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50화 (50/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남부 출장 준비! 50

“셀린 경비대장님이 되셨어!”

“이건 인정이지!”

“축하드려요!”

모두는 급기야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경비대원들도 자기일인 것 마냥 기뻐했다. 경비대원 하나는 감동에 울기까지 했다.

“드, 드디어 경비대장님이 겨, 결혼하시는 군요···!”

“제비뽑기 따위에 결혼까지 하겠냐! 이 등신아! 너희들 영창 각오해라!”

“옙! 기쁘게 다녀오겠습니다!”

셀린 경비대장의 사정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그녀를 공방 앞으로 인도했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 된 셀린 경비대장의 앞으로 발판에 올라가 있던 캐롯이 폴짝 뛰어내렸다.

“셀린 제1경비대장님! 축하드려요!”

“네가 캐롯이구나. 이야기는 몇 번 들었다. 자네가 크랭크고.”

크랭크가 거대한 몸을 숙여 인생을 도시에 바친 셀린 경비대장에게 예의를 표시했다. 모여 있는 시민들을 돌아본 셀린 경비대장은 코를 벌렁거리며 응원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보좌담당관들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가 다시 크랭크를 보았다.

“반은 타의지만 상관없어. 머리카락 따위야 얼마든지 다시 자란다. 지금 자르나?”

모여 있는 사람들을 돌아본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자르는 것이 시민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겠지요.”

“알았다.”

그때 캐롯이 외쳤다.

“은상! 은상은 누구야!?”

“여기 있어!”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는 와중에 누군가가 소리를 치고 어떤 소녀의 등을 떠밀었다.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사이로 걸어 나온 것은 보기 드문 은발 소녀였다.

“저, 이, 이게 당첨이에요?”

손에든 추첨권에는 샤를 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캐롯이 외쳤다.

“추첨이 끝났어! 고마워! 다들 모여 줘서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공방 안으로 들어간 크랭크가 의자와 천을 가지고 나왔다. 바닥에 하얀 천을 펼치고, 그 위에 의자를 가지고 들어갔다.

먼저 셀린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은 그녀의 빨간 머리카락은 꽤나 좋은 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자르겠습니다.”

“아아.”

서걱!

세린 경비대장이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끝난 건가?”

“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잘라낸 빨간 머리카락을 자루에 담으려던 크랭크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고 그것을 슬쩍 들어보였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그저 조용한 미소와 박수만을 남겼다.

“이거, 받으십시오. 시세의 2배입니다.”

단발이 된 셀린 제1경비대장이 눈썹을 세우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크랭크는 진지했다.

“받으셔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 소문의 공식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캐롯 인사드려.”

얼떨결에 손에 묵직한 주머니를 받아든 경비대장에게 캐롯이 다가왔다.

“고마워요! 셀린 경비대장님!”

“그래. 앞으로의 네 활약을 기대하마. 나는 이제 가겠다.”

“예! 살펴가세요!”

호위 경비대원들과 함께 인파를 헤치고 돌아가는 셀린 경비대장을 캐롯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열렬히 환송했다.

그 다음은 은발의 소녀,

삭둑,

눈가에 물기가 좀 맺힌 소녀였지만 의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은 그것마저 보고 박수를 쳐주고는 하나 둘 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판에 오른 캐롯이 그들을 배웅했다.

“잘가! 일부러 찾아와줘서 고마웠어!”

“다음에는 내가 될 거야!”

“그래! 기억할게! 하하하!”

캐롯이 구경꾼들과 입담을 나누는 동안 크랭크는 은발의 소녀를 공방 안으로 불렀다.

“이쪽이다.”

“예? 예?”

작업장으로 소녀를 안내한 크랭크는 천을 걷어 오토마톤을 보여주었다. 눈매가 약간 위로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을 하고 있는 오토마톤이었는데 대대적인 개조를 위해서 외장을 모두 떼어놓은 상태라 내부 구조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이 녀석의 이름은 샤를, 네 머리카락을 씌울 거다.”

“예에···.”

어리둥절한 소녀를 보고 크랭크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시세의 2배.”

“감사합니다. 이제 이걸로 할머니 약 지어드릴 수 있겠어요.”

힘없이 웃는 소녀를 쳐다보던 크랭크가 투구를 쑥 내밀었다.

“할머니가 어디 편찮으신가?”

“아, 예. 무, 무릎이 아프셔서 거동을 못하세요.”

“약국에 가서 할머니 무릎에 좋은 약을 살 거지?”

“예···.”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이 나오자 크랭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물었다.

“할머니 연세는 어찌 되나?”

“올해 70을 넘으셨어요.”

“장수하셨군. 무릎 말고는 괜찮으신가?”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랭크는 당장 투나의 연구실로 들어가 약초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엇! 뭐, 뭐해!”

“히코스테 뿌리 있나? 양귀비도 필요해.”

“그, 그거는 여기에 있어.”

크랭크의 만행을 보고 놀라서 달려온 투나가 서랍을 뒤져 썰어놓은 나무뿌리를 꺼냈다. 그것을 한 움큼 쥔 크랭크를 보고 투나가 호들갑을 떤다.

“그, 그렇게 많이! 비, 비싼 건데!”

“걱정마라 내가 캐주마.”

약초를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온 크랭크가 그것도 소녀에게 쥐어주었다.

“30분 끓인 다음 식혀서 마시게 해라. 너는 먹으면 안 된다.”

소녀가 눈을 크게 뜬다.

“야, 약이에요?”

“흔하지 않은 머리색이라서 주는 서비스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소녀를 공방 앞까지 배웅했다.

“엇! 너! 은상! 은상인데 은발이야!”

“예. 은상인데 은발이에요.”

돈과 약초를 얻어서 기분이 좋아진 소녀가 방긋 웃는다. 고개를 꾸벅인 다음 총총 사라지는 소녀를 돌아보던 캐롯이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우와, 어린애 은발은 처음 봤어! 저런 색도 있구나.”

“나도 처음 봤다.”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크랭크가 번쩍 고개를 든다.

“캐롯, 쫓아가라. 가서 이름과 어디 사는지 알아와. 다음에도 머리카락을 팔 생각이 있다면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해줘.”

“알았엉!”

몸을 돌린 캐롯이 후다닥 달려갔다. 근질근질 안절부절 못하는 아리에테를 발견한 크랭크가 말했다.

“이번엔 경비대에 걸리지 마라.”

“어, 알았다.”

“받아라, 오는 길에 캐롯이랑 저녁거리 사와.”

돈주머니를 받아든 아리에테가 바람처럼 뛰어서 사라진다. 투나가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나, 나가고 싶었나보네.”

“없던 팔다리가 다시 생긴 거니 좀이 쑤실만하지.”

“이리 내!”

“아, 안돼요!”

은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골목길에서 또래 소년들에게 겁박당하고 있다. 돈주머니를 꼭 안고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소녀를 보면서 소년들이 키득거린다.

“와, 이게 당첨되다니 놀랬다니까?”

“얼마나 든거지? 뺏어봐.”

“우으···!”

주머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을 쓰고 있었지만 주먹질 한 번에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아악-!”

“아까 내가 밀어주지 않았으면 넌 겁쟁이라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 아냐!”

코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소녀는 소년들에게 달라붙었다.

“안돼요! 이, 이거 생활비로 쓸 거란 말이에요!”

“이게 누구한테 대드는 거야! 뜨내기가! 맛 좀 보여줄까?!”

퍽!

“아윽-!”

밀려 쓰러진 소녀의 신음소리에 고개를 돌린 소년 하나가 위험한 제안을 한다.

“야, 우리 저걸로 장사 해보지 않을래?”

“장사?”

“그래 임마. 영감들도 하잖아? 우리라고 못할 건 뭐야? 좀 싸게 하면 잘 팔리지 않을까?”

“그, 그럴까?”

“히히.”

위험한 시선이 쏟아지자 소녀가 겁에 질렸다.

“아으···!”

“그래서 얼만데?”

“어?”

골목길에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남자가 벨트를 주춤 만지며 다가왔다. 소년들이 웃으면서 말한다.

“한 번에 10만 리즈 어때요?!”

“어, 좀 비싼데···.”

“그럼 5만!”

남자가 고개를 든다. 허리를 기울여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보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거 몇 살이야?”

“아재, 나이가 중요해요?”

“그럼, 임마. 너 아동보호법 몰라?”

“에?”

뻐어억!

소년 하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굴이 뭉개졌다. 그걸 보고 속이 불편해진 리모가 골목 벽을 짚고 토악질을 했다.

“우오워에에에엑! 오엑!”

“이 망할 새끼가!”

덩치 큰 소년 하나가 달려와 걷어 차버렸지만 놀랍게도 리모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호, 좀 시원하네. 그래서 얘야. 그거 있는 힘껏 찬 거야?”

“어으···!”

급격하게 표정이 바뀐 소년의 목에 팔꿈치를 휘두른 리모를 보고 놀란 소년들이 막다른 골목에 쓰러진 은발 소녀의 머리채를 잡아들어 올리며 칼을 들이댔다.

“아악···!”

“오, 오지 마! 죽인···!”

퍽! 퍽퍽퍽!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소년들이 후두둑 쓰러진다. 팔을 내린 리모가 중얼거린다.

“남의 인권을 짓밟는 순간, 네 인권도 포기하는 거야. 괴물들아···! 웨에엑!! 콜록콜록···!”

멋지게 말을 하다가 급하게 허리를 숙이고 토를 내놓은 리모가 다시 허리를 펴고 비틀비틀 은발 소녀에게 걸어가더니 허리를 숙였다.

“뭘 봤지?”

“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음, 돈 필요해? 그래 아저씨가 돈 줄게. 이거 받고 입 다무는 거야? 히끅!”

돈주머니를 받아들며 은발 소녀가 말했다.

“이, 이건 원래 제 꺼···.”

리모가 빙그레 웃는다.

“하지만 지금은 내거야. 이거 받고 그 예쁜 입을 다물어주렴. 히끅-!”

술 취한 리모는 돈 주머니를 소녀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비켜섰다.

“가.”

은발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술주정뱅이를 올려다보다가 코피를 닦으며 슬금슬금 걷기 시작했다. 그때 골목길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정의의 사자 등장!”

“어, 그, 캐, 캐롯!”

“은상 받은 은발이!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잖아!”

고개를 뒤로 돌린 캐롯이 외쳤다.

“아리에테! 찾았어!”

“어? 너 캐롯이야?”

벽에 기대서 담배를 피워 문 사내를 보고 캐롯이 고개를 돌린다.

“으엉? 넌 리모 아냐!?”

은발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리모가 낄낄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는 사람 만나서 반갑네.”

“나는 사람이 아냐. 술 먹었어? 이 애들은 뭐야?”

“애들? 히끅! 아! 이 고블린들, 신경 쓰지 마. 내가 처리할게. 히끅···!”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캐롯이 측은한 얼굴로 은발 소녀를 보았다.

“어떻게 하지? 큰일 났어.”

“예?”

“너 혹시 남자친구 있어?”

은발 소녀가 머리를 세차게 휘저었다. 캐롯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조그만 손을 들어 골목길 안쪽, 벽에 기대어서서 담배를 피워 문 술주정뱅이를 가리켰다.

어리둥절하던 은발 소녀, 페트라의 얼굴이 어떤 소문을 기억하고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으아앙! 안돼요! 안 돼!”

“이런 일이 있었지.”

작업실에서 투나를 의자에 앉혀 놓고 그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도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다보면 치안이 불안정해지기 마련이지. 경비인력도 한계가 있다. 도둑길드 같은 것이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그건 범죄자 집단 아냐?”

“의외로 순기능도 있어. 자체적으로 강력범죄자들을 단속하기도 하고, 뒷세계 정보 거래도 하지. 그걸 묵인하고 필요악으로 사용하는 도시들도 꽤나 있다. 음, 다됐다 투나.”

설명을 하면서 자른 머리를 다듬어 준 크랭크가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체 머리카락이 길어서 적당히 남기고 잘랐는데도 길이는 충분했다. 캐롯이 머리를 자른 투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와! 투나! 너 진짜 투나야? 인상이 바뀌었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