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사술사신주
선배는 후배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답해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아주 당연한 대답이 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자료나 실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당
사자의 입에서 들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현장근처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알수가있겠는가?
선배는 뭔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냐는 듯 살짝 한숨을 쉬 었다.
남자는 선배의 한숨에 움찔하고는 크흠, 하고 헛기침하며 민망함을 감췄
다.
"아니, 제 말은그.혹시 이상한 거 건드리지 않았나싶어서 그런 겁니다.’,
[ 아, 봉인 같은 거 손대서 멋대로 풀었다거나그런 거 말하는 거지? ]
"예. 맞습니다.’,
[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 신사 녀석들은 이상하게도 허술한 구석이 있거든.
]
선배는 남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말했다.
[그놈들은 말이야.우리처럼 꼼꼼하게 매뉴얼을 가지고 일하는 것도 아니
고, 절 사람들처 럼 오랜 시 간 동안 쌓여온 노하우같은 것도 없어요. 그냥 가
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중구난방으로 전승하고, 그거 대충 따라 하면
서 일한다니 까? 뭐 잘하는 신사는 정말 잘하는데, 못하는 신사는 정말 못하
니원.]
선배는 신사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 쟤네들은 상한선이라는 게 없어요. 어떤 곳은 한없이 프로 같은데, 어떤
곳은 아마추어가낫겠다싶어질 정도니 원. 아마쟤네들은 신력(神멪) 없
으면 밥벌이도 못 하고 굶어 죽었을 거다. ]
아니 면 죄 다 화난 귀 신한테 공격 당해서 죽었거 나.
선배는 그렇게 말하곤 잠시 말을 끊었다.
남자에 게 말을 하라는 신호였다.
"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신사에서 구매했으니 어떻게든 처리하긴 했는
데, 그거 처리가 어설퍼서 뭔가 문제 가 생긴 거 아닙 니까? 꼭 아마추어들이
어설프게 손을 대면 봉인이 풀리거나 문제가 발생하곤 하지 않습니까.’,
[흐음, 그래.뭐 그렇지….]
선배는 남자의 말을 듣고 무언가생각하는듯 말꼬리를 늘였다.
스마트폰 너 머 에 서 는 볼펜으로 책 상을 치 는 소리 와 볼펜 뚜껑 을 뺐 다가
끼우는듯 규칙적인 소리가들렸다.
그리 고 그 규칙 적 인 소리 와 함께 고민을 끝낸 선배 는, 남자에 게 말을 툭
하고 던졌다.
후배에게 있어서 좋기도,귀찮기도한제안을 말이다.
[ 야, 네가 연락해서 해결 한번 해봐라.]
..
그 제 안이란 바로 별장의 현 소유주인 신사와 직접 연락해보라는 것이 었
다.
나쁘게 생각하면 해야할 일을후배에게 떠넘긴 것이요, 좋게 표현하자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후배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배려한 것이라할수 있
으리라.
[ 마침 잘됐지.음양청에서 네가근무한지도좀됐고….슬슬 인맥을 쌓고,
다른 사람들과 안면도 익힐 때가 됐어. 가장 먼저 내 인맥을 소개해주고 인
맥 만드는 방법 좀 알려줄까했는데, 오늘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이걸로 시작
해보자고.]
음양청이라는 기관은 음양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만큼 온갖 사건에 투입
된다.
일본 전역에 천라지망처럼 깔아놓은 감시 장치에서 주술과 관련된 것이
감지되면 파견되는 것은 기본이 었고, 심령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투입되 었고, 유물이 나 봉인이 발견되 었을 때도 파견되 었다. 게 다가 신사나
절에서 봉인하거나 의식을 행할 때 입회 인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주술 기록
물이 나 주물을 조사할 때 파견되 기도 했었다.
■주술과 '심령,과관련된 것을 전담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 기관이라
고 표현할 수 있으리 라. 당연하게도 담당하는 범위 가 넓은 만큼 살인적인
업무량이 있었으나, 소속된 음양사들은 그에 큰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음양사의 의 무였으니 까.
거대한 권력의 비호를 얻고, 평온하고 풍족한 삶을 얻고,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서 권 력을 휘 두를 수 있는 대 가였으니 까.
그렇기에 음양사들은 자신들이 음양사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이 음양
사들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긍지로 여겼고, 한몸바쳐서 음양사의 밝은
미래에 손을 거드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하지 만 아무리 정신 무장이 되 어 있다고 한들 물리 적 인 한계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담당하는 범위 가 넓은 것에 비해 소속된 인원의 숫자가 적다
는 것에 있었다.
그 이유는 음양사라는 직업의 특성과 음양사가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과
배타적인 성향 때문이 었다.
음양사는 표현만 다를 뿐이 지, 어쨌든 주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주술은 사용하기 위해선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대가를 각오해야만 하는
힘.
당연하게도 그것을 익히겠다고 하는 이들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게 다가 그렇게 각오한 사람들을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 다.
음양사는 하나같이 자신들은 엘리트이 며,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
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
음양사는 그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존재다.
음양사는 미래를 점치고 과거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전지한 존재다.
음양사의 재주는 한낱 정부에게 휘둘리기에는 너무나 귀한 힘이나, 현세
에서의 안락함과비호를위해 아량을 베풀어 ■자격이 없는 자,에게도음양술
의,은혜,를베풀어주는것이다.
음양사는 대부분 이러한 선민의식에 찌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민의식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차별.
눕 무인은 칼을 휘둘러서 사람을 죽이는 야만스러운 놈들이다. 칼질이 쓸
만하여 사냥개는 될 수 있지 만 결코 높은 자리 에는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세 상
의이치이다.』
눕 마법사는 양이(짧튉)에 무릎을 꿇고 신발을 핥아 기술을 배운 자부심 이
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족속들이다. 재주가 쓸만하기는 하나 그
뿌리와 자부심 이 천해 음양사와 비교할 바는 되 지 못한다. 禳
눕 소환사는 조금 특별한 동물을 기르고 조련하는 사육사나 다름이 없다.
음양사들이 식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훨씬 어렵고 강력하니, 저들의
재주 역시 음양사에 비하지는 못한다. 禳
음양사들은 온갖 차별적인 시선으로 다른 능력자들을 깔보았으며, 자격
이 되지 못하는….
달리 말하자면 '권력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역시 고압적인 태도로 나
섰다.
그리고 이 러한 고압적 인 태도는 음양사를 희 망해 서 오는 사람들에 게도
똑같이 내비쳤다.
당연한일이었다.
음양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냥 권력도 재주도 없는 일반인이 었으니
까.
그들은 아직 ■선택받지 못한, 하찮은 존재 였으니까.
음양사들은 체로 거르고 거르듯 지원자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걸렀고, 소
수의 사람만을 자신들의 품으로 받아들이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어려운 조건에 통과한 사람들은 보상 심리에 의해 ■이런 조건을 뚫고
음양사가 되 었으니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야.,라는 생 각에 사로잡혔고, 그런 생
각을 품은 채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된 음양사들은 같거 나 더 한 고압적 인 태
도로 주위를 대했다.
악순환이었다.
그런데도 음양사가, 음양청이 권력을 지닌 채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말마따나 재 주가 아주 쓸만하기 때문이 었고.
[ 신사 녀석 중에서 괜찮은 녀석들은 친하게 지낼 만해. 물론 실력이 형편
없는 놈들이 대 부분이 지 만 말이 야. ]
그리고, 그들이 '인정할만한, 사람들에게는 친근하게 대하고 이것저것 편
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음양사는 선민의식이 강한 만큼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을 각별하게 대했
고, 자신의 힘은 물론이고 음양청의 힘까지 사용해서 편의를 봐주곤 했다. 작
게는 사업적인 편의부터, 크게는 범법 행위를 눈감아주거나 축소해주는
것까지 말이다.
음양사들의 말로 '격조 높은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배려,라고 하는 것이었
다.
[ 일단 내가 연결해줄 테니까 한 번 만나봐. 네가 인정할만한 실력을 갖추
고 있다면 친하게 지내보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장기 말로 여기면 되는
거 아니겠어?크게 부담갖지 말도록해.]
물론 그 기준은 높고도 높아서, 쉽게 그들에게 '인맥,으로 인정받기는 힘
들었다.
인정받지 못한다면 당연하게도그들이 부려 먹기 편한 사냥개나 장기 말
취급을당하게 되는것이고,그조차되지 못한다면 길가의 돌처럼 여기며 머
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리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 잠깐 기다려봐. 내가 일단 말을 좀 하고, 너한테 전화를 걸도록 할 테니까
.]
선배는 신이 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말도 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
다.
그리고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이잉-
진동 소리와 함께 남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 안녕하십니까, 사이고 신사의 차기 신관입니다. 시라키 나오카츠(白
木直活) 음양사님 께 말씀 듣고 전화를 드렸습니 다. ]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가 전화를 받자 들린 것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 였다.
말투에서 젊은 남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묘하게 울리고 긁히는 듯한
음성 덕분에 눈가에 흉터가 난늑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사이고신사의 차기 신관님. 미리 말씀을 들으셨는지는모르겠지만, 이렇
게 전화를드리게 된 것은 사고 하나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 아. 앞서 시라키 나오카츠 음양사님께 언질은 들었습니 다. 골치 아픈 일
에 얽힌 것 같다고 말이에요. 마침 지금 일이 하나 터진 것이 있어, 그것과관
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 었습니다. ]
자신을 사이고 신사의 차기 신관이라 소개한 남성은 안타깝다는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 악명이 높은 별장을 인수해서 정화 작업을 거치고, 안전한 것을 확인한
뒤 지인을 초대하여 파티할생각이었습니다만….]
차기 신관은 지금 상황을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별장을 인수해서 정화 작업을 거친 것.
정화와 제 령 이 끝난 뒤 지 인을 초대해 서 파티를 열었다는 것.
그런데 거기서 한명이 이상한짓을 해서 귀신에게 빙의가되었다는것.
해결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을 뿌리치고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는 것.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어떻게든 찾아서 제령 작업을 하려고했다는것.
도망친 사람이 TV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인이 라는 것까지.
남자는 차기 신관의 말을 듣고는 말을 꺼 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 니 다. 그 사람은 제 가 잘 보호하고 있습니 다.’,
[ 아,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 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 다. ]
차기 신관은 무사히 야사키를 확보했다는 남자의 말에 감격한 듯 감사 인
사를 늘어놓았다.
남자는 입을 닫고 감사 인사를 잘 음미한 뒤 ,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귀신이 빙의될 정도면 문제가생긴 것 같은데 ….’,
[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큰 문제는 아닙 니 다.]
"흐음. 제가 가서 확인해봐도되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해, '내가 네 별장을 조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이었다.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실수를 벌일 정도면 네 실력은 못 믿겠다. 내
가 직접 보고, 필요하다면 직접 개 입하겠다.,라고 생 각할 수도 있는 말이 었다
•
하지만 차기 신관은 이러한 남자의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 물론입 니 다. 기쁜 마음으로 기 다리고 있겠습니 다. ]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는 그의 방문이 너무나 기대된다는 듯, 기쁨이 가
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