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220화 (220/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성능 개량! (1) 220 >

나흘 후, 그들은 겨우 아르곤에 도착했다.

성문 경비병 월터는 다 부서진 장갑차량이 연신 들어오는 성문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안면이 있는 모험가를 붙잡고 물었다.

“뭐냐? 무슨 일이야? 저 집들은 또 뭐고?”

강도단에게서 노획해 온 이동 가옥은 너무 커서 성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밖에 임시 주차시켜 놓았다.

애초에 안으로 들일 생각도 없었고.

“어휴! 말도 마요. 이번 토벌전은 완전 실패였어요.”

“완전 실패는 아니거든? 목숨은 건졌으니 반쯤 성공이지!”

마침 성문을 통과하던 장갑차량의 지붕에 캐롯이 난간 기둥을 붙잡고 다리를 내민 채 앉아 있었는데,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안대, 팔에는 갈고리, 한쪽 다리는 목발.

월터가 고개를 들었다.

“뭐냐, 해적으로 전직했어?”

“으헤헤, 아저씨는 알아봐 줄 거라고 믿었어요!”

캐롯이 탄 차가 지나가고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로마니의 장갑차량, 그는 도시 내로 들어가지 않고 성문 근처에 차량을 세우더니 다가왔다.

“위에 경비대장님 계십니까? 바깥의 포로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예, 제3경비대장님이라면 집무실에 계실 겁니다.”

항상 쓰고 다니는 모자와 오토마톤 울파는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오히려 그라도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해 버렸다.

우리 가여운 경비대장님 과부 되는 것보다는 났지.

모험가들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전체에 비상경계태세가 발동되었다.

아르곤 제1경비대장실에는 1, 2, 3경비대장이 모두 모여 대비책을 논의했다.

제3경비대장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강력한 마법을 쓰는 오토마톤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위협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제3경비대장은 시험 도입한 경비견과 레인저 부대를 모두 풀어서 예상 접근로를 파악합시다. 우리가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맡겨 주십시오!”

내내 결제 반려만 먹이던 제1경비대장이 자신의 업적을 언급하자 제3경비대장 바이슨은 진지한 얼굴이 되어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를 바라보던 셀린 제1경비대장은 남아 있는 파본 제2경비대장을 바라보았다.

흑마도사 토벌전에도 참가한 그는 약간 작은 키지만 수완이 좋고 현장 지휘력이 뛰어나 부하들에게 명망이 높았다.

“파본 제2경비대장, 경비대 전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양도하겠습니다.”

대머리 콧수염이 고개를 끄덕이자 셀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보는 파본 경비대장의 눈빛이 살짝 이채롭다.

요즘 저 아랫배가 살짝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인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저는 지금 임신 4개월이에요. 이번 일이 끝나면 경비대장직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무심한 대머리 콧수염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우물쭈물하던 파본 제2경비대장은 마주한 두 손을 얼굴에 가져대고 후후 심호흡을 좀 하다가 곧 무난한 축하의 말이나마 겨우 내뱉었다.

“셀린 제1경비대장, 정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셀린이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차기 아르곤 제1경비대장님.”

우효오오오오!

대머리 콧수염의 가슴속 욕망이 폭발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정도로 그는 헐거운 사람이 아니었다.

화사하게 웃으며 축하하던 셀린의 얼굴은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나저나 3년 전에 오크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기억하세요?”

“물론입니다. 그때 성문이 부서져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원래 경비대장 업무 보좌였던 그녀가 임시로 경비대장직을 역임했을 때는 겨우 16살이었다.

그 후로 근 20년, 이제 셀린은 도시 안팎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 사고는 다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그녀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외부의 침입이 잦아지면 시민들은 불안에 떨 거고, 그러면 이민자가 속출하게 될 겁니다. 우리 도시의 존망을 위해서도 어떻게 해서든 도시 내로의 진입은 막아야 합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런데 밖의 포로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험가들이 데려온 포로들은 타고 온 이동 가옥 그대로 성 밖 한적한 곳에 경비대의 감시를 받으며 구류 중이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셀린 경비대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강도단 포로라기에 인생 막장의 험악한 친구들을 생각했으나 막상 가서 보니 그냥 보통 마을 사람들이었다. 여자도 많고, 애들도 있었다.

“정보대로라면 그 문제의 오토마톤이 나타났을 때 교섭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분간 저 상태로 대기, 향후 거취에 관한 결정은 상회 책임자들과 영주님이 하실 겁니다.”

이야기를 마친 파본은 휘하 부하들을 소집하러 가 버렸고,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좀 쉬던 셀린은 곧 안절부절못하더니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다.

“어딜 가세요! 홑몸도 아니면서!”

짜증스러운 보좌 담당관이 나타나자 셀린은 그 팔을 뿌리치며 복도를 걸었다.

“에잇, 시끄러워! 내 길을 막지 마라!”

하지만 요즘 보좌 담당관은 언제나처럼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 진지하게 되물었다.

“진정하세요. 배 속의 아기에게 좋지 않으니 화내지 마시고요. 어디 가세요?”

“어, 음, 오, 오토마톤 정비 길드에. 울파가 부서져서 돌아왔어. 그, 저, 아직 그이 얼굴도 못 봤고.”

그이,

보좌 담당관의 입이 히죽 찢어지고 눈이 반달이 되자 셀린 경비대장이 잔뜩 긴장한 경계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역시 대놓고 놀리진 않았다.

얼굴을 싹 감추고 고개를 끄덕인 보좌 담당관이 호위를 자처해 둘은 그대로 시내에 있는 오토마톤 정비 길드를 찾아갔다.

“엇? 경비대장님?”

제복에 모자를 눌러썼지만 작은 몸집과 저 붉은 머리카락은 눈에 띈다.

그녀가 온 이유를 대충 눈치챈 길드 소속 기사가 작업장으로 손짓했다.

“이쪽에들 계십니다.”

“어, 음.”

호다닥 입구로 들어가자 팔짱을 낀 로마니와 작업대에 올려진 울파가 있었다. 울파는 머리에서 쇄골 일부까지만 있고 나머지는 없었다.

“로마니!”

“이런,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공식적으로 결혼식 같은 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서는 서로 존칭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문이 다 퍼졌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일 뿐이었다.

로마니가 멋쩍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에 얼굴이 좀 달아오른 셀린 경비대장은 달려가 와락 안기고 싶은 것을 자중하며 물었다.

“어, 음, 괜찮나요? 다친 곳은 없고요?”

“나는 괜찮습니다. 울파 덕에 목숨을 구했거든요.”

입을 꾹 다문 셀린이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울파를 보았다.

“울파!”

“그렇다, 내 이름은 울파. 나는 여기에 있다.”

눈이 휘둥그레진 셀린이 헷 하는 소리를 냈다.

살아 있잖아?

“괜찮은 거니?”

“전신에 신호 없음. 그보다 딸기 케익의 소재가 중요합니다. 마스터, 딸기 케익은?”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외부 동력에 의지해 다시 깨어난 울파가 고개를 돌리고 눈빛으로 로마니를 비난했다.

“당신은 가끔 중요한 일을 잊곤 한다. 주의 바람.”

허허 웃던 로마니가 자리에 동석한 길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머리는 괜찮은 것 같군요.”

“그나마 다행이군. 그런데 갑자기 나도 딸기 케익이 먹고 싶어졌다. 자네들, 사와.”

듣고 있던 보좌 담당관이 기가 찬다는 듯 셀린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예에? 여기 이분은 아르곤 제1경비대장님이세요! 그런 분께 딸기 케익 심부름이라니요!”

“이 코딱지 경비대장이 사다 주는 케익을 먹으면! 어쩐지 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런다!”

방주 도시 아르곤 창립 멤버이자 그녀의 부모와도 아는 사이인 무슈 길드 마스터는 셀린 경비대장을 그렇게 불렀다.

코딱지.

말릴 새도 없이 귀가 쫑긋 솟아오른 셀린이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보좌 담당관은 그 뒤를 쫓았고,

“경비대장님! 제가 다녀올게요!”

“내가 가야 해! 넌 따라오지 마!”

셀린 경비대장과 그 보좌 담당관을 케익 심부름으로 쫓아낸 무슈 길드 마스터는 다시 느긋하게 울파를 살피면서 말했다.

“아아, 나의 걸작이 이렇게 타 버리다니! 도무지 용서할 수 없구나! 이게 뭐냐! 뭘로 태운 거냐?”

“강력한 열선 병기, 자세한 것은 불명. 다만 주문명 썬라이즈 라이트를 확인.”

울파의 타 버린 몸을 살피던 무슈 길드 마스터는 눈을 빛내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자동 갑옷 제작을 외주로 떠넘겨 버렸기 때문에 요즘 좀 한가한 참이었다.

“이 녀석 몸체는 내가 젊었을 때 만든 거야. 20년 된 구식이지. 이참에 최신예 부품과 기술로 아예 몸체를 새로 만들어 주마! 그깟 마도사의 인형 병기 따위 갈아 버릴 정도로!”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

울파의 중얼거림에 로마니가 웃는다.

오토마톤 울파는 모험가 일을 시작한 로마니의 요청으로 작은 수리점에 불과했던 초창기 정비 길드에서 남는 부품을 모아 자체 제작된 물건이었다.

“사실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지. 그때의 풋내기가 말이야.”

갓 20살이 넘었던 청년은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무슈는 울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도 말이다.”

울파가 그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길드 마스터도 가끔은 제정신.”

“뭬야! 이놈이! 아무래도 머리가 망가졌나 보구나!”

작업실에서 오토마톤의 머리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는 그와는 별개로 이름을 알리고 제작자인 길드의 위상을 높여준 전설적인 오토마톤을 위해서 정비 기사들은 분주하게 장비를 옮기고 부품을 날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에서 뜨거운 빛을 발했다. 길드가 낳은 걸작에 자신의 솜씨를 덧씌울 기회가 지금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무슈 길드 마스터가 울파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소리를 꽥 질렀다.

“대대적인 성능 개량을 시작하자! 오늘은 철야다!”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

* * *

같은 시각, 캐롯네의 공방에서도 난리가 벌어졌다.

“크랭크가 안 보여!”

“캐롯도 안 보여!”

“로테도 안 보여!”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샤를이 제복의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냈다.

“주인님께서 맡기셨습니다.”

메모의 앞으로 무모한 여기사, 방구석 폐인, 엘프 밀고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다같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다녀올게.

도끼눈이 된 아리에테가 버럭 외쳤다.

“그렇게도 데려가기 싫었냐! 마녀의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마녀의 저택도 보고 싶었는데!”

아리에테의 성난 외침에 투나와 트리스타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리에테는 일전, 공주님의 호위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로 그들의 과거 이야기였다.

“고, 고르곤 님이 캐롯에게 소, 손을 대?”

“그래서 그런 고도의 연산 능력을 손에 넣은 건가요?”

세 여자는 다시 괴성을 질렀다.

“궁금해! 궁금해! 아아! 이 음흉한 양철 거인!”

* * *

다각다각.

길드에서 마차를 빌려 탄 크랭크는 귀가 가려운 것을 참다 못하고 결국 투구를 벗은 다음 귀를 후볐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후크 캐롯이 목각 다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왜? 누가 욕해?”

“음, 그런 것 같아. 아마 공방의 여자들이겠지.”

캐롯이 배시시 웃는다.

“공방에 사람이 많아서 좋네. 지켜야 할 것이 늘어가고 있어. 주인님, 나는 질 수 없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삼.”

“음, 알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