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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56화 (56/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대인공포증환자! 56

마녀 고르곤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것인지 기절한 채 마차에 실려 아르곤의 공방으로 돌아온 크랭크는 거의 3일간 드러누워 몸조리를 해야 했다.

“···뻐근하구나.”

“괜찮아?”

“처, 처음 이, 이틀 동안은 정말 시, 시체 같았어.”

크랭크의 침대 곁으로 투나와 아리에테가 앉거나 서서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손에 든 머그컵에 담긴 스프를 후르릅 마신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괜찮아. 아직 남부출장 공고는 안 떴지?”

“아직 본격적인 겨울 아니니까. 일주일 정도는 더 지나야지.”

“그 동안 쉬면서 체력 회복을 해야겠어. 쉬는 것도 일이다.”

그때 아리에테가 크랭크의 어깨에 떨리는 손을 올린다.

“만져보고 싶었다. 정말 탄탄한 몸이구나.”

“응?”

크랭크가 무슨 일이냐는 듯 그녀를 올려다본다. 투나가 히히 웃는다.

“오, 오토마톤과 신경계를 리, 링크 시켰어. 이제 아, 아리에테는 정말 수, 수족처럼 움직이는 팔다리를 가, 갖게 됐지.”

“···자세히 말해봐.”

신이 난 투나가 크랭크에게 아리에테의 몸에 설치한 신경계 공유기를 설명하자 크랭크가 엄청난 호기심을 드러냈다.

“굉장하군! 어떻게 한 거냐? 설계도가 있나? 개념안은?”

“어, 없는데. 한번 만들어볼까?”

“부탁한다.”

발판에 올라 선 채 화로에서 팬케익을 굽던 캐롯이 소리를 지른다.

“누워 있으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해!”

“어, 음.”

원체 기력이 없던 크랭크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잘됐군. 모든 게 잘 됐···.”

“크랭크?”

투나의 얼굴 옆으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팬케익 접시가 내밀어 졌다.

“자는 거 깨우지 마.”

“어, 응. 캐롯 엄마. 돌아와서, 기쁘다.”

아리에테도 접시의 케익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쁘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숙면이구나.”

“감각을 공유시키다니 별나지만 굉장한 짓을 했네. 잘했어. 투나 어린이.”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팬케익 접시를 받아들고 있던 투나의 머리를 캐롯이 쓰다듬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투나가 으흐히히 하고 웃는다.

“이, 이젠 말도 잘하네.”

“그렇지.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줘 버렸네.”

아리에테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거 너무 맛있구나.”

“너희 둘은 요리를 좀 배워야해. 시집가서 어떻게 할 거야?”

“배, 배달시키면 되지 않을까?”

“투나 어린이는 굉장한 말을 하네. 널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쫓겨난다?”

포크를 입에 문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투나가 고개를 돌린다.

“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투구를 쓴 크랭크가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

“아리에테는 잘됐네. 축하해. 이제 모험가 복귀도 얼마 안 남았네?”

시온에게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무릎을 굽힐 수 있게 된 아리에테는 팔을 들어 캐롯의 하얀 볼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감촉이 미미하게나마 전해진다.

긴 악몽에서 깬 기분이야.

“크랭크가 돌아오면 시민 등록과 모험가 등록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오우. 모험가 아리에테. 듣기 좋은걸?”

흐뭇한 표정으로 접시를 든 아리에테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한 달 전 만해도 온 세상을 비관하며 담요 한 장으로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시, 시민 등록?”

“신원 보증인이 있으면 된다고 들었어. 그건 크랭크가 회복하면 다시 이야기 하자. 설거지는 누가 할래?”

아리에테가 손을 든다.

“손의 감촉을 좀 더 느끼고 싶다. 무엇이든 만져보고 싶어.”

의도는 좋았지만 힘 조절이 익숙하지 않았던 아리에테는 접시를 몇 개 깨먹고 캐롯에게 치도곤을 당했다.

그리고 이틀 뒤, 크랭크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좀 더 누워 있지 않아도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이제 조금씩 몸을 움직여야해. 너무 누워 있으면 오히려 근손실와.”

크랭크는 투나와 아리에테를 불러들였다.

“외출준비를 해라. 시청에 가자 너희들의 시민등록을 해야겠다.”

아리에테는 좋아했지만 투나는 좀 무서워했다.

“괘, 괜찮을까? 내가···.”

“괜찮다. 도시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하려면 시민 등록은 필수다. 가자.”

아직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두 사람은 로브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공방을 나섰다.

캐롯이 앞장을 서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길을 지나던 털보들이 캐롯과 크랭크를 알아보고 외쳤다.

“헤이! 크랭크! 캐롯!”

“우와! 털보 모험단!”

“얌마!”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들이 낄낄 웃거나 주먹을 흔들거나 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후드를 썼음에도 투나는 몸을 움츠렸고, 그걸 아리에테가 안아주었다.

남자들은 크랭크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캐롯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와! 말끔해졌는데? 이제 수리 다된 거냐? 전투복은?”

“전투복은 아직 안됐어요. 한참 만들고 있지.”

고개를 끄덕인 털보들인 허허 웃는다.

“역시 길드에는 네가 필요해. 어서 가서 캐롯이 돌아왔다고 소문을 퍼트려야겠다.”

캐롯이 마주 웃어주었다. 사내들은 크랭크와도 안부를 주고받다가 뒤에 선 사람들을 가리켰다.

“누구야? 이 사람들은?”

“조수와 지인입니다. 시민 등록과 모험가 등록을 하려고요.”

“오오! 새로운 모험가는 언제나 환영이야! 반갑소! 우리는 파티 석양의 칼잡이 들이오!”

파티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손을 내밀자 투나는 더욱 몸을 움츠렸고, 크랭크가 사정을 말하려는 찰나 아리에테가 나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크랭크에게 신세 지고 있는 아리에테 입니다.”

“크헉! 미, 미인이잖아! 크랭크!”

“그렇습니까? 저는 그다지.”

“자네 눈은 단추 구멍인가!”

금발 털보가 앞으로 나섰다.

“여기는 가스톤, 나는 폴로, 그리고 바실리. 우릴 기억해 주시오! 여기사님!”

금속으로 된 손을 보고 로브 안쪽에 갑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한 털보들이 호들갑을 떨자 아리에테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시오!”

“아르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인은 언제나 환영이야!”

“잘가요! 털보 모험단!”

“얌마! 추워서 기른 거야!”

캐롯과 왁왁 거리는 털보들을 보던 아리에테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크랭크가 물었다.

“어때?”

“오랜만에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 긴장되는 군.”

“···나는 무섭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인 후드 속에서 투나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긴장해서 더듬거리지 않았다.

“대인 공포증인가. 장기적으로는 극복하는 편이 좋을 거다. 사람은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중요해”

“걱정 마! 내가 너를 지켜 줄게! 내가 있는 한 누구도 투나를 건드릴 수 없으셈!”

캐롯이 작은 주먹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크랭크의 정론보다 캐롯의 저 자그만 주먹이 더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한 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인공포증 환자들을 어르고 달래 시청에 도착한 그들은 의외로 간단하게 시민등록을 할 수 있었다.

“신원 보증인이 유명한 사람이면 절차가 대폭 간소화 되거든요. 하지만 얼굴 정도는 보여주셔야 해요.”

“음.”

“으···.”

아리에테와 투나가 후드를 벗었다. 담당 직원이 좋아라했다.

“어머나, 둘 다 미인이네. 왜 얼굴을 감추고 다니세요?”

등록 후 시민증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아리에테의 모험가 등록을 위해서 모험가 길드에도 들렸다.

겨울이지만 모험가들의 일은 마르지 않기 때문에 길드를 오고가던 많은 사람들이 분위기 메이커의 등장에 환호했다.

“으하하하하! 내가 돌아옴!”

이제 빨간 머리를 한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문 앞을 가로 막자 안을 오고가던 사람들이 낄낄 웃는다.

“캐롯 수리 끝났나 보구나.”

“잘됐네. 아주 말끔해졌어.”

“크랭크, 저 소프트 스킨은 대체 어디서 씌우는 거요? 가격만 맞으면 우리 애도 씌우고 싶은데.”

전문 업자 수준은 아니지만 의외로 솜씨가 나쁘지 않아서 푼돈을 주고서 그에게 정비를 맡기려는 사람들이 꽤나 있지만 크랭크는 한사코 고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받고 작업을 하는 순간 그건 영업입니다. 무자격자의 영업은 위법입니다. 정비 길드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크으-! 그랬지! 크랭크! 모험가는 때려 치고 정비소를 차리라고! 내가 단골이 될게!”

이렇게 정비 길드를 거론하면 대다수의 정비거지들이 떨어져 나간다. 크랭크는 가입하지도 않은 정비 길드에 감사했다.

“언젠가 늙으면 가게를 내는 것도 괜찮겠지요.”

“정말?!”

의외로 기뻐한 것은 캐롯이었다.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크랭크의 앞으로 달려온 캐롯이 말했다.

“너 나이 먹으면 모험 안 나가고 얌전히 있을 거야? 느긋하게 오토마톤이나 고치면서?”

크랭크는 기분이 좀 묘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로서 활동 할 수 있는 나이는 한정적이다. 가능성 높은 미래가 되겠지.”

“얏호! 나는 주인님이 늙어서까지 도끼 들고 오크 잡으러 다니려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캐, 캐롯은 엄마 같으네.”

크랭크의 뒤에 바싹 달라붙어있던 투나가 말했다. 캐롯은 히히 웃으며 크랭크를 보다가 투나를 보았다.

“투나투나, 사람 많은 데는 좀 어때?”

땀을 좀 흘리며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투나 였지만 죽을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 나에겐 아직 이른 상황이야.”

“우리가 곁에 있다. 걱정 말고 익숙해져라.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모든 걸 해결 할 수는 없다.”

“크랭크 뒤에 그 할머니는 뭐예요?”

장난스러운 얼굴의 젊은 모험가 무리가 다가온다. 슬쩍 숙여 투나를 쳐다본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여자네?”

“이뻐?”

“나름? 근데 좀 어둡게 생겼네.”

“와! 크랭크 취향이 밝혀지는 순간인가!”

“이런 여자가 취향? 크랭크 아저씨 특이하네?”

“얌마, 의외로 밤일은 잘할 줄 누가 알아?”

“그건 불꺼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님?”

모험가들도 다들 사이가 좋은 건 아니어서 서로 간의 신경전은 흔했다. 크랭크나 캐롯도 이런 시비는 워낙 많이 받아와서 무신경해질 정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너희들 자꾸 밉상 짓하고 다니면 일하다가 뒤에서 칼침 맞는다? 프래깅이라고 알아?”

“뭐? 이 땅콩 인형이···!”

한 걸음 다가온 모험가들과 양손을 허리에 댄 캐롯이 대치했고, 크랭크도 팔짱을 낀다.

“내 조수다. 가족이나 지인은 끌어들이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아, 크랭크가 말을 놨어. 저거 위험한데.”

“어이! 그만해! 소란 떨지 마!”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무리를 떨어뜨렸다. 그때 아리에테가 서류 한 장을 들고 뛰어온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졌는지 후드는 벗은 상태였다.

“다됐다! 나도 이제 모험가다!”

모인 사람들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아리에테가 캐롯에게 말을 전해 듣고는 눈썹을 하늘 위로 치켜세웠다.

그녀는 크랭크의 옆으로 가서 팔짱을 하더니 버럭 외쳤다.

“내 가족을 모욕하지마라!”

키이이이잉···!

전투를 감지한 시온이 마력엔진의 출력을 높인다.

아리에테의 가슴 밑에서 초록색 섬광이 새어나오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수근 거리고 그때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모험가 길드 운영 직원들이 팔짱을 풀었다.

심심하면 난투를 벌이는 모험가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대인 전투력만큼은 상위 등급인 괴물들이라 다들 찔끔했다.

크랭크도 헛기침을 하더니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다들 돌아서 나갔지만 캐롯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손나팔을 만든 캐롯이 외쳤다.

“자! 이제 며칠 안 남았어! 다들! 겨울 남부 출장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어?!”

방금 전까지 살벌하게 칼침 운운하던 캐롯의 신나는 외침에 모험가들이 환호를 지른다.

“크하아하하하!”

“끼요오오옷!”

“이얏호우!”

모험가들은 대체로 활기차며, 그 중에서 베테랑들은 매사 유쾌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한 일은 일상이고, 그 때문에 비참하고 괴로운 일도 많이 겪다보니 정상인들은 대부분 나가떨어지고 약간 모자라고 이상한 사람들만이 이 바닥에 남게 된다.

그래서 캐롯의 장난스러운 외침에는 언제나 수요가 있었다.

“그래! 이 녀석아!”

“으하하하! 올해도 남부 미녀들을 만나러 가야지!”

“돈도 벌고!”

“오크 고기! 트롤 고기! 남부식 양념장을 바른 몬스터 구이가 또 별미지! 크응헤헤헤!”

이를 갈면서 물러서는 젊은이들에게 윙크를 찡긋한 캐롯이 귀여운 몸짓을 하더니 혀를 빼문다.

“그럼 남부에서 보자고! 데헷!”

길드에서 환호가 터진다. 집무실에 앉아서 이번 달에 출간할 동화를 검토하던 길드 마스터가 흐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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