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겨울 감기! 67
“샤를, 두 사람 좀 봐줘. 머리에 물수건을 올려서 머리를 차갑게 해줘.”
“알겠습니다. 어디 가십니까?”
“공방에, 약을 만들어야겠어.”
로브 끝자락을 들어 올리고 후다닥 골목길을 달린 투나는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간이 연구실로 향했다.
“이거하고···! 그리고 이거랑···.”
서랍장에서 나무뿌리와 잎사귀 같은 것을 꺼내 막자에 갈고 찬장에서 유리병을 꺼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도 몇 숟갈 집어넣고 섞은 그녀는 이윽고 검정색 알약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다시 호다닥 달려서 빵집으로 향했다.
지금 투나의 머릿속에는 매우 단순한 연산이 벌어지고 있었다.
빵집 사람들이 아프다. → 빵을 못 만든다. → 오늘 저녁은 못 먹는다.
“그건 안 돼! 내 빵!”
투나의 얼마 안 되는 인간관계와 중요 재산목록에는 빵집 부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필코 살려야해! 빵 만들어야 해!”
그날따라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달린 투나는 다시 빵집에 도착하자마자 체력이 다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을 내밀었다.
“허억허억···! 이, 이거, 내가 만든 건데, 머, 먹어봐···!”
누워 있던 에밀리아가 말했다.
“약은 이미 먹었어요···.”
“그거랑은 달라!”
버럭 소리를 지른 투나는 알약을 한 움큼 쥐어서 에밀리아의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먹였다. 기진맥진해 있는 롤에게도 먹였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어···. 몸이 좀 가벼워 졌어요?”
투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나은 게 아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가, 감기 아니었어? 자, 잠깐만!”
투나는 에밀리아를 일으켜 눈과 입안을 비롯해서 몸 곳곳을 살폈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에밀리아의 입안 목구멍에 뭔가가 부어오른 흔적이 보인다.
“으어? 어어엉?”
손을 놓은 투나는 누워서 씩씩거리는 롤의 입을 벌렸다.
“여기도 있어. 이상해, 임파선이 부었어? 왜? 감기 때문에 부은 거잖아? 아냐? 당연하지 감기에 걸리면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부을 수도 있···.”
누구랑 대화를 하는 것인지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던 투나가 다시 한 번 롤의 입을 벌려 눈을 들이 댔다. 누가 본다면 입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 같았다.
“에, 에밀리아!”
“오왁?”
자리를 옮긴 투나는 에밀리아의 입을 벌리더니 그 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몸은 좀 괜찮다고 했지?”
“어, 예. 그 약 먹기 전 보다는 요.”
“그럼 좀 기다려. 다시 약 지어올게. 바, 밥은 먹었어?”
초취한 얼굴의 에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 어제부터 아무것도···.”
“그, 그러면 안 돼! 샤, 샤를!”
“예.”
“스, 스프 같은 거 할 수 있어?”
허리에 찬 검을 풀어서 벽에 기대어 놓은 샤를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할 수 있습니다.”
“부, 부탁해. 나는 다시 야, 약 만들어올게.”
부리나케 공방으로 달려간 투나는 조합을 바꾼 약을 다시 지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듣지 않았다.
“우오오오-!”
투나는 분노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감기는 약 먹으면 그냥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약간 좋아지기만 할 뿐 도무지 호전이 되지 않는다.
“대체 왜지?!”
4차 시도 후 시간은 새벽이 되었다. 공방의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엄지손가락을 씹으며 고민하고 있던 그녀가 가위를 들고는 침대 맡에 놓인 곰 인형에게 다가갔다.
“존슨. 네 도움이 필요해.”
곰 인형 속에 숨겨둔 두꺼운 노트를 꺼내 그것을 파라락 넘기던 투나는 원하는 구절을 찾더니 메모장을 꺼내 글자를 휘갈겼다.
그리고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 그깟 빵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튿날 아침, 잠을 못자서 퀭한 눈이 된 투나가 빵집으로 들어섰다.
“샤, 샤를···.”
“예.”
투나는 밤새 간호 중이던 샤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샤를은 곧바로 혼자서 모험가 길드로 가서 퀘스트를 발주했다.
그리고 그 퀘스트는 초보 모험가 지오의 눈에 띄었다.
“약초 채집? 이 시기에?”
“지오! 뭐해? 목장 출근 시간이야!”
원래라면 이번 겨울 지오의 파티는 마왕군 접경지 휴전선 마을에서 모집하는 겨울 순찰 경비단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출발을 하루 앞두고 보리스와 코비가 감기 몸살을 호소하며 드러눕는 바람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아쉬운 대로 지오와 비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만만한 것이 목장일 뿐이었다.
출근길에 버릇처럼 길드에 들려 얼굴도장을 찍고 최신정보를 살펴보던 지오의 눈에 띈 것이 약초채집 퀘스트였다.
작업복 차림의 비타가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걸 보았다.
“오올! 이거 좋네.”
“할까?”
“하자! 어차피 몬스터도 전부 남부로 가서 겨울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어.”
퀘스트를 받아든 두 사람은 서둘러 기지? 로 돌아왔다. 파티 저금을 탈탈 털어서 새로 들여놓은 마력보일러는 열일을 하고 있고, 간이침대에 보리스와 코비가 누워서 끙끙 앓고 있다.
“어, 어디가···?”
“퀘스트! 돈 벌어올게요!”
작업복 차림의 비타가 지오를 도와 말과 마차를 끄집어냈다. 출발하기 전 비타는 두 사람에게 신성치료를 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네.”
“왜?”
“보통 힐 한 번이면 금방 좋아지거든? 근데 별 효과가 없어. 올해 감기는 무섭네. 의뢰비 받으면 약이라도 좀 사서 먹여야겠어.”
“음.”
나이차가 좀 나긴 했지만 소꿉친구 사이라 비타는 지오에게만은 편하게 대했다.
작업복 차림으로 마차를 타고 성문을 나선 그들을 근처 숲속을 뒤지고 다니면서 눈을 헤치고 풀뿌리와 나무뿌리 같은 것을 캐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오. 여기 마족 뿔이라는 것도 적혀 있는데?”
“마황이라는 독초가 있는데, 그 뿌리는 마족의 뿔이라고도 불러.”
지오는 그렇게 말하며 흙속에서 기괴하게 생긴 뿌리를 뽑아냈다.
“근데 말이 약초 채집이지 리스트에 오른 이거 전부 독촌데?”
“그렇지? 손 깨끗하게 씻어. 독 오를라.”
“으에, 그건 싫다.”
그리고 저녁 무렵쯤, 바구니 한 가득 재료를 싣고 돌아왔다.
“이거 주소를 보니 크랭크 아저씨네 공방이야. 잘됐네. 나 길 알아.”
“그럼 바로가자.”
“아! 오는 길에 빵도 좀 사가자. 거기 빵집 맛있더라고. 점원도 예쁘고.”
“음.”
마차를 몰아 공방에 도착한 비타와 지오가 문을 두드리자 처음 보는 오토마톤이 나왔다. 올라간 눈매가 샤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방열가발은 놀랍게도 은발이었다.
“호곡!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누구신가요?”
“의뢰하신 퀘스트를 완수하고 왔습니다.”
바구니에 약초를 가득 담아온 것을 발견한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바구니를 안고 공방 안으로 들어간 지오는 내부의 정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토마톤 정비소? 약방?”
“끼야아아악! 왔어! 오고야 말았어!”
저 안쪽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후다닥 달려온다. 기괴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지오였지만 비타는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의연했다. 오히려 놀라워했다.
“우와! 머리 자르셨네요? 잘 어울려요!”
“어, 그, 그래? 고, 고마워.”
바구니를 살펴보던 투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굳혔다.
“마, 마족의 뿔은?”
이상하게 생긴 풀뿌리를 보고 울상을 지은 투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마, 마황뿌리 말고! 내가 말한 건 지, 진짜 마족 뿔이야!”
“예에!?”
투나는 비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마, 마족의 뿔이 필요해! 피부가 파란 애들이면 더 좋고!”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마구 흔들리고 있던 지오가 대답했다.
“그,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마족이 있긴 합니다만···.”
“있어?! 어디에?”
“마왕군 접경지 휴전선 순찰을 돌다보면 가끔 만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 쪽도 순찰을 돌기 때문에, 아니 근데, 뿔이 필요하면 마족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비타의 지적에 투나의 눈빛이 매서워 졌다. 그녀는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샤를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 우리 샤를을 빌려줄게.”
지오와 비타가 두 팔을 X자로 겹치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노노노! 안돼요! 저희들 실력도 없지만! 이거 잘못하면 국제적 문제가 된다고요!”
투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우! 하는 소리를 내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연구실로 달려가서 큼직한 유리병을 가져왔다.
“이, 이거 줄게. 바꿔와. 마, 마족도 말은 통할거야.”
“이게 뭐예요?”
투나가 음흉하게 웃는다.
“마, 마족에게만 듣는 약이야. 뚜껑을 따서 냄새만 맡게 해줘도 이, 이게 뭔지 알아챌 거야. 거래를 제안해. 이걸 주고, 뿌, 뿔을 하나만 얻어와.”
큼직한 유리병을 받아든 비타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거 받고 우릴 공격하면요?”
“그, 그럴 수도 있겠네. 그, 그 놈들 호전적이니까.”
투나의 말에 비타와 지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투나는 샤를을 가리켰다.
“우, 우리 샤를을 빌려주지. 허, 허튼 짓하면 머리를 잘라버리고 가, 가져오면 돼.”
“투나!”
한참 생각하던 지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뢰비는 어떻게 하실 거죠? 위험수당이 들어가면 꽤 비싸져요.”
“음, 어, 얼만데?”
지오는 한참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약초값 포함 100만 어떨까요? 저희는 이 돈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솔직히 마족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당황한 투나가 말했다.
“외, 외상은?”
비타와 지오가 팔을 X로 겹치며 고개를 흔든다. 투나는 좀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너희들 의뢰비를 생각하면 다, 당장 가진 돈으로는 부, 부족 할 거야. 그러면···.”
투나가 제안을 했다.
“100만 리즈 분량의 약은 어때? 저, 정력제 같은 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비티와 지오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꺄아으악! 무슨 생각했어!”
“아! 으아! 나는 아무 말도 안했어.”
퍽퍽퍽!
비타가 지오의 두꺼운 어깨를 두들겼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뜨거워진 비타가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역시 그건 안돼요!”
“너, 너희 둘 사, 사귀는 거 아냐? 부,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비타와 지오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그리고 또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꾸 쳐다보지 말라고!”
퍼퍽퍽퍽!
“아으아!”
“사, 사이 좋구만. 어, 어때?”
“사이가 좋아도 아직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투나가 음흉하게 웃는다.
“아직?”
“으아악!”
비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고 지오는 이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그럼 뭘 줄까?”
“현찰요! 현찰로 주세요!”
“으음, 도, 돈 벌어야겠네. 좀 늦어도 괘, 괜찮아? 한 달 필요해.”
“상관없어요. 크랭크 아저씨의 조수 씨니까.”
“좋아. 100만 리즈에 계약.”
대충 불러본 가격에 정말 계약을 받아들일지 몰랐던 지오가 씁쓸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그걸 보던 투나는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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