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작별인사! 141 >
기다리던 공주도 도착하였고, 마을에서의 일도 대강 마무리되자 모험가들은 거점 도시로 복귀를 시작했다.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에이플을 선두로 그들의 파티가 씩 웃고 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사자왕, 에이플!”
“오오, 그거 멋진 별명이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군.”
커다란 주먹을 힘있게 쥔 에이플이 눈을 크게 뜨고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수염이랑 머리 정리 좀 하라는 말 같은데요.”
받아든 손거울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사자왕을 보며 캐롯이 히히히 웃고 있다.
보고 있던 크랭크가 나섰다.
“조금만 다듬으면 잘 어울리겠군요. 잠깐 시간 되십니까.”
에이플을 근처 나무 둥치에 앉힌 크랭크는 즉석에서 가위를 뽑아 들고 예술혼을 불태워 그의 머리와 수염을 다듬어 주었다.
“오!”
“와! 잘 어울려요. 진짜 사자왕이라고 해도 좋을 듯?”
“대체 못하는 게 뭐에요?”
“결혼을 못 했지.”
팔짱을 낀 캐롯이 쏘아주었지만, 크랭크는 무시했다. 결혼 못한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 같아서 다들 좀 킥킥거렸다.
“하지만 크랭크 씨는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을 걸요?”
마법사 포핏이 흘깃 작별인사차 다가오는 금발의 여 기사와 약사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가까이 오기 전 눈을 가늘게 뜬 캐롯이 빠르게 물었다.
“양철 거인의 신붓감으로 둘 중 하나 고르라면?”
“캐롯.”
크랭크가 나지막하게 주의를 주었지만 에이플의 파티 멤버들은 벌써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여 기사.”
“약사.”
“약사.”
“여 기사.”
반반 나왔다. 이때쯤 아리에테와 투나가 도착했다.
“무슨 이야기 중이지?”
“아니에요. 보고 싶을 거예요. 아리에테!”
“투나 선생님도, 덕분에 모르고 있던 약초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고마워요!”
“어, 으응. 흐흐흐.”
허리를 펴면 키도 꽤 크고, 안경을 쓰면서 어른스러운 인상이 도드라졌기 때문에 연하의 소년소녀들이 의외로 투나를 잘 따랐다.
이 와중에 투나는 와락 안겨드는 신관의 엉덩이를 더듬으며 실실 웃고 있다.
그녀들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이 모두가 곁눈질로 에이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별 관심 없다는 듯, 에이플은 머리와 수염까지 다듬어 준 크랭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머리색이 금발이라 길면 사자 같아지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과의 모험 잊지 않겠습니다. 듀칼리온에 올 일이 있다면 길드에 들려주십시오. 맥주라도 한잔 사지요.”
두꺼운 손으로 크랭크와 악수를 마친 에이플은 이제 고디브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을 사람들과의 작별인사는 어제 다 끝냈고, 바쁜데 괜히 나오는 걸 모험가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웅을 나온 것은 고디브를 비롯한 마을 청년 몇 사람뿐이었다.
서로 손을 흔들어준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던 제임스의 자동마차를 얻어 타고 방주도시 웰메인으로 출발했다.
“잘 가!”
캐롯이 손을 흔들어댔다. 팔짱을 하고 보고 있던 아리에테가 말했다.
“다들 숲을 뒤지면서 오느라 여기까지 걸어서 왔다고 했었지. 덕분에 제임스 차장은 오늘도 바쁘시군.”
“저건 전부 차장님 몫이니까, 이 틈에 용돈벌이 하는 거지.”
“음, 공주님이 고생한 모험가들에게 보너스 지급 추천서도 써주셨는데 우리도 저런 이동 수단을 준비할 수는 없을까? 많이 비싼가?”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던 크랭크는 투구를 휘휘 흔들었다.
근처에서 캐롯이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지만 크랭크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건 정산 마치고 생각해 보자. 그보다 공장은 잘 돌고 있나?”
크랭크의 물음에 함께 배웅 나왔던 고디브와 청년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캐롯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역시 왕족 파워는 달라. 재료가 하루 만에 도착했어! 지금 한창 원단 뽑는 중!”
크랭크는 자동 베틀이 설치된 건물로 향했다.
양철 투구를 쓴 친절한 거인과 그의 동료들이 마을을 거닐자 허리춤에 바구니를 끼고 지나가던 처녀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면 크랭크는 두 손을 합장하면서 그들의 인사법을 따라 해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 머무르면서 움막 수준의 도피처를 훌륭한 마을로 만들어준 것도 모자라 습격에서도 지켜주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도움마저 주었기 때문에 많은 모험가 중에서도 크랭크 일행들은 마을을 구한 영웅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일단 외견이 특이한 점도 있었고.
물론 그가 이렇게까지 해준 것은 연민 이전에 고가의 카타 잎 덩어리를 받았기 때문이었지만.
드르르륵! 착! 드르르륵! 착!
건물 안에는 10대쯤 되는 자동 베틀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고, 처녀들이 그 앞의 의자에 앉아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다.
원래는 재료가 부족해서 이렇게 많이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습격해온 오토마톤 2대에서 부품을 마구 뽑아다 유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착! 드르르륵! 착!
기계가 움직이며 실과 실이 서로 촘촘하게 이어져 완성된 원단은 뒤로 넘어가 나무 막대에 착착 감겨 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자 하나가 부지런히 장비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1번 베틀 다됐어! 원단 교체하고 실 보충해줘!”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빴던 내부 협력자 그란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그란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 또 울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잡혀있을 때 보여준 그의 됨됨이가 나쁘지 않았는지 쉽게 용서받았는데 그걸 구스타프는 이렇게 정의했다.
“용서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에테였지만 그걸 캐롯이 들어버리자 아뿔싸 싶은 표정을 지었다.
“호오호오, 용서는 사람끼리. 응, 그렇네.”
어쨌든 그리하여 그란은 극동 개척민 마을 베누스의 청년회 일꾼이 되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3번 고장!”
“뭐?!”
자동 베틀이 멈추자 크랭크도 끼어들어 수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닌지라 베틀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란이 다가왔다.
“크랭크 씨, 베틀이 더 필요합니다. 할 사람은 많은데 장비는 적어요. 그리고 집에서도 쓸 수 있는 좀 작은 베틀을 원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슬슬 1차 원단을 납품하고 싶은데 공주님이 알선해주신 상회에 맡기면 되겠습니까?”
커다란 몸을 웅크린 채 수첩에 메모하던 크랭크가 글을 적으며 대답했다.
“완성된 면직품의 납품은 상단에서 소모품 배달이 오면 그때 함께 보냅시다. 그리고 베틀의 추가 증설과 제작은 내일 드워프, 사이가 님이 오시면 문의 하고요. 이제부터 당신들이.”
턱!
몸을 편 크랭크가 메모한 수첩을 그의 가슴에 들이댔다. 당황한 그란이었지만 곧 표정을 바꾸어 수첩을 받아들었다.
뒷짐을 진 캐롯이 히히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란, 할 만해?”
“보면 모르겠냐. 바빠.”
수건으로 땀을 닦던 그란이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캐롯이 드물게 밝은 얼굴 이외의 표정을 지었다. 눈썹을 늘어뜨린 소녀가 미안한 듯 웃고 있다.
“거시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아직 그 소리냐. 애초에 어긴 적도 없으니 걱정 마. 나는 여기서 살아보련다. 사이퍼즈 여자들은 미인이 많아.”
“오오! 너도 결국 남자네!”
확 밝아진 캐롯의 얼굴을 보면서 그란이 처음으로 씩 웃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모험가들까지 모두 바래다준 제임스의 자동 마차가 도착하자 크랭크들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이거 정말 저희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분해된 채 창고 구석에 널브러진 오토마톤의 잔해를 보면서 크랭크가 말했다.
고디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남은 것은 이제 저희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이런 고마우실 데가.”
크랭크는 몹시 기뻐하며 오토마톤 2대 분량의 잔해를 챙겼다. 내부 부품 대부분이 베틀 제작에 들어갔지만, 겉의 장갑판과 프레임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걸로 또 뭘 만들 셈이지?”
아리에테가 덩달아 두근두근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남은 부품을 포장하고 있던 크랭크가 그녀를 돌아보며 엄지를 척 세웠다.
“너희들의 외부 무장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보자.”
“오오오!”
여전히 부러진 팔에 붕대를 감아놓고 있던 아리에테가 몹시 좋아했다. 다들 짐을 챙기는 사이, 연구실에 틀어박힌 투나는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이, 이제, 겨우 모양을 잡은 참인데.”
그녀의 연구실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각종 말린 약초들이 즐비하게 쌓여있었다. 하물며 새로 산 가공 장비들도 그대로 정리되어 있고,
캐롯이 히히 웃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드렸다.
“다음에 또 오면 되잖아? 여기가 네 연구실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으니까.”
“으음, 그, 그래? 하지만 밖을 돌아다니는 건 취향이 아, 아니라서.”
그래서 투나는 눈여겨 봐뒀던 마을 처녀를 데려다 연구실을 양도했다.
정리를 마치고 자동 마차의 짐칸에서 몸을 빼낸 제임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후-! 이젠 여름이구만, 자, 친구들 이걸로 끝인가? 작별인사는 끝냈고?”
쥬세페 공주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탐사로 인한 부재중이라는 말과 함께 편지 한 장을 얻어온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끝났습니다. 이제 가시죠.”
허리를 펴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제임스가 허허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 사람들은 아직 아닌 것 같군.”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막 차량에 오르던 지오와 보리스도 다시 내려왔다.
은인들이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배웅하러 몰려나오고 있었다.
아리에테와 투나, 비타는 이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손을 마주 잡으며 웃거나 울고 있었다.
“으이이잉-! 보고 싶을 거예요! 여러분!”
“비타, 감사, 해요. 감사.”
“고마워. 비타, 신관님.”
비타의 앞에 몰려온 아낙들이 어색하게 배운 말이나마 마음의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다들 두 손을 마주 대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다친 사람, 죽을 뻔한 사람을 있는 힘껏 구해준 신관께 더 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여주려 했다.
사람들은 친절한 거인에게도 다가왔다. 청년들은 웃으며, 처녀들은 부끄러워하며 그의 커다란 손을 잡고 흔들었다. 노인들의 경우엔 마치 신전에서 절하는 하는 것처럼 경배를 올려서 크랭크가 당황했다.
지오와 보리스, 코비도 감사를 받았다. 별로 한 것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사람들을 구출하러 나서 준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특히 잘생긴 보리스는 처녀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왜? 뭐?”
앞 다투어 하얀 실을 가져와 그의 손목에 묶어주는 것을 보고 당황하자 고디브가 말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실을 묶어주는 것입니다.”
“어어으으음······!”
언제나 시큰둥하게 툴툴거리는 보리스였지만 이번만은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여 버렸다. 그걸 보고 처녀들이 귀엽다며 좋아했다.
근처에서 지오와 코비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팔에 하얀 실을 묶인 채 당황하고 있었다.
캐롯도 많은 인사를 받았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그 작은 몸으로 3배는 됨 직한 하드 스킨 오토마톤에게 정면으로 덤벼든 그 용기를 마을 사람들은 대단히 높이 사고 있었다.
“와하하! 마을의 활기는 여자들의 웃음소리에서 나온대! 크게 웃고 신나게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