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42화 (42/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2

식사 후 크랭크는 캐롯의 옷을 벗기고 씻기기 시작했다. 전투복을 벗은 캐롯의 몸은 손과 발, 그리고 화상을 입은 얼굴 절반에 검정색 오토마톤 프레임이 드러나 있었고 그 외엔 인간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배, 배꼽도 있어?”

“가짜야. 작업자가 재미로 만들어 보았던 거지.”

“오, 오오.”

물통에 서서 고개를 돌린 캐롯이 대답했다. 그 앞에 앉은 크랭크는 물을 부어 비누거품을 씻겨낸 다음 말했다.

“외관상 특별한 건 없구나, 머리카락은 새로 올려야겠다. 이건 이제 못쓰겠어.”

“어쩔 수 없지. 내일 나 잠깐 멜리사 보러 갔다 와도 될까?”

“그래. 간 김에 플루이드에게 머리카락 수배도 부탁해. 아니면 봐둔 사람 있어?”

“없어.”

모든 것이 신기한 투나가 또 끼어들었고, 캐롯이 설명했다.

“내부 열을 방출시키는 방열 가발이야. 크랭크의 경우엔 인모를 방열사와 섞어서 만들지.”

“오, 오오! 그, 그럼 나, 내 머리카락으로도 마, 만들 수 있어?”

긴 검은 머리카락을 들어 보이는 투나를 보던 크랭크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오랜만에 씻고 머리를 감아서 머리 결이 보드랍고 윤기 넘쳤다.

“투나 블랙은 나한테 안 어울려. 레나 레드나 울파 오렌지도 색깔이 예쁘던데.”

“레나 머리카락은 안 돼.”

“왜?”

“레나에게 잘 어울리니까.”

“음, 그건 그렇다. 울파 오렌지는?”

“그건 방열사를 염색한 기성품이야. 나는 가능하면 머리카락이 섞였으면 좋겠다.”

“왜 꼭 여자 머리카락이어야 해? 남자는?”

캐롯의 젖은 몸을 이제 수건으로 닦으며 크랭크가 중얼거린다.

“남자들은 대머리가 되기 전까지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활동이 많으니 짧기도 하고, 하지만 여자들은 그 머리카락을 아주 소중히 여기지, 매일 빗질하고, 감고, 길게 길러서 멋도 내고,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대체로 여자 머리가 숱도 많고 상태가 좋았어.”

처음 듣는 이야기에 투나와 아리에테가 집중했다. 크랭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머리카락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하더군. 나는 내 손을 거친 오토마톤들에게 영혼이 깃들기를 바라. 그리고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팔아야 할 정도의 사람들에게 약간이지만 도움을 주고 싶기도 했고.”

투나와 아리에테가 입을 살짝 벌리고 의자에 앉아 수건으로 캐롯의 머리를 닦아주는 마초 근육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캐롯이 파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봤지? 우리 주인님은 로맨티스트라고.”

“다 됐다. 옷은 이걸 입어라.”

크랭크는 미리 준비해놓은 아동복을 내밀었다. 언젠가 플루이드의 동생이 입다가 작아진 것을 받아온 것이다.

“당분간 모험가 일은 안 나간다. 손 볼일이 많아. 너도 그렇고.”

“쟤는? 아리에테라고 했지?”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의자에 앉아있는 사지절단녀를 보았다. 깨끗이 씻고 밥까지 제대로 먹은 아리에테는 표정이 좀 누그러져 있었다.

“그렇군. 아무래도 돌보는 인력이 드니까. 이 여자부터 자력으로 움직이도록 해야겠어. 아, 그전에 일단 화장실을 실내에 만들어야해. 내일 할 일이 많아.”

“화장실은 업체에 맡기면 안 될까?”

“안 돼. 돈 아껴야해. 하루면 끝난다. 당분간 저금 생활이야.”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크랭크는 모두의 잠자리를 살펴주기 시작했다.

“침대는 내거 하나 뿐이야. 여긴 아리에테에게 양보해야겠군.”

“나, 나는?”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투나를 보더니 오토마톤의 몸체가 쌓여있는 작업실의 빈 작업대에 담요를 펼쳤다. 투나는 별말 없이 그곳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하지만 금세 벌떡 일어났다.

“저, 저기! 여기 오, 오토마톤들이 나, 날 쳐다보는 것 같아! 무, 무서워.”

약간 떨어진 곳에 놓인 침대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아서 아리에테를 살피면서 책을 읽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내민다.

“걱정 마. 잡아먹거나 하진 않으니까. 당분간 여기 있을 텐데 익숙해져. 너희를 지켜주는 애들이야. 나처럼, 그렇게 생각해봐.”

“어, 응.”

다음날, 바닥의 침낭 속에서 일어난 크랭크는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말했다.

“완전 노숙한 느낌이야. 쉴 때는 역시 잠자리가 중요해.”

“어, 나, 나도.”

바닥에 앉아있던 크랭크가 작업대에 오도카니 앉은 투나를 보면서 말했다.

“넌 곧 떠날 거잖아?”

“어, 그, 그건 아, 아직 모르지! 자, 잠깐 동안이라도 펴, 편하게 있고 싶어! 아! 그래!”

도도도 달려간 투나가 금덩이를 가져왔다.

“이, 이거 돈으로 바꿔서 침대 사줘.”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눈을 부릅뜬 크랭크가 그것을 덥석 붙잡더니 말했다.

“대체 이걸 어디서 캤지? 역시 금맥인가?!”

“아, 안 가르쳐 줘.”

“데리고 나오면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

투나는 베시시 웃었다.

“조, 좀 더 있다가.”

앉은 채 투나를 쳐다보던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점 투나의 고개가 위로 올라간다.

“알았다. 부디 잊어버리지 마라.”

투나는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캐롯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일어났으면 뜨거운 차나 한잔 빨도록 해!”

“그래. 아리에테는?”

“여기 있어.”

부엌이 있는 곳으로 나가니 아리에테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살짝 까닥인다. 표정이 많이 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크랭크는 캐롯이 주는 컵을 받아들었다.

“음···! 이건 뭐야? 생강차?”

“따끈할 때 마셔. 이게 그렇게 소화에 좋데.”

크랭크는 두말하지 않고 그걸 들이켰다. 투나도 자기 컵을 받아들고 히히 웃는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바빴다.

크랭크는 아침도 먹지 않고 외출하더니 대량의 건축 자재와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뚝딱거리며 공방 깊숙한 곳에 화장실을 설치했다.

“무려 수세식이다.”

“오우오오오!”

투나가 감격의 박수를 쳤다. 슬쩍 돌아보던 아리에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쯤 배달 수레가 도착했다.

“침대 가져왔습니다!”

“우와아아아!”

투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공방 안에 침대 두 개를 더 들여놓은 크랭크는 커튼도 설치했다.

“여긴 애초에 내가 혼자 쓸 용도로 구매한 창고 겸 공방이기 때문에 칸막이가 없어. 너희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같이 있는 거니까. 당분간은 이걸로 참도록 해라.”

“그, 그래.”

한편, 캐롯은 멜리사를 만나러 플루이드가 살고 있는 거주구의 연립주택으로 향했다.

쾅쾅쾅!

“누구세요?”

문이 열리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얼굴을 내민다. 가벼운 아동복 차림의 캐롯이 인사했다.

“안녕?”

“어머나! 캐롯!”

멜리사가 캐롯을 끌어안았다. 캐롯은 히히 웃다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모듬 빵 세트.”

“뭘 이런 걸 다. 어서 들어와.”

캐롯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엔 강보에 쌓인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캐롯이 입을 헤 벌리고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멜리사 네 아기야?”

“응! 대단하지?! 내 작품이야! 하하!”

히히 웃던 캐롯이 물었다.

“남편은?”

“일하러 나갔어. 목수야. 크랭크도 아는 사람이야.”

“그래? 잘됐네. 너 잘 지내는가 보러왔어.”

“자주 좀 오고 그래.”

“이제 애도 태어났으니 앞으로는 그럴게.”

씩 웃고 있던 멜리사가 캐롯의 얼굴을 보다가 물었다.

“너 피부가 왜 이래?”

“망가졌어. 조만간 수리 들어갈 거야. 그리고 이제 이 가발도 벗게 돼. 잘 썼어.”

멜리사가 눈을 크게 떴다. 캐롯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니, 네 머리 잘라달라고 온 건 아냐.”

“엇,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좋은데.”

“멜리사, 기회는 평등해야해. 나는 다른 소녀들에게도 너와 같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

멜리사가 웃는다. 캐롯도 웃었다.

“그렇지. 네 아기가 어른이 되면, 그때까지 내가 움직이고 있으면, 다시 찾아 올 거야. 내 이야기 잘 들려줘.”

“당연하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해줄 거야.”

“그런데 아기 이름은 뭐야?”

“케니스야. 아들이야.”

“에, 그럼 안 되겠네. 여자 머리카락이라야 한다고, 딸을 하나 더 낳아.”

“하하! 아 그럴까? 남편이랑 오늘 밤에 상의 좀 해봐야겠네!”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던 캐롯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아. 너 결혼식 올 거야?”

“뭔 결혼?”

“플루이드 결혼.”

“허억?! 뭐라고? 다시 말해봐!”

일어난 캐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멜리사가 신나서 말했다.

“다음 달 경비대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대. 친절하고 잘생긴 사람이더라.”

“혹시 이름이 제이크야?”

“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캐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토벌대에 지원한 거였구나. 잘됐네. 그래서 플루이드는?”

“이 시간이면 일하러 갔겠지. 왜?”

“음, 머리카락 때문에, 결혼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이네.”

“그럼 내가 추천해도 될까?”

캐롯이 목을 내밀고 멜리사를 보았다.

“적당한 사람 있어?”

“수배하면 분명 나올 거야. 요즘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 팔면 결혼하거나 남친 생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캐롯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멜리사는 하하 웃으며 손가락을 꼽았다.

“나, 플루이드, 그리고 건피, 슈슈 기억하지? 다들 남친 생겼거든?”

“헉! 정말이야?”

“그럼.”

두 손으로 볼을 감싸며 캐롯이 놀라운 표정을 했다.

“와, 그럼 이번 내 머리 주인도 짝이 생기면 완전 기정사실화 되는 거네?”

멜리사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머리카락에 쓸 거야? 확실해? 정말?”

“응. 보다시피. 이제 이 머리카락으로는 전투를 못해. 냉각이 발열을 못 따라가. 1시간 전력 구동하면 나는 오버히트로 멈춰버릴 거야.”

멜리사는 캐롯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거이거, 캐롯의 머리카락이라니 특별히 잘 골라야겠는데?”

“에이,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최저 기준 알려줄게, 40세 이하, 길이 50cm를 넘어야 해.”

멜리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나이 제안도 있어?”

“머리카락이 열에 상하지 않도록 약품 처리를 하거든? 가넷 여사 말로는 20대 부근의 머리카락이 가장 약빨을 잘 받는데.”

“그렇구나. 처음 알았어.”

“마지막으로 중요해, 아까도 말했지만 반드시 여자 머리카락이어야 해.”

“알았어. 곧 연락 줄게. 그런데 왜 꼭 여자여야 해? 그냥 궁금해서.”

캐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놈들은 대머리가 되지 않는 한 평소에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크랭크가 말했어. 온전히 크랭크 취향이지.”

그리고 오토마톤에게 영혼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에,

“으아하하하!”

멜리사가 배를 잡고 쓰러졌다. 한참 웃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응! 잘 알았어! 크랭크는 여전하네.”

“그래, 길드에 말해놓으면 만나러 올게, 직접 보고 싶으니까.”

손을 좀 흔들어주고 멜리사의 집을 나선 캐롯은 룰루랄라 깡총깡총 뛰면서 거리를 걸어 공방으로 향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