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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84화 (8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과거와 인사! 84

함께 이야기를 하며 잠시 머무른 쿠핀은 하늘의 달을 슬쩍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야해. 내일 또 올게. 미노는 재우고 올 테니 우리끼리 재미 좀 보자고, 케케케···!”

“들어···! 듣는다고···!”

“괜찮아. 아직 아무것도 모르잖아.”

“야, 너는···! 애들 그런 거 금방 알아.”

쿠핀이 허리를 숙이고 미노를 보았다.

“미노 엄마랑 아빠랑 뭐 하는지 알아?”

“음? 뽑뽀? 뽀뽀? 쭈아압?”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쿠핀이 허리를 꺾으며 웃음을 터트렸고, 무릎을 꿇은 겔은 머리를 두 손을 잡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쿠핀···!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애도 마족인데 뭐 어때?”

“반은 내 자식이야. 공주님처럼 키우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쿠핀이 히죽 웃는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겔, 부모가 없어도 애들은 커.”

인상을 찌푸린 겔이 대답했다.

“그건 사실이지만 나는 포기 할 수 없어. 미노는 물론 너도!”

한 때 서로 목숨 걸고 싸워댄 적병의 대답에 쿠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슬쩍 돌리고 대답했다.

“호허, 정말이야. 듣던 대로 인간 남자들은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네.”

“쿠핀 같이 도망가자.”

이제 쿠핀의 입가가 스르륵 올라갔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린 곳에는 깜빡 잠든 미노를 끌어안은 겔이 비장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내가 그쪽으로 넘어가면 될 일이야. 마왕령 안쪽 어딘가에···.”

“안 돼.”

쿠핀이 손을 들어 겔의 말을 막았다.

“난 너희 둘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아. 겨우 내 몸 하나 지킬 정도야.”

“저축은 충분히 했어. 그 돈으로 오토마톤을 준비하면 된다.”

콧김을 좀 킁킁 거린 쿠핀은 이제 머리를 좀 긁었다.

이 자식 진심인가보네.

허리를 숙인 쿠핀이 겔에게서 잠든 미노를 받아들어 품에 안았다. 그녀는 달빛을 받으며 겔을 바라보았다.

“팔랑스, 보포스, 시르카.”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이름이다. 일반 오토마톤으로는 마족의 전투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헤리슨이 아르곤 영주를 상대로 갖은 협박과 회유와 술수를 동원해서 구입한 중장갑 고기동 고출력 오토마톤이었다.

쿠핀이 웃으며 말했다.

“그 놈들 정도는 되어야 무리 없이 살 수 있어. 이쪽의 괴물들은 장난이 아니라고.”

주문제작에 최신형으로, 대당 5억을 넘는 완전 전투용 오토마톤이다. 일개 경비병의 저축으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겔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약간 서글픈 얼굴이 된 쿠핀은 그의 얼굴을 좀 쓰다듬어주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 놈들도 마족 남자에게 맞설 수 있을지는 몰라. 그러니 멀리 갈 필요도 없어. 여기가 제일 안전해.”

“제길···! 기러기 아빠냐고···!”

“흐하하! 그거 잘 어울리는 말인데?”

자리에서 일어선 겔은 배낭을 풀어서 그녀에게 메어 주었다.

“선물이야.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야.”

“항상 고마워. 그래, 이번엔 나도 너 줄려고 가져온 게 있어.”

주섬주섬 가져온 보따리를 꺼내자 암염덩이, 몬스터 뼈와 뿔을 깍은 장식품, 훈제한 소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핀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그 조그만 인형이랑 같이 만들었어. 하나 먹어봐.”

직접 만든 음식을 처음 대접 받은 겔이 소시지를 집어 들어 씹기 시작했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크흡···! 이, 이거 좀 짠데···.”

“바보야. 네 눈물로 소금 간을 더 하지 마.”

겔은 울다가 말고 웃기 시작했다. 쿠핀도 빙그레 웃었다.

숲속의 어둠으로 사라지는 쿠핀을 마지막까지 쳐다보던 겔은 곧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보따리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황급히 휴전선을 뛰어 넘어 달렸다. 어느새 그 손에는 다시 회수한 롱소드가 들려 있었다.

멀리 숲속에서 그걸 지켜보던 마족 수비대원 디바가 돌아온 쿠핀을 보았다.

“저게 네 그거야?”

“응. 고마워, 자리 빌려줘서.”

미노를 그녀에게 안겨주고 배낭을 뒤진 쿠핀이 원하는 걸 찾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사탕 상자였다.

“이거, 답례품이야. 내일 또 부탁해. 이번엔 요 앞 동굴이야.”

“음냠냠, 봄이라서 그런 가 요즘 예약이 가득한 걸.”

미노를 돌려주고 받은 사탕 상자에서 캔디를 꺼내 입안에 던져 넣은 디바가 물었다.

“네 그거 나 하루만 빌려주면 안 될까?”

“노! 안 돼! 그건 내거야!”

순식간에 이빨을 드러내고 버럭 한 쿠핀은 곧 얼굴을 풀고는 다시 말했다.

“안 돼. 내거야. 아무한테도 안 줄 거야. 저번 수비대장 같은 짓을 하면 전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 너무 열내지마. 한 번 해본 말이야. 안 뺏어가.”

“어, 음, 미안.”

화를 가라앉히는 쿠핀을 보고 히죽 웃은 디바가 얼굴을 들이민다.

“구경하는 건 괜찮지?”

“야!”

“케케케!”

도시로 돌아온 크랭크들은 이튿날 연락을 받은 경비대에게 불려가 한 소리를 들었다.

“사고라는 것은 알겠지만 말이야.”

제1경비대장 셀린이 뒷짐을 지고 그들을 돌아보았다. 취조실 책상 앞에는 캐롯과 크랭크가 각자의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얼굴을 쑥 내민 셀린 경비대장이 말했다. 그녀는 서 있는데도 크랭크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너 거기서 투구를 벗었다며?”

“예, 안 그랬으면 대난투가 일어났을 겁니다."

듣고 있던 셀린 경비대장이 눈썹을 좁혔다.

“양측 책임자들이 겨우 맞춰놓은 중심을 망가뜨리지 말도록 해. 결과적으로 아무 일이 없었으니 망정이 까딱 잘못했으면 오랜만에 교전이 일어났을 거다.”

“죄송합니다.”

가만히 있던 캐롯도 고개를 숙였다.

“저도 죄송해요.”

"하아-!"

거창한 한숨을 내쉰 그녀는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책상위에 올리고 고개를 꺾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휴전선과 마족들은 민감한 사항이야. 그걸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너희를 부른 거야. 누가 물어보면 경비대에서 한 소리 들었다는 말만하고 다른 소린 하지 마.”

“예.”

크랭크가 허리를 숙여가며 공손히 대답하는 와중에 캐롯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캐롯이 만면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들었다.

“오옹! 셀린 제1경비대장님! 남친 생겼어요? 손에 반지!”

책상위에 올라가 있던 그녀의 손이 아래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사라지기 직전 반짝이는 금속성 광채가 번뜩였다. 더불어 셀린의 얼굴이 약간 달아올라있다.

“···봤어?”

책상에 두 손을 올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캐롯이 환하게 웃으며 콩콩 뛰었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축하해요! 누구에요?! 누구!”

반지를 낀 손을 오므리며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는데 취조실 문이 벌컥 열리며 굉장히 흥분한 보좌담당관이 들어와서 외쳤다.

“듣고 놀라도록 하세요! 바로 로마니 씨 입니다!”

“오우야우오오!!!!”

감격한 캐롯이 두 팔을 들고 괴성을 질렀다. 고음으로 올라가자 찢어지는 기계음이 섞일 정도였다.

“보좌담당관! 너 자꾸···!”

“좋으면서 뭘 그러세요! 자랑하고 싶으시면서! 자랑하고 싶으시면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당장 잔치를 열어야지! 오늘 퇴근하고 경비대 전원 피로연이다!”

“야! 누가 좀 말려!”

당황한 셀린 제 1경비대장이 소리 쳤지만 안타깝게도 경비대 건물에서 그녀의 편은 없었다. 취조실 경비를 서고 있던 말단 경비대원들까지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복도 앞 창문으로 달려가 피로연을 선포했다.

“아! 아니! 아직 그런···!”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크랭크가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로마니를 납치하러 갑시다.”

“으에헤헤헤! 내가 울파를 상대로 시간을 벌어볼게!”

도끼눈을 한 캐롯까지 일어서자 기겁한 셀린이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 이제 며칠 안됐어! 내 연애를 망치지 마!”

순간, 건물에서 난동을 부리던 대원들이 동작을 멈췄다. 갑자기 얌전한 얼굴이 된 보좌담당관이 박수를 짝짝 치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냥 평소의 일과로 돌아갔다.

취조실에서 경비대장의 연애에 대한 취조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책상 맞은편에 앉아 깍지 낀 손을 올린 보좌담당관이 심각한 얼굴로 경비대장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등 뒤에는 캐롯과 크랭크가 팔짱을 한 채 서 있었다.

“그래서, 며칠 됐는데요?”

“하, 한 달···.”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했어요?”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한 채 막 대답하려던 셀린 경비대장이 순식간에 눈썹을 곧추세우더니 비명을 뺙 질렀고, 곧이어 경비대 건물에서 보좌담당관과 제1경비대장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했네! 했어! 폭풍파워로! 으아하하하하! 아하하하!”

“너! 너어! 잡히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으아앙! 닥쳐! 거기서!”

복도를 쏜살 같이 달려가는 그들을 취조실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던 크랭크와 캐롯이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았다.

“우린 이제 가도 되겠지?”

“응. 별일 없을 것 같아.”

소란스러운 경비대 건물을 나서서 살살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걷던 캐롯과 크랭크는, 공방으로 가기 전에 모험가 길드에 잠깐 들리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베누스와 로테를 임대로 돌려 볼까 해서.”

“임대?”

“너 포함해서 오토마톤만 4대다. 나 개인으로서는 너무 고화력이야. 솔직히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대형 파티를 꾸릴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길드에 위탁해서 일을 돌려볼까 싶어.”

도시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아르곤에서는 공인되지 않은 직업으로 오토마톤이 고정 수입을 얻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들의 직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물론 약간의 소일거리 정도는 눈감아 주지만 말이다.

다만 극단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모험가 길드의 직업 특성상 오토마톤으로 수익을 얻는 것을 허가했다.

개인이 소유한 오토마톤을 모험가에게 빌려주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파손이나 분실등의 위험 부담이 대단히 높긴 하지만,

걷고 있던 캐롯이 아하하 웃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나 그거 했었지, 짐꾼 서포터.”

“그렇지. 나는 그때 이렇게 작은 인형이 그 많은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었다. 가까이에서 처음 보기도 했고.”

폴짝 뛴 캐롯이 크랭크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날 선택해줘서 고마워! 주인님아!”

다리에 캐롯을 매달고 어기적거리며 걷기 시작한 크랭크가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투구 안의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6년 전이로구나. 시간 빠르네.”

“달릴 때는 앞만 보고! 하지만 가끔씩 뒤도 돌아보면서 숨도 좀 돌리고!”

“지금처럼?”

“그렇지. 6년 전의 네게 인사해.”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는 크랭크와 그 다리에 매달린 캐롯을 보면서 길을 지나는 시민들이 웃거나 했다. 당장 엄마나 아빠 다리에 매달리는 장난꾸러기들이 있을 정도였다.

크랭크가 고개를 숙였다.

“6년 전의 나는 어디에 있어? 있다면 보고 싶군.”

“저기, 너를 따라오고 있잖아?”

팔 하나를 풀어 길가를 가리킨 캐롯의 손을 따라가던 크랭크는 정신적으로 이마를 때렸다.

한가로운 도로변, 오후의 봄 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있었다.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크랭크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 6년 전의 나, 고생했구나. 가슴을 펴라. 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쿼트는 하루 300개씩만 해라. 무리를 한 너는 다리에 쥐가 나게 된다.”

“나도! 힘내! 6년 전의 나! 너는 곧 소프트스킨을 올리고 친구들을 잔뜩 사귀게 돼! 그리고 위명도 얻어!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증기 속 여신의 인형! 하하하!”

커다란 남자의 그림자 곁에서 조그만 소녀의 그림자가 두 팔을 들어 흔들고 있다.

“광견병 걸린 햄스터는?”

“에에, 그건 좀 싫다. 세상에 그건 누가 붙인 거였어? 센스 없게 말이야.”

그림자에게서 고개를 돌린 크랭크와 캐롯은 서로를 보면서 곧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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