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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72화 (172/329)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마녀님! 172 >

늦은 밤, 작업복 차림의 오토마톤 10여대와 자동 갑옷을 입은 샤를이 하수구 촌으로 들이닥쳤다. 공사를 거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정정한 늙은이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쾅-! 쾅! 콰드득!

원래 사람의 일손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오토마톤이 그 솜씨를 유감없이 뽐내었다.

자동 갑옷과 오토마톤들이 커다란 쇠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벽과 나무판자가 박살나서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봐주고 있던 늙은이들이 중얼거렸다.

“근디 이거 소리가 울리는 거 아닌가?”

“그게 무슨 마법을 부렸다고 하더군. 밖에서는 모를 거래.”

“오오! 역시 마녀님!”

방과 벽을 허물어 공간 정리를 마친 후엔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이어졌다.

새벽녘, 경계가 가장 느슨한 시간을 노려 비밀 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나간 그들은 흙과 나무, 들꽃을 닥치는 대로 뽑아와 내부 장식에 사용했다.

작업은 수일에 걸쳐서 이어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업무에 포비는 기절할 것 같았다. 투나와 샤를을 만날 때마다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욕을 해대고 있었다.

이 악랄한 마녀는 그녀뿐만 아니라 늙은이들까지 불러서 정리 작업을 시켰다.

오토마톤으로 경작을 하면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작업복 차림으로 호미질을 하고 있던 늙은이들이 천장에서 빛나는 광원을 올려다보며 땀을 닦았다.

“세상에, 밖에서 일하는 것 같구먼.”

“밝으니 참 좋아.”

“부인, 얼굴이 밝아지셨소.”

“마녀님이 주신 약을 먹었더니 팔다리 쑤신 게 가시질 뭐요.”

“나도 이제 다리가 아프지 않아. 허허. 신통하네.”

작업을 멈추고 잠시 허리를 편 늙은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화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참 대단하구먼. 여긴 대체 뭐여? 뭘 만들고 있는 거시여?”

“이 양반아 감이 안 와? 뭘 만들려고 하는지 말이야. 나는 대충 알 것 같은데.”

그들이 살고 있던 하수구 촌은 빛과 녹음으로 가득 채워진 지하 정원으로 탈바꿈되었다.

큼직한 나무며 넝쿨, 들꽃이 공간의 가장자리를 장식했으며, 시간 맞춰 바람도 불고 천장에서 비도 내릴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그리고 중앙의 넓은 경작지는 흙만 다듬어 놓았을 뿐 일부러 비워두었는데, 곧 새로운 작물이 심어질 예정이었다.

“비는 파이프를 매달아서 해결했는데, 바람은 대체 어떻게 부는 거여? 어제는 없었잖어.”

“마녀님이 보내주신 무슨 마도구라고 하더만, 저기 천장 주변에 매달린 거.”

늙은이 하나가 이마에 손을 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상자 같은 것들이 보인다.

“거참, 신통하네.”

첫날 협상 때 말고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렇게 놀라운 지원은 계속되었다.

“와! 식사하고 하세요!”

입구 근처에 새로 세워진 건물에서 리노와 소년소녀들이 음식을 만들어놓고 손을 흔들었다.

늙은이들에게 새참을 돌린 리노는 받아온 자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약은 꼬박 먹어야 한 대요. 잊지 마세요.”

“알았다. 너희들 학교는?”

아는 게 적으면 사는 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투나는 아이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학교로 보내버렸다.

“오후에 있어요. 포비 형 보셨어요?”

“아까 마녀님네 다니러 간다고 했는데.”

트드드득-!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피곤에 찌든 포비가 오토마톤 한 대와 함께 찾아왔다.

“내부가 다 정리됐다고 하니까 이걸 심으래요.”

“이게 뭔디?”

“약초네?”

“맞지? 지하 온실 같은 거라니까.”

투나의 약효로 몸을 옥죄는 고통과 절망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늙은이들이 서로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새참을 마친 그들은 묘목을 들고 다시 일터로 나갔다.

그들이 앉아있던 평상에 쓰러진 포비가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이거 먹어.”

“떠먹여 줘라. 형 죽겠다. 이 마녀는 사람을 너무 심하게 굴려.”

리노는 히히 웃더니 그릇과 수저를 가지고 와서 누워있는 포비의 입에 스프를 떠먹였다.

“후릅······! 큭큭큭-!”

수저를 핥던 포비가 좀 웃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리노의 몸을 와락 사로잡아 목덜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으억, 숨 막혀, 형.”

“습하! 습하-! 으음, 형은 무슨, 포비라고 불러. 너 내 남친 하기로 했잖아.”

“에엑! 포비 형이랑 사귀어?! 리노!”

“아, 아냐! 그게 아니야!”

다른 애들은 포비가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다들 리노를 보는 얼굴이 좀 이상했다. 사색이 된 소년과는 다르게 포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야?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어. 이 몸 실망.”

요즘 자주 듣게 된 투나의 말투를 흉내내며 포비가 고개를 숙이자 놀란 리노가 그녀의 목을 덥석 껴안으며 외쳤다.

“아냐! 맞아! 우리 사귀어!”

“꺄악-!”

“으악-!”

여자아이들이 환희에 찬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몇몇은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왜 저런 되다만 녀석이에요!”

이 와중에 포비는 날카롭게 웃음 지으며 리노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네 엄마가 마을 최고 미인이었어. 그러니 몇 년 만 지나면 굉장한 물건이 될 거야.”

나를 구하러 온 왕자님, 키워서 잡아먹어야지.

그때 지켜보고 있던 오토마톤이 말했다.

“저는 이곳이 있으면 안 됩니다. 두 대 이상의 오토마톤이 이 공간에 있으면 작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의 받았습니다.”

“어, 그래. 돌아가자. 와, 오토마톤을 데리고 다니게 될 줄이야.”

식기를 정리하던 소녀들이 중얼거렸다.

“나는 샤를이 더 좋던데.”

“응, 예쁘잖아.”

후후 웃음 지은 포비가 말했다.

“슬슬 가봐야 해. 좀 있다 집에 가서 보자. 너희들 학교 빼먹지 마, 호위도 빼먹지 말고.”

“예에!”

아이들이 모두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지하 정원 저편에 쭈그려 앉아있던 소녀 하나가 뛰어왔다.

“3호! 이거 선물이야. 허리 숙여봐.”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펴자 오토마톤 3호의 머리에 토끼풀 화관이 올려졌다. 아이들 모두가 흐뭇하게 웃었다. 건물 안의 대기실에는 같은 화관을 쓴 오토마톤이 2대 더 앉아있었다.

초원을 뛰어다니며 웃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포비는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돈과 빵을 훔치던 우리가 말이야.

“천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건 당신들이 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공방에서 다시 만난 샤를은 그렇게 대답했다.

“캐롯이 말했습니다. 악당은 아무리 선의 기준을 설명해도 결국 악을 실천하게 된다고, 그 말은 곧, 당신들은 처지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뿐, 본바탕은 선했다는 것입니다.”

“오토마톤에게 선의 기준이 어쩌고 하는 소릴 들으니 기분이 이상한데.”

“선의 기준이 인간만의 오묘한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역시 정량화, 수치화하여 기준을 정립하고 주변에 공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샤를은 책장에서 손바닥만 한 책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언젠가 캐롯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아이들이 들고 왔던 것이었다.

도덕과 윤리.

그것을 받아든 포비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도 배가 불러야 차리지.”

“그렇습니까?”

“응, 사람은 배가 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덕분에 네가 하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거든.”

입을 다문 샤를은 잠시 포비를 바라보았다.

그때 공방 안쪽의 커튼이 걷어지더니 투나가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한다.

“우으아아아암. 음? 오오, 포, 포비. 어서 오고······.”

방금 깨어난 투나가 잔뜩 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포비가 하하 웃으며 다가갔다.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요. 몸에 해롭다고요.”

“흐흣, 나의 연구는 제, 제시간에 끝나지 않으니 어, 어쩔 수 없어.”

“안 되겠네. 이 마녀님, 너도 참 고생이겠다.”

포비가 고개를 돌리자 정리를 마친 샤를이 다가와 있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포비는 잠이 덜 깬 투나를 상대로 진행 상황을 보고 했다.

“음, 잘됐네. 도, 돈 모자라지 않았지?”

“예. 딱딱 맞게 썼어요. 내 인생 최고의 나날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돈은 처음 써봐요. 저 애도 그렇고.”

포비가 가리킨 곳에는 머리에 토끼풀 화관을 쓴 오토마톤이 서 있었다.

거창하게 한쪽 무릎을 꿇은 포비가 침대 위의 검은 마녀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마녀님, 이제 뭘 할까요? 발이라도 핥으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짝이는 눈을 한 포비를 보고 기겁한 투나가 얼른 발을 숨기며 시선을 피했다.

“다, 당분간 재배에 힘써줘. 생활비는 샤를 편으로 보내줄게. 그리고 주, 중요한 게 있어. 잘 들어.”

투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비밀에 부쳐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접선 방법도 미리 상의해서 정했다.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 문은 어떻게 하죠? 내부 상황상 외부인에게 숨겨야 할 것 같은데.”

“어, 맞아. 이, 이제 못 쓴다고 해줘. 거긴 이제 우리만의 공간이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마녀님.”

잠시 코를 벌렁거린 투나가 손을 흔들었다.

“그 마녀라는 말은 그만 해. 나, 나보다 대단한 사람도 있는데, 드, 듣기 좀 거북해.”

“그러면 그냥 투나라고 불러요?”

“응, 그리고 오늘은 한가하니까. 밥 먹고 거기 구경 가자. 시, 시찰이지. 흐흐.”

파워뱅크 의뢰를 진행하면서 지하 정원까지 신경 쓰느라 며칠간 철야에 시달린 투나는 겨우 한숨 돌리게 되어 실물 구경에 나섰다.

포비는 그런 투나를 깍듯이 대했다.

“이쪽입니다. 투나, 거기 조심하시고요.”

“어, 응.”

손을 잡고 지하 수로를 건너 비밀 입구로 들어서자 환한 빛무리가 쏟아지고 있다.

“와아!”

분명 지하로 들어왔는데, 다시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청동문 안쪽 같아!”

돔형 공간 안에는 작은 숲 꾸며져 있었다. 투나가 슥슥 그린 낙서에 가까운 설계도를 보고 늙은이들이 나름대로 꾸며낸 것이었다.

“굉장해! 멋져! 이제 연중 재료 걱정은 없겠어! 으히흐하하!”

신이 난 투나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 넓은 정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일궈진 밭에는 약초 묘목들도 잘 자라고 있었고, 밤새 제작해서 보내준 마도구들도 제대로 설치되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그걸 증명했다.

버릇대로 몸을 잔뜩 웅크린 투나는 파리처럼 두 손을 마구 비비며 즐거워했다.

“으흐흐흐! 좋아! 와, 완벽해! 보, 보안이 좀 취약한 것 같은데 그것도 손봐야지. 흐흐, 아무도 못 찾는 미궁을 만들어······.”

머릿속에 번개가 친 투나가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질렀다.

“끼요오옵! 미궁! 나의 미궁! 마, 만들어 보고 싶어! 으헤헤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노인들과 아이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녀님, 오셨구먼. 말만 하지 않으면 봐줄 만한 분인데 말이여.”

“또 무슨 재미있는 흉계를 꾸미시려는 게요?”

“와아! 마녀님!”

“투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허윽.”

갑자기 인기인이 된 투나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숨긴 억지웃음이 함박웃음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꾸밈없는 미소는 대인공포증에 걸린 마녀의 마음에 따스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말한 대로 만들어봤는데, 어떻소?”

“어, 고, 고생하셨어요. 자, 잘 꾸미셨어요. 대단, 대단해요.”

“뭘 그러시오. 다 마녀님 덕인데.”

마녀라는 호칭이 조금 껄끄러웠지만 투나는 그들의 입까지 막지는 않았다.

그때 뒤에 무언가를 숨긴 작은 소녀가 손짓했다.

“선물이에요.”

오토마톤에게도 씌워준 토끼풀 화관이었다.

그중에서도 투나의 것은 여러 가지 꽃잎이 섞어 만든 것으로 특별히 예쁘고 화려했다.

“나, 나는 이런 것 별로 안 어울리는데. 어, 어때?”

허리를 편 투나가 모두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다.

“굉장히 예뻐요!”

“오, 잘 어울리는데. 그려.”

“맞아. 보기 좋아, 허허.”

“어, 그, 그래? 으히히.”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숲속에서 부스스한 머리에 화관을 쓰고 안경을 낀 검은 마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렇게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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