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날 오후 2시 (2부)
남대문 경찰서의 오늘 하루는 여느 때와 좀 달랐다.
새벽에 검거된 서울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약조직원들의 심문이 신경질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험상궂은 차성배와 누가 봐도 베테랑인 최필승 형사가 취조실 책상에서 아무 말 없이 대치한 게 벌써 5분 남짓 됐다.
성배의 눈을 매섭게 쏘아보던 최 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배야, 우리 쉽게 가자. 장부 보니깐 아주 가관이더라. 서울도 모자라서 부산, 목포, 대전…, 마약으로 전국 통일을 하셨어, 아주.”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최 형사의 말에 성배가 응수한다.
“형사님, 거 하나만 물읍시다. 준호가 찔렀습니까?”
최 형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준호는 또 누구냐? 혹시 네 식구 중에 안 잡혀 온 놈이 있냐? 그럼 어디 불어봐라. 그놈도 잡아오게.”
성배는 뭔가 말하려다 이내 살며시 썩소를 지으며, 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어이 차성배, 어차피 할루신 거래 장부는 우리가 갖고 있고, 압수한 할루신으로 증거 충분하고, 니들은…, 특히 차성배 넌 이번에 들어가면 길게 한 바퀴야. 너 지금 서른일곱이지. 들어갔다 나오면 지금 내 나이된다.”
“아 나, 진짜 형사니임. 최 형사니임! 나 차성배에요.”
“알아 이 새끼야, 너 차성배인 거. 그러니깐, 독일에 무슨 정보를 듣고 갔고, 어떤 애들한테 할루신을 구입했는지 다 불어. 인터폴하고 공조해서 그놈들 잡아넣고, 우린 우리대로 글로벌하게 사건 해결하고 일 계급 특진하고, 넌 인마 짧게 세 바퀴만 돌다 나오면 돼. 응, 성배야.”
최 형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약사범 킬러였다. 그에게 목줄이 잡힌 이상 성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주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이던 성배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니깐, 3주 전에…, 다른 걸 사려고 독일에 갔습니다.”
이미 저항을 포기한 성배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래는 필로폰을 사려고 갔는데, 독일 애들이 할루신을 권하더라고요. 소문은 들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개들이 어쩐 일인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10kg이나 되는 걸 전부 팔겠다고 해서….”
최 형사가 끼어든다.
“10kg이면 최소한 이십억은 넘을 텐데, 얼마나 싸게 후려쳐줬길래?”
“그게…, 한국 돈으로 2천만 원에 전부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최 형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배에게 물었다.
“아니, 개들은 왜 가장 잘나가는 마약을 그렇게 헐값에 준거냐?”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할루신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제조법을 바꿨는데, 자기들 동료 하나가 그 새로운 할루신을 맞고 좀 이상해 졌다고 하더라고요.”
최 형사가 궁금한 듯 묻는다.
“제조법을 바꾸다니? 그래봤자 마약이 마약이지.”
“그게… 독일에서 근육병의 치료 목적으로 개발되던 약이 있었는데, 그게 효과는 좋은데 신경 계통 쪽에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임상 실험 도중에 연구를 포기 했데요. 원래는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하는데, 그 약이 환각효과가 뛰어나서 약쟁이 들이 뒷돈 찔러주고 불법거래 한 거죠. 가뜩이나 환상적인 할루신에 그 약을 짬뽕 시킨 거고요.”
성배가 두 손을 깍지 끼고 손목을 돌리며, 무언가 섞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아직 궁금한 게 남은 듯, 최 형사가 연달아 질문한다.
“근데. 그거 한 놈이 뭐가 어떻게 이상해 졌는데?”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 믿기는 어려운데, 좀비처럼 변해서 친구들을 물고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더라고요.”
“좀비? 그 사람 뜯어먹는 그 좀비?”
놀란 표정의 최 형사의 질문에 성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좀비는 무슨…, 그냥 약 빨고 미쳐서 발작한 거겠죠.”
그때 책상에 놓인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최 형사는 더 듣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예, 서장님. 뭐 이제 다 끝나 갑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 형사는 성배에게 말한다.
“그 독일 애들 이름하고 연락처, 거래장소 여기다 적어놔. 순순히 협조했으니까 약속대로 내가 최대한 힘써주지.”
최 형사는 성배에게 종이를 밀어주며 손가락으로 여기다 적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종이를 받은 성배는, 취조실을 나가는 최 형사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김준호, 이 새끼.”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취조실의 공기는 서늘했다.
마치 차성배의 표정처럼.
시청 바로 앞에는 서울 광장이 있다. 타원형으로 생긴 잔디밭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그 테두리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쪽으론 바로 다차선 도로가 뻗어있었다.
오늘 이 서울 광장에서 썸머 페스티벌이 열린다.
부모님 손을 잡고 매우 신이 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부부들이 여럿 보인다.
특설 무대 위에선 댄스 팀과 가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엔 오랜만에 컴백한 소녀시대가 Lion Heart를 리허설하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선 폭죽 팀들이 불꽃놀이용 폭죽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팔짱을 낀 대머리 아저씨, 깐깐해 보이는 흰머리 수북한 아저씨, 시종일관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인상 좋은 아저씨 등이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저씨들 뒤에는 더운 여름날 검은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 6명이 미동도 없이 주변을 경계 하고 있었다.
좀 더 광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판대와 핫도그를 파는 가판대가 나란히 있었고,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사먹으려는 사람들로 벌써 부터 꽤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옆으로 아이언 맨 코스프레 슈트를 입은 남자가 지나가고, 그 뒤로 온몸을 녹색으로 칠한 꼬마 아이가 헐크 흉내를 내며 아이언 맨을 쫓아다녔다.
솜사탕을 파는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장사가 잘 안 되는 듯 연신 담배만 피우고 계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크게 웃는 외국인들, 무대 위에서 춤추다 넘어지는 댄서와 그걸 보며 배꼽 잡는 댄스 팀원들.
광장에 모인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유독 임진모는 표정이 어두웠다.
언뜻 보기에도 나이가 50은 넘어 보였고, 키는 170cm 정도로 작았으며, 듬성듬성한 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는 광장 한 편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자신이 만든 고철 장난감등을 팔고 있었다.
기존의 RC카와 비슷한 자동차도 있었고, 트랜스포머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로봇 장난감도 있었다.
마치 게임 속에 나오는 아이템들처럼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진 칼이나 도끼, 창 등도 돗자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그 끝이 날카롭진 않았으며, 아이들이 갖고 놀 정도로 안전한 것들뿐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신기한 듯 돗자리 위에 있는 장난감들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부모님들의 손에 붙들려 끌려갔다.
“저런 거 갖고 노는 거 아냐. 아빠가 내일 백화점 가서 좋은 거 사줄게.”
아이는 부모님한테 끌려가면서도 장난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끌려가는 아이를 잠시 바라보던 진모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 딸도 이런데 오면 참 좋아 할 텐데.’
집에서 진모가 장사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딸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애잔함이 밀려왔다.
한참 하늘을 보던 진모 앞에 헐크로 분장한 아이가 뛰어와서 말을 걸었다.
“우와! 아저씨 이건 뭐에요?”
진모가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에게 답한다.
“어, 꼬마야. 이건 자동차야. 아저씨가 직접 만든 거야.”
“와, 아저씨 짱짱맨. 아저씨가 여기 있는 거 다 만들었어요?”
헐크로 분장한 아이는 이것저것 만져보며 신기한 듯 계속 물어본다.
“아저씨! 이건 로보트죠, 이건 칼이고요. 진짜 잘 만들었어요.”
반나절을 앉아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처음인지라, 진모도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래, 이건 로봇이지만 이렇게 하면 변신도 가능하다.”
로봇이 상자로 변신하자 아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던 진모가 미소를 띠며 아이에게 묻는다.
“꼬마야, 넌 이름이 뭐니?”
“전 정배에요. 박정배.”
정배는 자신의 이름을 씩씩하게 외친 뒤, 헐크 흉내를 내어 보였다.
진모는 그런 정배가 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근데 엄마, 아빠는 어딨어? 여기 사람 많아서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그 말에 시종일관 웃음을 보이던 정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엄마, 아빠 없어요. 전 이모랑 놀러 왔는데, 이모는 저쪽에서 장사 하신다고 바빠요.”
진모는 덩달아 표정이 굳으며, 미안한 듯 나지막이 말한다.
“그렇구나. 아저씨가 괜한 걸 물어봤네.”
정배는 괜찮다고 말하며, 계속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았다.
미안한 표정으로 정배를 바라보던 진모는 정배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로봇 장난감 두개를 집어 정배에게 내밀었다.
“정배야, 이거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다. 이거 갖고 가서 놀아.”
정배는 멍하니 진모를 바라보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친다.
“와! 아저씨 짱짱맨. 고맙습니다.”
로봇 장난감을 받아 든 정배는, 진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곧바로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장사를 하려고 나온 진모는, 비록 장난감을 팔진 못했지만, 정배의 밝은 표정을 생각하니,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참을 미소 짓던 진모는 배가 고픈 듯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열고 김밥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페스티벌은 오후 6시 부터 시작이었지만, 이미 광장은 그들만의 페스티벌이 한창 중이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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