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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291화 (291/526)

볽 291화 > 요정의 선물을 원하거든

사람은 상실을 슬퍼하는 생물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낀다.

그렇기에 사람은 손에 쥔 것을 놓으면 미래에 곱절로 다가올 것임을 알

고도 손을 펼치지 못하고,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을 놓아주어야 함에도 쉬이 놓

아주지 못한 채 그대로 품 안에서 썩혀가도록 놔둔다.

그것이 형체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상관이 없다.

가지고 싶으니까 가진다.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가진다.

잃고싶지 않으니까 가진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번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우연처럼 다가온행운의 수첩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

었으니까.

"안돼, 안돼….’,

흔들리는 바람이 손아귀 안에서 쏙 들어오듯 그의 품으로 들어왔던 수첩

은, 이제는 자신이 왔던 방식 그대로 손아귀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쉽 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고 했던가.

그에게 다가온 행운은 남에게 강제로 쥐어진 만큼,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

지려하고 있었다.

"페 이 지 가…. 페 이 지 가 부족해 •••.젠장, 젠장, 젠장…!’,

수첩이.

페 이지가 줄어간다.

제물을 바치고 정보를 얻을때마다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로 남은페이지

가 얇게 변한다.

이제순은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고싶지 않았다.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게 없으면, 이게 없으면….’,

수첩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의 성공을 위 한 날개 이고, 그를 시 궁창에 서 꺼 내준 보물이 며 , 앞으로 그

의 인생을 찬란하게 빛나게 해줄 광택제이며, 그를 쑥쑥 자라나게 할 찬란한

햇빛이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없으면, 씨발. 씨발 옛날처럼….’,

정보가 있었기에 그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동료들은 그를 질투하면서도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서 그에게 달라

붙고 있었고, 평소에 그를무시하고부려 먹던 선배 역시 자신과친해지기 위

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사회부나 정치부의 기자 역시 자신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쌓아가

고 있었고, 평소에는 잘 보지도 못했던 편집장과 친해지게 되 었다. 게다가 그

뿐만이 아니라 '나는 말이야,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네 기사는 이제 믿을 수

가 있겠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원하는 대로 써.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라는

말까지 듣기까지 했다.

모든것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수첩이 없어진다면?

그를 이렇게 인정받게 해준 ■정보,를 더 이상 얻지 못하게 된다면?

"씨발, 안돼. 안돼. 그렇게는 안돼. 빌어먹을, 안된다고.’,

추락.

추락이다.

하늘을 날다가 날개가사라지면 당연히 땅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

다시 옛날처럼 시궁창에 처박혀 있게 되리라.

그리고 높은 곳에 서 떨 어졌기 에 그 아픔은 더 더욱 클 것이 고, 시궁창을 기

는 하찮은 삶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겠지.

동료들은 질투와시기 대신 '그럴 줄 알았다.,, '역시 제대로된 실력이 없으

면 행운이 저렇게 많아도높은곳에 갈수가 없다니까?, 등의 말을 하며 그를

욕할것이고, 선배 역시 그를쓰레기 취급을하게 되리라.

그에게 믿음을 주었던 편집장은 그를 없는 사람취급을 할 것이고, 사회부

와 정치부 기자들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연락을 뚝 끊어버리고 그를 남

취급을 하게 되리라.

그리고 사회부로 돌아가는 그의 꿈은 좌절될 것이고, 그는 시궁창에서 기

다가 반강제로 기자 생활을 청산하게 될 것이다….

"이런건 있어선 안돼….’,

끔찍하다.

생각만하더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이제순은 절대로 그런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높은 곳에 있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람의 심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

지도 않았고, 경험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위로 가고 싶었다.

수첩.

그래.

수첩의 도움을 통해서 말이다.

"그, 그래. 잠깐만. 그래…. 그 사람이, 그분이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이제순은 생각했다.

수첩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복원을 위해서는.

수첩의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그때와 똑같은 시 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만나면 된다고 했지 …?’,

그에게 수첩을 준 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왜…? 왜?’,

그는 용기를 내서 발걸음을 옮겼다.

괴한을 만난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던 음산한 길로 발을 옮겼고, 고장

난 가로등 아래의 뭉쳐 있는 어둠 역시 두려워하면서도 담대한척 쉬지 않고

걸어 갔다. 그리 고 괴 한을 만났던 그 자리 를, 그때와 똑같은 시 간에 오는 것

에 성공했다.

수첩을 위해 용기를 한껏 낸 것이다.

그런데….

"왜 없어…?’,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쇳소리를 내는 꼽추는 없었고, 골목과 공원을 아무리 뒤 져보아도 황금 가

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없다.

괴한이.

그에게 선물을준 은인이.

없다.

"대체 왜, 왜…?"

용기를 내서 찾아왔거늘.

괴한이 말했던 대로그시간,그 장소에 나왔거늘.

대체 왜 없단 말인가.

'아니야. 오늘만 이런거겠지. 그래….,

이제순은 다음날 똑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똑같은 시간에 공원을 가로질렀고, 똑같은 장소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곳에 서 괴 한이 나타나기 를 기 다렸다.

하염없이.

하지만 가로등 아래에 머문 어둠이 햇살에 부서지며 윤곽이 드러날 때까

지 도 괴 한은 코빼 기 도 보이 지 않았다.

"왜 없어….’,

해가 뜨고 세상에 밝게 빛나도.

어둠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음에도.

괴 한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도.

괴한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괴한을 만났던 것이 신기루였고, 과로에 지쳐서 헛것을 본 것에

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페이지를 다 써버린 수첩만이 괴한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뿐.

"페이지를 다썼어. 다썼다고…. 제발나와. 나와달라고…!’,

이제순은 괴한을 찾아 헤맸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 간에 그 길을 걸었고, 잠도 집 에 가서 자는 대신

골목이나공원의 벤치 적당한곳에 누워서 자버렸다.

혹여 자신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 괴한이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괴한을 만날 수 있는 기회 가 너무나도 쉽 게 사라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제순은 폐인처럼 노숙자 생활을 반복했다.

그것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활동하는 이제순의 행색은 추레해졌고, 몸에서는 퀴

퀴한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염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비호감처럼 보이게 되었고, 머리 역시

제대로 감지 않아서 엉 겨 붙고 고약한 냄새 가 났다. 게 다가 옷과 속옷 역시

제대로 갈아입지를 않아서 점점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스가 계속해서 배에 차는 바람에 입에서 고약한 트림이 계속해

서나오기도했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업무에도 지장이 생겼다.

오로지 괴한을 찾는 것에만 신경이 쏠린 이제순은 기자로서의 본분을 제

대로 다 하기는커녕 시간만 까먹고 있었고, 그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제대로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특별히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 또한하지

않았다.

수첩을 다 썼다면 직접 발로 뛰거나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얻어야 하거늘,

그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수첩을 복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버린 중독자를 보는 것 같기도 했

다.

"야. 너 왜그러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제순을 걱정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제순의 모습은 심상치 가 않았다.

폐인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모습이니 당연히 사람으로서 걱정이 들 수밖

에 없다.

물론 그 걱정이 지극한 걱정은 아니고, ,냄새 나고 귀 찮은 것 같으니까 깊이

관련되고 싶지는 않다.,라는 마음과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래? 무슨 일 있나?,

라는궁금증이 뒤섞인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리고 '선배, 역시도 이제순에게 한마디를 했다.

"이봐제순이. 너 요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일을 제대로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라고. 내가 뭐 명색이

선배 인데 이야기 들어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고민을 털어놓으면 뭐 마음이라도 가벼워질 수도 있지 않겠냐?’,

얼핏 걱정하는 듯한 말.

하지만 실제로는 '일 똑바로 안하냐?,라는 핀잔이 들어있는 말이었다.

물론 그 핀잔은 한없이 순한 맛이 었다.

그동안 이제순이 터뜨린 기사들이 있었으니까.

두 번 연속으로 터뜨리 기도 어려운 대박 기사를 연속적으로 터뜨린 놈이

니, 각 잡고 쓴소리를 할수가 없었다.

I |.....

..

!..

.....

그렇기에 은근하게 암시를 주는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만 이 제순이 이 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면 …. 그 은근한 핀잔은 점

차노골적으로 변해가게 되고, 그끝에는평소이제순이 듣던 폭언에 가까운

것이되리라.

■빌어먹을.벌써 이래.벌써 추락의 조짐이 보인다고.제기랄!'

이제순은 날카로운 칼날이 등 뒤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듯한느낌을 받았

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날카로운 칼이 그의 등을 찌르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의 등을 확실하게 찌르고,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시궁창

에 처박아버릴 칼날이다.

■안돼. 빨리, 빨리 찾아야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제순의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제 발 나와라, 제 발. 무슨 대 가라도 치 를 테 니 까 제 발 나와!,

제발.

제발나와라.

'씨발 영혼을 팔라고 해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테니까, 제발 나오라고-!,

이 제순은 빌고 또 빌었다.

제발괴한이 있기를.

제발오늘은 만날수 있기를.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보게, 젊은이.’,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깨달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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