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사술사신주
남자는 차기 신관의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음양사는대단하군.,
그는 차기 신관이 기뻐하는 것을 음양사와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으로 해석했고, 기대감이 가득한 것은 고귀한 음양사를 실제로 볼 수 있
음에 감격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이러한 '당연한,해석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음양사는 대 단하고, 대 단한 음양사는 사람들에 게 당연히 존경 받아야 한
다.
사람들이 음양사의 고귀함과 음양사가 베푼 은혜에 감복하여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상식이었다.
음양사들이 가져야 하며, 가지게 되는 '상식' 말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자신의 상식대로 차기 신관을 판단했고, 자신의 상식대
로 ■대접■을 받기 위해 종이 인형을 꺼내 식신을 소환했다.
소환된 식신은 사람 크기의 새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듯그 식신의 위에 탔고, 식신은그의 의지에 따라움직여 날
갯짓하며 그를 별장으로 옮겨주었다.
경박하게 보이지 않도록 느긋하게 가고 있기에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하늘로 이동하는 것이기에 자동차로 가는 것보다는 빨랐다.
그렇게 남자는 별장에 도착했다.
일찍이 '액살의 집,이라는흉흉한 이름으로붙었던 곳.
사이고 신사의 차기 신관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이었다.
덜컹.
남자가 오기 만을 오매불망 기 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가식신에서 내리기 무섭게 별장의 문이 열리고무녀복을 입은 여성 한
명이 마중을 나왔다.
흑단 같은 긴 머리 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는 여인이 었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묘
하게 여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 마중을 나왔군.’,
"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에 차기 신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녀는 문을 열고 정중하게 남자를 안내했다.
'흐음. 무녀를 보내 맞이하게 해준다…라.,
남자는 그냥 사용인도 아니고 무녀를 보내서 자신을 맞이하게 만든 차기
신관의 '정중한, 태도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속에서 차기
신관에 대한 점수를 높였다.
물론 차기 신관이 기준치 이하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의미를 잃어버릴
점수였다.
남자는 무녀의 뒤를 따라움직이면서 별장을 살펴보았다.
'그나저나흉가 같지 않은데?,
별장의 모습은 싹 바뀌어 있었다.
소유주가 바뀌기 전의 '액살의 집,은 흉가라는 악명에 걸맞은, 진짜 언제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음산하고 어지러운환경이었다. 별
장 초입에는 겁도 없이 들어온 사람들이 낙서하고 가서 지저분했다.
물론 진짜 귀신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곳이기에 입구에서 조
금만 벗어나면 그런 낙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지만 말이다.
대신에 귀신이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부수기라도 한 듯 창문 곳곳이 깨
지고 문짝이 부서져 있었으며,부서진 잔해와 쓰레기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있
었다. 게다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천 쪼가리들이 창문곳곳에 들러붙어 안을
들여 다보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 늦은 밤에는 천 쪼가리 사이로 희 끄무레 한
무언가가 지 나간다는 주민들의 제보까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두꺼 운 창문이 별장을 감싸고 있고, 부서 지고 낡은 부분은 모두 보수가
되었다. 게다가 별장의 분위기에 맞춰서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라도 한듯고
풍스러웠고,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인 분위기의 소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
지금모습만본다면 이 집이 과거 '액살의 집,이라고불렸다는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일본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부자가 공을 들여서 지은 것 같은 분위 기라고
할까.
하지 만 그런데도 단점은 있었다.
'흐음. 그림에대한교양은 없나 보군.,
바로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었다.
하나같이 난해하고, 기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느낌에 맞춰서 일본화(日本晝)를 걸어놓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유명한 미술가의 그림을 걸어놓거나, 하다못해 고흐나 고갱의 작품을 복제
해서 걸어놓았으면 더없이 좋았으련만.
'끔찍하군.,
선을 이리저리 휘저어서 그린 듯한그림.
서로 섞이지 않는 페인트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만든 것 같은 그림.
이상한글씨들이 가득 모여서 집 모양을 만들고 있는 그림.
이상한 도형들이 모여서 소용돌이를 만드는 그림.
가느다란 선을 이리저리 꼬아서 사람 얼굴 비슷한 것을 만든 그림.
하나같이 별장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별장이 아니라 미술관에 걸려있어야 하는 그림 이라고나 할까.
'옥에 티가 있다면 딱저렇겠지.,
남자는 별장에 걸려있는 그림을 흘겨보면서 악평을 속으로 토해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만날 사람이 교양이 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닐
까 하는 생각도 품으면서 말이 다.
"도착입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남자는 마침 내 목적지 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무녀가 멈춘 곳은 ,응접실,이라고 적혀있는 방의 앞이었다.
응접 (脢납).
사람을 맞고 접대 한다는 그 의 미에 걸맞게, 문은 아주 웅장한 모습이 었다.
최고급 나무를 잘라서 만든 듯 특유의 무늬 가 아주 고풍스러웠는데, 분명
나무의 몸에 서 나온 것임 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손으로 쪼아서 조각이 라도
한 것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게다가 세월을 거듭하면서 깊어진
광택은 그 자체로 미(美)를 뽐내고 있었고, 틀어짐 없이 자리 잡은 문은 보석
이나 반짝이는 금속이 없음에도 ■화려하다,라는 감상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
했다.
게다가 문을 이루는 경첩 역시 범상치 가 않았다.
황동으로 만든 것 같은 경첩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것이 자못신비롭게 느껴졌다.
곡선과 점이 겹쳐서 만들어진 문양은글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 같기도
,혹은 문양이 이리저리 꼬아지며 글자의 형상을 이룬 것처럼도 보이는 것이
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자면 •••그래 .
오랜 세월과 함께 풍화된 것 같은, 그런 멋스러움이 존재했다.
..
.....
"흐음.’,
남자는 절로 탄성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문을 보며 침음성을 삼켰다.
그리곤 '차기 신관,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는 미(美)에 대한 일가견이 있
을 것 같다는 생 각을 품었고, 자신과 취 향에 맞는 이 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
까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가 기대를 품고 있음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다.
남자는 의 아한 듯 무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녀는 문을 두드리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는 듯 몇 걸음 물
러서 있었다.
"저의 역할은 안내하는 것. 기별을 넣고 문을 여시는 것은 손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래?,.
남자는 그러한무녀의 말에 '특이하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통이 라는 것은 지 역에 따라, 가문에 따라 다 다른 법 이 었으니 까.
당장 음양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온갖 전통들이 있었
다.
어떤 선배는 시치고산(七五三)을 치르기 전까지 여장을 한 채로 지내기도
했고,어떤 선배는본가에서 자랄적 남자와여자가완벽하게 분리되어 정해
진 날짜에 만 마주할 수 있는 희 한한 전통을 지 키며 자라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능동적 인 행동은 남자가 해 야 하는 전통이 있나 보군.,
남자는 이것 역시 전통의 일환일 것이라고 여겼다.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한 것은 없었다.
무가(武家)나정치, 경제 쪽의 가문이라면 가부장적인 분위기가있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런 곳이라면 이런 전통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똑똑.
그렇기에 남자는 문을 두드렸다.
차기 신관의 전통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고는 크흠, 하고 크게 헛기침 소리를 내어 자신이 왔다
는 것을 알렸고, 잠시 기다렸음에도문이 열리지 않자자신이 직접 열고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직접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철컥.
그렇게 문이 열리 자 보인 것은 수많은 촛불이 었다.
최고급 마호가니 원목으로 이루어진 방 안에서는 촛불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숫자가한눈으로는쉽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였다.
나무 바닥 위에서는 사람의 팔뚝만큼 기다란 초가 있었는데, 딱 사람
하나가 걸어올 공간만을 남기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초와 초 사이의 공간은 너무나도 작아 일반적인 발걸음으로는 반드시 초
를 건드리게 될 정도였으며, 까치발을 세우고 심혈을 기울여서야 겨우 초를
건드리지 않고 그사이를 거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벽면에도 초가 붙어 있었다.
사람의 팔뚝을 연상시킬 정도로 굵고 기다란 초는 횃불이라도 되는 것처
럼 벽면에 걸려있었는데, 마호가니 원목으로 이루어진 벽임에도 불구하고
초와 벽의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아 자칫 잘못했다가는 불이 옮겨붙어 화재가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을 줄 정도였다.
그리고 위에도초가 잔뜩매달려 있었다.
샹들리에(Chandelier)같은 등을 이용해서 허공에 매달리게 한 것이 아니
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줄에 등잔을 매달고, 거기에 초를 올려놓고
태우고 있었다.
줄이 어찌나 얇은지 얼핏 보면 초가 스스로 공중에 뜬 채 타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초의 사이.
사람이 있었다.
신관의 복장과 여우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는 초 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만들어진 꽃밭의 한 가운데에 선 채, 문을 바라보며 팔을 벌리고
있었다.
분명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모습으로 보여야 하건만.
하늘하늘 춤을 추는 촛불과 그에 맞춰 흔들리는 그림자.
광원 이 라곤 촛불밖에 없는 방 안에 서 유유히 서 있는 그 모습.
그 모습은, 그 묘한 느낌은… 마치 사람이 라기 보다는 요괴 를 떠 올리 게 만
드는것이었다.
"크흠.’,
남자는 그 기묘한 느낌을 떨쳐내 기 위해 헛기침했다.
"오셨군요.’,
그리고 헛기침 소리에 반응하듯, 차기 신관은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미끄러지듯 빼곡히 자리 잡은 초 사이의 길을 천천히 걸어 남자에게
사뿐사뿐 걸어갔고, 남자에 게 다다랐을 때 환영한다는 듯 친근한 몸짓을 보
였다.
차기 신관은 한손을 움직여 가면을 살짝올려 자기 맨얼굴을 드러내었고,
그 뒤에 악수하자는 듯, 한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악수를 청하는 차기 신관
의 손짓을 보고 자신도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악수하기 위해서.
남자의 손을 맞잡고, 마찬가지로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악수하기 위해 몸을 가까이했을 때.
차기 신관은 친근감이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아주 일상적 인 대화를 말이 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비즈니스에 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으레 하는
인사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긴장을 풀어버렸고.
"-반갑습一-’,
퍼엉-!
차기 신관은 남자가 만든 빈틈을 놓치지 않고 자기 머리를 폭발시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