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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59/136)


59.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2022.05.23.


쌍둥이들이 수업 중일 때에는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다는 라크하의 말이 있었다.

그런 지침이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눈치가 보여서 매번 옆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오늘은 수업 중간쯤 몰래 빠져나와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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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나왔나?’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레이나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레이나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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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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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혹시 많이 기다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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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제가 말한 식당은 바로 여기에요.”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레이나가 식당을 가리켰다. 간판에 다마시스 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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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님은 여러 번 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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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저 여기 단골이에요. 여기 사장님 요리 솜씨가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꼭 메이아 님을 데려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극찬할 정도라니. 물론 간판 이름만 봐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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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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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셔도 좋아요! 자, 얼른 들어가요.”

레이나가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딸랑. 문에 달려 있는 종소리가 울렸다.

레이나는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곳을 보며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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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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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십…… 어? 레이나 님 아니십니까!”

가슴팍에 부슬부슬한 털이 가득한 남자가 우리를 환히 반겨주었다.

누구지? 범상치 않은 비주얼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레이나가 내 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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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식당 사장님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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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장님이랑도 안면을 틀 정도로 단골이었구나. 확실히 원작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소소한 설정까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우리 곁으로 온 사장님이 나를 보며 살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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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름다운 레이디 분과 함께 오셨군요. 그나저나 따로 두 분이서 앉을 자리가 없는데 어쩌죠. 합석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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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관없는데…… 메이아 님은 괜찮으신가요?”

레이나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차피 간단히 먹고 일어날 건데 상관없었다. 그리고 여기 음식 맛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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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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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에드먼은 손짓하더니 우리를 식당 2층으로 안내했다.

정말 유명한 맛집인 건지 가게 안은 사람이 바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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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다.”

에드먼이 안내한 곳은 창가 쪽 자리였다. 그곳에는 체격이 건장한 남자 한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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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먼저 앉으셔요.”

레이나가 내게 먼저 자리를 권했다.

그 순간, 갈색 머리 남자가 고개를 들어 레이나를 바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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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너, 레이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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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게 얼마 만이야!”

레이나는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치기까지 하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곧바로 내 존재를 눈치챈 듯 레이나가 제 머리를 가볍게 콩콩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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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내 정신 좀 봐. 소개를 먼저 해드렸어야 했는데. 메이아 님, 이쪽은 제 소꿉친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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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메이아 님. 테오 네리스라고 합니다. 그냥 테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갈색 머리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 역시 따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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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저는 메이아라고 해요.”

테오가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급히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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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메이아 님.”

나는 가만히 테오를 살펴보았다. 갈색 곱슬머리. 순둥순둥해 보이는 눈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레이나의 소꿉친구에다가 테오 네리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황궁 기사단, 테오 네리스. 그는 원작 속에서 키네스의 질투심을 유발했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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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여주인공 곁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원작 인물을 만나게 되는구나.’

신기해서 테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레이나가 나와 그를 떼어놓더니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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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달리 내 본모습까지도 좋아해 주시는 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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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가 많이 무섭지는 않습니까? 걸핏하면 나락으로 보낸다고 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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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말 나락으로 가고 싶니? 응?”

레이나의 말에 절로 몸이 움찔하며 움츠러들었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악몽으로 나오기도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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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도 무서워하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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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레이나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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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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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테오 자식, 어디서 우리 착한 메이아 님을 너랑 같은 자식으로 만들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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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진짜라니까! 진짜로 끄덕거리셨다고!”

나는 억울해하는 테오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게 나까지 싸잡지는 말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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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크하는 펜을 내려두며 눈가를 꾹 눌렀다. 데미안에 대한 정보도, 업무를 처리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모든 게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이틀째 밤을 새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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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가 필요해.’

메이아가 있어야 예민한 정신과 마음이 모두 가라앉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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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보고 올까.”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라크하가 시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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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쌍둥이들의 수업 일정이 어떻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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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꾸벅꾸벅 졸던 시롬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 침을 쓱 닦았다.

라크하가 눈살을 찡그리자, 시롬은 초인적인 힘으로 쌍둥이들의 오늘 일정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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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수업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아가씨와 도련님의 수업은 점심시간까지 꽉 차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야외 검술 수업을 진행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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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메이아는 안에서 쉬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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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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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딱이군.”

라크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났다.

쌍둥이들의 방해도 없으니 메이아와 따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주 짧게나마 낮잠을 자고 올 수도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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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에게 다녀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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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편히 갔다 오십시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디어 쉴 수 있구나! 시롬은 활짝 웃다 말고 황급히 입을 손으로 가렸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냈다간 라크하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가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롬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며 쌍둥이들이 들어온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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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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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검술 수업을 하다 말고 뛰어온 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뒤로 하녀들 여럿이 울먹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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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공작님 이렇게 멋대로 들이닥쳐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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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형, 큰일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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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우리 전부 다 망했다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말이 쏟아졌다.

라크하는 왈각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잠도 자지 못해 예민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머리가 울리고 급격하게 피로감이 치솟았다.

라크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문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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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입 다물고 나가.”

라크하의 눈에는 모두가 메이아를 보러 가는 길을 막는 방해꾼으로 보였다.

험악하기 그지없는 경고에도 쌍둥이들은 계속 난리 법석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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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그럴 때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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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언니가 생전 안 하던 외출을 했다니까! 그것도 혼자서!!”

아이샤의 입에서 메이아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마자 라크하의 행동이 일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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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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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 말로는 형수님이 오늘 낮에 외출한다면서 나갔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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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언니가 우릴 두고 떠난 거면 어떡해?”

쌍둥이들의 말을 가만히 듣던 라크하가 눈매를 좁혔다.

메이아가 굳이 허락 맡고 외출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혼자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메이아가 외출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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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카인, 혹시 내가 어제 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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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탓도 있고, 어제 우리가 너무 몰아붙였던 탓이 커. 나라도 안 그랬어야 했는데.”

쌍둥이들의 대화로 대충 상황을 파악한 라크하는 하녀들을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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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도 똑같은 이유로 왔나?”

라크하의 물음에 리타가 다급히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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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청소를 하다가 메이아 님께서 남긴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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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어디 한번 보지.”

무감하게 리타를 바라보던 라크하가 관심을 보였다.

반면 쪽지를 직접 보겠다고 하니 리타가 당황해하며 허리를 푹 숙였다.

그런 리타의 앞으로 빌렌이 걸어와 몸을 숙이며 쪽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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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물에 젖었습니다만…… 대충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쪽지 내용대로라면, 아가씨와 도련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라크하는 받은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질척한 소유욕과 함께 광기로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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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꾸깃, 쪽지는 그의 손안에서 힘없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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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쪽지만 남긴 채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라크하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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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델카인.”

높낮이가 없는 기계적인 음성.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비장한 얼굴로 라크하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아이샤는 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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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가 잡아 올까? 나, 술래잡기 하나는 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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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희들은 가만히 있도록 해.”

쌍둥이들 때문에 도망쳤을 수도 있는데 함께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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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간다.”

화르르.

라크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쪽지에 불길이 일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없어졌다.

그는 날이 형형하게 선 눈으로 대기실에 있는 사용인들을 쓱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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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메이아의 외출을 목격했다는 놈은 어디 있지?”

 

***

아인티아 공작가가 메이아의 가출 소동으로 뒤집어진 그 시각.

펠리르는 여전히 메이아에게 받았던 머리카락으로 연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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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작 머리카락에도 샤키르의 꽃의 효과가 있다고……?”

미약하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현상이었다. 대체 이 신의 딸이라 불리는 여자의 몸은 어떻게 이루어졌길래 이게 가능한 건지 상식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샤키르의 꽃은 신성력이 있어야 자란다. 그렇기에 신전 주변에서만 자라는 꽃이다.

그런데 몸 전체에 샤키르의 꽃 능력이 유지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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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한 신성력이 몸을 두르고 있거나, 샤키르의 꽃이 그 아가씨의 생명력이라는 건데…… 아니, 둘 다이려나?’

펠리르는 눈가를 좁혔다. 아직은 애매모호한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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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르 님, 연구는 잘 되어가고 계세요?”

펠리르의 곁으로 안경을 쓴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펠리르의 조수, 리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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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리케. 마침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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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실 일이라도 따로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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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혹시 전에 북쪽 숲에서 내가 들고 왔던 검은 생명체를 들고 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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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생명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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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겸 다른 연구도 해보려고.”

너무 한 가지만 파고 있으면 크게 보질 못하니 잠시 숨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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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지 말고 차라리 나가서 잠시 돌아다니시는 게 어때요? 지금 탄신 연회 때문에 제국에 축제가 한창인데.”

리케가 펠리르의 어깨에 유혹적으로 손을 올렸다.

펠리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리케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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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잘못 먹었어?”

자신이 장난을 칠 때마다 늘 볼을 붉히며 수줍어하던 리케였다.

그래서 제 눈을 보기도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는데…….

리케가 눈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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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어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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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너도 그냥 따로 쉬는 게 좋겠다. 내가 직접 가져올게.”

펠리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리케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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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르 님, 제가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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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너는 쉬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리케의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 보였다.

하지만 리케는 펠리르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도르륵, 안경 너머로 리케의 눈동자가 메이아의 머리카락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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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메이아 님에 대한 연구는 끝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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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케의 질문에 펠리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이상했다.

펠리르는 얼굴을 굳힌 채 리케를 고요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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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가씨의 이름을 어떻게 알아?”

단 한 번도 리케의 앞에서 꺼내지 않은 이름이었다.

리케가 순진한 눈망울로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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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르죠.”

오싹, 리케가 잡고 있는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펠리르를 올려다보고 있던 리케가 이내 양쪽 입꼬리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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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녹스는 알지.”

훅. 그 순간, 마법석으로 유지되던 촛불이 모두 꺼졌다.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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