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1) (7/187)

4장. 신이 깨어난 자리(1)

‘하필 또 오관대왕의 검이라.’

호구별성은 새 왕의 검을 주시했다.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수천 년을 이어온 역대 검수지옥 차사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순하게 생긴 얼굴에 맞지 않게 매서운 검이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 들었다.

저 핏덩이한테 과연 왕의 자질이 있는지.

검수지옥의 검은 독하다.

열 개의 지옥 중에서도 가장 삼엄하며 냉혹하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자를 벌하는 검.

그 검은 의도한 사악함은 물론이고 행동하지 않은 비겁함까지 함께 벌하는 검이다.

그 검은 고작 비겁함이라고 하여 봐주지 않는다.

같은 검이라도 도산지옥의 검이 지키고 사랑하기 위한 권선의 검이라면.

검수지옥의 검은 오직 벌하고 응징하기 위한 징악의 검이었다.

물론 냉엄한 징악의 신에게는 잘 맞았다.

하지만 염라의 천명은 결코 징악만이 아니다.

그는 권선과 징악의 신이며, 동시에 구원의 신 지장보살의 영원한 동반자니까.

때문에 호구별성은 새 왕의 자질이 궁금했다.

검수지옥, 저 사나운 지옥의 후예가 과연 구원의 천명까지 물려받을 수 있을지가.

“호오?”

그런데 그 순간, 새 왕을 살피던 그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저거…… 오관 영감뿐만이 아니구나.”

그녀라고 지옥의 검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새 왕의 검은 그녀가 알던 검수지옥의 검과는 어딘가 달랐다.

서슬 퍼런 검수지옥의 검뿐만이 아니라, 분명 다른 지옥의 기운이 함께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건만.”

아까 저 핏덩이가 다른 영감들한테도 무기를 배웠다고는 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차사가 여러 왕의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으니까.

오관의 세례를 받아 그저 어깨너머로 다른 영감들의 훈수나 좀 들었겠거니 여겼다.

처음부터 삼백 차사의 우두머리로 점지된 강림이 아니라면, 차사가 여러 왕의 세례를 받는 일은 없다.

“…….”

그런데도 정말로 저 핏덩이가 다른 영감들한테까지 세례를 받았다면.

그랬다면.

그건 마치…… 영감들이 정말로 자기들 뒤를 작정하고 가르친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영감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50년도 안 된 핏덩이한테 그렇게까지 했단 말인가.

“……!”

그때였다.

금승을 베던 새 왕이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동시에 왕이 베던 금승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아마 그녀가 불을 붙인 귀불이 다 타버렸기 때문일 터다.

호구별성은 그제야 좀 놀랐다.

귀불이 제대로 타는지 지켜보는 것도 잊고 새 왕만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생각 이상으로 몰입해버린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난 이 핏덩이한테.

“……누나.”

새 왕이 이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거 귀불, 다 태운 거예요?”

살벌한 지옥의 검을 펼치던 눈과는 또 다른, 어느새 무언가 한이 맺힌 눈으로.

“……제가 주술은 잘 모르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그녀가 기억하는 신을 닮은 눈으로.

“그 혼은, 귀불이 아닌 것 같은데요.”

***

[ (!) 공간의 지배법칙이 흔들립니다. ]

팝업창이 떴다.

‘법칙이 흔들린다’는 것은 필드를 지배하던 법칙의 영향력이 50% 이하로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는 직접 ‘법칙의 핵’을 칠 수 있었다.

그런데 100%를 넘나들던 영향력은 고작 2%.

사실상 필드 해체가 끝난 것이다.

보통은 영향력 50%부터 ‘핵의 주인’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다만 귀불은 매개가 된 불상이 타버리면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됐을 터였다.

그걸 감추기 위해 금승이라는 눈속임이 있었을 테고.

그런데.

“……누나, 이거 귀불 아니죠?”

나는 천천히 호구별성이 태운 귀불에 다가갔다.

공간을 어지럽히던 주술이 깨졌는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엎어진 재단과 부러진 향초들.

엉망으로 널브러진 제사 도구들.

허리께가 녹아내린 거대한 불상.

그런데 녹아내린 불상 안에서 무언가 조그만 것이 보였다.

새까맣게 탄,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가.

“이건 귀불이 아니라 염매(魘魅) 같은데요.”

염매 귀신.

삿된 주술이 만든 태자귀.

나는 잠시 아이를 내려다봤다.

염매는 악귀가 들린 귀불과는 다르다.

보통은 그저 끔찍하게 살해당한 어린아이다.

갈비뼈가 도드라지는 작은 몸에는 검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필드의 법칙, 권능이 담긴 핵이었다.

-사령술(死霊術)

보석 위로 뜬 설명은, 필드의 법칙이 된 권능이 혼을 지배하는 사령술임을 의미했다.

이 핵을 회수하면 공간의 법칙이 바뀌고 필드가 무너질 것이다.

나는 아이의 핵에 손을 뻗었다.

[ 염라의 권능이 망자의 기억을 읽습니다. ]

그 순간 팝업창이 떴다.

혼의 정보를 읽는 명부(L) 스킬.

핵의 권능과 내 권능이 부딪치면서 아이의 기억이 흘러들었다.

“……이런.”

읽히는 기억은, 아니 기억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강한 염원은, 단 하나뿐.

-배고파요.

-너무 배고파요.

-배고파요. 배고파요.

-배고파요.

비로소 모든 게 이해되었다.

염매를 만드는 방법은 아이를 굶기는 것이다.

피골이 상접하도록 굶겨서 작은 죽통에 음식을 넣어 두면, 아이는 음식을 먹기 위해 어떻게든 그 안에 몸을 욱여넣는다.

이때 아이를 찔러 죽이고 육과 혼을 함께 봉하면 아이는 그대로 주술에 갇혀 귀신이 된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 아이는.

이 필드를 만든 박수무당에게…….

“뭐 어떡하려고?”

옆에 선 호구별성이 물었다.

“뭘 해야 할지는 알아?”

제대로 육과 분리되지도 못하고 귀신이 되어버린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

나는 잠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기억을 읽는 권능이 절로 발동된 것은, 어쩌면 아이의 마지막 절규일지도 모른다.

한 많은 삶.

이유 없이 악의에 짓밟힌 삶.

이제 나는 이런 슬픈 자들의 왕이니까.

“……제가 달리 뭘 해줄 수 있겠어요.”

그저 조용히 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 또한 이것뿐이기에.

“그냥, 저승이 돌아오는 날…… 제일 먼저 다음을 줘야죠.”

악인에 대한 벌, 그리고 가엾은 이들을 위한 다음.

그게 나의 일이니까.

[ 공간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 사령술(死霊術) → 사후세계(死後世界) ]

법칙이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내 공간이다.

나무토막처럼 말랐던 아이는 금세 뽀얗게 살이 오르더니, 이내 하얀빛으로 산개했다.

잠시 후 그 빛은 아주 작은 보석으로 변했다.

[ 혼(凡) ]

- 생전에 평범했던 혼.

- (!) 물질계에 방치될 시 우주퇴적물로 변이합니다.

사후세계가 복원된다면 아이템이 되었던 영혼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 ‘금불사’ 필드를 해체했습니다!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무용담’입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100’ 획득합니다! ]

팝업창이 떴다.

[ 당신의 새로운 ‘풍문(L)’이 완성되었습니다! ]

예상보다 훨씬 빠른 완성이었다.

[ ‘새로운 왕이 탄생했으니.’ ]

- 분류 : 풍문(L)

- 권능 : 사후세계(死後世界)

- 내용 : 세상의 저편에서 새로운 왕이 이승길에 올랐으니, 그는 가엾은 이들에게 다음을 약속했다.

- 효과 : (!) 해당 단계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 무용담까지 필요 카르마 포인트 : (0/10,000)

의도한 대로 사후세계의 권능이 깃든 풍문.

……그런데 어째 해당 단계에서는 딱히 효과가 없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전설급 풍문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야, 이제 벌써 저승왕 같은 얘기가 생겼네?”

눈이 마주친 호구별성이 웃어 보였다.

신이라서일까, 풍문의 효과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

그녀를 따라 나도 그냥 좀 웃었다.

“네, 이제 그 못된 박수만 벌하면 되겠네요.”

아이의 혼은 챙겼다.

이제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놈을 벌할 차례였다.

필드가 부서졌으니 놈의 무용담도 끝났다.

이제 놈은 내 ‘영웅담’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쿠우웅!

굉음이 울리더니 사찰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 (!) 법멎믹력띤흐흐흐 ]

[ (!) 법멎믹력띤흐흐흐 ]

또다시 아까 봤던 그 이상한 팝업창이 떴다.

“……?!”

[ (!) 벨괵겨궉둠렸걷걍베꼐땍긱뒷뢍뱐독딩귐뤠벅 ]

[ (!) 벨괵겨궉둠렸걷걍베꼐땍긱뒷뢍뱐독딩귐뤠벅 ]

정체불명의 문자열이 시야를 어지럽히더니.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

필드를 알리는 팝업창이 되었다.

[ ‘신이 깨어난 자리’에 입장하셨습니다! ]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전설’입니다.

- 해체 조건 : (………)를 막으십시오.

“……전설?”

여기가 전설급 필드라고?

“말도 안 돼……!”

콰아아앙!

다시 또 굉음이 울렸다.

“이런, 미친!”

호구별성이 소리쳤다.

“미친, 저게 다 무슨!”

이번에는 아예 벽이 무너졌다.

벽을 무너뜨린 거대한 힘에 그녀가 날카로운 기세로 독기를 뿜었다.

“아까 그 장승이잖아!”

“누나, 조심……!”

마을 입구를 지키던 커다란 장승들이었다.

골렘처럼 팔다리가 솟아난 그것들이 콰아앙, 주변을 때려 부수었다.

“하하하!”

그 사이에서 누군가 광소를 터트렸다.

“정말이었잖아!”

무용담 필드를 만든 박수무당이었다.

웃음 때문일까.

소복 차림에 알록달록 분칠한 얼굴이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염라가 왔다고!”

그 입에서 이어진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세상 저편의 왕께서 행차하셨구나.”

눈이 마주친 박수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당신.”

내가 놀란 것은 놈이 나를 알아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신, 어째서 핵이 또 있지?”

이미 태자귀의 것을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가슴팍에 검붉은 보석이, 공간의 지배법칙을 바꾸는 핵이 또 하나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마을 전체가 전설급 필드라고?”

분명 놈이 가진 것은 무용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도 놈에게 법칙의 핵이 심어졌다는 것은, 누군가 놈을 핵으로 삼아 필드를 전개했다는 뜻이었다.

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설의 주인이.

“후후후,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묻는 말에는 하나도 대답하지 않은 채 박수가 내게 히죽였다.

“이곳은 신이 깨어난 자리일지니.”

놈이 속삭인 순간, 콰아아앙, 굉음이 울리면서 눈앞이 점멸했다.

***

“야.”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야.”

오래 알진 않았어도, 어느새 익숙해진 목소리가.

“……전하!”

그게 누구인지 깨닫는 것과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괜찮냐, 전하.”

호구별성.

어두컴컴한 가운데 그녀의 이목구비가 흐릿하게 보였다.

“네 몸이 불량은 불량이다. 늦게 깨는 걸 보면.”

창고인지 뭔지 좁고 퀴퀴한 곳이었다.

그새 밤이 됐는지 멀찍이 보이는 작은 창밖마저 어둡다.

팔이 꽁꽁 묶인 호구별성을 보며, 천천히 상황을 파악했다.

“……잡힌 거죠?”

사실, 물어볼 것도 없이 밧줄에 묶인 채였다.

팔다리가 강하게 조여서 그런지 움직일 때마다 불쾌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걸 누가 묶어 놨겠어, 그 무당 놈들이겠지.

“……?”

그런데 문득 살갗에 닿는 감촉이 생경하다.

몸을 일으키자 밧줄 말고도 낯선 재질의 옷이 보였다.

싸늘하면서도 거친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무당 놈들이 걸친 소복과 비슷한 게, 한 눈에 봐도 일반적인 옷은 아니었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갈아입힌 것 같은데, 대체 이유가 뭐지?

“뭔 지랄인지 몸에서 나오지도 못하겠더라.”

호구별성이 말했다.

그 사이 영체가 되어 가짜 몸을 탈출하려 했었나 보다.

“이게, 아무래도 이 부적 때문인 것 같거든?”

그제야 밧줄에 덕지덕지 붙은 부적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나를 묶은 밧줄도, 그녀를 묶은 밧줄도, 모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이게 가짜 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인 걸까?

“근데 너는 그 옷에 다른 주술도 걸린 것 같더라.”

“……!”

“살펴봤는데 그건 통 무슨 주술인지 모르겠어.”

마마신도 알지 못하는 주술까지 걸려 있다니.

온몸에 닿는 거칠거칠한 감각이 괜히 더 불편해졌다.

“……부적이라도 떼볼까요, 입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물었더니 호구별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그게 되면 걔네들이 입도 틀어막았겠지.”

너무나 맞는 말인지라 그냥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젠장, 이제 진짜 어떡하냐.

“하여간, 내가 없어진 새에 신이 아주 우습게 됐구나.”

그런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불쑥 의문이 들었다.

“……근데 누나는 정말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거예요?”

내심 궁금했던 부분이었으니까.

강림 형도 족히 백 년은 역신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글쎄, 근래 한 백 년 기억이 없긴 하지.”

호구별성이 대답했다.

“내 생각엔 누가 날 깨운 것 같거든.”

어째 좀 떨떠름한 얼굴로.

“얼마 전인데, 눈 떠보니 굿판이더라고.”

“굿판이요?”

“그래, 굿판. 원래 역병 돌면 마마한테 굿하잖아. 돌고 돌아 인간들한테도 다시 복고가 유행인 줄 알았지.”

……사라졌던 역신을 다시 굿으로 불렀다?

이건 확실히 신경이 쓰였다.

우주질서보존회의 시스템과 인간의 주술이 어디까지 섞일 수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니까.

“자다 일어난 것처럼 멍한데, 왠지 저기 흙덩이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갔지.”

흙덩이라면 분명 우주질서보존회가 유통하는 가짜 몸이 분명했다.

신이 빙의하기 전에는 대충 빚은 흙인형처럼 생겼으니까.

“그럼 우주질서보존회가 누나를 깨운 걸까요?”

“글쎄다. 그때 공노비 걔들은 안 보였다만.”

그게 아니라면 뭔가 이상했다.

가짜 몸, 다시 말해 반영구 빙의체는 분명 우주질서보존회만 유통한다고 했다.

그녀가 나처럼 우주질서보존회를 통해 몸을 얻은 게 아니라면, 그녀를 깨운 이들이 처음부터 몸도 함께 안배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대체 무슨 수로 가짜 몸을 손에 넣었으며, 신을 깨워서 뭘 하려고 했던 걸까?

“하여튼, 몸에 들어가서 보니까 굿판 벌인 놈들은 벌써 다 죽었더라고.”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동티지, 뭐. 인간이 신을 깨우려니 감당이 안 된 거야.”

동티.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서 재앙이 닥쳤다는 뜻이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을 깨우는 자들이 있단 거네요.”

들은 말을 정리했다.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 신을 깨우는 거고.”

호구별성을 깨운 자들은 감당 못 하고 죽었다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자들도 분명 있겠지.

“그럼 우리를 잡은 놈들도, 우리를 죽이지 않고 잡아둔 이유가 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놈들이 우릴 살려둔 건, 어쩌면 우리 자체를 필드에 써먹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주술로 만든 태자귀를 무용담급 필드에 써먹은 것처럼.

이번에는 아예 우리 같은 신을 종으로 부리는 필드를.

전설급 필드라면 그런 게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정말…… 이렇게 순식간에 붙잡힐 줄이야.”

곱씹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설급 필드라니.

뭘 해 보기도 전에 잡힌지라 아직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해체 조건도 불명이라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그때.

멀찍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저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처음 듣는 목소리.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아이.

“……전하, 저거 봐라.”

호구별성이 바로 상대를 알아봤다.

“내 말 맞지? 그 박수보다 여자애가 찐이라고.”

소복 남녀 사이에 섞여 있던 소녀였다.

어른들 틈에 홀로 서 있던, 마찬가지로 하얀 한복 차림에 머리를 곱게 땋아 눈이 갔던 아이.

“…….”

나는 분명, 무당을 볼 줄 모른다.

그런데 소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호구별성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49년이나 저승 시왕을 모셨던 나조차 놀랄 만큼 엄청나게 깊은 신성이 느껴졌으니까.

“이야…… 대체 누구를 모신 거래.”

호구별성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 신성이면, 이 마마께서 모를 리가 없는데.”

노골적으로 궁금해하는 태도였지만, 소녀는 대답 없이 천천히 내게 걸어올 뿐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아, 설마.

이쪽이 ‘전설’의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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