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괴이와 불청객의 차이
그렇게 괴 생 명체와 개 가 진성의 눈에 는 잘 보이 지도 않을 속도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슬라임은 너무나 편안하게 바닥에 떨어진 모기 시체를 대부분
먹어치울 수 있었고, 진성의 키는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몸체를 가지게 되었
다.
그리고 그와 비례해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바늘은 호저의 가
시를 연상케 만들 정도로 단단하고 길쭉하게 늘어나 있었고, 역겨운 색을 품
고 있던 핵 역시 점점 색이 짙어져 검은돌을 떠올리게 했다.
[컹]
그리고 그 지경이 되자괴생명체를 상대하던 개의 본능이 맹렬하게 경고
를 발했다.
괴생명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위협 이 있다고.
당장몸을 피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무쿠리코쿠리노이 누가미는 그 즉시 몸을 빛으로 화해 충격파를 터뜨리고
,늘어나는 엿가락처럼 몸을 늘려 토리 이(鳥居)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까아-악!
하지 만 그 필사의 탈출은 그 즉시 저지 당했다.
괴생명체는 개가 몸을 빼려고 하자 굵은 촉수 끝을 쩌억 벌리더니 나팔처
럼 모양을 만든 것이다. 늘어나고 늘어나 뒤 가 비칠 정도로 얇아진 촉수는 피
막처럼 개가 나아갈 길을 모조리 틀어막았고, 그렇게 움직임을 제한하면서
머리에 난 수많은 입에서 역겨운 액체를 계속해서 내뱉었다.
치이익!
내뱉어진 역겨운 액체는 끔찍한 악취와 함께 닿은 것을 오염시켰다.
나무 기둥에 닿으면 그것을 그대로 썩어 버리게 만들었고, 돌에 닿으면 매
캐한 냄새와 함께 녹아내리게 했다. 물에 닿으면 한 입만 마셔도 온갖 질병
을 일으키는 썩은 물이 되었고, 기체에 닿으면 작게 한 숨 들이쉬는 것으로도
폐를썩어 버리게 만드는힘이 있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오염과부정은 그 자체로도 신력에 치명적인 바.
!..
!.
......
[캥! 캐애앵!]
길쭉하게 늘어난 상태로 방황하던 몸체에 액체가 닿자 찬란히 빛을 발하
던 신력을 검게 물들이며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본능이 그토록 피하라고 소리쳤던 오염된 액체가 만들어낸 일이 었다.
괴생명체는 액체가 독처럼 파고들며 신력을 서서히 검게 물들이는 것을
목격하자, 아예 촉수 전체를 피막처럼 만들어 개를 돔 형태의 구체에 가둬
버리고자 했고, 개는 그것을 막기 위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몸을 커다랗
게 부풀려 앞발로 피막을 후려쳤다.
파앙
파아아앙!
물이 가득 들어찬 풍선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듯, 거대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 만 피막은 비닐처럼 얇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앞발에도 거
뜬히 버티며 출렁일 뿐이었고, 날카롭게 세운 빛의 발톱 역시 기름이라도 발
라놓은듯미끄러뜨리며 베이지 않으며 버텨 내었다.
결국 개는 피막을 뚫는 것을 포기하고 머리를 검의 형태로 바꿔서 괴생명
체로 돌진했다.
피막을 뚫을 수 없다면 그 주체를 죽여 압박을 해소할 심산이었다.
괴생명체는 개의 돌진에 기다렸다는 듯 입에서 연신 역겨운 액체를 물총
을 쏘듯 뿜어대 며 신력을 오염시켰지 만, 개는 그것을 모두 감수하겠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해서 가속도를 붙였다.
푸우욱!
그리고 그 필사의 돌진은 결실을 맺었다.
피할수 없었던 것인지 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괴생명체는 다리를 땅
에다 굳건하게 박고 침만을 뱉으며 개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 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개는 무사히 괴생명체의 목을 잘라낼 수 있었고, 목은 터엉- 터
어 엉 - 하는 비 어 버린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 굴게 되 었다. 그리고 목이
잘려지자 개의 움직임을 가로막던 피막 역시 그대로 힘을 잃고 쭈글쭈글해
지며 내려앉기 시작했고, 이윽고 부피가 점점 줄어들며 촉수의 형태로 다시
되돌아왔다.
[크와아아앙!]
개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승리의 기쁨에 취해 발 하나를 시체에 올
리곤 울부짖었다.
물질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을 끔찍할 정도로 괴롭혔던 괴물.
그것을 처절한 사투 끝에 물리쳤으니, 그는 충분히 승리의 기쁨에 취할
자격이 있었다.
그렇다.
충분했다.
단지, 적이 하나가 더 있을뿐.
꿀-렁!
피막이 힘을 잃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또 다른 적이 움직 이기 시 작했다. 육
중한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몸을 이끌며, 출렁거리는 푸딩처럼 움직이는 그
것은 부정형의 생명체답게 휘 어지듯 움직이며 개를 덮쳤다.
콰아아앙!
개는 황급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질량을 피해 몸을 날렸고, 개가 조
금 전까지 있던 자리는 모기의 시체를 먹으며 불어난 슬라임으로 인해 커다
란 망치로 바닥을 후려친 듯, 잘 깔려 있던 돌을 산산조각으로 깨부수며 작
은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닿은 슬라임은 몸을 움직 여 굴러다니는 괴생 명체의 몸체
와머리통을 한 입에 감쌌고, 슬라임이 몸속에 들어온음식을녹여서 먹어 치
우듯그렇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그에 비례해서 슬라임의 몸은 다시 부풀기 시작했고, 부푼몸을 찌
그러뜨리듯 옆으로 확장시 키 며 개 가 움직 일 곳을 좁혔다.
[컹]
이윽고 몸체 가 늘어 나고 늘어 나 개 가 건물의 위 쪽으로 피하는 것을 택했
을때.
꿀렁!
슬라임은 기다렸다는 듯 튕 겨 오르며 개를 덮쳤다.
그렇게 개는 한 입에 슬라임에게 먹혀 버리고 말았다.
개를 먹어 치운 슬라임은 몸속에 있는 가시를 움직여 주사를 꽂듯 개의 몸
체에 꽂았고,슬라임 몸속에서 부유하고 있던 가시가개의 몸에 전부 꽂혔을
때.
[끼잉.]
개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온몸이 검게 물든 채 슬라임에게 흡수당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맑은 물에 검은 물감을 푼 것처럼 천천히, 하지
만 확실하게 보였고.
꿀-렁!
그 물감이 슬라임의 온몸을 물들이고 다시 정화되 어 맑은 몸체로 변했을
때.
퉤.
덜그렁.
슬라임은 살점을 다 발라내고 뼈를 뱉어내듯 무언가를 뱉어내 었다.
그것은 개 모양의 돌덩이 였다.
"잡았다.’,
진성은돌덩이를허공에 띄운 채 씨익 웃었다.
쬞 쬞 쬞
"음, 연락이 없네.’,
이아린은 얼어붙은 땅에서 핸드폰을 연신 들여다보았다.
"1_ 1_그9"
〒, n广껬
"누구긴 누구야. 문자 띡 보내고 어디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는 오
래비말하는거지.’,
이 아린은 툴툴대면서 손에 든 스마트폰을 침대로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세린은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
"걱정?’,
"아냐!"
이아린은 그 물음에 즉답으로 대답하면서도, 얼굴에는 약간의 걱정을 품
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말을 하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일
본으로 가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졌으니 사기 라도 당한 게 아닌가
싶었던것이다.
특히 능력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했으니 허튼 걱정
은 아니 었다. 최근에 있었던 사례 만 따지 더 라도 마력 입 자학 전공자를 취 업
을 시켜 주겠다고 외국으로 데려간 뒤 마약상에게 팔아넘기는 사건도 있었
고, 질병 치료가 가능한 소환수를 가지고 있는 소환사를 속여서 외국으로 끌
고간뒤 인신매매로 팔아넘기려 한사건도 있었다.
물론 두 사건은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치안
이 좋은 일본은 해당사항이 없을 수도 있지 만, 그래도 세상이 점점 흉흉해 지
는 와중이 니 마냥 안심 할 수만은 없었다.
"그, 그래도...오빠가 그런 거 당할, 응. 당할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아냐. 그 오래비 라면 왠지 귀 가 얇아서 좋은 정보랍시고 끌려갔다가 고
초를 겪을 수도 있어. 눈앞에 주술 흔들어대면 좋다고 쫄래쫄래 갈걸?’,
이세 린은 한숨을 푹푹 쉬는 이 아린을 진정시 키 기 위해 말을 꺼 내 보았지
만, 기다렸다는 듯 진성을 욕하는 그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부정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 계약자야. 너의 언니는참으로 통찰력이 뛰어나지 않느냐.그것은필시
주술에 미쳐 있었던즉, 눈앞에 주술을 미끼로 내밀면 한 치 앞도 생각하지 않
는 물고기처럼 바늘채로 그대로 물어 버리고 말 것이니라. ]
그녀는 악마가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 역시 부정하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진성은 주술이 부족하다, 주술을 익히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
처 럼 말하고 다녔으며 그 이후에도 말만 안 할 뿐이 지 어디 바쁘게 쏘다니 면
서 주술 관련 기록을 한아름씩 들고 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이세린은 부정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저, 저기. 노래방 있던데...?’,
"응?"
그건 바로 말 돌리기.
이 아린이 친구랑 같이 노래 방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 고
는, 사고를 그쪽으로 유도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던지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그녀가몸을 일으
켰다.
"러시아에 노래방이 있어?!’,
"응? 응. 가, 가라오케 룸이라고...’,
"가자!"
이 아린은 츄르에 굶주렸던 고양이 가 냄새를 맡은 것처럼 스마트폰과 지
갑을 챙겨 들고 이세린을 반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방 밖으로 나섰다.
그 후 이아린은 이세린이 안내하는 대로 가라오케를 향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가라오케 룸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한국 노래방 기계를 들
여 온 것인지 한국 노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고, 그녀가 즐겨부르는
애 창곡들을 부르며 놀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부르며 놀기를 한참.
이아린은 이세린이 부르는 발라드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놈의 오래비는 일본 관광을 하고 있나? 본토의 가라오케는 갔으려나...,
쬞 쬞 쬞
텅!
진성은 시내에서 구했던 싸구려 무선 마이크를 뒤로 집어 던지곤 쓰러져
있는 부녀에게 다가가 헤드폰을 씌웠다.
각각 씌워진 헤드폰의 끝에는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싸구
려 MP3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각기 씌워진 헤드폰 역시 싸구려인지 차폐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재생되는
소리 가 그대 로 밖으로 흘러 나왔다.
둘의 헤드폰에서는 각각 다른 소리가 들리고 있었는데, 켄지의 귀에 씌워
진 헤드폰에서는 삑-삑 하는 날카로운 전자음이 규칙적으로흘러나오고 있
었다.
그리고 시시각각 표정을 변화시키고 있는 리세의 헤드폰에서는.
진성의 목소리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