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탐색전 (31/92)


#31. 탐색전
2022.07.18.


저를 부르는 외침을 들은 루카스가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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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채 전무님.”

도하는 그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이 한 번을 막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도하는 그냥 본능적으로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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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렇게 만났는데 이대로는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말씀대로 점심 같이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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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실까요? 저야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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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 저도 점심은 먹어야겠고 송화궁 음식점을 들르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을 것 같네요. 송화궁 한정식도 워낙 유명하니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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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럼 여기서 드실까요? 마침 지금 시즌 메뉴도 반응 좋은 데 가시죠. 다 먹고 살자고 바삐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루카스 유는 호쾌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도하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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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채 전무님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이현서 원장님도 같이 가자고 할까요?”

이로써 유 대표가 현서에게 향하고 있었다는 심증이 확실시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뭐, 나야 고맙지. 현서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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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죠. 안 그래도 방금 이 원장님이랑 미팅하고 나온 길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급히 마무리된 감도 있었는데 다시 뵐 수 있다면 더욱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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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러셨던 거예요?”

웃고 있던 루카스의 표정이 아주 잠깐 허물어졌다. 그러나 루카스는 곧 다시 능숙하게 속내를 감출 수 있었다. 속으로는 불쾌감이 일었지만 말이다.

그는 지난 미팅 때 채도하가 넋을 놓고 현서를 바라보았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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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대표님께서 직접 오셨을까요?”

루카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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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이죠. 특허인께 그만한 대우를 해드리고 싶은데 자꾸 거절하시니 제가 직접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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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군요.”

그게 대표가 올 정도의 일이라는 건 그다지 공감 가지 않아 그저 핑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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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현서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으면서 나한테는 연락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하고 가려 했다 이거지. 현서도 왜 나한테 채 전무 만난다는 말을 안 했지?’

뭔가 수상쩍은 점이 많았다.

더구나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현서가 손님에게 점심도 먹이지 않고 보낼 사람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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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이 남자가 현서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가?’

잠시 별의별 상상이 다 올라오려 했지만 루카스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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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잠시만요. 제가 가서 이 원장한테 식사하자고 할게요.”

말을 끝내는 동시에 루카스는 돌아서서 원장실로 향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둘의 분위기가 어떤지 오늘 다시 한번 똑똑히 보고 싶어졌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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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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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루카스.”

벌컥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민 루카스는 현서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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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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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럴까? 지금 나갈게.”

현서는 노트북을 끄고 곧바로 자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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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까? 열심히 일했더니 배고프다.”

도하와의 미팅 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현서는 문을 나서며 실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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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가게에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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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그러고 보니 은근히 오랜만이네. 나 시즌 메뉴도 아직 못 먹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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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현서. 오늘은 한 분 더 합류할 건데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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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누군데?”

질문과 함께 루카스와 샛길로 막 들어섰을 때 그 길 중간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현서는 절로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주춤하고 발을 멈춘 현서에게 그제야 루카스가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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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하 전무님도 같이 가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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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도하는 그 길에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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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전무님이랑 미팅했었다며. 나한테도 말해 주지 그랬어. 인사도 못 하고 보내드릴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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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도 대표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

당황한 현서가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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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구나. 아무튼, 같이 식사하는 건 괜찮지?”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루카스 앞에서 아주 잠시 망설였지만 현서의 대답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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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래.”

배고프다며 우리 가게도 좋다고 해 놓고 갑자기 빼는 것도 이상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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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루카스와 함께 그를 향해 순순히 다가오는 현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식사 제의를 했어도 끝없이 거절하던 여자가 루카스의 제의에 끝내는 함께하기로 한 모양이다.

한때는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여자였는데. 내 아내였는데.

이 상황이 그에겐 한없이 이상했다.

이제는 밥 한 번을 함께 먹으려 해도 그 자신은 절대 설득할 수가 없어서 다른 남자의 힘을 빌려 설득해야만 하는 어려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이현서와 함께할 수 있었던 지난 순간들이 전부 귀하고 찬란한 보석 같았다. 아주 소소했던 순간조차.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린 그때의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지금은 그 매 순간들이 그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는 것 같았다.

***

단둘이서 미팅까지 했다면서 막상 식사 자리에선 묘할 정도로 서로 말이 없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루카스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별스럽지 않은 잡담을 하는 중에도 현서와 도하의 분위기를 살폈다.

루카스 유는 채도하와는 많이 달랐다.

채도하가 현서와 가까운 남자를 불편해하고 쌩하고 무시하려는 타입이라면, 루카스 유는 적을 가까이 두고 보는 게 더 편한 타입이었다.

오늘은 딱 셋뿐이었으니 좋은 탐색전이 될 것이다.

채 전무는 루카스와 주로 대화를 했고 현서 역시 루카스와 주로 대화를 했다.

채 전무는 말은 루카스와 더 많이 하고 있으면서도 시선만큼은 지난번과 다름없이 현서의 얼굴에 더 많이 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현서는 또 왜 이렇게 잠잠한 거고. 손님 앞에서 이렇게 조용한 성격이 결코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도하의 시선이 문득 루카스에게 옮겨왔다. 그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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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이는 잘 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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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불쑥 날아든 질문에 루카스와 현서 둘 다 동시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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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대표님 아들이요. 지난번에 비행기 날리던 그 귀여운 아이.”

젓가락을 쥔 현서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방금 도하가 뱉어낸 믿을 수 없는 말에 기절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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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하.”

루카스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랬었지, 그때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지.

아무래도 채도하가 대단한 오해를 한 모양이다.

루카스는 눈동자를 슬쩍 돌려 현서의 안색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아연실색한 낯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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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주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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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아이가 귀여워서 가끔 생각나더라고요.”

현서는 그 말을 하는 도하의 잔잔한 미소를 보다가 차마 더 볼 수가 없어 눈동자를 떨어뜨렸다.

실은 친 아빠가 제 아이를 귀엽다고 말하고 있는 이 상황에 어찌 태연할 수가 있을까.

그때 도현이를 전남편이 보았을 줄은.

전남편은 도현이를 루카스의 아이로 오해하고 있는 듯한데, 이 상황이 과연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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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가 유 대표님과 하나도 닮지 않았던데, 아빠보다 엄마를 많이 닮았나 보죠?”

루카스는 현서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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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엄마랑도 많이 닮진 않은 거 같아요.”

현서는 손이 떨려 끝내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도하는 방금의 루카스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아이 엄마 이야기에 왜 현서를 쳐다보지?

두 사람이 무슨 사이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찼다. 그러나 부부가 아니라면 그런 억측도 실례가 될 수 있으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부부가 함께 비즈니스를 하는 게 꼭 좋은 영향만 있는 것도 아니라 구태여 적극적으로 밝히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속해서 부딪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사실이겠지만.

아이가 현서와 닮은 것도 아니어서 더 추측이 안 되었다.

그런데 현서와는 닮지 않았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아이였는데, 그게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루카스는 루카스대로 현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평소에 도현에게 본인을 아빠라고 부르게 하는 걸 싫어하는 그녀가 지금은 왜인지 이 오해를 풀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기분이 매우 안 좋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현서가 그렇게 나오고 있으니 루카스도 굳이 그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녀가 모처럼 채도하 전무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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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저희 음식은 입에 맞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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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주 훌륭하네요.”

화제는 자연스레 바뀌어 음식 이야기가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눈을 맞추는 두 사람을 루카스는 의문스럽게 바라보았다.

.
.
.

음식점 앞에서 두 남자와 헤어진 현서는 혼자서 원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도하가 도현을 언급할 때가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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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3년도 더 지나도록 소식이 끊겼으면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마주치고 부딪치게 될 줄은…….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월요일 아침부터 현서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난번에 명함을 주고받은 SH 코스메틱 연구소장이었다. 이제는 저 회사와 관련된 사람만 봐도 한숨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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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소장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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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원장님.

그러나 비즈니스였으니 늘 그렇듯 현서는 친절하게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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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원료에 대해 문의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발명하신 분이 잘 아실 부분이 많을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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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원료 관련해서는, 뭐든지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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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드리고 싶은 샘플이 있는데 만나서 여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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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럼 시간 맞춰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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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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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셔요.”

몇 마디가 더 오간 뒤 간단히 통화를 마쳤을 뿐인데도 큰일을 치른 기분이었다.

어디까지나 일은 일이었지만 이 회사와 너무 자주 얽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인가.

SH……. 왜 하필 그게 채도하의 회사여서…….

왜 또 채도하인 거야.

제 인생에서 채도하를 완전히 비워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실로 질긴 인연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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