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예쁜 짓! 207 >
무장을 집어넣은 그의 부하들은 서둘러 정리 작업에 착수, 전리품을 회수하고 관을 옮기기 시작했다.
개척민 마을과 방주 도시로 향하는 상단의 수송 차량을 약탈하는 바람에 현상금이 걸린 흑마도사의 토벌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제압이 끝났다는 소식에 밖에서 대기하던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그러다 한 사내가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오토마톤을 보고 다가왔다.
“누가 상품에다 이런 더러운 모자를 씌웠어?”
모자를 빼앗기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
쾅-!
냅다 내질러진 주먹에 남자의 얼굴이 묵사발이 나서 쓰러진다.
“테오! 뭐야, 이 자식?!”
“역시 고장 난 녀석이야!”
당황한 모험가들이 무기를 꼬나든다. 상황을 통제해야 할 커스는 마침 밖에서 다른 일을 보느라 이곳에 없었다.
주먹을 내지른 채로 서 있던 오토마톤이 고개를 든다. 하얀 백발 사이로 떠오른 붉은 유리 눈에서 빛이 번뜩인다.
“내 모자를 건드리지 마마마라시오오오다다다드드드게게게!”
실험이 성공했다.
사람을 패는 오토마톤을 보고 남자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오토마톤이 미쳤어! 쏜다? 쏠 거야!”
“안돼! 이건 상품이야! 두목을! 아니, 대장을 불러와! 빨리!”
다들 무기를 쥐고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 방향성 없이 오고 갔다. 이 안타까운 자들의 반응은 실험의 최종 방아쇠로서 작용했다.
적의, 나를 향한 강렬한 적의가 느껴지는구나.
반격해야 한다.
복수해야 한다.
그의 붉은 눈이 번쩍이고 갑자기 화끈한 열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늘어뜨린 오토마톤의 손아귀에서 불덩이가 피어오른다.
화르륵-!
기겁한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마법!?”
콰쾅-!
숲속에서 난데없이 폭음과 폭발이 터져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겨우 동굴에서 탈출한 녀석을 붙잡아 다그치자 오토마톤이 마법을 썼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잘못 본 게 아니에요! 정말이라고요!”
밖에 있던 커스와 그의 동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때마침 마도사의 모자를 눌러쓴 오토마톤이 연기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양이 꼭 백발 마녀 같아서 주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커다란 덩치에 둥그런 악성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기계인형의 앞을 가로막는다.
도끼를 든 그의 팔은 오토마톤 의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출력도 꽤 손을 본 물건인데 끔찍한 사실은, 이걸 달기 위해 멀쩡한 팔을 잘라내는 미친 짓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정신병자의 이름은 바로 존슨.
“뭐냐, 오토마톤? 왜 난데없이 마법으로 애들 놀래키고 지랄이냐. 뒤로 돌아서 엉덩이를 내밀거라. 언제 한번 인형에게도 박아보고 싶었······.”
존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리더 커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녀의 모자를 쓴 오토마톤이 정말로 뒤로 돌아서 엉덩이를 쑥 내민 것이다.
“뭐냐 이거? 정말 제대로 미쳤나 본데?”
“마법을 썼다는 건 무슨 말이지?”
“정말입니다! 파이어 볼을 썼다구요!”
커스가 흑마도사의 오토마톤을 보면서 물었다.
“너 마법 썼나?”
“예. 제 모자를 노리고 적의를 드러냈기에 자기방어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오토마톤이 그게 가능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녀석 본 적 없는데?”
선선히 자신의 소행임을 밝히는 오토마톤을 보고 모두가 어이없어 했지만, 우울증 환자 커스는 여전히 무감각하게 반응했다.
그가 주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써봐.”
팔을 들자 정말로 불덩이가 생기더니 휙 날아간다. 주문 같은 것도 없이.
쾅-!
트드드드-! 쿵!!!
애꿎은 아름드리나무의 밑동이 박살 나서 쓰러져 버렸다.
입을 딱 벌리고 그걸 보고 있던 존슨이 머리를 북북 긁으며 중얼거렸다.
“어랍쇼! 정말이네? 오토마톤은 마법 못 쓰는 거 아니었어?”
입을 다물고 잠깐 생각하던 커스가 이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좋구나. 마법사 인형이라니 놀랍군. 이거면 다른 상품의 10대 값은 되겠는데?”
마법을 쓰는 오토마톤, 이 희대의 위업과 발견을 그는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다.
* * *
다시 아르곤 크랭크의 공방.
공주의 나들이를 밀고한 크랭크는 얌전히 붙들려가는 공주와 클레어 영애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했다.
클레어 영애가 뿜뿜거리며 주먹을 흔들어댔다.
“흑막의 철가면! 잊지 않겠어! 고자질쟁이!”
“감사합니다, 영애. 살펴 가십시오, 공주님.”
경호 대원에게 둘러싸여 팔짱을 하고 있던 공주는 의외로 쿨한 얼굴이었다.
“짧지만 즐거웠다. 이제 돌아가자. 하지만 크랭크, 경은 나를 밀고한 죗값은 치러야 할 것이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크랭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아르곤 괴식 연구회 회장으로서 공주님께 특식을 대접하겠습니다. 트롤 허벅지살 구이, 오크 튀김, 와이번 메로우. 슬라임 푸딩.”
이 듣도 보도 못한 메뉴에 공주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뭣이! 그건 맛있는가?”
“그런 걸 드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버럭 외친 리리안느는 서둘러 말괄량이 공주를 이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뒤돌아본 공주가 즐겁게 웃으며 팔을 흔들자 공방의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캐롯과 아리에테는 우체국 볼일 때문에 외출 중이라서 자리에 없었지만, 쥬세페 공주는 그래도 즐거워 보였다.
한참 후 아리에테와 캐롯이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다가 잡혀가는 쥬세페 공주님을 만났어. 무슨 일인지 꼭 안아주시던데.”
“네가 예뻐서 그런가 보지.”
여전히 작업 중이던 크랭크의 영혼 없는 대답에 캐롯이 우헤헤 즐거워하자 아리에테도 슬쩍 끼어들었다.
“나도 안아주셨다.”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춘 크랭크가 투구를 슬쩍 들더니 아리에테를 보았다.
아리에테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뭐냐? 속지 않는군.”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다면 예쁜 짓을 하면 된다.”
“음? 어떻게 말이냐?”
크랭크의 발언에 아리에테가 흥미를 드러내자 캐롯이 나섰다.
“나 따라 해 봐요. 요렇게!”
조그만 인형 소녀의 예쁜 짓이 시작되었다.
엉덩이를 쭉 내밀고 윙크를 날리거나, 입술을 삐죽 내밀거나, 손가락을 볼에 가져다 대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조금 따라 해 보던 아리에테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모, 못하겠다!”
“으헤헤, 혹시 알아? 크랭크가 좋아할지.”
힐끔 크랭크를 쳐다본 아리에테가 다시 한 번 어색하게 캐롯의 예쁜 짓을 따라 하자 크랭크의 커다란 팔뚝에서 닭살이 쫙 돋아오른다.
“크랭크읏!”
“음, 생각보다 징그럽구나.”
“으아아!”
오열하는 아리에테를 좀 놀려주던 캐롯이 잊고 있었다는 듯 길드에서 받아 온 의뢰서를 내민다.
“오다가 길드에서 받아 온 의뢰인데, 이거 어때?”
“음?”
작업하다 말고 의뢰서를 받아 든 크랭크가 말했다.
“무장 차량 강도단인가? 전에 이야기는 한번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내용을 죽 읽어 들인 크랭크가 캐롯에게 그걸 돌려주며 말했다.
“큰 건이구나. 나도 가야겠어.”
“오! 정말인가? 바쁜 거 아니야?”
크랭크의 참여 의사에 아리에테가 몹시 반가워했다. 분해된 오토마톤을 앞에 놓고 있던 크랭크가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런 건 그냥 취미 생활이다. 나는 모험가야. 돈을 벌어야지.”
캐롯이 히히 웃으면서 손에 든 의뢰서를 가리켰다.
“너 사실은 여기 위법 인형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것도 부정하진 않겠어.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이 친구들의 수완이다. 강도단 주제에 무법자의 마을 비슷한 것을 형성해서 암시장까지 운영하다니 놀라워. 봐두고 싶다.”
의뢰서를 자기 얼굴 앞에 들어 올린 캐롯이 웃으며 말한다.
“오오, 그럼 이건 주워 먹을 콩고물이 많을 것 같네? 하하!”
“맞다.”
이윽고 두 사람이 서로의 크고 작은 손을 마주 부딪쳤다.
다만, 아리에테가 그걸 곱게 넘어가지 않고 눈썹을 세웠다.
“콩고물이라니, 그건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군. 우린 제대로 할 일을 하고 보상을 받는 거다. 노획품이라고 해라.”
캐롯이 입가에 손을 세운다.
“아차차, 단장님 앞에서는 말조심해야 해.”
“그렇군. 기사단장님이구나.”
허리에 손을 올린 아리에테가 흐뭇하게 콧김을 뿜어냈다.
“음! 이 몸은 단장님이시다. 그보다 듣기 좋구나. 한 번 더 불러다오.”
잠깐 단장님과 어울려 준 캐롯은 단원들을 부르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갔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엘프 트리스타가 들어왔다.
파티에 엘프가 있는 것이 꿈이었던 아리에테가 바로 그녀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처음엔 거절했다.
“왜지?!”
“저는 파티 단원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크랭크가 간다는 말에 그녀는 참가 의사를 밝혔다.
“왜지?!”
“저는 이분의 조수 2호 거든요.”
“크흣-!”
합리적인 엘프의 설명에 아리에테는 그만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일거리에 다들 들뜬 기분으로 준비를 서둘렀다. 트리스타는 어디서 활을 하나 가져왔다.
“역시! 가지고 있을 줄 알았어!”
“당연합니다. 바깥세상에 나가는 엘프에겐 필수적인 물건이거든요.”
파이프를 피워 물고 나타난 쿠르프가 물었다.
“뭐냐? 다들 어디 나가냐?”
“일하러요! 드워프 할아버지도 어떠세요?”
캐롯의 초대에 쿠르프는 허허 웃어 버렸다.
“고맙지만 사양하마. 도끼는 정말 질릴 정도로 휘둘렀거든?”
“오와아! 멋진 대답이에요!”
엘프 궁수와 더불어 드워프 전사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던 아리에테가 조금 슬퍼했으나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어느덧 출발 당일이 되었다.
일행들을 전부 태운 파티 전용 장갑 차량이 출발하자 투나가 나와서 손을 흔든다.
“자, 잘 다녀와!”
“오! 갔다 올게! 집 잘 보고 있어! 선물 챙겨 올게!”
으히히 웃고 있는 투나의 곁으로 드워프 쿠르프가 역시 담배 파이프를 들고 다가왔다.
“이봐, 자넨 남는 건가?”
“어, 음, 저, 저는 집에 이, 있는 게 더 좋거든요. 하, 할 일도 많고.”
크랭크의 조수라고 소개받은 이 처녀는 음침하지만 의외로 아는 게 많고 무려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었다.
게다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는 그녀의 능력이 절실했다.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한 샤를이 공방 입구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았다.
그러자 한참 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미청년이 작업 중인 창고 앞으로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 오우, 포비!”
투나가 반색하자 작업 중이던 쿠르프도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응? 뭐야? 자네 친구인가?”
그 외에도 같이 따라온 꼬마들이 창고 문으로 고개를 내민다.
“와! 드워프 아저씨야!”
“뭐냐, 이 꼬마들은? 드워프 할아버지 처음 보느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드워프와 눈높이가 비슷한 꼬마들이 저마다 꺅꺅거리며 그 주위를 맴돌았다. 손자 손녀를 보는 것 같아서 그는 딱히 아이들을 쫓아내거나 하지 않았다.
창고 내부를 두리번거리던 포비가 말했다.
“저쪽 공방에 사람이 없어서 문 열린 거 보고 여기로 오긴 했는데,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그들이 있는 8번 창고에는 수리가 끝난 소녀형 오토마톤을 비롯해 6번, 7번 공방에 다 들어가지 못한 물건이 상자에 담겨 이곳저곳에 쌓여 있었다.
투나와 쿠르프는 그 잡동사니 사이에서 근처 목공소에서 잘라 온 큼직한 나무토막으로 의자를 조립하던 중이었다.
포비가 그 나무 의자를 만져보며 말했다.
“결이 좋은 나무네요. 등받이가 높은 게 뭔가 왕님 의자 같은데요?”
투나와 쿠르프는 흐흐 웃기만 했다.
그러다 투나가 물었다.
“그, 그래서 요즘 작황은 어때?”
“좋아요. 아주 잘 크고 있죠. 근황 보고는 여기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