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요리시간! 81
“푸시케 대장!”
엄청나게 큰 마족 여자의 등장에 놀라 입을 헤 벌리고 그녀를 올려다보던 캐롯이 곧 사정을 설명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전해들은 푸시케 수비대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사고라도 허가 없이 휴전선을 넘은 너희들은 명목상 처벌이 필요하다. 잠깐 여기 있어라. 저쪽 책임자를 만나고 오겠다.”
“푸시케 대장, 이건 어떻게 하지? 먹어도 돼?”
마족 수비대원하나가 떨어진 충격으로 거의 임종직전에 다다른 와이번을 가리켰다. 사태가 진정되고 주변에서 몰려든 마족들도 입가에 침을 흘리며 커다란 와이번을 올려다보았다.
단순히 몸이 커서 수비대장이 된 것이 아닌 푸시케는 지금 직책에서 해야 할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잡은 게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위자료 정도는 청구해도 되지 않겠어?! 덴자민이 저거에 깔려있다고!”
“으흐억! 닥치고 이거나 좀 치워! 못 빠져 나가겠어! 숨 막혀!”
와이번에게 깔려서 버둥거리는 덴자민과 함께 있는 오토마톤을 알아보고 눈을 휘둥그레 뜬 마족이 나왔다.
“샤를? 너 샤를이냐?”
구출 될 때까지 와이번 담요를 덮고 편안히 바닥에 누워있기로 했던 샤를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어이빨 마족을 보고 인사를 했다.
“모르핀, 반갑습니다. 그 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
“뭐야. 모르핀, 아는 인형이냐?”
모두가 배신감 넘치는 시선으로 모르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르핀은 기죽지 않았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도전적인 시선을 한 모르핀이 히죽 웃자 상어이빨이 슬쩍 드러난다.
“너희 애들이 먹은 그 약, 이 녀석은 그 약을 만든 약사와 연결되어있지.”
다들 입을 다물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바닥에 누운 샤를을 내려다보았다.
머리를 좀 긁으며 거창한 한숨을 내쉰 푸시케 수비대장은 이제 캐롯을 보았다. 그녀가 히죽 웃었는데 역시 모르핀과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이봐, 작은 인형. 이 와이번을 좀 나눠주면 회담을 훨씬 유연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휴~! 여부가 있겠어요? 제가 해체 하는 걸 거들어 드릴게요. 와이번은 우리 주인님 말로는 날개랑 다리 살이 제일 맛있데요.”
캐롯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을 비비며 싹싹하게 대답하자 푸시케가 씩 웃는다. 그러다가 신기하게 여겨 되물었다.
“너 정말 오토마톤인가? 말하는 게 사람이랑 다를 바 없는데?”
“커스텀이라서 그래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한 푸시케는 일단 기다리고 있는 병사들에게 먼저 손짓했다.
“오늘 저녁은 와이번 구이로 회식이다. 해체해. 나는 저쪽 책임자 좀 만나고 올게.”
“와호! 고기다! 고기!”
“으냥! 고기! 하하하!”
대원들의 환호를 뒤로 한 수비대장 푸시케는 혼자서 휴전선으로 향했다. 마을을 나서서 조금 걷자 바닥에 붉은 빛을 발하는 선, 휴전선이 나타났다. 그저 상징적인 의미로 아무런 효과는 없다. 다만 직접적으로 밟으면 알람이 울리는 정도다.
그리고 그 휴전선을 한 걸음 앞에 놓고 맞은편 아르곤 마왕군 휴전선 접경지 마을의 총책임자와 그 호위들이 하나 같이 우거지상을 하고 서 있었다.
팔짱을 하고 있던 헤리슨이 고개를 든다.
“안녕해? 푸시케 수비대장.”
“항상 그렇지. 헤리슨 총사령관.”
서로 씩 웃은 다음 헤리슨이 먼저 두 손을 펴들고 말했다.
“이건 사고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이건 사고다.”
“어, 알아. 넘어온 오토마톤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던데. 와이번에 물려서 날아온 녀석을 따라 들어왔다더군.”
“와이번에 물려?”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나 보구만, 진짜 사고인가 보군?”
헤리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팔짱을 한 푸시케 수비대장은 낮게 말했다.
“그렇지만 대외적으로 이건 협정위반이야. 물론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지.”
“뭘 원해?”
“어홈!”
푸시케 수비대장이 어울리지 않게 헛기침을 하자 헤리슨이 혀를 차더니 함께 온 호위들을 물렸다. 그래서 둘이서만 회담을 했다.
헤리슨이 코를 벌렁거리며 팔을 교차 시켜 X자로 만든다.
“안 돼! 이미 비공식적으로 후려가고 있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그걸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어!”
“헤리슨은 짠순이구나.”
“반대로 내가 당신네 애들을···!”
말을 하려던 헤리슨은 두통이 도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숙인 푸시케가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후~! 얼마든지. 오후후~! 얼마든지 보내 줄 수 있지.”
“됐어! 됐다고! 하여튼 그건 안 돼.”
“어쩔 수 없네. 그럼 그거, 약 좀 줘.”
“약?”
“진통제인데. 너희들에겐 수면제로 쓰는 약이야. 그걸 좀 줘.”
팔짱을 하고 고개를 돌린 푸시케 수비대장이 말했다.
“이 즈음 아이들 머리에서 뿔이 빠지는데, 굉장히 아파. 본국에서 보급이 오긴 하지만 구호약품이 적어. 당연하지, 그 애들은 군인이 아니거든.”
애초에 수비 병력이 여기 와서 애나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담을 초치고 싶지 않았던 헤리슨은 참기로 했다.
“그건 좋아. 얼마면 돼?”
“많으면 좋지만 너희들 밀가루 자루로 3자루 정도, 넘어온 오토마톤도 3대였으니까. 어, 아니 3대 넘어왔고, 하나는 떨어졌지. 그 와중에 한 대는 다시 도망갔고.”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은 헤리슨이 되물었다.
“총 4대가 들어왔던 건가? 와이번에게 물려가는 걸 구출하려고 3대가 휴전선을 넘었고, 그 와중에 1대는 다시 돌아갔고.”
“어, 맞아. 변함없이 산수를 잘하네.”
“칭찬 고맙군. 약을 준비할게.”
“아, 그것도 말인데···. 잠깐 기다려봐.”
몸을 돌린 푸시케는 자기네 마을로 돌아가서 오토마톤 한 대와 마족 하나를 더 데려왔다.
처음 보는 오토마톤이라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마스크나 차림새가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짙었다.
“너 이 녀석, 마스터가 누구야?”
“방주도시 아르곤에서 모험가로 일하고 있는 크랭크입니다.”
“역시!”
도끼눈을 한 헤리슨이 이를 드러낸다. 팔짱을 하고 지켜보던 푸시케가 고개를 쑥 내민다.
“오! 아는 사람인가 봐?”
“개인적으로 아는 녀석이지. 잠깐! 그럼 와이번에게 물려서 날아간 오토마톤은 땅콩이야?”
샤를이 대답했다.
“땅콩? 그게 캐롯을 말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눈썹을 좀 떨어댄 헤리슨이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외쳤다.
“뜨아아아아앙코오오오오오옹!!!!!!! 당장 이리 튀어와!!!!!”
아스라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캐롯이 와다다다 달려온다. 온몸이 피투성이라서 헤리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오오오! 헤리슨! 부르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벌써 봄이지만요!”
“잠깐만, 아니, 잠깐만, 그 전에 그거 피는 뭐야? 너 설마 유혈사태라도 일으켰어?”
작업복을 적시고 있는 붉은 피를 살펴보던 캐롯이 아하하 웃는다.
“지금 같이 떨어진 와이번을 잡고 있어요. 여기 사람들 엄청 배고픈가 보더라고요.”
“너는 정말···!”
지금 상황이 사고이며 실수로 빗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입장 상 헤리슨은 화를 내야하는 직책이었다.
붉은 선 너머에 있는 오토마톤들을 노려보며 다채로운 표정과 언변, 손짓을 동원해 꾸지람을 하던 그녀는 마지막엔 짧은 한 숨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푸시케 수비대장, 그 약 3자루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해주는 거지?”
“음, 그런데 어떤 약사가 만든 거라야 해. 모르핀?”
헤리슨보다 약간 작은 몸집의 모르핀이 고개를 든다.
“여기 샤를의 마스터가 만든 것이라야 한다. 본국의 보급품은 물론이고 지금껏 구해서 써본 약들 중에서도 가장 좋았어.”
“그 녀석이 약학에 조예가 깊은 줄은 몰랐는데, 하여튼 알겠어. 1대1 교환이겠지?”
“물론이다.”
다시 도깨비 같은 얼굴이 된 헤리슨이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이 땅콩버터로 만들어버릴 녀석아! 약 구해올 때까지 당분간 거기 얌전히 있어!”
“예!”
캐롯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씩씩하게 대답하자 헤리슨은 코를 좀 벌렁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건너편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팔짱을 낀 채 바라보던 푸시케가 중얼거렸다.
“오토마톤을 상대로 꾸지람이라니 웃긴 녀석이네.”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 있지. 잘못과 미안함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려고.”
모르핀의 대답에 푸시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시선을 내렸다.
“그렇게 됐다. 몸값이 올 때까지 너희들은 잠깐 이쪽에 있어야해.”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거네요. 알겠습니다! 푸시케 수비대장님! 잠깐 동안 잘 부탁드림요!”
캐롯의 말에 푸시게 대장이 피식 웃는다.
“말하는 게 참 귀여운데, 너 정말 오토마톤이야?”
캐롯은 대답대신 베시시 웃어보였다. 마족 주둔지 마을로 돌아간 그녀들은 마저 하던 일을 거들었다.
“와! 대박이야! 이렇게 큰 와이번은 처음 봐!”
마을 사람들이 다 몰려나와서 와이번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날개피막과 가죽은 가공하기 위해서 옮겨갔고 고기는 발라내 그 자리에서 굽거나 끓였다.
해체를 거의 완료한 캐롯이 뒤를 돌아보자 뜻하지 않은 마을 잔치가 벌이진 상황이었다.
“와 다들 잘 먹네.”
곳곳에 냄비와 불판이 깔려 있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몰려 앉아서 굽거나 삶은 고기를 뜯고 있다. 적대세력권이지만 샤를과 로테는 오토마톤 습성 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족 아이들 곁에 앉아서 음식을 떠먹여 주거나 돌봐주고 있었다.
마족 엄마들이 그걸 몹시 고마워하며 뛰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데려다 앉혔다. 그러면 샤를이 물수건으로 더러워진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었고, 로테가 이어받아 와이번 고기로 만든 스튜 그릇을 안겨주거나 떠 먹여 주었다.
순식간에 오토마톤 보육원이 생겨 버렸다.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한 마족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전투 인형은 의외로 친절한 면이 있었다. 너희들도 그렇군.”
“오토마톤은 이념이나 욕심 같은 걸로 싸우지 않거든요. 그리고 지금 딱히 싸우라는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요.”
고기를 뜯어서 질겅질겅 씹고 있던 마족 여자가 가만히 캐롯을 보다가 뼈다귀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면? 너희들은 명령을 받으면 싸울 거냐? 우리 전부와?”
캐롯은 대답대신 빵긋 웃었다. 그리고는 오토마톤 보육원에 맡겨진 마족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마족 여자를 보고는 이제 히히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숨은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생리적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 마족 여자들이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캐롯은 해체된 와이번을 쳐다보았다. 내장과 뼈 같은 것들이 아직 산더미 같이 남아있었다.
“그보다 여기 남은 이건 이제 어떻게 해요?”
“버리지 뭐, 비위 좋은 녀석들은 먹기도 하는데. 솔직히 내장을 씹고 싶지는 않아.”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다. 눈을 깜빡거린 캐롯은 지금 마족들이 해먹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간단한 구이나 냄비에 넣고 끓인 것이 전부였다.
“아니, 뭐 마족 전통요리 같은 건 없어요?”
“없는데. 배만 채우면 됐지 뭘, 남으면 보존식으로 만들기는 해, 넌 뭐 그런 걸 궁금해 하냐?”
우와, 아무리 마족이 전투민족이라지만 너무 한 거 아님?
두 팔을 걷어붙인 캐롯이 외쳤다.
“오토마톤 캐롯과 함께 하는 오늘의 요리시간! 자! 마족 주부님들 주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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