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남부 출장! 58
상단 호위 접수를 마친 모험가들은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배정 받은 자동마차에 올랐다. 크랭크들은 4인 파티로 등록되어져 추가 인원 없이 한대의 자동마차에 다 탈 수 있었다.
짐 더미 위에 기어 올라간 캐롯이 외쳤다.
“파티가 이게 좋네! 불량감자들이랑 신경전 벌이지 않아도 되니 말이야!”
캐롯이 무슨 말을 하는 줄 몰랐던 아리에테는 좌석에 앉아 신기한 듯이 주변을 살폈다. 로테는 공방에서 가져온 책을 펴들었고, 크랭크는 상단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실례합니다! 16호차 차장님!”
“무슨 일이야?”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차장의 물음에 상단 직원이 의기소침해 있는 신관 하나를 데려와서는 말했다.
“혼자 온 분인데, 상단 본부에서는 16호차로 배정 했습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어? 우린 4인 파티라서 딱 맞는데?”
캐롯의 중얼거림에 상단 직원이 편하게 말했다.
“여 신관을 아무데나 집어넣을 수는 없으니까. 캐롯네는 믿을 만하다는 거지.”
“우왕! 이것이 바로 신용! 신뢰!”
높다란 차의 짐 더미에서 휙 뛰어내린 캐롯이 바닥에 착지해서 고개를 들자 아는 얼굴이 서있었다.
“어엇! 에리스! 너 에리스지?”
아는 사람을 만난 여 신관 에리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왜 여기 혼자 왔어? 일단 타! 곧 출발해.”
에리스의 손을 잡아끌고 커다란 자동화물차량의 승객실로 오르자 때마침 창고의 문이 열리면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1호차부터 움직이기 때문에 에리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은 많았다.
“파티가 와해?”
자리에 앉은 에리스가 울상을 지으며 그래도 웃었다.
“출발 전에 파티끼리 술집에서 싸움이 나서···.”
“우와. 운도 지지리도 없네.”
“흑···!”
울먹인 에리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린다. 크랭크가 헛기침을 좀 하면서 캐롯의 입을 다물게 만든 다음 말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에리스 신관님. 나는 크랭크, 캐롯, 아리에테, 로테, 이쪽은 16호차 차장님이신 기스 씨, 부차장 카키 입니다.”
“바, 반갑습니다. 신관 에리스 입니다.”
주머니를 뒤적이던 캐롯이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네거지? 흑마도사 토벌전 때 잘 썼어. 눈물 닦아.”
“고마워요.”
“고맙긴, 그래서 말인데 너 뭐 쓸 수 있었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에리스가 말했다.
“힐, 틴더, 상태이상 해제요.”
“충분하네. 힐만 쓸 줄 알아도 대박이지.”
“맞아요. 남부에 가면 엄청난 인기 몰이할 걸요? 온 사방에서 신관님을 찾는다고요.”
얼굴에 주근깨가 뿌려진 호리호리한 체구의 청년 카키가 코밑을 쓱 문지르면서 말한다.
에리스도 혼자서 남부 출장은 그만두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일단 가면 챙겨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나선 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래, 신께서 보우하사.”
듣고 있던 사람들이 슬쩍 웃는다.
거대한 자동화물차량은 느릿하지만 안정적인 속도로 방주도시 아르곤을 빠져나와 초원과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캐롯과 로테는 화물칸의 짐 더미 위에 올라가 사방을 경계하고 아리에테는 짐 더미를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내용물은 뭐지?”
“남부로 보내는 각종 공산품들이에요. 옷이나 구두 같은 생필품에서 병장기나 오토마톤 같은 거요.”
“오오, 아르곤에서는 그런 걸 만드는 건가?”
미인이 대답해 주자 카키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우리 아르곤에서는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들 말고도 대체로 가공업이 발달해서, 이것저것 많이 만드는 편이에요. 생필품에서부터 병장기 까지요.”
“언제까지 광산에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다만 자랑할 만한 특산품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던 차장이 외쳤다.
“특산품이 왜 없어! 엘프, 드워프들이 환장하는 버터! 치즈! 퇴비가 있잖아!”
카키가 낄낄 웃었고, 크랭크의 어깨에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말했다.
“예, 뭐, 따지고 보면요.”
카키가 덧붙였다.
“이걸 남부로 가져다주고, 남부에서는 또 다른 물건들을 잔뜩 싣고 오는 거예요. 이렇게 다들 먹고 사는 거죠.”
아리에테가 눈을 반짝이며 카키를 쳐다보았다.
“몰랐다! 대단하구나. 이것이 경제라는 것인가?”
“넌 대체 어디서 살아온 거지?”
대수롭지 않은 크랭크의 물음에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나는 서부 쪽에서 활동했었다. 대체로 던전 탐색이나 마법사 길드와 계약하고 그들의 실험 재료를 구해주는 일이 많았지.”
“그러고 보니 서부에는 마법사 길드가 많다고 들었어요.”
“음, 정신 나간 마법사들도 있지만 그래도 말은 통하는 자들이었다. 꽤 충실한 나날이었지.”
가만히 아리에테를 쳐다보던 크랭크였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북부로는 언제 오신 거예요? 어떤 도시에 계셨어요?”
흔히 나올 법한 질문이었다. 카키에게 잘못은 없었다. 아리에테는 웃으며 대답하려다가 뭔가 움찔하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눈빛도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을 감지한 크랭크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아리에테. 숨을 크게 쉬어라. 괜찮다. 너는 지금 두 발로 서서 검을 잡을 수 있다. 우리들도 있다. 아무 문제없다. 신관 에리스.”
“어, 예!”
에리스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크랭크가 상태이상해제를 부탁했다.
“예?”
“빨리.”
“옙!”
지팡이를 들고 짧은 주문을 외우자 아리에테의 몸에 은은한 초록빛이 감돌더니 그 떨림이 가라앉았다.
“푸하!”
“괜찮나?”
“어, 음. 괜찮다. 감사합니다. 신관님.”
크랭크가 말했다.
“이 친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습니다. 고향이나 그런 건 묻지 말아 주십시오.”
“어, 이런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도 방금 전까지 몰랐습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카키.”
카키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리에테가 웃어보였다.
“나는 괜찮아. 걱정을 끼쳐 드렸군.”
“무슨 걱정?”
마침 캐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보는 아리에테의 얼굴이 밝아진다.
“캐롯. 거기에 있었구나.”
“응, 방금부터 여기에 있었어. 그보다! 뭔가 이상한 게 있어! 좌측 창문!”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감이 퍼진다. 캐롯이 가리킨 방향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창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앞뒤의 다른 마차에서도 사람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적습인가?”
“가능성이 높아.”
초원의 저편, 숲이 시작되는 곳에 사람 같은 것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수가 많아.”
“30~40은 되어 보이는 군. 무장 강도단인가?”
캐롯이 인상을 구긴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돕지는 못할망정 같은 인간들끼리 강도질이라니!”
“같은 인간이 아니다. 저건 사람 모양을 한 몬스터야.”
크랭크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그때 앞 차량에서 정지 깃발과 적습 깃발이 연속으로 올라왔다.
창문으로 몸을 내민 카키가 같은 깃발을 들어서 후미 차량에 상황을 알린다. 차장이 짜증스러운 외침을 내지르며 자동화물차량을 정지 시켰다.
“통신 규제가 풀리면 좋겠군! 답답해!”
“망할 엘프들을 갈구고 싶군요.”
크랭크가 도끼를 빼들었다.
“전투준비.”
텁-!
그때까지도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로테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랭크가 말했다.
“신관 에리스는 차량 안에서 대기 하십시오. 당신의 전장은 전투가 종료 되어야 시작됩니다.”
“그냥 에리스라고 불러주세요.”
고개를 끄덕은 크랭크는 모두를 내리게 했다.
적습이 확인 되자 미리 정해진 대로 호위 병력이 차량에서 내려 방어진을 구축했다.
“캐롯, 로테, 가라. 너희들이 1차 방어선이다.”
“예압!”
어디서 몽둥이 하나를 들고 온 캐롯이 으헤헤 웃으며 그것으로 손바닥을 탁탁 쳤다. 로테는 가죽 끈으로 롱소드의 검 집을 빠지지 않게 고정시켰다.
“온다! 1차 방어선 구축 서둘러!”
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캐롯과 로테가 튀어나갔다. 크랭크가 옆을 돌아본다.
“아리에테.”
고개를 돌린 아리에테와 눈이 마주치자 크랭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발검.”
스르릉!
금발 여기사가 번쩍이는 롱소드를 뽑아들자 그것을 시작점으로 모험가들이 모두들 검을 뽑아들었다.
몇몇은 전투보조용 각성 포션을 들이키기도 했다.
“캬! 맛좋구만! 으히히히! 강도단을 몰살시켜라! 봐주지 마라!”
“으하하하! 와라! 누가 더 미친놈인지 보여주마!”
모험가들의 날선 외침도 잠시 시력 좋은 누군가가 눈을 부릅떴다.
“빨라! 사람이 아냐! 저건 오토마톤이다!”
1차 방어선을 구축한 상단의 전투용 오토마톤들이 달려오는 강도단을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인간용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검을 뽑아든다.
“와하하! 골육상쟁이야! 덤벼라! 고철들아!”
빠하하 웃으면서 달려간 캐롯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손도끼를 들고 달려오던 오토마톤이 머리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지자 이빨을 드러낸 캐롯이 다음 목표를 찾았다.
챙-!
롱소드를 든 오토마톤과 맞붙은 로테는 투나 블랙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둘러 상대를 패대기쳤다.
오토마톤끼리의 무시무시한 난전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손 놓고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간간히 방어선을 돌파하고 달려오는 오토마톤에게 대형 화살을 날려 저격하는 방법 외에는 인외격의 자동인형들의 전투에 인간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뒤쪽이다!”
갑작스러운 외침, 놀란 모험가들이 자동화물차량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가자 지척에서 말에 오른 인간들이 활을 쏘면서 덤벼들고 있다.
“양동인가!”
“이 자식들아! 머리 좀 썼구나!”
인간 강도단이 외쳤다.
“돈과 여자를 내놔라! 으하하하!”
“마차 하나만 털어도 이득이야! 가즈아!”
“막아! 오토마톤을 불러들여!”
“안 돼! 우리가 막아야해!”
이윽고 모험가들과 강도단이 격돌했다. 말에 오른 강도단은 기병처럼 모험가들을 짓밟으려 했지만 너무 거리가 좁혀져서 속도를 줄인 상황에서는 기병과 같은 위력은 내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모험가들이 상식을 초월한 상태였다.
“마갑이 없다! 말을 쓰러뜨려! 저녁은 말고기 구이다!”
“이히히힝!!!”
모험가들이 덤벼드는 말을 베어버리거나 자동석궁을 난사해서 달려오는 말을 거꾸러뜨렸다.
챙챙-!
“이히히! 여자 모험가는 오랜만이···?! 무, 무슨 힘이-!? 으억?!”
“으이야압!!”
퍼억!
덩치 큰 남자와 칼을 맞대고 있던 아리에테는 그를 힘으로 밀어버리고 가슴을 발로 차버렸다. 뒤로 굴러가 고꾸라지는 강도를 보던 그녀는 검을 들고 숨을 몰아쉬더니 히죽 웃으며 몸을 돌린다.
그리고 마구 웃기 시작한다.
“으흐흐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자! 다음은 누구냐! 모조리 패대기 쳐주마!”
챙챙! 퍽!
그녀와 검술을 나눌 정도로 제대로 배운 강도는 없었다. 아리에테는 빠르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칼을 휘두르고 걷어차기 시작했다.
“저 미친년은 뭐냐?! 누가 좀 막아봐라!”
“네놈들만 하겠냐!!! 죽어라! 죽어서 세상에 도움이 되어라!”
깡!
“우리도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야! 화물차 한 대 만 양보하면 그냥 보내 주겠다!”
“개소리가 참신하구나! 나는 네놈 간을 씹고 싶다! 그 부어터진 간만 꺼내주면 그냥 보내 줄게!”
눈이 돌아간 모험가에게 강도단이 질리기 시작한다.
퉁!
캉!
“흡!”
날아오는 활을 방패로 막고 도끼를 던지자 얼굴에 도끼를 맞은 강도가 피를 쏟으며 말에서 떨어진다.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자동화물차량으로 기어 올라가는 강도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고 사람이 떨어진다.
“으아악!”
깨진 창문으로 투구를 내민 크랭크가 아래쪽의 모험가들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하하! 크랭크!”
위이이잉!
그때 자동화물차량 하나가 탈취 당해서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크랭크는 차량 안으로 들어가더니 운전석에 앉았지만 다시 일어났다.
“내가 하지.”
코피를 닦으며 차장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부위이이잉!
마력석을 이용한 마력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화물차량은 그다지 빠르지 못하다. 하지만 차장들은 그 구조에 대해서 자세하기 때문에 급격하게 출력을 올리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거기 서라! 이 자식아!”
“뭐, 뭐냐?!”
도무지 자동화물차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간 차량은 탈취당한 차량을 들이받아 버렸다.
콰광-!
“으악?!”
굉장한 충격에 차량이 옆으로 휙 돌아버리자 어디선가 오토마톤 하나가 재빠르게 뛰어들더니 운전석으로 들어가 강도를 바깥으로 내던져버렸다.
백병전으로 난장판인 상황에서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크랭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아르곤 상회조합이다! 너희들 강도단을 모두 죽일 것이다! 죽여서 그 살을 뜯어먹을 것이다! 하나도 살려두지 않겠다! 불의와는 협상도 없다! 죽여라! 전부 죽여라!”
상대의 전의를 꺾기 위한 헛소리였지만 광기는 전염된다. 모험가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으아아아아! 오늘 저녁은 네놈들의 살과 피로 이뤄질 것이다!”
“아하하하! 다음은 누구냐! 약해! 너무 약해! 다음은 누구냐!
퍽퍽퍽!
미친 모험가들과 미친 여기사가 날뛰는 와중에 미친 오토마톤마저 나타났다.
“으하하하! 뒈져! 이 인간형 몬스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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