기의 몸을 바라보는 어른 캐롯의 시선은 마치 잠든 딸을 바라보는 엄마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귀엽구나. 도움에 감사한다.”

하얀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고르곤은 대답 대신 그저 씩 웃음 지을 뿐이었다.

크랭크의 점검과 테스트는 계속 이어졌고, 캐롯은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아침 체조를 해댔다.

“하나둘! 하나둘!”

“아무래도 장기간 방치해 놓았던 물건이니까요.”

“에, 그렇게 오래 처박아 두진 않았는걸? 내가 17살 때쯤이니까······ 음, 몇 년 전이지?”

입술을 삐죽 내민 고르곤이 딴 곳을 본 채로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으나 크랭크나 캐롯은 마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케이스마저도.

기본 동작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크랭크는 캐롯을 저택 밖 지하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 달리기도 시켜 보았다.

탁탁탁!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다리 길이만 해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길어졌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엄청났다.

“오오옥! 빠르다! 엄청 빨라!”

알몸으로 마구 뛰어다니던 캐롯이 마침 밖에 나와 있는 크랭크와 고르곤을 보더니 토다닥 달려왔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는다.

꼬꼬마일 때는 귀여웠는데, 키가 180㎝쯤 되니 위협적으로 보일 정도다.

“아리에테가 뛰기 시작했을 때의 그 기분!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거 잘됐구나. 동작에 이상은? 조정할 부분은?”

팔을 구부려 근육을 보여줄 참이었는지 씩씩한 어른 캐롯이 부풀 리가 없는 이두박근을 선보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전혀! 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무 이상이 없어.”

오른손 검지를 세운 고르곤이 설명을 덧붙였다.

“기본 스펙만 놓고 보면 요즘 최신형보다 좋을 거야. 다만, 역시 오래된 거라 신뢰성이 좀 떨어지겠네.”

크랭크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러니 대략 몇 년 정도 방치했던 것인지 알려주시면 유지 보수에 큰 도움이······.”

“아, 그렇지. 쓰던 무장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급하게 말을 돌린 고르곤은 두 사람을 정원에 내버려 둔 채 메이드 케이스를 데리고 호다닥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장난스러운 표정의 캐롯이 다가와 속삭였다.

“크랭크, 여자한테 나이를 물어보는 건 큰 실례래. 더구나 민감한 마녀에게 말야.”

“그런가?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특히나 오랜 시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잠깐 입을 다문 크랭크는 다시 말을 고쳤다.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지. 어쨌든 공짜로 무장까지 얻어갈 기회다. 도우러 가봐야겠어. 넌 몸체 길들이기 삼아 체조라도 하고 있어라.”

“오! 알았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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