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옛날에는! 191 >
듣고 있던 주변 모험가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 그 유령 마을 사건이 마녀가 한 짓이란 건가?”
“어? 그런 일이 있었어?”
“대량 실종 사건이라서 아직 공식적으로 풀리지 않았어. 나는 거기 조사 의뢰로 다녀왔었거든. 끔찍했지. 마을에 사람만 감쪽같이 없어졌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헤리슨이 오징어를 입에 문 채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니까 그런 거야. 거기다 재수 없으면 애꿎은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서 죽어 나가니까. 알았지? 그냥 다들 알고만 있어. 괜히 소문내고 다니다가 길드에 걸리지 마, 나는 모른다고 잡아뗄 거다.”
“그래도 다행이군. 돈 때문에 나선 거지만 좀 꺼림칙했는데 그런 죄명이면 죽어도 싸지.”
“음, 증거도 확실하고.”
크랭크도 한시름 덜면서 다시 바느질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들이 마음을 놓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마녀들이 꽤 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마을 외진 곳에 홀로 사는 마녀에게 약을 얻어먹고 병을 고친 아이들의 이야기는 셀 수도 없으며, 모험가 중에도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수많은 선행도 악행 몇 번이면 금세 흉하게 희석되어버린다.
그래서 마녀들은 서로를 혐오하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이튿날, 토벌대는 마녀가 살고 있다는 동굴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산속의 바위가 쌓인 비탈에 큼직한 천연 동굴이 뚫려 있었는데 안쪽에는 야영한 흔적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함정이나 매복은 없었다.
모두가 그 앞에 서서 커다란 천연 동굴을 우러러보았다.
“정말 여기 맞아? 그냥 자연 동굴인데?”
“지도에는 그래.”
“오크나 트롤이 둥지로 삶기에 딱 좋아 보이는데. 혹시 속은 것 아냐?”
지도와 서류를 살펴보던 헤리슨이 고개를 저었다.
“정보에 따르면 이 동굴 안쪽에 마녀의 거처가 있다는군. 여기서부터는 술래잡기가 시작되는 거지.”
“뭐야, 이거 동굴 구조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건 누가 준 거요?”
헤리슨이 펴들고 있는 상세한 지도를 어깨너머로 살펴보던 모험가의 말에 그녀는 지도를 접으며 대답했다.
“모르겠네, 정보의 출처는 비밀이라서 나도 못 들었거든. 어쨌든 돌입 준비하자. 동굴 밖에 베이스캠프! 탐색조와 공격대, 지원반으로 나눈다.”
여기서 캐롯과 크랭크가 헤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넌 너무 크거든? 얌전히 밖에서 기다려.”
헤리슨의 말에 크랭크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캐롯이 손을 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먼저 탐색조가 투입되었다. 캐롯과 오토마톤 지스터를 선두에 두고 재빠른 사람들이 뒤따른다. 그 뒤로는 나머지 인원으로 구성된 공격대, 지원반은 크랭크와 신관을 포함한 사람들로 밖에서 대기.
“대기라고는 했지만 요격 준비는 해야겠습니다.”
“뭘?”
크랭크는 주변 경계를 부탁하고 도끼와 톱을 꺼내 들고는 나무를 자르고 돌을 굴려다 수첩을 참고하여 함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근처 바위에 앉아 구경하던 신관이 입을 헤 벌렸다.
“와, 대단한데요? 뭔가 척척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러게. 나도 좀 거들어 줄까. 이봐! 주변 좀 부탁해!”
자동 석궁을 손에 쥐고 마차에 올라가 있던 사내가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굳이 도울 필요 있어요? 함정을 파라는 말도 없었잖아요.”
그러자 팔을 걷어붙이며 크랭크에게 향하던 모험가가 윙크를 찡긋한다.
“이봐, 카드 게임에서도 낼 수 있는 패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이런 준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보다 괴물이 더 많단 말이지.”
일리가 있는 말인 듯, 구경하던 몇몇 모험가들도 거들기 시작하여 베이스캠프 주변으로 각종 함정이 깔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뚝딱이며 함정이 만들어지는 사이, 동굴 안으로 진입한 사람들은 때 아닌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히히히히! 하하하하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 눈을 부릅뜬 헤리슨이 외쳤다.
“이런 썩을! 저기로 갔다! 쏴라!”
투투투투투퉁!
자동 석궁이 화살을 튕기면서 유령 같은 여자의 궤적을 쫓았지만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칼침을 놓아버리는 통에 몇몇이 등과 가슴을 찔려 고통 받고 있다.
“쿨럭쿨럭-!”
“안 죽어요! 가만있어요!”
신관의 신성 치료는 신체 결손 상태를 제외하고 치명상을 입었어도 일단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다.
헤리슨 파티의 전속 신관 닐이 빛나는 손으로 강력한 신성 치료를 남발하는데 보기 드문 남자 마법사 오마르가 지팡이를 들고 외쳤다.
“헤리슨! 이 주변을 밝히겠어!”
“쿠거! 타이슨! 눈 크게 뜨고 발견 즉시 쏴라! 캐롯과 지스터는 추격을 준비! 오마르!”
눈에서 빛이 번쩍인 오마르가 지팡이를 내리찍으며 외쳤다.
“모두 내게서 등을 돌려요! 태양을! 찬양하라-!”
번쩍!
엄청난 빛이 터져 나온다. 뒤 돈 채로 주변을 살피는데 동굴 벽에 매달린 검은 드레스의 여자가 보인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다.
그녀들은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오토마톤 캐롯과 지스터가 고개를 죽 돌리면서 목표를 추적, 기억했다.
“적수 도합 열둘!”
“열둘 확인!”
“전방위 사격! 쏴라!”
묵직한 자동 석궁을 든 쿠거와 타이슨이 무차별 난사를 시작했다.
투투투투투투퉁-!
“아악!”
“악!”
화살에 맞은 여자들이 쓰러진다.
헤리슨이 눈을 부릅떴다.
“물리 공격에 효과가 있다! 지스터! 캐롯! 사람처럼 생겼지만 저건 사람이 아냐! 몬스터다! 가라! 우리를 지켜!”
칭-! 눈을 번쩍인 오토마톤 지스터가 롱소드를 들고튀어 나갔다. 그 곁으로는 햄스터 길리 슈트를 입은 캐롯이 4발로 뛰어서 적들에게 돌격했다.
찰칵!
달리는 캐롯의 턱이 열리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주변에서 지스터가 롱소드를 휘두르는 동안 냅다 뛰어오른 햄스터 캐롯은 그 날카로운 이빨로 검은 드레스의 여자들을 씹어댔다.
“아악! 악!”
푸확! 화륵!
치명타가 들어가자 검은 드레스의 여자들이 불티를 뿜으며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사라지는 족족 동굴 바닥에서 리젠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하하하!”
“하하하!”
마구 날뛰는 그녀들을 보고 자동 석궁의 드럼 탄통을 교환하던 사내가 치를 떨었다.
“저게 뭐야!”
“혹시 서큐버스? 서큐버스 아냐?!”
헤리슨이 잔인하게 웃는다.
“흐하하! 마녀의 소굴이라는 건 진짜인가 보네! 번견 삼아 기르는 건가! 오마르! 얼마나 남았어?”
사람 형체가 든 빛 덩이가 말을 한다.
“얼마 못 버텨! 너무 뜨거워, 잠깐 쉬어야 해!”
헤리슨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던 여 신관이 있었다.
“닐! 네 차례야! 그걸 써야 해!”
마지막 부상자의 치료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 닐이 허리춤에 매달린 가방에서 약병을 꺼내더니 한 모금 마셨다.
병을 집어던진 그녀가 두 손을 모르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자 마나가 실체화하여 그 몸에서 마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신관에게 신력이 발현하면 보통 3가지 능력이 개화한다. 힐과 라이트는 거의 고정이고, 나머지는 그 사람이 겪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은 상태 이상 해제가 뜨는 편이고, 운이 좋으면 인챈트 같은 능력치 상승 부여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공격계열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헤리슨 파티의 신관 닐은 두 가지 능력만 개화했다. 하나는 신성 치료, 나머지 하나가 바로.
퐁···. 퐁···. 포퐁···!
사그라드는 오마르의 후광에 이어 넓은 동굴 바닥에서 초록색 반딧불이 하나둘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취할 광경이었다.
오토마톤의 악랄한 공격을 피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서큐버스를 보고 헤리슨이 이빨을 드러냈다.
“네 놈들이 내 남자의 정기를 빨아내도록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예의 없는 것들에게 아주 맛을 보여주마!”
딱!
손가락을 튕기자 몸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던 닐이 곧 두 팔을 벌렸다.
“파이어 플라이 – 분노의 반딧불.”
수백 개 이상 솟아오른 초록색 빛 구슬이 동굴을 떠다니다가 오토마톤의 칼질과 이빨을 피해서 물러서는 서큐버스의 등에 닿았다.
빡!
“아악!”
번쩍이는 불꽃이 생기는가 싶더니 서큐버스의 등에 구멍이 뚫려 버리고 곧 불티가 되어 사라진다.
날아다니는 초록색 반딧불은 여신관 닐이 적으로 간주한 자들에게 달라붙어 폭사를 시작했다.
빠바바바바바박! 빠박!
“꺄아아악!”
“아악!”
자동 석궁을 든 사람들의 얼굴로 당황이 번졌다. 이제 동굴 속에는 불꽃놀이 같은 번쩍임과 비명소리 밖엔 들리지 않는다.
“괴, 굉장해.”
“어, 닐. 이거 내 머리에 붙었는데.”
“말 걸지 마세요. 지금 바쁘니까.”
“으, 응.”
모험가들의 반격에 말미암아 리젠되는 족족 반딧불에 불타버린 서큐버스는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황을 살피던 헤리슨의 중재에 닐이 긴 한숨을 쉬면서 기도를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뜨릴 적이 다 사라지자 오토마톤들도 돌아왔다.
캐롯과 지스터의 그 몸에도 반짝이는 초록색 반딧불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터지지 않는다.
“왜지?”
“아무래도 닐의 의식에 지배되는 애들이라서,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달라붙는다더라고.”
“헤?”
그러고 보니 동료 모험가들에게도 하나둘씩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남자 모험가들이 단단히 착각에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닐···!”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나는 감동했어! 나는 언제든 좋아!”
“아악! 닥쳐요! 진짜 그런 거 아니거든요! 헤리스은!”
얼굴을 붉힌 닐이 헤리슨을 쏘아보자 몸에 반딧불을 잔뜩 매달고 있던 그녀가 으하하 웃어버렸다.
하지만 곧 얼굴이 굳어진다.
“이것들이 더 나오질 않네. 물리친 건가. 이대로 좀 더 들어가 볼까? 어떻게 생각해들?”
포션을 마시던 닐이 말했다.
“이거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써요.”
“나는 아직 괜찮아, 좀 어지러운 걸 빼면.”
“저희도 괜찮습니다. 칼 맞은 데도 다 나았고요.”
바보처럼 웃고 있는 모험가들에게 닐이 삿대질을 하며 격노했다.
“나았다고 하지 마요! 그거 나은 게 아니거든요? 구멍만 막은 거라고요!”
고민할 것도 없이 헤리슨은 후퇴를 결정했다.
“죽으러 온 거 아니니까. 보급하고 다시 오자.”
슬금슬금 철수를 시작한 모험가들이 베이스캠프로 나갔을 때, 밖에서도 때 아닌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피 묻은 롱소드를 비켜 들고 고고하게 선 오토마톤 로라도가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뭐야, 무슨 일이지?”
주변에 몬스터 시체가 잔뜩 쓰러져 있다. 종류도 다양했다. 코볼트에서부터 고블린, 오크, 큰 것은 트롤도 있었다.
마차에 기대어 기침하던 사내가 말했다.
“어후, 씨! 함정 다 깔고 좀 쉬는데 난데없이 쳐들어오지 뭐요.”
“호오, 양동 작전 인가. 똑똑한 마녀네.”
솔직하게 칭찬한 헤리슨이 주변을 살폈다.
“부상자는?”
“지금 치료 중이에요.”
캐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 주인님이 안보입니다.”
“네 주인님은 저기에 있다.”
그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트롤의 시체 곁에서 살을 발라내고 있는 괴짜 기인이 있었다.
모두가 그의 기행을 넋을 잃고 쳐다보자 크랭크가 쑥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오늘 저녁은 트롤 허벅지 살 구이로 하시죠. 이거 맛있습니다.”
모두가 얼굴을 찡그렸다.
헤리슨이 외쳤다.
“그걸 먹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