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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04화 (204/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맥시멈 풀 라이프! 204 >

낮잠을 자던 중인지 자리에서 일어난 푸시케가 휘적휘적 걸어온다.

2미터가 넘는 초장신에 여자인데도 팔다리의 근육이 크랭크 수준이다.

휴전선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리고 내려다보자 긴장한 호위병에게 둘러싸인 공주의 얼굴이 바로 보인다.

“안녕, 소문 들었어. 네가 그 쥬세페 공주지?”

긴급 상황에 경호 대장이 헤리슨을 바라보는데 그녀는 괜찮다는 듯이 두 손바닥을 들어서 그들을 안심시켰다.

호위를 물리친 공주가 앞으로 나섰다.

“나를 아는가?”

푸시케가 씩 웃는다.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적대국의 왕족들 이름 정도는 알지. 요 며칠 건너편에서 청소하고 난리를 부리기에 뭔가 대단한 사람이 찾아오나 싶었거든. 그게 공주님일 줄은 몰랐어.”

“호오. 그대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킨 그녀가 소개했다.

“나 푸시케, 건너편 마왕령 국경수비대 수비대장이야. 아, 저기 헤리슨이 노려본다.”

공주가 고개를 돌리자 헤리슨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애들 눈에 안 띄게 단속해 달랐더니 네가 튀어나와서는 어쩌자는 거야!”

“하하하! 네 찡그린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랬지!”

배를 잡고 깔깔거리는 그녀를 보던 헤리슨은 공주를 볼 면목이 없었는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푸시케도 마냥 그녀를 놀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데, 어느새 성벽 입구로 대기 중이던 갑옷 거인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족 수비대원들은 비슷한 사람 모양 자동 인형은 만만하게 보았지만, 저 커다란 망토 달린 녀석들만큼은 무서워했다.

“어음, 얼굴도 비췄으니 슬슬 나는 돌아갈까 봐.”

“그래! 어서 가라! 좀!”

“아니, 그래도 이렇게 만났는데 쉽게 보내고 싶지는 않군. 푸시케 수비대장.”

“공주님! 상대는 마왕군 간부입니다!”

쥬세페 공주는 윙크를 찡긋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 응? 푸시케 수비대장.”

넉살 좋은 왕족을 보고 마족 푸시케가 그만 웃고 말았다.

“오후후! 그야 그렇지! 들키지 않으면 죄가 아니지. 흐흣! 인간 중에서도 말이 통하는 녀석이 분명 있구나!”

말괄량이 공주 전하와 함께하는 이 알 수 없는 속쓰림, 헤리슨과 리리안느에게 위장병의 조짐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족을 만나 보고 싶었던 공주는 호위들의 만류에도 한참 동안 그녀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난생처음 보는 마족인데 인간과 그리 다른 점도 없었다. 머리의 저 뿔만 빼면.

푸시케는 손사래를 쳤다.

“아냐, 우리 말고도 여러 종류가 있어. 그나마 우리 일족들이 인간들하고 비슷하게 생긴 데다 말도 좀 알아먹으니 여기 와 있는 거지. 거의 몬스터랑 다름없는 녀석들도 많아. 음, 이참에 구경 좀 시켜줄까?”

“오-! 부디!”

히죽 웃음 지은 푸시케가 헤리슨을 보았다.

“헤리슨 어쩔래? 싸게 해줄게.”

이런 속셈이었구나!

푸시케를 노려본 헤리슨이었지만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이참에 공주가 호기심을 채우고 빨리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돌린 푸시케가 입가에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마뇽! 잠깐 와봐!”

숲의 오솔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양이 수인이었다. 역시나 여성이었고, 전신을 뒤덮은 화려한 줄무늬는 마치 호랑이의 그것 같다.

그녀는 인간들이 많이 몰려와 있는 것을 멀리서 쳐다보더니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뭐냥?”

“컥-! 귀, 귀여워!”

그녀를 처음 본 쥬세페 공주의 눈동자와 입이 딱 벌어졌다.

주변 호위 중에서도 비슷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다들 뭔가, 가슴속의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린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고양이 수인 마뇽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캐롯의 증언에 따르면, 동물과 인간 여성의 특징이 뒤섞인 기괴한 모습인데도 불구, 주변 사람들의 호평이 끊이질 않더라는 것이다.

고도의 논리연산능력을 가진 오토마톤이라도 인간님들의 위대한 가능성을 얕봐서는 곤란하다고 다시금 느끼게 된 순간이라고 피력했다.

굉장하더라니깐? 마성의 고양이 여자였어.

그 마성의 캣우먼이 입을 열었다.

“뭐냐, 무슨 일인데 사람이 이렇게 많냥. 오, 괜찮은 남자들도 많다냥. 단체로 소풍이라도 나온 거냥?”

말은 살갑게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팔짱을 한 푸시케가 씩 웃는다.

“퍼리 일족이지. 여기서는 보기 드문 애들이야.”

나무 그늘에 서 있는 고양이 수인을 바라보는 쥬세페 공주의 눈빛이 마구 흔들린다.

“리리안느. 어쩐지 저 사람, 우리 미링과 닮지 않았어?”

미링, 왕궁에서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좀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순간 공주의 의전을 책임지는 리리안느와 경호 대장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대로 두면 공주가 마족 수비대원을 상대로 추행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경호 대장이 그녀를 강제로 끌고 물러섰다.

질질 끌려가던 쥬세페 왕녀가 울컥 울상을 지으며 본심을 내비쳤다.

“제길! 휴전선이 다 뭐냐! 우리는 좀 더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아아! 저 보물의 땅을 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니! 어째서란 말이냐!

듣고 있던 푸시케가 팔짱을 하고 히죽 웃었다.

“그게 한두 사람의 생각만으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든? 그렇지?”

철수 중 후미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오토마톤들이 그녀를 마주하고 서 있다.

그 선두에 있던 캐롯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둘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푸시케 대장님! 잘 지내셨어요?”

“음, 쏠쏠한 용돈벌이도 좀 하면서. 그나저나 저런 녀석이 왕이 되면 여기 상황이 좀 달라질까?”

한쪽 눈을 크게 뜬 캐롯이 익살스럽게 웃는다.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들이 하는 거지.”

가끔 이 녀석들은 말하는 게 차갑더란 말이야. 아니, 사실이라서 그런가?

팔짱을 풀고 이제 골반에 손을 올린 그녀가 허리를 숙여 캐롯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혹시 네 녀석 마스터도 같이 왔냐?”

“아뇨. 저만 공주님 호위로 왔어요. 아, 불러서 가봐야 해요. 건강하세요!”

“음, 그래. 또 보자.”

캐롯이 손을 흔들면서 도도도 달려가자 주변 오토마톤들도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동시에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같이 손을 흔들어 주던 푸시케의 곁으로 고양이 수인 마뇽이 다가왔다.

“뭐였냥?”

“높은 지위의 녀석이 왔기에 인사 좀 했다.”

“그러냥. 하지만 날 판 건 반띵이다냥.”

“칫, 눈치 빠른 녀석이네. 알았어.”

오호뇽뇽 웃음 지은 마뇽은 엉덩이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먼저 돌아갔다.

때아닌 정상 회담(?)이 마무리되는 동안, 좀 떨어진 곳에서는 투나와 상어이빨 마족이 휴전선 앞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모르핀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눈앞의 양산을 받쳐 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약, 당신이 만든 건가?”

“그, 그래. 읏후후, 너, 귀, 귀엽게 생겼네. 으흐흐. 아, 안아보고 싶다.”

이 자식 눈빛이 좀 이상해.

히죽 입을 찢으며 실실 웃고 있는 투나를 보고 얼굴을 찡그린 모르핀이 조금 물러섰다가 고개를 돌렸다.

“비타, 이 녀석 원래 좀 이래?”

“에, 뭐, 좀 방구석 폐인이긴 해요.”

따로 차량을 가지고 투나를 데리고 온 것은 지오와 비타, 그리고 샤를이었다. 그날의 멤버들을 다시 만난 모르핀은 눈앞에 양산을 쓴 여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서 오라고 했어.”

“뭐, 뭔데?”

이야기를 듣고 히죽 웃음 지은 투나는 대낮에도 뚜렷하게 빛나는 붉은 선을 내려다보았다.

“이, 이걸 넘고 싶다고?”

“혹시 당신은 알아? 왜 우리가 이걸 넘지 못하는지.”

“모, 모르는데. 넘으면 어, 어떻게 돼?”

상어 이빨을 드러낸 모르핀이 훌쩍 뛰더니 그걸 넘어서 그들 쪽으로 향했다.

마족이 이쪽 땅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뭍에 올라온 바다 생물을 보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잠깐 멀쩡하던 그녀의 얼굴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허리를 숙이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웨엑-!”

부들부들 떨면서 무릎을 꿇은 모르핀은 이제 머리를 붙잡고 끔찍한 신음을 냈다.

“끄으으으윽-!”

“모르핀!”

놀란 비타와 지오가 그녀를 불렀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투나가 휴전선을 억지로 넘은 마족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녀가 비켜주자 샤를이 모르핀의 작은 몸을 허리춤에 끼고 휴전선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잠시 후,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모르핀이 짧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든다. 그녀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후! 어때?”

양산 아래의 투나의 얼굴에는 역광 때문에 안경만 동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의 구토물도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벼, 별로 좋은 건 못 먹나 보네.”

“여긴 제대로 된 식사가 별로 없어. 요리를 할 줄 아는 애들이 없거든.”

투나가 히죽 웃는다.

“휴, 휴전선을 넘어서 뭐 하려고? 시, 식당이라도 찾아갈 거야?”

갑작스레 광기에 물든 모르핀이 도끼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작은 손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손톱까지 돋아나 있었다.

“이유가 뭐가 필요해! 나는 이걸 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넘고 나서 결정할 거야!”

한 손에 양산을, 남은 손으로 턱을 바치고 가만히 생각하던 투나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 좋아. 대신 조건이 있음.”

“뭐지? 뭐든 하겠어!”

뭐든? 히히히!

양산을 든 마녀가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웃는다.

“이, 이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된다면, 넌 내 전속 수집꾼이 되어 줘야 해. 저, 저 너머는 넘치는 마력 때문에 변이를 일으킨 것이 많거든?”

너희들처럼,

“그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나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주고 싶어. 여기 몬스터는 굉장히 강해.”

“미, 밀렵꾼이나 모, 모험가들도 가끔 들어가잖아? 우, 우리 애들 빌려줄게.”

당연히 자기들 가리키는 줄 알고 비타와 지오가 기겁했다.

“에에?! 저길 들어가라고요?”

“으히히, 브이!”

투나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그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 뿐이어서, 그걸 보고 있던 신관은 볼을 부풀렸다.

“정말,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선-!”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세 사람은 공주의 시찰이 끝나기 전에 휴전선 마을로 복귀할 채비를 갖췄다.

“그전에 이거요.”

지오가 차량의 짐칸에서 큼직한 가죽 자루를 꺼내왔다. 투나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뭐, 뭐야?”

잠자코 그걸 받아 든 모르핀이 안을 열어보자 각종 자잘한 생필품이 들어가 있다. 병 우유, 버터, 사탕 같은 기호식품에서부터 손톱 정리 도구나 나이프, 가위, 바늘이나 실도 있었다.

입을 꾹 다문 모르핀은 그걸 받은 대신 가져온 다른 자루를 던져 주었다.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너희처럼 깨끗한 영혼을 가진 녀석들과 이어져서.”

자루를 가슴에 안은 지오와 신관 비타가 히히 웃는다.

그걸 곁에서 바라보던 투나가 들고 있던 양산을 빙그르르 돌린다.

“그게 네가 선을 넘으려는 이유인 거네?”

비타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앗! 투나가 말을 더듬지 않았어요!”

자루를 챙겨 든 모르핀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게 꼭 귀여운 소녀가 토라진 것처럼 보여서 비타와 투나가 얼굴을 좀 붉혔다.

귀여워!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씁쓸하다.

“나를 포함해서 너희가 마족이라고 부르는 여기 멍청이들은 싸움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래서 생활 수준이 정말 끔찍할 정도지. 그런 곳에서 자라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이제 가방을 들쳐 멘 모르핀이 뒤를 슬쩍 돌아본다.

“갈게, 좋은 소식 기대하겠어. 선만 넘을 수 있게 해준다면 한평생 너를 섬겨 줄 수도 있다.”

“호우! 예-!”

“아아! 투나! 또 이상한 추임새 막 넣고!”

“아, 아니. 이게 막 버릇이라. 흐흐흣.”

비타에게 주의를 받고 있는 투나를 힐끔 돌아본 모르핀은 그만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투나가 고개를 돌린다.

“무, 물물교환이네? 뭐가 들었어?”

“보통 안에서 구하기 쉬운 걸 보내주는 편이에요. 암염이라든가 약초라든가.”

지오가 자루를 벌리자 눈을 동그랗게 뜬 투나가 고개를 숙였다.

꽤 질이 좋은 핑크색 소금덩이가 대부분이고 말린 약초도 조금 들어 있다. 수비대원인 모르핀이 쉬는 시간 짬짬이 구해서 준비해 놓은 것들이다.

“오마나! 이, 이거슨!”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족의 뿔을 끄집어낸 투나가 거친 콧김을 뿜어낸다.

“이, 이거 내가 다 살게.”

“어, 그러실래요?”

뜻하지 않은 횡재에 함박웃음을 지은 투나는 동그란 마족의 뿔을 눈가에 대고 고개를 들었다.

뿔의 동그라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쳐 보인다.

땅은 나뉘어 있지만 그래도 하늘만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저쪽 하늘도 아직은 푸르네.”

“이상한 소리 말고 얼른 타요! 빨리 돌아가야 해요!”

“으, 응!”

호다닥 몸을 돌린 투나는 서둘러 양산을 접고 높은 차량에 낑낑거리며 올라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으히히 웃는다.

“마차보다 편해, 좋아.”

운전석에 앉은 지오도 웃으면서 자동화물수송차량을 개조한 파티전용장갑차량을 출발시켰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비타가 주먹을 들고 외쳤다.

“모험은 장비빨-! 실력이 없으면 장비라도 좋아야 해요! 인생은 맥시멈 풀 라이프!”

“이히히! 흐하하!”

비타의 외침에 어쩐지 폭소를 터트린 투나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차량은 화창한 여름의 들판을 신나게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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