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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94화 (194/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4 >

사태가 일단락되자 탑 꼭대기의 마녀 고르곤이 흰 가운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주변을 살핀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웃어대던 그녀는 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엉망이네.”

몸을 돌린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꼬마 인형을 가리켰다.

“그만 정리하자. 카노는 이 애 연구실로 옮겨놔. 아메리! 애들 데리고 밖에 나가서 모험가들 잡아 와, 오면서 네가 잘라놓은 그 인형도 가져오고.”

커다란 몸을 돌린 기사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탑의 정문도 열리고 그들과 같은 모양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쿵쿵···!

망토를 펄럭이며 정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참 웅장할 지경이다.

이 정도의 무력이 있으면서 침입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은 이유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단순히 그녀가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고르곤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음, 모르카, 모르카···. 누구였지? 날 없애고 자기 신분 세탁도 노린 마녀인가? 데헷! 아무렴 어때?”

우후후 웃음 지은 고르곤이 룰루랄라 슬리퍼를 끌면서 탑을 내려갔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야. 손님이 이렇게나 많이 찾아오다니, 오랜만에 즐겨 보겠는 걸?”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1층 로비에 도착한 그녀는 기사단이 수거해온(?) 모험가들을 살펴보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어머나! 얘 몸 좋다! 츄릅!”

입가로 줄줄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닦은 그녀가 상의를 벗기고 벽에 매달아 놓은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몸에 우람한 근육이 돋보이는 몸이었다.

몹시 위험하게 반짝이는 눈을 한 그녀에게 정신을 잃은 모험가를 끌고 와 결박하여 벽에 차례대로 매달아 놓은 하드 스킨 오토마톤 카노가 보고했다.

“상대 인형 기사가 결사 항전, 훌륭한 전략으로 그는 반수 이상의 모험가들을 탈출시켰다. 긴급 추적대의 파견 요청, 아메리 현지에 대기 중.”

“그래! 이 녀석, 나보다 먼저 죽은 남편 놈 같아! 응! 몸만!”

고르곤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카노는 다시 한번 더 말했다.

“긴급 추적대 파견 요청.”

고개를 돌린 그녀가 손을 흔든다.

“추적은 됐어. 놔두면 조만간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야. 그보다 지금 바쁘게 할 일이 생겼으니 주변 정리 좀 부탁해.”

“확인, 아메리 복귀 명령.”

커다란 인형이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가자 홀로 남은 고르곤은 매달린 크랭크를 올려다보며 손을 삭삭 비볐다.

음흉하게 찢어진 그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제 보는 사람이 없으니 닦을 이유도 없었다.

“으흐흐흣-! 어, 얼굴만, 얼굴만 바꾸면···!”

수일 후, 고르곤의 지하 정원은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싸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커다란 몸의 기사형 오토마톤들은 놀랍도록 섬세한 솜씨로 이 모든 작업을 이뤄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칭찬해야 할 주인은 지금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수면이었기에 그들은 곳곳에서 석상 흉내를 내면서 그녀의 숙면을 지켜주었다.

반면,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린 크랭크는 팔을 끌어안고 잠든 여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헉! 무, 무슨···? 으어억···! 아으···!”

온몸에서 극심한 근육통과 나른함이 느껴진다. 한참 끙끙 앓다가 베개를 대신 안겨주고 팔을 빼낸 크랭크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무슨 짓을 당한 것인지 속옷 차림의 그는 온몸에 앙증맞은 이빨 자국이 가득했다.

침대에 누워 잠든 여자를 돌아보던 크랭크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혹시 저 여자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몸을 돌린 그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동굴에서 마녀의 술수에 빠져 모두를 찾아 헤매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그 뒤로 어떻게 됐지? 다른 사람들은? 캐롯은?

“그리고 여기는 어디지?”

잠금장치가 없는 방을 나서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크랭크가 맞닥뜨린 것은 3미터짜리 갑옷 장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플루토와 같은 하드 스킨 오토마톤인가?

다행히 그것은 아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에 크랭크는 주변을 살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보통 가정집 같은 방을 벗어난 크랭크는 곧이어 작업장 같은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크게 분노했다. 위생 관념적으로 크랭크는 일반인 수준이다.

그런 그가 인상을 찌푸릴 정도의 끔찍함이 온 사방에 널려있었다.

곳곳에서 뭔가가 부패하는 냄새에 그는 자연스레 코를 붙잡았다.

“으윽,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

마녀의 탑은커녕 마법사의 연구실도 가본 적이 없는 크랭크였지만 지금 이곳은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욕지기마저 나올 모양으로 곳곳에 쓰레기더미와 먼지, 거미줄로 가득했지만, 그 사이사이로 범상치 않은 장비와 책, 실험 도구들도 함께 널브러져 있다.

“정말로 마녀의 소굴인가 보군.”

그래야 이 상황이 말이 된다. 크랭크는 그렇게 단정 지어버렸다. 아까 그 여자가 마녀 모르카 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이 틈에 동료들을 찾아서 탈출해야 한다.

방침을 정한 크랭크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계단을 발견하고 탑을 내려간 크랭크는 아래층에서 마침 부서진 오토마톤의 잔해를 발견했다.

캐롯과 지스터였다.

“캐롯!”

크랭크가 작업대 위에 앉아있는 캐롯을 보고 반가워서 달려갔다. 하지만 캐롯은 움직이지 않았다. 놀란 나머지 이리저리 살피는데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린다.

“그 애는 과열로 사고 회로가 타버렸어.”

깜짝 놀란 크랭크가 뒤를 돌아보자 잠옷을 입은 마녀가 베개를 안은 채 문 앞에 서 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잠시 후, 평온한 마녀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울면서 달려왔다.

“으아앙! 또 어딜 도망가! 나 버리고! 이 나쁜 사람!”

와락 안겨드는 마녀 고르곤이 크랭크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고개를 쳐들었다. 울상을 지은 귀여운 얼굴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는다.

“여보오!”

순박한 청년 크랭크의 눈이 마구 흔들린다.

나 결혼했었나?

“이러지 마십시오! 진정하시오. 나는 당신의 남편이 아닙니다.”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어깨를 붙잡아 밀어내는데 갑자기 아찔한 통증이 느껴진다. 고르곤이 냅다 가슴을 깨물어 버린 것이다.

“아앙!”

“으극?!”

허리에 단단히 팔을 감아 매달린 고르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빙글빙글 돈 채로 풀려있었다.

“으헤헤! 도망 못가! 넌 내꺼야!”

이제 그녀가 크랭크의 속옷 안에 손을 쑥 집어넣자 크랭크는 기겁했다.

“끄아아악!”

“아코-!”

엄청난 힘에 밀쳐진 고르곤이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허옇게 질린 크랭크가 속옷을 끌어 올리며 서둘러 몸을 돌리려는데 그 틈에 호다닥 기어 온 고르곤이 그의 속옷에 매달려 반쯤 드러난 하얀 엉덩이에 볼을 마구 비볐다.

“우후훙~! 후흐흣! 당신 엉덩이는 항상 탐스럽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야.”

“으어허억!?”

살면서 이런 종류의 추행은 처음 당해본 크랭크였는지라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그때, 작업대에 올려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인형이 움직인다.

칭-!

기긱기기긱-!

기본적으로 음성인식이 되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주인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덜덜덜 떨면서 고개를 든 캐롯이 팔을 들어 올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주주주, 주이이이니니님에에게게게서서서, 떠떠떠떠떠-! 떠떠!”

버벅이는 캐롯을 보고 크랭크의 엉덩이에 매달려 있던 고르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응? 사고 회로 타버린 거 아니었어? 잠깐 볼까.”

별안간 장난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캐롯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발을 벗기고 두부 장갑판을 열자 내부가 드러났다. 메케한 탄내가 크랭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거 봐, 탔잖아. 음? 다 탄 건 아니네? 와! 그래도 이 상태로 움직이다니, 너 참 대단하다.”

고르곤의 등 뒤로 크랭크가 쑥 올라왔다.

“어?”

그 가느다란 목에 팔을 휘감은 크랭크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깨진 접시 조각을 들이댔다.

크랭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내 동료들은 어디에 있지?”

“우후훗,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한동안 재미있었는데. 아쉬워.”

“입 다무시오. 마녀 모르카.”

눈을 크게 뜬 고르곤이 곧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그녀는 목에 흉기가 들이대진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아니, 내 이름은 모르카가 아니거든? 너희들은 속은 거야. 마녀들의 암투에 이용당한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크랭크였지만 어쨌든 할 일은 하나다.

“그렇다면 실례했습니다.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동료들과 우리를 풀어주시오.”

“으응? 싫은데. 다른 건 몰라도 너만은 놓칠 수 없어.”

그리고 고개를 휙 돌리는 그녀였다. 빤히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곧 울음을 터트린다.

“당신은 도망 못가! 안 놔줄 거야! 으아앙!”

그에게 바싹 달라붙은 고르곤은 울면서 크랭크의 가슴을 쭙쭙 빨아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은근슬쩍 그의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는다.

“끄으아아아악!”

크랭크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볼썽사나운 비명을 질러버렸다.

뒤이어 이빨을 드러낸 그는 고르곤의 이마를 커다란 손으로 움켜쥐고 거칠게 밀어냈다.

당장 고르곤이 그 팔에 매달렸다.

“아으아아아! 아파아파! 놔줘! 놔주세요! 아파~!”

“당신이야말로 그만두시오! 계속 무슨 짓이야!”

뚜드드득!

“으갸아아!”

얼굴을 붙잡은 크랭크가 손에 힘을 주자 고르곤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쯤 소란을 감지한 3미터짜리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하나둘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든 크랭크의 눈이 흔들린다. 역시 장식이 아니었어!

크랭크와 거인들이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았다. 두려움보다 약간의 씁쓸함이 앞선다.

평소에 나를 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인가.

그 와중에 손가락 사이로 장난스러운 눈을 드러낸 고르곤이 케케케케 웃고 있다.

“우후후, 넌 도망 못가. 평생 나랑 같이 여기서 살아줘야 해. 죽은 내 남편 놈 대신!”

분노한 크랭크가 이판사판 다시 손에 힘을 주자 고르곤이 또 죽는 소리를 냈다.

“으아아아! 아, 그만그만! 으음! 지, 진정하고 놔주면 네 인형 고쳐 줄게! 어때? 그리고 생각 좀 해보자! 어른답게 협상과 거래를 하자고! 아아악!”

그러자 의외로 선선히 그 손에서 힘이 빠진다.

손을 놓아준 크랭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고르곤을 내려다보았다.

“정말입니까.”

슬쩍 시선을 피한 고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친구들도 만나게 해줄 테니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천천히 이야기 좀 해보자고. 나는 말이 안 통하는 그런 괴물이 아니거든?”

“그럼 방금 전의 추태는 뭡니까?”

“아잉, 우리 사이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지. 너 완전 내 타입이거든? 오히려 네가 이상해. 이러면 홀딱 넘어오는 게 인지상정 아니니?”

하지만 고르곤을 향한 크랭크의 호감도는 시궁창에 처박혀 버렸다.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굵은 손가락을 들고 강하게 경고했다.

“가능한 그런 행동은 지양해 주십시오. 몹시 불쾌했습니다.”

어머나! 얼굴만 다르지, 성격도 비슷잖아?

옛 추억이 곱씹으며 아하하 웃은 고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약속대로 캐롯을 고치기 시작했다.

적당히 옷을 찾아 입고 나타난 크랭크는 연구실 구석에 쌓여있는 잡동사니 중에서 오래된 오토마톤의 머리를 분해하고 있는 고르곤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음, 옛날 물건인데. 어차피 안 쓰는 거니까 여기서 내부 부품을 좀 빌려 쓰는 거지. 손 내밀어보렴.”

크랭크의 손에 반짝이는 수정석을 뽑아서 올려둔 고르곤은 이제 그를 이끌고 캐롯에게로 가서 그 머릿속에 타버린 부품을 교환했다.

더불어 추가로 이것저것 더 때려 박기 시작했다.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자. 가능한 고성능이 좋잖아? 선로도 새로 깔고. 이렇게, 이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보고 크랭크가 문득 중얼거렸다.

“뭔가 다재다능하군요. 마녀는 이런 것도 하는 겁니까?”

어디서 안경을 하나 꺼내 쓰고 온 고르곤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하하, 뭐니. 마녀라니까 커다란 냄비에 끔찍한 재료를 넣어 끓이는 걸 생각했어?”

“예, 뭐. 처음 보니까요.”

후후후 웃음 지은 그녀는 캐롯의 머리를 손보면서 호기심을 드러내는 크랭크에게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여기랑 여기는 자율, 중추 신경계니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연산 수정석을 증설하면 똑똑해지니까 알고 있고, 그리고 이곳은 감각기관의 정보를 처리하는 곳이야.”

눈을 크게 뜬 크랭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장이 있으면 적어두고 싶어질 정도였다.

한참 그렇게 설명과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가발을 씌운 다음 크랭크가 캐롯을 불렀다.

“캐롯, 일어나.”

칭-!

스르륵 고개를 든 캐롯이 주변을 휙휙 살피더니 앉아있던 탁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크랭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작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금발 너머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나고 있다.

“나의 주인님에게 허튼짓하지 말아라. 이 못생긴 마녀야.”

유창한 발음과 난데없는 반말에 크랭크가 눈과 귀를 의심했다.

당사자인 고르곤은 안경 너머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캐롯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한참 깔깔거리던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힐끔 부품을 제공한 낡은 오토마톤을 바라보았다.

“이거 참 신기하네, 연산 수정에 남은 기억의 잔향이라도 옮겨진 거야?”

오늘 여러 번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 그녀는 잠옷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오오, 아무렴, 걱정 마. 나는 네 주인님의 몸이 목적일 뿐이거든.”

“그렇다면 다행이··· 아니지, 뭐라고 이 마녀가 못 하는 말이 없구나.”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재빨리 말을 고친 캐롯이 여전히 유창한 발음으로 항의했다.

하지만 덤벼들지는 못했다. 지금 그녀들의 주변에는 거대한 인형의 기사들이 팔짱을 하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나서면 사태가 악화한다.

인지 능력이 급격하게 상승한 캐롯이 재차 요구했다.

“우리를 풀어다오. 돌아갈 것이다, 집으로.”

“그건 안 돼. 네 주인님의 몸은 내 것이야. 네 주인님도 그렇게 생각할걸? 몸의 관계는 의외로 끈끈하단다?”

“주인님, 저 발칙한 말이 사실이야?”

빤히 쳐다보는 금발 캐롯의 눈은 거기에 담배를 가져다 대면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크랭크는 두 손을 들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사기 치지 마라. 이 마녀야.”

“우우-!”

격렬하게 부정하는 크랭크를 향해 볼을 부풀린 고르곤이 별안간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크랭크를 응시했다.

크랭크는 이제 저 시선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르곤이 덮쳐든다.

“여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으아아앙!”

“나, 나는 당신의 남편이 아닙니다!”

“어쩜 아내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으아앙! 용서 못해!”

몸을 날린 마녀 고르곤이 크랭크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려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캐롯은 그 고르곤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 정신줄 놓은 마녀야. 당장 떨어져라. 내 주인님을 곤란하게 하지 마라.”

“노노! 아니 캐롯! 너는 내가 고쳐 준 은혜도 몰라주는 거야? 이 깡통 오토마톤!”

“깡통? 그것은 나를 모욕하는 언사인가? 지금껏 이렇게 격렬한 분노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오토마톤과 마녀의 말싸움을 들으며 크랭크는 절망하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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