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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121화 (121/329)

121화 -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구출작전!

아주 작정하고 지어놓은 지하실에는 쇠창살이 달린 감옥이 많이 있었다. 주변국들이 사이퍼즈의 개탄스러운 노예제도를 비난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거래가 드물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앞과 뒤는 항상 다르고, 욕심은 언제나 끝이 없으며,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어떻게든 이루어졌다.

“들어가!”

감옥에는 그들 말고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잡혀있었다. 사이퍼즈 인들만 아니라 리즈넷의 사람들과 엘프나 드워프도 있었다.

“와, 생각보다 대규모인데.”

아리에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끔찍하구나.”

뭘 발랐는지 피부색은 같았지만, 이목구비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챈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바닥에 앉아있던 캐롯이 물었다.

“아이샤, 묘리나, 있어? 응? 없나 보네?”

“그렇게 운이 좋지 않겠지. 시작하자.”

“그래.”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캐롯이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리더니 쇠창살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힘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긱!

사람들의 얼굴로 놀라움이 번졌다.

쪽지에 미리 적어온 단어를 찾은 아리에테가 낮게 말했다.

“문트!”

조용히, 라는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트드드득!

쇠창살을 벌리고 밖으로 나간 캐롯은 다시 그것을 붙잡아 오므렸다.

끼기기?!

“여기는 간수도 없나? 와! 엘프! 엘프가 있어!”

도도도 달려간 캐롯은 감옥 한구석에 풀린 눈을 하고 누워있는 엘프 여자를 보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대답이 없었다.

“약을 먹여놓은 거다. 안 그러면 정령을 불러버리니까.”

반대편에 앉은 털복숭이 드워프가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넌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거지? 구하러 온 거냐?”

“물론.”

“안 돼! 그놈은 간수야!”

좀 떨어진 감옥의 초췌한 드워프가 쇠창살을 붙잡고 괴성을 질렀다. 생각보다 키가 큰 드워프 남자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 형제도 약을 먹여서 정신이 나가버렸다. 열쇠를 가져다 다오. 저기 통로 끝에 있다.”

“속으면 안 돼! 저런 추악하게 생긴 놈이 우리 일족일 리가 없다! 이놈아!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널 잡아먹고 말겠다!”

서로가 맞다고 하는 통에 캐롯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방긋 웃더니 쇠창살을 잡아 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드워프의 다리에 달라붙어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음, 나쁜 놈의 냄새가 나네?”

드워프 남자의 얼굴이 우겨지더니 캐롯이 붙어있는 다리를 휘둘러 차버렸다. 벽에 달라붙은 캐롯은 이히히 웃으며 벽을 박차고 덤벼들었다.

“사실은 유도심문!”

“제길!”

퍽퍽퍽!

인간이 오토마톤을 그것도 맨손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쇠창살도 휘어버리는 완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와, 귀를 만들어 붙인 거네? 화장을 엄청 잘했다. 진짜 드워프 같아.”

“시간 없다!”

“어, 알았어!”

쓰러진 남자를 살펴보던 캐롯은 아리에테의 재촉에 서둘러 좁은 환기구를 통해 위로 올라갔다.

캐롯이 아니면 불가능한 크기였다.

1층으로 올라간 캐롯은 재빠르게 복도를 뛰어다니며 현지에서 구한 틴더 스크롤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값이 싸기 때문에 아리에테의 소지금으로도 충분했다.

“틴더! 틴더! 틴더! 와하하하! 틴더!”

마법적인 불씨는 잘 꺼지지 않는다. 덕분에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맨 꼭대기 층에서는 폭발까지 일어났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캐롯이 기어코 파이어볼 스크롤까지 터트린 것이다.

쿠쾅-!

나무로 지은 건물에서 불과 폭발이 일어나자 삽시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관에서 입을 막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불이다! 불! 소방청에 신고해!”

지나던 사람들이 불구경을 위해 몰려든다. 이 와중에 여관 주인과 종업원들은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 감옥에 붙잡아놓은 사람들을 옮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기로 가득 찬 지하실의 감옥 문이 열리고 두건으로 입을 막은 사람들이 손짓했다.

“일어나! 일어나! 숨 쉬지 마! 빨리 나와!”

“대모! 전부 다 꺼낼까요?!”

“그래! 특히 엘프는 조심해서 다뤄! 사태만 진정되면 사줄 놈들은 얼마든지 있다! 난쟁이 놈들은 날뛸지도 모르니 몽둥이찜질을 해준 다음 맨 마지막에 옮겨!”

거친 손길에 끌려 나온 사람들은 골목에 대기시켜 놓은 마차에 올라탔다.

쾅-! 뻥!

불타는 객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분노한 여관 여주인이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망할 모험가 놈들! 방 안에 뭘 쌓아놓은 거야?!”

“다 나왔습니다! 출발합니다!”

“어서 가자!”

짐마차 3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불타는 창문으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캐롯이 으히히 웃으며 몸을 돌리더니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불타는 여관방을 돌아다니며 값나가는 물건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연기는 아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열기는 수통의 물을 머리에 뿌려 임시변통했다.

옷장과 서랍을 뒤져 돈과 쓸 만한 물건을 수거하는 캐롯의 눈은 금화 모양이 되어 있었다.

“오옥! 금은보화! 롱소드! 단검! 갑옷! 여자 속옷도 있네!?”

주변을 두리번거린 캐롯은 두근두근하는 표정으로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방 안의 거울 앞으로 달려가 그 꼴을 보고서는 혼자서 폭소를 터트렸다.

“끄으악하하하! 괴도 변태 가면 등장! 와하하하! 이러고 다니자! 응!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주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오토마톤의 특성이 지금 캐롯에게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성격이 첫 번째 주인에게 받은 것이라면, 이 짠내 나는 생활력은 크랭크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놔두면 어차피 타버릴 텐데! 아깝잖아?”

다만, 학습 능력 덕분에 점점 독자적인 무언가로 진화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활활활!

트드드득……!

“엇! 손절의 시간이야!”

거세지는 불길에 더 이상 건물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한 캐롯은 이제 탈출을 위해 문짝을 하나 뜯어서 머리 위에 올리고 폭발로 지붕이 사라진 다락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뜨! 아뜨뜨!”

파이어 볼 스크롤을 찢어서 바닥에 던지고 그 위로 문짝을 들고 뛰어들자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오른다.

쿠쾅-!

“와하하하하!”

날아오르는 문짝에 매달린 캐롯이 신나게 웃어댔다. 배낭에서 쏟아진 물건들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지만, 이 작은 오토마톤은 그저 웃기 바빴다.

“신난다! 와하하하!”

불을 끄기 위해 달려온 소방처 직원들이 펌프로 물을 뿌리다가 말고 폭발과 함께 떨어지는 파편들에 기겁했다.

쿠당탕-!

“드워프의 폭약이라도 쌓아놨어?! 왜 자꾸 터져!?”

“세상에! 문짝이 하늘을 날고 있어! 다들 조심해! 파편에 맞아 죽겠다!”

높이 솟아올라 길 건너편의 건물 옥상에 가볍게 착지한 캐롯은 큼직한 배낭을 등에 메고 이히히 웃으며 다음 작전을 개시했다.

* * *

마을의 대로를 한참 달리던 마차는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주변 풍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여관 주인 대모가 외쳤다.

“이놈아! 이 길이 아니잖아?”

마부석에 앉은 사람이 싸늘한 눈을 하고 돌아보았다.

“그럼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던 데로 3번가의 건물로…….”

이상함을 느낀 대모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별안간 마차가 멈췄다.

철크럭-! 철크럭!

천막 지붕을 드리운 짐마차 바깥에서 갑옷의 마찰음이 들릴 때마다 사로잡힌 사람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물들었고 잡아들인 사람은 절망감에 어두워졌다.

촤아악-!

마차 뒷문의 천막이 거칠게 치워지며 갑옷에 재를 잔뜩 발라놓은 시커먼 흑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3차 개수작업을 받은 시온은 필요할 때 가변형 투구와 마스크를 만들어 착용자의 머리와 얼굴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지금 그 투구 덕분에 얼굴을 가리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아리에테의 의지를 전해 받은 흑기사 시온이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내리세요.”

바깥으로 끌려 나온 노예상 대모가 본 것은 밧줄에 묶인 부하들과 그 주변에 칼을 뽑아 든 사람들이었다.

겨우 4명?!

“멍청한 것들이! 들인 돈이 얼마인데 겨우 이런 놈들에게 당하고 자빠졌느냐!”

일곱이나 되는 부하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지 못했다.

“오, 오토마톤이 있었단 말요……!”

변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애처로웠다.

“우리도 오토마톤 있잖아! 그놈은 어떻게 됐어?!”

“이놈 말이야?”

보리스가 가리킨 곳에는 부서진 인형이 마차에 실려 있었다.

“다행이야. 우리 쪽 애가 더 잘 싸워서.”

크랭크의 솜씨가 부려진 예쁜 마스크를 가리기 위해 아예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쓴 로테가 검을 들고 남자들을 지키고 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리긴 했다.

화가 난 대모는 고래고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듣다가 짜증이 난 흑기사가 검을 뽑아 그 얼굴에 들이댔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그는 존칭을 썼는데, 오히려 그게 더 맨정신이 아닌 것 같아 무서웠다.

“그 정도만 하세요. 다른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요?”

흑기사가 심문을 시작하려는데 대모는 의외로 순순히 남은 잔당의 건물을 비롯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아줌마, 너무 쉽게 털어놓는 거 아뇨?”

대모는 손을 보여주었다. 새끼손가락이 없어서 양쪽 다 손가락이 네 개뿐이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줄 아느냐?”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던 지오가 말했다.

“그러고도 이런 일을 계속합니까? 부끄럽지 않아요?”

“흥! 가소로운 것들, 양심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 세상천지에 돈벌이는 널렸다.”

고개를 흔든 보리스가 말했다.

“그럼 거짓 정보일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흐흐흣! 물론 내가 한 말은 참말이다. 그걸 판단하는 건 네놈들 몫이지. 자, 어쩔 테냐?”

깔깔 웃고 있는 대모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이 흑기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차에 실린 사람들과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아마 맞겠지요. 하지만 저런 말을 하는데 뭔가 대비를 해놓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대모가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흑기사는 계속 말했다.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여기는 아직 성벽 안입니다. 탈출이 시급합니다.”

고개를 돌린 흑기사가 마차 뒷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드워프를 쳐다보았다.

“호위가 더 필요합니다. 당신들, 도끼를 들 수 있겠습니까?”

“저것들을 내 손으로 쪼갤 수 있도록 해준다면 돕겠네.”

대모와 사로잡힌 부하들을 가리키며 피폐한 얼굴의 드워프가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리춤에서 조그만 가방을 푼 흑기사가 그것을 던졌다.

“동료들을 치료하세요.”

안에는 파란색 체력포션과 빨간색 힐링포션이 들어있었다. 무려 메이드 인 고르곤이다.

순식간에 근육이 원래대로 돌아온 드워프들이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마차에서 내렸다. 모두 3명, 그들 말고도 엘프들이 2명 더 있었는데 다들 약에 취해 있어서 포션을 썼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퍽퍽퍽!

그들은 당장 밧줄에 묶인 사람 하나를 고깃덩이로 다져놓았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딱히 말리지 않았다.

흑기사는 오히려 다들 나와서 보라고 독려했다.

“그대들을 가축 취급하던 자들의 말로를 보십시오. 봐야 합니다. 자신에게조차 가끔 알려줘야 합니다. 사람의 길을 벗어나면 벌을 받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지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 약자를 기만하려는 악당들의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합니다. 인류가 투쟁으로 일궈온 그 잔혹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철크럭-!

강철 장갑으로 이루어진 주먹을 들어 올린 흑기사가 붉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무뢰배 같은 악당들의 손에서 결국 당신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자비한 피와 폭력, 파괴와 공포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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