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농지개간! 79
오토마톤 샤를, 로테, 베누스. 심심해서 따라온 투나와 아리에테도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 받았다.
책상에 앉은 루루 사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회원증 뒤에 주의사항 참고하시고, 누구라도 언제라도 책을 빌릴 수 있으니 자주 올 수 있도록 하세요.”
회원증을 받아 뒷면을 살펴보던 아리에테가 시선을 든다.
“24시간 연중무휴? 여기 밤에도 하는 건가?”
“물론, 하지만 야간 대응은 내가 아니라 이쪽에서 할 거야. 미네르바!”
조그만 오토마톤이 책장 사이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더니 총총 다가온다. 표정 없는 하얀 얼굴, 전투용은 아니지만 멋으로 노란색 방열 가발을 쓰고 있다.
오토마톤 중에서도 가장 작고, 가장 싼 애완용 혹은 작업보조용 오토마톤,
투나와 아리에테의 눈과 입이 커진다.
“어?”
“캐롯이랑 같은···?”
“오우! 미네르바!”
캐롯이 하하 웃으며 손을 들었다.
도서관 관리인 제복을 입고 걸어오던 조그만 오토마톤도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반갑다는 표시 같아서 투나와 아리에테가 웃어버렸다.
책상의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루루 사서가 곁에 다가온 오토마톤 미네르바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자주 와서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가도록 하세요.”
입가에 손바닥을 세운 캐롯이 슬쩍 말했다.
“새벽에 오면 꽤 재미있다? 불도 켜지 않은 도서관에 오토마톤들이 바글바글 거리지.”
투나가 관심을 표현했다.
“무, 무슨 이야기를 해?”
“주인님들 이야기나, 모험 갔다 온 이야기나 이것저것, 인간들이 하는 걸 따라하는 거지. 책도 읽고,”
이제 투나는 책상의 루루 사서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는 처음 봤을 때부터 하고 있던 작업에 매진 중이었다. 즉, 손톱을 다듬고 있다.
어리둥절해진 투나가 캐롯을 내려다본다.
“오, 오토마톤간의 집회잖아? 그, 그런 건 비밀 아냐? 막 이야기해도 돼?”
“응? 아냐. 가끔 술 먹은 루루 사서도 끼어서 수다를 떠는데?”
“으응?”
눈을 크게 뜬 투나가 루루 사서를 보자 손가락을 펴 보던 그녀가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도서관 개방은 관장님과 영주님 허락까지 전부 받은 공식 사항이에요.”
“왜지? 왜 오토마톤에게 지식을 공유 하는 것이지? 아니,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 내가 온 서부에서는 도서관은 마법사나 찾는 곳이었다. 하물며 오토마톤이라니 당치도 않았지.”
책상에 예쁘게 손질된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여기사를 쳐다보던 루루가 캐롯을 보았다.
“캐롯, 이 여자는 뭔데 초면에 자꾸 반말이지?”
미네르바와 손바닥을 마주치는 손장난을 하고 있던 캐롯이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캐롯이 입을 열기 전에 당황한 아리에테가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버님이 군인이시라 말투가, 말투가 원래 이래서···!”
허둥대는 아리에테를 쳐다보던 루루가 방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나도 말을 놓을 거니까. 그런 걸로 하자고.”
“어, 음, 음.”
손가락을 들어 휙휙 돌리던 루루가 말했다.
“어떤 방주도시의 시립 대도서관에 화재가 나서 모든 책이 불타버렸지. 책덕후였던 그곳 영주님은 엄청난 실의에 빠지셨어.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허드렛일에 쓰고 있던 오토마톤이 책 내용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잠깐 숨을 쉰 루루가 눈을 크게 떴다.
“자그마치 10만 3천권.”
아리에테가 입을 살짝 벌렸고, 투나도 귀를 쫑긋 세웠다. 루루는 미네르바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서관은 복구 되었고, 책은 모두 새로 써서 서고를 가득 채웠지. 감동한 영주님은 그 오토마톤에게 어느 신화에 내려오는 지혜의 여신의 이름을 붙여줬어. 그리고 이 전설 같은 현실에 감동받은 사람은 영주님만이 아니었지.”
“현실? 최근에 있었던 일인가?”
“내가 10살 쯤 이었으니, 한 10년 전이지. 동부 방주도시 두칼리온의 시립 대도서관 오토마톤 사서 미네르바, 이젠 관광명소 취급이지만 아직 거기 있을 거야. 가게 되면 한 번 만나보도록 해. 요 미네르바는 그 미네르바에서 따온 거야.”
루루 사서의 팔 받침이 되어주고 있던 미네르바가 두 손을 들더니 V자를 그렸다.
투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 오토마톤의 기억 용량이 그렇게 커?”
“음, 모르겠네. 나는 이제 기체 연령이 10년 정도라.”
루루가 빙긋 웃는다.
“저 쪽 책장에 오토마톤 관련 전문서적들이 있는데 추천할게. 참고로 아직 밝혀진 건 없어. 단체 소유로 마스터 설정이 안되어 있거나 자주 바뀌는 오토마톤들은 사고충돌이 무서워서 정기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편이거든?”
그때 미네르바가 끼어든다.
“학계에 제출된 자료 중에 공식적으로 기억을 지우지 않고 가장 오래된 것은 약 120년 된 오토마톤입니다. 용사의 오토마톤. 지금은 마왕에게 가 있는,”
모두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전설 중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에테과 투나는 미네르바의 목소리가 더 신기했다.
“목소리가 캐롯과 같아!”
“오, 오! 이럴 수가!”
“아니, 뭘 놀라고 그래. 같은 부품을 쓰는 양산품이니까 당연한 거 아님?”
캐롯이 하하 웃으며 말하자 두 사람은 고개를 번갈아 돌리며 미네르바와 캐롯을 보았다. 루루가 귀엽다는 듯이 미네르바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
“이거지, 이게 도서관을 오토마톤에게 개방한 이유지. 모든 것에는 플랜B가 필요해. 지식의 보고는 이어져야해. 책이 불에 타서 안 된다면 오토마톤의 머리에 쑤셔 넣어서라도.”
“그걸 위한 오토마톤의 도서관 회원 가입인가!?”
루루가 히죽 웃는다. 커다란 책상을 앞에 놓은 그녀가 부드러운 몸짓으로 두 팔을 벌렸다.
그 모습이 꽤 멋있어서 투나가 급흥분해버렸다. 호곡!
“지식은 보관되고, 활용되고, 공유 되면서 더불어 이어져야해. 저 미래로,”
“오오오! 야, 야망을 이룬 여자야! 보, 본 받고 싶어!”
투나의 평가에 루루 사서가 폭소 했다.
오토마톤의 도서관 회원가입에 호의적인 이유에 대해서 전해 듣고, 친구도 한 명 사귀고, 책도 몇 권 빌려온 사람들은 이제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전에 길드에 잠깐 들렸다가 가자.”
“음, 그래. 뭔가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알고 싶다.”
이 와중에 투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느라 샤를과 로테에게 이끌러 가고 있었다. 캐롯과 아리에테가 모험가 길드 건물에 얼굴도 비출 겸 최신정보를 들으러 들어간 사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오토마톤 3대의 경호를 받으며 책을 펴든 안경녀 투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투나가 아니라 오토마톤들에게 가 있었다. 작업복 차림에 몸 좋은 남자들이 턱수염을 매만지며 샤를과 로테, 베누스를 살펴본다.
“저기 깨끗하고 튼튼한 오토마톤이 3대나 서 있군. 정비도 잘 됐겠지?”
“중간에 저 여자가 마스터 인가?”
“아냐, 저건 크랭크의 오토마톤이야.”
“크랭크? 아, 그 덩치 크고 친절한 친구? 그 친구라면 올해도 도와주겠지?”
턱수염을 기른 사내들이 하하 웃었다.
“당연하지! 분명 나서줄 거야.”
“좋군. 아주 좋아.”
그때 길드 건물에서 캐롯이 뛰어나왔다.
“오오! 일거리가 들어왔어! 가자!”
“오오! 오토마톤에게 이런 사실이! 너희들 몸에 희소 금속이 풍부해!”
“뚱딴지같은 소리는 집에 가서 해!”
공방에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던 크랭크가 돌아온 그녀들? 을 반겼다. 그는 캐롯이 내미는 의뢰서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도 하는 군.”
“응? 뭘 하는데?”
투나가 끼어들자 운동 하느라 검정색 속옷 한 장만 걸친 크랭크가 손에든 종이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가라. 작업복은 준비해놓으마. 갔다 와서 소프트 스킨을 손보러가자.”
“오우예! 올해도 밭 갈러 출동!”
공문을 읽고 있던 투나가 중얼거렸다.
“봄맞이 농지 개간 작업?”
“매년 이맘때 쯤 굳어있는 땅을 두들겨서 부드럽게 만들고 거름을 뿌리고 농지를 다듬고 개간하는 거야. 아르곤 도시 주변의 밀밭은 그렇게 만들지, 농사는 중요한 거야.”
크랭크도 거들었다.
“농지개간은 힘겨운 작업이다. 그걸 사람이 하는 것보다 오토마톤이 하는 것이 더 빠르고 손쉬운 건 당연하지. 돈도 돈이지만, 식량생산에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오토마톤을 보유한 사람들에겐 이 일을 독려하는 편이다.”
“부디 귀댁의 오토마톤을 시에서 추진하는 농지개간에 보내주세요. 우리 같이 맛있는 빵을 만들어먹어요.”
두 손을 모아 쥔 캐롯이 말하자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이다. 캐롯은 이제 두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작년까지는 나랑 크랭크랑 같이 나갔었어! 이거 꽤 짭짤해! 하루 일당 바로 쳐줌!”
“올해는 모두 나가도록해라. 작업복을 준비해놓으마. 다만 나는 이번엔 빠지겠다. 고된 일을 버틸 정도는 아냐.”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랭크가 일을 쉬겠다고 하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리에테가 손을 번쩍 든다.
“나도! 나도 나가 보고 싶다!”
“농지개간은 힘겹다. 후회 할 텐데.”
“뭐든 경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보통 인간이 아니야.”
좀 생각해보던 크랭크는 아리에테의 출격도 허가했다.
이튿날, 길드에 접수와 작업복을 준비하고, 사흘 째 되는 날의 아침, 중앙 광장을 앞에 둔 아르곤 영농조합길드 앞에 도시의 오토마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와-! 이게 전부 오토마톤이야! 작년보다 더 늘었어!”
아리에테도 눈을 크게 뜨고 각양각색의 오토마톤을 쳐다보았다. 전투용에서부터 가정용, 상태가 좋은 것에서부터 팔이 하나 없거나 몸체의 장갑판이 찌그러진 것까지, 차림새며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방열가발의 색깔과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와···!”
아리에테에겐 말로 표현 못할 모습이었다.
어쩐지 투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오토마톤 사이사이에는 인간 작업자들도 꽤나 끼어 있었다.
단상에 올라간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확성기를 입에 대고 소리쳤다.
“올해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접수명단에 이름 확인하시고 각자 배속된 조장의 지시에 따라 주시면 됩니다!”
오토마톤들과 인간 작업자들은 출석확인을 하고 배속된 조장을 따라 모였다. 여기서 캐롯과 베누스가 한 팀, 아리에테와 샤를, 로테가 한 팀으로 나뉘었다.
아리에테가 좀 긴장했지만 캐롯이 응원했다.
“걱정 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캐롯이 손을 흔들고 조장을 따라 갔다. 캐롯과 베누스는 나눠주는 괭이를 손에 쥐고 성문 바깥의 농지를 두들겨 갈아엎는 작업을 맡았다.
“이야으아아압!”
퍼퍼퍼퍼퍼퍽!!!
오토마톤들이 일렬로 서서 괭이를 휘둘러 땅을 두들기며 지나가자 흙먼지와 함께 땅이 부드럽게 갈아엎어져 있다. 오토마톤의 괭이질이 말이나 소의 쟁기질을 능가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근처에선 2인 1조로 인력쟁기를 끌고 농지를 달리는 오토마톤들도 있었다.
인간 작업자들이 휘파람을 분다.
“이거지!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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