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3
거리에서 귀빈들을 경호하고 있던 길드 운영직원 마론이 우연히 지나가는 캐롯을 발견했다. 차림새는 달랐지만 작년까지 특수부대 소속이었던 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마론은 슬쩍 길드 마스터의 귓가로 몸을 기울이더니 낮은 음성으로 중얼 거렸다.
“···오토마톤 캐롯 발견, 후방 6시 방향. 인도 보행 중.”
수도에서 청동문 시험 운행단을 빙자하여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한 귀빈들에게 도시를 설명하고 있던 마빈 길드 마스터가 날카로운 눈을 돌린다.
화려하게 몸을 돌린 그는 열정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여러분! 보십시오! 저쪽에 그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 캐롯입니다!”
“어멋! 어디요!”
“나는 팬이야!”
나름 워프 게이트 시험 운행단을 빙자했기에 화려한 드레스 대신 고급 여행복장을 한 영애들과 부인들, 신사들이 고개를 돌린다.
“엉? 나?”
“여러분은 지금 아르곤 모험가 길드에서도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설적인 오토마톤을 보고 계십니다! 소개 하겠습니다. 오토마톤 캐롯!”
“오오! 실물인가? 그런데 왜 아동복이지?”
“어머 귀여워라-!”
당황한 캐롯이었지만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우왕! 길드 마스터! 어쩐 일이세요? 길바닥에서 뵙네요!”
“오늘은 귀빈들 안내로 나왔단다. 인사드리렴. 수도에서 오신 청동문 시험 운행단이시란다. 이쪽이 단장이신 모로나이트 백작님.”
마르고 꼿꼿한 자세의 노신사는 놀랍게도 조그만 오토마톤을 상대로 모자를 벗어 가슴에 안고 고개를 까딱였다. 자신을 향한 백작의 예의에 감동한 캐롯은 양손을 배에 대고 허리를 숙여 배꼽인사를 해보였다.
“반갑습니다. 청동문 시험 운행단 단장 모로나이트 백작님. 저는 모험가 크랭크의 전투용 오토마톤 캐롯입니다.”
“허허, 귀여운 오토마톤이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일행들의 안전부절을 눈치 챈 노신사가 슬쩍 물러서자 귀부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발행 중인 모험담을 즐겨보는 사람들로 한 번 쯤 캐롯의 이야기도 들어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상상속의 인물을 실제로 만나니 너무나 기쁘단다. 듣기로는 마스터 크랭크가 너를 개조를 했다고 하던데.”
“예! 저는 주인님의 적금을 다 털어먹었죠!”
캐롯의 익살스러운 대답에 귀빈들이 하하호호 즐거워했다.
“듣던 데로 입담이 좋구나.”
“그런데 복장이 너무 간편하구나. 마을 안이라서 그러니?”
자신의 차림새를 살펴보던 캐롯은 머리에 쓰고 있던 손수건을 벗고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보였다.
얼굴의 반은 인간의 그것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검정색 오토마톤 프레임과 눈알 구슬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걸 그대로 목격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떤다.
“어머나 세상에!”
“어쩌다가!”
다시 손수건을 뒤집어쓰면서 캐롯이 하하 웃었다.
“요전에 토벌하러 갔다가 실수해서 불 마법에 탔어요. 전투복도 전부 타버려서 새로 만들 때까지 당분간 이렇게 다녀야해요.”
“와, 정말로 오토마톤이었군요. 너무 사람 같아서 나는 조금 전까지 착각하고 있었어요.”
한 영애의 말에 캐롯이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대단히 요염한 웃음이었다. 귀부인과 영애 몇몇은 그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껴버렸다.
“그래서 캐롯의 주인님은 지금 공방에서 전투복 수리 중인가요?”
“예! 하지만 망가진 전투복은 수리해서 스페어로 돌리고 새로 만든다고 했어요. 그리고 내 몸도.”
길드 마스터가 끼어들었다.
“전체 오버홀 하니?”
“예! 머리칼도 새 걸로 바꾸고요! 두근두근해요! 나 심장은 없지만! 하하하!”
오토마톤의 웃음소리가 너무도 시원하게 들린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대와 티타임도 즐기고 싶군. 그 이야기처럼.”
“와! 드래곤 레어 원정 때 이야기죠? 그것도 보셨어요?”
“물론, 적어도 나는 그대의 이야기는 다 챙겨 보았지.”
“우왕! 찐팬! 반가워요! 헤헤,”
캐롯의 하는 짓이 귀여운 나머지 귀빈들은 꽤 한참 동안 캐롯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스터 크랭크도 만나보고 싶군요. 그는 키가 2미터를 넘는다고 하던데,”
한 귀부인의 제안에 모두가 눈을 반짝였지만 운행단장 모로나이트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 되오. 연락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렇게 많은 여유가 없소. 마빈 길드 마스터, 일정을 진행하시오.”
길드 마스터는 백작에게 감사하며 캐롯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했고, 캐롯은 윙크를 찡긋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럼 여러분! 아르곤에서 좋은 기억만 챙겨가 주세요! 우와! 말하는 중에 저기 준용사급 모험가 로마니 아저씨가 있어요! 오토마톤 울파도!”
“뭣!?”
모로나이트 백작과 몇몇 신사들이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빠르지만 기품 넘치는 걸음으로 그에게 향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귀족 신사들에게 악수를 당하며 정신 없어하는 로마니와 경계하는 울파를 보고 재미있어하던 캐롯이 고개를 갸웃했다.
“로마니 아저씨는 미중년이라고 들었는데, 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응? 저분 이야기 못 봤니?”
“예. 아니! 그 전에 우리 이야기가 동화책으로 유통된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알았거든요!”
“으허허험! 여러분의 이야기는 길드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캐롯과 마빈 길드 마스터의 우스꽝스런 캐미에 귀부인들이 즐거워했다.
한 영애가 설명했다.
“보면 알거야. 저 분의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거든?”
“와! 정말요!? 길드 마스터! 아르곤에도 그 동화책 풀어주세요!”
“그럴 참이란다. 그보다 서두르시죠. 준용사급 모험가 로마니가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저 울파를 실물로 보다니!”
“머리가 정말로 오렌지색이에요! 예뻐라.”
캐롯은 빙그레 웃으며 귀빈들을 배웅했다.
캐롯은 돌아오는 길에 롤 아저씨네 빵집에 다시 들렸다. 투나와 아리에테에게 먹일 간식을 사기 위해서였다.
“여기요.”
“음···.”
근엄한 표정으로 에밀리아를 올려다보던 캐롯이 빵바구니를 받아들며 진지하게 물었다.
“에밀리아 남자친구 있어?”
“예? 아, 아뇨.”
“오, 그래?”
갑자기 주방에서 빵집 주인 롤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 에밀리아를 데려가려면 크랭크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어이! 아저씨 딸이잖아! 아저씨랑 싸워 이겨야지! 물론 크랭크는 두 말 않고 나설 거지만!”
“으허허허! 너희들의 몸은 내가 만든 빵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러므로 내 자식과 마찬가지지 않겠느냐!”
“뭐야 그거! 설득력 있네!”
롤에게 웃어준 캐롯이 에밀리아를 다시 보았다. 아직 앳되어 보이지만 금방 어른이 될 거다. 캐롯은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문 들었어?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팔면 남자친구가 생긴데.”
“허억?! 저, 정말인가!”
“아저씨는 좀 빠지쇼잉!”
캐롯은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 롤을 보았다. 새치가 섞인 밤색 머리카락이었고, 고개를 돌린 곳에 서있는 그의 딸 에밀리아도 부드러운 밤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머리카락을 좀 길러보도록 해. 혹시 아니? 진짜로 좋은 사람 생길지.”
“이 녀석 아주 대놓고 우리 딸에게 영업을 하는 구나!”
“에이! 지금 당장은 짧아서 안돼요. 언젠가! 먼 훗날에!”
모자를 벗고 머리를 좀 만져보던 에밀리아가 방긋 웃는다.
“예, 길러놓을게요. 언젠가 때가 되면 오세요.”
“와! 정말?! 그럼 침 발라 놓은 거다?”
에밀리아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뛴 캐롯은 손을 흔들어주고 빵집을 나섰다. 멀어져 가는 캐롯을 창문으로 내다보던 롤이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겠니?”
“머리카락이야 다시 자라는 걸요. 그리고 크랭크 아저씨가 우리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일까? 머리카락을 잘라주면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아빠도 참!”
“아까 그런 일이 있었지.”
“청동문 시험 운행단이라. 슬슬 그걸 개방하려는 건가?”
크랭크의 입을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지만 시선은 작업대에 올려놓은 아리에테와 오토마톤의 팔다리를 번갈아 살펴보고 있다.
“으음! 이, 이 맛은?!”
바구니에서 시나몬 롤을 주워 먹고 있던 투나가 눈을 부릅떴다. 아리에테의 입에 빵조각을 떼어 넣어주던 캐롯이 고개를 뒤로 돌린다.
“맛있어?”
“음! 어, 어디에서 사온 거야?”
“8번가의 롤 아저씨네 빵집. 요 앞에 있어.”
“다, 다음에 가, 같이 가자.”
“투나 돈 있어?”
회심의 미소를 지은 투나는 크랭크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빠, 빵 사먹을 돈은 있어. 그, 그리고 침대 들어왔어. 화, 화장실도 만들었어. 네, 네 주인님은 재주가 참 좋아.”
“호오오?”
공방 안을 둘러보던 캐롯은 가구 배치가 약간 바뀐 것과 저 멀리 안쪽 보일러 옆에 칸막이 화장실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네.”
“내일도 바빠질 거다. 내가.”
“나는 뭘 하지?”
작업대 위에 아리에테를 앉혀놓고 오토마톤의 팔을 대어 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종이에 글을 휘갈기던 크랭크가 말했다.
“투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옷을 좀 사도록 해. 저 꼴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아리에테는?”
아리에테는 여전히 속옷도 없이 크랭크의 상의를 빌려 입고 있었다.
“아직은 필요 없어. 팔다리 붙이고 나서 생각하자. 지금으로선 이걸로 충분할 것 같다. 어차피 여자들뿐이잖아.”
“넌 남자잖아?”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당신은 내가 남자로 보이나?”
“어으···.”
크랭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리는 현재 임시 가족이다. 대수롭지 않은 걸로 부끄러워하지 말자.”
아리에테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캐롯은 파하하 웃었다.
여느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는 등의 일상이 수일간 반복되었다. 그 동안 투나는 옷만 사는 것으로 모자라 각종 생필품을 더 사들여 공방에 들여놓았고, 캐롯은 크랭크의 심부름을 다니느라 그걸 막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오토마톤과 부품을 조합해서 그것들을 깎고 붙이고 교정하는 등의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점점 아리에테의 표정은 밝아져갔다.
“오늘은 팔의 구동 실험을 할 거다.”
“이제 움직여?”
“음, 팔만.”
냄비를 흔들어 야채를 볶고 있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작업대에 앉아 피로에 절여버린 모양의 크랭크가 마침내 완성한 개념안에 대해서 설명했다.
물론 물건은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내 실력으로는 도무지 단독으로 움직이는 의수를 만들 수 없었다. 제어계도 문제고, 동력도 문제야. 그래서 결국 오토마톤 한 대를 통째로 개조하기로 했다.”
오토마톤을 분해해서 가슴과 배, 골반을 형성하는 부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아리에테를 집어넣고, 명령을 받은 오토마톤이 대신 팔과 다리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외골격 슈트 형태지. 이른바 입는 오토마톤이다.”
“뭐라고? 다시 설명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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