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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03화 (203/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친목회! 203 >

한참 그렇게 회장을 돌아다니다가 정해진 시간이 다해 모험가들은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정장을 차려입은 왕성 경호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인사와 소개를 마치고 단상에 올라선 공주가 즐겁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부족한 나를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건배하지. 우리의 여름휴가를 위해서.”

공주의 농담에 다들 키득거렸다.

짧은 건배사가 끝나고 다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조금 편한 자리에서 역시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모험가지만 회장에 아직 그대로 남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크랭크와 아리에테였다.

정장을 입은 투구 머리 거인의 곁으로 외골격 반 갑옷을 두른 금발 여기사가 다가왔다.

“이봐, 나도 한 잔 주게.”

투구가 움직이고 그녀를 내려다본 크랭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주정을 부리면 네 커리어는 성치 못할 거다.”

팔짱을 낀 아리에테가 킥킥 웃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까부터 캐롯이 보이지 않는군?”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서 경호 대장이 급하게 뺐다. 조그만 아이에겐 규율과 경계심을 넘어뜨리는 힘이 있거든.”

듣고 보니 그렇다. 다들 캐롯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곤 했다.

“음, 확실히.”

그때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면이 있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음?”

눈을 크게 뜬 아리에테가 말쑥하게 차려입은 소년을 알아보았다.

“오, 작은 용사 에이브.”

강도를 만나는 등의 험난한 순례길에서 도움을 받은 에이브가 그 호칭에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크랭크가 그에게 잔을 올린 소반을 내밀었다.

“잘 돌아가셨군요.”

“예, 덕분에.”

잔을 두 개 받은 그는 곁에 서 있는 중년 사내에게 하나를 내민 다음 그를 소개했다.

“저희 아버지세요.”

꽤 이름 있는 상회를 이끄는지라 귀족이 아님에도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에이브의 아버지 브람스가 나섰다.

“아들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어서 감사 인사차 찾아뵈었습니다. 브람스 상회의 브람스입니다.”

“모험가 아리에테입니다. 이쪽은 크랭크.”

상인답게 이미 아리에테의 출신을 파악해 놓았던 브람스는 그녀의 소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모험가란 말이지.

“불초한 자식을 사람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인데, 큰 폐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별말씀을. 그저 가는 길에 태워 준 것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자제분께서는 그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이겨낸 것입니다.”

크랭크는 아리에테의 유창한 화술에 조금 감동했다.

인사치레로 칭찬을 주고받으며 하하호호 웃던 브람스가 에이브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덕분에 이놈이 정신을 차려서요. 이제부터 가게 일을 가르치려고 하는 참입니다. 아,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모험가 아리에테 님의 실력을 믿고 부디 상담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가 제안한 것은 전문적인 용사 훈련 교감.

다른 말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사고뭉치들의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호오, 그렇습니까?”

아리에테가 호기심을 드러낸다.

짧은 한숨을 내쉰 브람스는 슬쩍 말을 낮췄다. 그의 시선은 주변 귀족 자제들을 살피고 있었다.

“환경이 좋다고 해서 꼭 건실한 싹이 트는 것은 아닙니다.”

잠깐 생각에 빠져 있던 아리에테는 방금까지 곁에 서 있다가 주변 귀족들의 부름에 잔을 가져다주고 있는 정장의 거인을 쳐다보았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대형 모험가가 되어 개인이 아닌 도시나 국가를 상대로 단체를 운영하라고.

이건 입지를 넓힐 기회일지도 몰랐다.

“몇 명이나 됩니까?”

브람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비밀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한 그들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지금은 각자의 현장으로 복귀했다.

파티라고는 하지만 공주를 추종하는 집단의 회합에 가까웠기 때문에 크게 화려하거나 하지 않았고, 간단한 음주와 식사 정도로만 체면치레를 하고 자리는 일찌감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멀리서 온 사람들이 많았기에 모처럼 아르곤 영주 저택의 객실이 만석이 되었다.

덕분에 저택의 사용인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고용인인 영주의 이득은 곧 그들의 이익으로 연결되기에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았다.

“보너스! 보너스읏-!”

“자! 이거 한 잔씩하고 가세요!”

모험가 남동생을 둔 메이드 샌드윗이 휴게실 쓰러져 있는 동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 준다.

컵은 받은 사용인들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와! 달다. 이게 뭐니?”

“동생 녀석 장비에서 슬쩍해 온 용기의 포션을 쥬스에 탔어.”

무뚝뚝한 얼굴로 빈 병을 흔들자 메이드들이 기겁했다.

하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엄마야! 나 기분이 이상해! 가슴이 마구 뛰어!”

“이 기세를 몰아 남은 정리 작업과 객실 손님들의 접대를 시작하는 거다! 가랏! 생활 전선의 메이드들아! 전투는 시작되었다! 급료일이 머지않았노라!”

주먹을 불끈 쥔 샌드윗의 엉뚱한 외침은 지친 사용인들이 몸과 마음에 엄청난 버프를 선사했다.

분기탱천한 사용인들이 정성껏 정리한 숙소로 가족들을 먼저 보낸 유력 인사들은 따로 방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리리안느가 회의를 주도했다.

“극동 개척민 마을 베누스는 방주 도시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방직이 주요 생산품이라 향후 5년 정도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배당금이 지급될 것이라 봅니다.”

“오오,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산맥 너머 사이퍼즈에 다소 우호적인 부족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그에 대한 접촉은?”

상회 대표의 말에 리리안느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소식이 빠르시군요. 하지만 그건 아직 접촉 전입니다.”

특별히 자리에 동석한 아르곤 영주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그건 제게 맡겨 주십시오.”

“당신이?”

“아무래도 우리 도시 모험가가 관련된 일이라서 이쪽도 관계자입니다. 어떻습니까?”

상석에 앉아 깍지 낀 손에 턱을 올리고 있던 쥬세페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합니다. 알다시피, 여러분이 왕위 계승에 별 관심이 없는 나를 따르는 것은 왕족의 힘을 등에 업고 각자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최대한 이익을 극대화해 봅시다. 나도 내 나름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자리에 앉은 채 지팡이에 두 손을 올리고 잠자코 듣고 있던 궁성 제1 마법사 보이드 자작이 거창한 한숨을 쉬었다.

“푸후-! 이럴 줄 알았으면 제1 왕자님을 따를 걸 그랬군.”

“후후, 왕자들에게 전해주세요. 나는 당신들의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몸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한 친목회입니다.”

두 팔을 벌린 공주의 주변으로 하나의 이해관계로 뭉친 사회 유력 계층의 사람들이 눈을 번뜩였다.

공주는 사람을 부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쓸모없는 감정이나 대의를 위한 희생과 호소 따위는 필요 없다.

다만, 이득을 안겨주면 된다.

몇 년 전 사이퍼즈에서 혼담이 왔을 때 쥬세페 공주를 시집보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왕자들이 찬성했다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스스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혼사를 뒤집어엎은 용의자 보이드 자작이 흐뭇하게 킬킬거렸다.

“훌륭하게 자라주었군요. 공주님, 그때 막아선 것이 참 뿌듯합니다.”

“제 혼삿길을 막아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보이드 자작.”

히히흐흐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리리안느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다음은 르클레르 공작 영애가 제안하신 이젤리아 군사 원조 관련입니다. 영주님?”

이 보고를 위해 참석한 아르곤 영주가 입을 열었다.

“저희 길드 기사들이 힘써줘서 자동 갑옷 50기 정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나머지도 현재 생산 중입니다.”

“군납은 어찌 되었습니까?”

자리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장교도 하나 있었다.

“현 무기 체계를 뒤집을 정도로 높으신 분들께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후후후, 대신 무기 원조는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이젤리아에서 굴려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동석한 르클레르가 음흉하게 웃고 있다.

조금 억하심정이 된 보이드 자작이 한 소리 한다.

“영애께서는 동맹국의 상황을 너무 좋게만 이용하려는 게 아닙니까?”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현 왕성에서는 바다 건너 불구경 중인데 이 틈에 저희들이라도 나서야지요.”

돈 벌려고 그러는 거잖소?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움이 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보이드 자작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장교는 계속 말했다.

“그거 말입니다만, 운영에 밝은 교관을 하나 섭외해야 합니다. 군에는 그걸 제대로 움직여 본 사람이 없습니다.”

르클레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거라면 제가 적임자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충 짐작은 했다.

“으아-! 지치는군.”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의 귀가와 숙소 이동까지 살핀 다음에야 겨우 돌아온 아리에테가 침대에 쓰러져서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베개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그녀의 뒤로 크랭크가 나타났다.

“그대로 자지 마라. 씻고 자라.”

“가끔 그냥 자게 두면 안되나?”

“위생은 중요해.”

옷을 벗어 던진 크랭크는 작업장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하던 작업을 이어서 계속했다.

아리에테가 그걸 보고 치를 떤다.

“끔찍하군. 너야말로 씻고 쉬는 게 어떠냐?”

“나는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너희들은 다르다. 듣기로 내일은 휴전선 마을에 시찰을 나간다며? 일찍 자야 할 거야.”

아리에테가 질린 얼굴을 하는데 투나가 나타났다.

“휴, 휴전선 마을에 간다고? 정말? 나도 가도 돼?”

“네가 거긴 왜?”

크랭크의 질문에 투나가 돌멩이를 내밀며 히죽 웃는다.

이제 침대에 걸터앉은 아리에테가 그 돌을 받아 들면서 말했다.

“그때의 마족인가. 뭐라고 적은 거지?”

“사, 사전을 뒤져봤어. 만나자는 뜻이래.”

아마 전에 만들어 준 약 때문인가 싶었던 크랭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그럼 따로 차량으로 이동해야겠군.”

이튿날, 장마도 이제 다 지나갔는지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휴가의 마지막 일정으로 휴전선 마을에 들른 쥬세페 공주는 경계 근무 중인 병사와 모험가들을 치하했다. 그리고 총책임자 헤리슨의 안내를 받아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눈에 담았다.

“휴전선을 한번 보고 싶구나.”

“예? 아, 공주님!”

예정에 없이 독단적으로 몸을 돌린 공주가 성벽 밖으로 나가서 넓은 공터를 가로지르는 붉은 선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늘씬한 다리를 들어서 그것 안쪽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기겁한 헤리슨이 말렸지만 마이페이스 쥬세페 공주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위험합니다!”

“듣기로는 이쪽에선 넘어가도 상관없다고 했었다. 사실인가?”

“맞아. 하지만 넘지 않는 것을 추천해.”

조금 큰 목소리,

깜짝 놀란 그녀가 다리를 빼고 주변을 살피자 호위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녀를 가리고 섰다.

“누구지?”

근처 나무 아래에 누워 있던 통나무 같은 것이 커다란 몸을 일으킨다.

현 마왕군 제3국경선 경비대의 수비대장 푸시케였다.

“여~”

히죽 웃음 지은 마족이 손바닥을 들고 인사를 하자 공주의 눈이 커다래진다. 동시에 헤리슨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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