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92화 (19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2 >

“어, 괜찮네?”

“제길! 고기만 아니라면 입에도 안 댈 텐데!”

“하지만 맛있네. 거기 소금 좀 줘.”

“후추는 없나?”

시체가 잔뜩 쌓인 동굴 앞의 베이스캠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몬스터의 고기를 뜯어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커다란 돌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 앞에 자리 잡은 캐롯이 칼과 포크를 능숙하게 다뤄 고기를 접시에 담아 돌리고 있다.

그 접시를 받은 중년 사내가 매서운 시선을 드러냈다.

“대장, 이제 어쩔 거요?”

“확실히 여기가 맞긴 한 것 같은데 말요.”

암묵적으로 마녀 토벌단의 대장으로 임명된 헤리슨은 대답 대신 옆에 앉아있는 마법사 오마르의 입에 포크를 들이밀었다.

“아, 해라.”

“응?”

“아.”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오마르가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녀는 이제 포크로 크랭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거 먹으면 근육이 붙는다고 했지?”

크랭크가 우람한 팔뚝을 들었다.

“고기를 늘리려면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단순한 진리지요.”

“보라고, 저 정도는 바라지 않으니 몸에 살을 좀 붙여. 네가 체력이 붙어야 둘째가 생길 것 아냐.”

“헤, 헤리슨!”

붉게 변한 오마르의 얼굴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숨겨버렸다.

보고 있던 모험가들이 반색을 했다.

“오! 뭐야, 둘이 부부야?”

“헛, 세상에! 마법사는 저런 걸 아내로 맞이하는 건가?”

포크의 방향을 휙 돌린 헤리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봐, 말조심해. 저런 거라니. 이런 게 어때서.”

“어차차! 내가 헛소릴 했구만. 미안하오. 오마르.”

“사과는 내게 해야 할 거 아냐!”

식사 중의 환장 파티를 보다 못한 일행의 젊은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당신들 가족 계획을 물은 게 아니잖아요! 저거 어떻게 할 거냐고!”

“하아, 난장판이군. 이래 가지고서 마녀를 잡을 수 있겠어?”

다시 자리에 앉은 헤리슨이 질겅질겅 트롤 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사람을 잡아먹어서 그런가, 육즙이 상당해. 음, 맛있어. 마법사와 신관의 스톡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일 새벽에 재돌입하자. 닐하고 오마르는 고정으로 따라와야 해.”

고기를 꿀꺽 삼킨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빠져, 하지만 우리 파티는 돌입한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거든, 돈 벌어서 기다리는 우리 애기 옷도 사주고 파티 멤버들 수당도 챙겨줘야 해.”

“맞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헤리슨이 접시를 캐롯에게 내밀고 포크를 입에 문다.

“더 줘라. 맛있네. 트롤 고기. 당신도 더 먹어.”

“아니, 나는 됐어. 트롤 고기라니, 기분이 이상해.”

“응? 좀 있다가 트롤 고기 냄새가 밴 내 날숨을 마시게 될 텐데 익숙해져야지.”

정적, 그리고 환희.

“흐하하! 헤리슨! 당신, 재미있는 사람이구만!”

“아오! 닭살! 재미있기는 무슨?! 서로 입장 서로 바뀐 거 아뇨?”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다. 녀석아.”

“모르긴 뭘 몰라! 이 아저씨야!”

그 어려서 모르는 사람 중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 닐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으아아악! 헤리슨! 섹드립도 좀 적당히 하세요!”

서로 왁왁 떠들던 남자들은 물론 얌전히 식사 중이던 사람들도 귀로 들어간 이야기가 입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다들 콧김을 거칠게 뿜으며 고개를 돌린다.

세, 섹드립?!

이게 신관이 할 소리야?

헤리슨이 흐하하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뭘 그러니, 너도 남친 생겨봐라. 나보다 더하게 될 걸.”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시선이 일어선 신관 닐에게 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하다고?!

닐은 이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더더더더더 하게 되다니요! 신관에게 무슨 막말을! 이번엔 가만둘 수 없어요!”

“으악! 신관님! 진정하시오!”

닐이 헤리슨에게 덤벼드는 등의 한바탕 난리가 있은 후, 겨우 식사를 마친 모두는 마녀의 집 대문 앞에서 넉살 좋게 노숙을 시작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마법사의 강력한 보호 마법과 더불어 오토마톤들의 경계 덕분이었다.

데려온 오토마톤은 캐롯을 포함해서 모두 4대, 각각 야영 중인 베이스캠프 주변에 서서 바깥을 경계했다.

잠시 밤하늘의 별을 올려보던 지스터가 인기척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바지춤을 잡고 다가온 모험가를 발견했다.

“어디 가십니까?”

“화장실!”

“그거라면 저쪽에서.”

마차 곁에 파놓은 구덩이에 판자가 놓여있다. 기겁한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아! 내 똥 냄새를 마구 풍기란 말이냐!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소리를 지른 사내는 툴툴거리면서 밖의 숲으로 들어갔다. 주인의 명령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지스터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한참 후 만족한 얼굴로 돌아온 남자는 다시 침낭으로 기어들어 가서 잠을 청했다.

그를 돌아보던 지스터가 중얼거렸다.

“먹으면 나오는 겁니까. 인간은 불편하군요.”

날이 밝았다.

“잔뜩 준비해놓았는데 야간 습격이 없다는 게 이상해.”

“나도, 분명히 칠 줄 알았는데.”

자리를 정리하던 모험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혈압이라서 아침에 힘들어하던 헤리슨이 급기야 파란색 포션 병을 꺼냈다.

용기의 물약 병을 본 오마르가 기겁했다.

“안 돼! 몸에 해롭다고.”

“···어, 맞아. 두, 둘째 만들어야지···.”

“그, 그게 아니라···!”

부끄러움이 많은 오마르가 다시 얼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잠자리를 정리하던 신관들과 모험가들이 낄낄거린다.

물론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쳇, 아침부터 러브 코메디냐.”

“왜? 죽기 전에 보기엔 더없이 좋은 모습이구만.”

젊은 모험가 프린트가 외쳤다.

“재수 없는 소리 마쇼! 살아서 돌아가야지! 이봐! 누가 커피 좀 진하게 끊여봐라! 내 배낭에 커피콩 있다!”

아무나 들으라고 버럭 외쳤는데 의외로 나선 것은 햄스터 캐롯이었다.

뽀작뽀작 걸어간 캐롯은 프린트의 배낭을 뒤져 커피콩을 꺼내 오더니 냄비를 걸고 물을 끓이고는 커피콩을 손으로 비벼서 깨부숴 넣었다.

그러다 고개를 든 캐롯이 프린트를 쳐다본다. 남자답지 않게 하얀 피부에 신경질적인 인상의 미남으로, 크랭크와 비슷한 연배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설탕은 없습니까?”

“남자는 블랙이야. 모여와요! 한 잔씩 하쇼!”

슬금슬금 모여든 사람들이 양철 컵에 커피를 나눠마셨다. 여기서 헤리슨이 정신을 차렸다.

“후우···! 맛은 최악이지만 잠은 깨는구나.”

“쯧-!”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차는 프린트였다.

돌입 직전에 어제 만들어놓은 훈제 고기로 각자 아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먹는 건가?”

“음, 든든하게 먹어둬야 힘을 쓰지.”

쓰게 웃음 지은 남자는 하얀 가루를 커피에 타더니 그걸 들이켰다.

“그게 아침이야? 뭐야?”

“설탕.”

“뭐 그 비싼걸!”

“까짓, 비싸봤자 설탕이야. 조심해. 뭘 먹고 싸우다가 배를 찔리면 지금 먹고 있는 그게 쏟아져 나온다고.”

“억···!”

핼쑥해진 청년의 옆으로 헤리슨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왔다.

“까짓 안 찔리면 되잖아?”

좌우를 보면서 당황하는 그를 보고 주변에서 낄낄 웃어댔다.

준비를 마치고 동굴 앞에 모인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들었다.

“2차 돌입! 가자!”

“아자!”

2차 돌입에는 어제의 부상자를 남겨두고 멀쩡한 사람들을 데려왔기에 크랭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돌로 만든 고렘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트드드득! 트특!

“쿠오오오오!”

“세상에! 돌고렘이야!”

“다 뒤로 빠져! 플루토!”

쿵-!

중장갑을 두른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앞으로 나섰다. 망토는 동굴 안의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멋지게 휘날렸다. 커다란 도끼를 양손으로 잡은 하드 스킨이 쿵쾅쿵쾅 달려가더니 좀비처럼 느릿느릿 다가오는 고렘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쾅-! 쾅-! 퍼석!

“사주 경계! 오마르! 주변을 스캔!”

주문을 외운 오마르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다.

“여긴 고렘 뿐이야!”

“다행이네! 플루토! 잘한다! 다 부숴!”

미친 듯이 날뛰어 30기가 넘는 돌고렘을 모조리 박살 낸 하드 스킨 오토마톤 플루토가 거대한 도끼를 바닥에 내렸다.

쿵-!

그리고 투구 같은 머리를 들고 낮게 중얼거렸다.

“임무 완수.”

“어제 밤새 준비한 모양인데 미안한걸.”

날카롭게 웃음 지은 헤리슨이 손짓했다. 그녀의 뒤로 모험가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넓은 동굴은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좁아지는 형태였다. 고개를 꺾어야 했던 천장은 이제 힘껏 뛰어오르면 손에 닿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어쩐지 반격이 없네.”

“그러게.”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합시다.”

한 남자가 낄낄거린다.

“있었으면 저 녀석들에게 먼저 걸렸을 거야.”

맨 앞에는 캐롯과 지스터가 함께 걷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따라 걷는데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진다.

“왜 이래?”

“안 보여!”

각자 가슴에 붙여두고 있던 라이트 볼이 꺼져버렸다.

동시에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커으윽···!”

기겁한 헤리슨이 외쳤다.

“빛이 필요해! 오마르! 빨리!”

“라이트!”

칭-!

다시 주변이 밝아지고 드러난 광경은 끔찍했다.

“라, 라드! 무슨 짓이야!”

눈이 시뻘게진 남자 주변으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그는 앞의 사람까지 찌른 채 엉망이 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끄으으윽···! 도, 도망···!”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험가 라드의 의식은 사라져버렸다.

“우오와아아아!”

광전사가 되어버린 라드가 주변에 마구 칼을 휘두르자 놀란 사람들이 눈먼 칼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제길! 뭐에 씌인 거냐!”

“잡아! 잡아서 묶어!”

그의 난도질을 멈추기 위해 모험가들이 떼로 덤벼들었지만 도무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우와악!”

“프린트!”

힘에 밀려 넘어진 프린트의 얼굴로 롱소드가 떨어진다.

챙-!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온 오토마톤 지스터가 그의 칼을 받아냈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맞닿은 칼날에서 불꽃이 일어날 지경이다.

카가각! 카각···!

짐승처럼 변한 그에게 얼굴을 들이민 지스터가 속삭였다.

“사나이 자존심이 엉망이군요. 그래서 제가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둘을 가리키고 고개를 돌린 헤리슨이 다급하게 외쳤다.

“닐! 상태 이상 해제!”

“난 그걸 못한다고 몇 번을 말해요!”

하지만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내는 그녀였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방비는 착실히 해 놓았다.

“리커버리!”

칭-!

“크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당황했다.

“효, 효과가 없어요!”

“크아아아!”

오히려 더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동료의 폭주에 눈을 질끈 감았던 모험가들이 다시 뜬 눈에는 비정함이 엿보였다.

“비켜!”

지스터를 잡아당기고 앞으로 나선 남자들이 휘두른 칼에 라드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거친 숨을 씩씩 들이켜며 그의 주검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동굴 속에서 갑작스레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하하! 아하하! 대단해, 멋져! 그렇게까지 쉽게 처리할 줄은 몰랐어! 너희들 동료 아니니?”

“뭐야, 뭐야! 씨발! 마녀야?!”

모험가들은 이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 있었다. 칼을 손에 쥔 남자들이 주변을 마구 살피는데 그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짜증과 분노와 울분으로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날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상황만 아니면 노래라도 시켜보고 싶을 정도로,

“하루 기회를 줬는데도 또 들어오다니, 너희들 정말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조용히 살고 있는데 쳐들어온 너희들 탓이야. 각오해.”

프린트가 고개를 쳐들고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살고 있기는 병신아! 너 사람 잡아먹었다고 소문나서 때려잡으러 왔다고!”

“됐어. 그만해. 헤리슨, 자리를 옮겨야 해.”

고개를 끄덕인 헤리슨이 전진을 선언했다.

손쓸 틈도 없이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녀는, 이마의 핏줄을 꿈틀거리며 웃고 있었다.

“우리도 입장상 이대로는 못 가, 이 존나 카리스마 쩌는 마녀의 낯짝에 침을 뱉으러 가자. 닐, 오마르, 준비해. 플루토! 앞으···?”

멈칫한 헤리슨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동굴 깊숙한 곳의 살풍경한 모습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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