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복수! 206 >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온 아리에테가 명필을 선보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캐롯이 말했다.
“이런 건 빠를수록 좋잖아? 아르곤 우체국에는 와이번 항공 직통이 있어, 좀 비싸지만.”
“오, 그거 잘됐구나. 돈은 이런 데 써야 하는 거다.”
외골격 오토마톤 시온을 의수로 사용한 직후부터, 아리에테는 매일 피나는 훈련으로 진짜 팔 못지않은 필체를 다시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건 익숙해질수록 글을 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것.
사사사사사사삭!
순식간에 편지를 완성한 아리에테는 캐롯의 안내로 도시 우체국에 항공 특급을 부탁했다.
항공 특급은 매일 하루 두 번 정기적으로 운영되는데, 관공서의 각종 서류에서부터 개인 속달까지 시급을 다투는 안건들이 주를 이룬다.
대신에 비룡을 사용하다 보니 요금이 비쌌다.
후웅~! 훙-!
우체국 건물 뒤에서 커다란 날개가 펼쳐지더니 이윽고 등에 사람을 태운 와이번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퀘에에에에!”
우렁찬 포효 소리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멈춰 서서 거대한 와이번의 멋진 날갯짓을 바라보았다.
“오오오!”
“와아!”
세상 신기한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대자 비룡의 등에 올라 고삐를 잡고 있던 와이번 라이더 역시 한 손으로 팔을 흔들어댄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더욱 세차게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했어! 내 꿈은 와이번 라이더가 되는 거야!”
“어머! 그거 좋네. 엄마 태우고 날아주렴?”
“응!”
광장에서 잠깐 기다려 정오에 출발하는 와이번 항공우편을 구경하던 캐롯이 곁에 있던 아리에테의 손을 잡았다.
“어때? 너도 꿈이 있어?”
이제 광장을 걷기 시작한 아리에테는 그 질문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걷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찰그락, 찰그락.
오토마톤 기계손을 좀 쥐었다 펴보던 아리에테가 그것을 내밀었다.
“내 꿈은 이 손으로 나의 미래를 장악하는 것이다. 다시는 내 것을 잃고 싶지 않아.”
“오호오, 뭔가 육식동물 같은 대답인데? 마음에 들어.”
자동 인형 소녀와 손을 맞잡은 여기사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험가 길드에 들러서 의뢰를 찾아보았다.
“편지는 편지고, 일은 일이지.”
“맞다, 장마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
둘이서 공고 게시판을 기웃거리는데 마침 길드 접수처의 여직원 마리온이 일어나서 손짓한다.
“캐롯, 아리에테!”
“네엥~!”
캐롯이 도도도 달려가자 그녀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전용 장갑차량 가지고 계셨죠? 이거 상단에서 온 의뢰인데 한번 봐보세요.”
“흠흠, 어디어디.”
캐롯과 아리에테가 종이를 죽 읽어보더니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손바닥을 부딪쳤다. 그리고 동시에 접수원을 보면서 외쳤다.
“등록!”
꾸궁-! 쿠구구구!
난데없는 폭발과 함께 천장이 울리면서 흙먼지가 후두둑 쏟아진다.
장비를 조작하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던 늙은이가 분노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며 욕지거리를 쏟아 낸다.
“이 괘씸한 모험가 놈들! 바퀴벌레 놈들! 더러운 놈들!”
긴 회색 머리카락과 수염은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쓰고 있는 모자도 범상치 않다. 챙이 넓고 위로 삐죽 솟아오른 모양.
한때 위대한 마법사의 지위와 능력을 알리던 그 특이한 모자는 이젠 사람의 길을 벗어난 흑마도사와 마녀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곳곳에 촛불과 등불을 켜서 조명을 확보한 방은 지하에 만들어진 마도사의 연구실이었다.
지저분한 로브에 그 뾰족모자를 쓴 늙은 마도사는 커다란 마력 발전기에 급하게 동력선을 연결하고 묵직한 레버를 온몸으로 힘껏 밀어 올렸다.
철컹-!
···이이이이잉-!
파지직! 지직!
“오, 오오오!”
땡그랑-!
앙상한 손가락에서 흘러내린 공구가 바닥으로 떨어져 마치 맑은 종소리를 울렸다. 그와 함께 방금까지 조바심을 내고 있던 늙은 마도사의 얼굴로 진한 성취감이 돋아났다.
“마침내······!”
바닥에 깔린 수십 가닥의 동력선은 전부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 한구석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제단에 세워진 두 개의 관,
하나는 비었고, 나머지 하나에는 검정색 프레임에 하얀 방열 가발을 쓴 오토마톤이 조용히 누워 있다.
그걸 우러러보는 늙은 마도사의 성취감은 이제 슬픔과 분노로 뒤바뀌었다.
“으흐흐흑!”
내내 홀로 숨어 살아온 나날, 늘그막에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얼마나 즐거운 한때를 보냈는가.
연구와 탐구, 논쟁을 벌이던 친구들의 얼굴이 그리워져 버렸다.
쿠구구궁-!
“그걸 네놈들이!”
지하 연구실의 천장을 울리는 진동은 그날의 악몽을 다시 일깨우는 것 같았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오토마톤을 앞세우고 쏟아져 들어온 모험가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 자들의 얼굴과 이름들.
“로마니이이이이잇!”
쿠우웅-!
점점 가까워지는 진동에 분노한 얼굴을 든 그는 장비를 마저 조작한 다음 지금껏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주저 없이 빈 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두 개의 관 뚜껑이 동시에 저절로 닫히기 시작한다.
“크크케케케케! 기필코 복수할 것이다! 이놈들아! 어디 두고 보자!”
다 빠진 이빨을 드러내고 광기에 젖은 눈으로 웃는 마도사의 얼굴은 저절로 올라온 관 뚜껑이 그만 덮어 버렸다.
트드득! 덜컹!
그것을 신호로 삼아, 제단 주변에 널린 수정석과 복잡하게 연결된 기구들이 곧 끔찍한 섬광과 불꽃을 일으켰다.
파지지지지직! 자자자자작! 퍼퍽! 빵! 뻥-!
순식간에 맡겨진 임무를 수행한 기구들이 서서히 작동을 멈추고, 그 빛과 열이 미처 식기도 전에 재차 폭음이 터지더니 묵직한 철문이 쓰러진다.
꽈쾅-! 쿵-!
사방으로 휘날리는 연기와 먼지를 헤치고 모험가들이 들이닥쳤다.
“진입!”
커다란 사각 방패를 앞세우고 들어온 사람 주변으로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모험가들이 재빠르게 튀어나와 자동 석궁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내부를 살피던 사내들이 뒤에 대고 외쳤다.
“대장! 아무도 없습니다!”
부하들의 외침에 검을 뽑아 든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언젠가 캐롯과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웰메인 길드 소속의 모험가 커스였다.
먼지 가득한 음침한 연구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 그는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분명히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여기 말고 다른 방이 또 있나?”
자동 석궁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위에 좀 보십쇼!”
쓰레기와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제단과 그 위에 세워진 두 개의 관에서 아직 연기가 풀풀 흘러나온다.
무심한 커스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여기는 마도사의 연구실, 복잡한 기구들, 연기를 피워 올리는 두 개의 관,
이건 누가 봐도 뭔가 한 것 같다.
“여긴 마도사의 연구실이야. 조심하라고.”
“으악-!”
주의를 주자마자 울리는 난데없는 비명에 커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잡동사니 제단에서 연기 나는 관 뚜껑을 열어본 사내들이 기겁했다. 비쩍 말라 버린 마도사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미라는 이빨을 드러내고 마치 웃는 것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그걸 보고 어깨 힘이 쭉 빠져 버린 커스가 피식 웃는다. 항상 무표정하지만 어쩌다 가끔 피어나는 그의 미소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어딘가 좀 서늘했다.
“영감, 뭐가 그리 좋아서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계시는 거요?”
“대장! 여기 좀 봐보세요! 오토마톤이, 으악! 움직이잖아?!”
쯧!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적 떼라도 훈련 시키면 좀 쓸 만할까 싶었는데, 이거 영 아니네.
싸늘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 커스의 눈에 놀라서 물러나는 부하들과 관 뚜껑을 밀어내고 몸을 내미는 검정색 오토마톤이 있었다.
사라락!
쏟아지는 하얀 방열 가발과 윤기 나는 검정색 몸체는 깨끗한 새것이었고, 전용 전투복까지 잘 차려입고 있었다.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것은 고개를 돌리고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커스를 바라본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목소리, 커스는 소름이 좀 돋았다. 하지만 닳고 닳은 베테랑 모험가는 이 수상한 녀석을 앞에 놓고도 착란을 일으키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 건 삶에 미련이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지, 우울증 환자를 얕보지 마라.
“그래, 반갑다. 넌 누구냐?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러면서 뒤로 돌린 손가락으로 공격 준비 신호를 보내자 그걸 알아본 부하들이 저마다 사격 태세를 취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오토마톤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르겠습니다. 수행할 명령 없음.”
엇? 이 자식 봐라?
급하게 손가락 수화를 바꾼 그가 다시 물었다.
“마스터는 누구지?”
“설정된 마스터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하들이 슬슬 어깨 힘을 빼기 시작한다.
하지만 커스는 미심쩍었다. 이런 녀석이 있으면서 왜 꺼내지 않았지?
고개를 돌려 살펴본 마도사의 연구실은 갖은 잡동사니가 널려 있어 이미 돌입 직전부터 난장판이었다.
그 말인즉,
“뭔가 급하게 실험하다가 실패한 것 같지 않아?”
부하들은 이제 실실 웃기만 할 뿐 반론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이 깜장 오토마톤도 마찬가지.
마도사의 시체가 든 관 뚜껑을 슬쩍 밀어서 닫아 버린 커스가 고개를 돌린다. 항상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기가 서려 있다.
여전히 서늘했지만,
“뭔지 모르겠는데 이대로 노획하자. 이 녀석 상품이니 손대지 마. 그리고 넌 지금부터 할 일을 일러줄 테니 일단 내려가서 대기해라. 사람 말은 알아듣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오토마톤이 관에서 나와 제단을 이루고 있는 잡동사니에서 내려왔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저분한 모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주워 든다.
이 와중에 커스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지시를 내렸다.
“토벌 증거가 필요하니 이 관째로 밖으로 옮겨. 그 외 주변 살펴서 돈 될만한 것은 전부 수거해라.”
어설프게나마 지금껏 훈련받은 군인 흉내를 내던 사내들이 탐욕에 젖은 눈으로 흐흐 웃기 시작했다.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더니 어느새 마도사의 모자를 쓰고 가만히 서 있는 오토마톤을 가리켰다.
“제안 있습니다. 두목, 저 오토마톤은 우리가 쓰면 안됩니까? 꽤 좋아 보이는데.”
무표정한 커스의 얼굴로 짜증이 살짝 서렸다. 그는 영입한지 얼마 안된 청년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아. 내가 본업 때는 두목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해?”
“엇차차! 죄송합니다.”
혀를 쯧 차긴 했지만 커스는 부하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런데서 무슨 실험을 했던 건지 모르는 물건인데 등 맡기는 데 쓰고 싶지 않아. 이번에 거래처에 가져다주고 놈들의 자동 2륜차나 몇 대 더 받아오자. 부업에 쓸 기동력이 필요해.”
부업이라는 말에 히죽 웃는 사내들이 꽤 많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또 다른 남자가 손을 들었다.
“저, 그냥 궁금해서요. 대장은 왜 오토마톤을 안 쓰십니까? 있으면 참 편리한데.”
“맞아요. 불침번 안 돌아도 되잖아요.”
실제로도 그의 팀원들은 전원 인간들뿐이다.
어느새 담배를 피워 문 커스가 연기를 후 뿜으며 피식 웃는다.
“별 이유 없어. 그냥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게 싫어서 그래. 좀 징그럽지 않냐?”
인형 공포증, 자동인형이 보편화된 이 세계지만 분명 그런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그래도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저런 사람이 인형 공포증이라니, 좀 깬다.
덕분에 내내 의문을 품던 부하들은 선선히 수긍해 버렸고, 입에 담배를 문 커스는 이제 박수를 쳤다.
짝짝!
“자자, 더 이상 질문 없으면 움직여라. 빨리 해치우고 밥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