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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발자국 (70)화 (7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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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애야?”

“손에 힘이 없어, 서우야.”

“한솔이도 안 이래.”

타박하면서도 서우가 그가 놓쳤던 포크를 들었다. 뇨끼를 세 개씩 집어 태윤의 입에 넣어 준다.

꼭 새끼 새처럼 잘도 받아먹는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다가 또다시 편의점 수정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래서 여우라고 하는구나.

“여우.”

결국 원하는 상황으로 끌고 간다. 거절할 수 없다. 그러기엔 강태윤이 눈꼬리를 내리면 마음에 어떤 생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강태윤의 피아노나 그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줘서 마음이 동한 게 아니라 얼굴에 반한 건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정도였다.

입을 열지 않고 단정하게 음식물을 끝까지 씹어 삼킨다.

“내가 여우면 넌 이미 잡아먹혔지.”

음식물을 다 넘기고 난 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또 얼굴에 혼자만 열이 오르는 느낌이라 서우가 재빨리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은하가 그러는데, 지형이 유럽 다시 들어가기 전에 가든 연주회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대.”

“하든지, 말든지. 그런데 거기에 너는 안 돼.”

“어…. 우리 집에서.”

단풍이 너무 예쁘게 드는 계절이라 태윤의 집이 제격이라고 했다.

바로 앞의 조망이 기가 막혀서 서우도 점점 옷을 갈아입는 산을 보고선 매일 감탄 중이었다.

“우리 집?”

“응.”

태윤이 삐뚜름하게 턱을 괸다. 그리고 은근한 얼굴로 웃으면서 묻는다.

“이제 윤서우가 여길 우리 집이라고 부르네?”

“아…. 그게….”

“좋다는 소리야. 그만큼 너한테 편해진 것 같아서. 그거랑 다른 의미로 난 싫어. 주지형이 이 집에 들어오는 꼴 못 봐.”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만. 은하와 내가 편한 사람들이서만 하고 싶은데.”

“주지형뿐만 아니라 여기 아무도 못 와.”

태윤은 단호했다. 서우와 제 보금자리이니 아무도 못 온다는 말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녀가 재빨리 항복하고 두 손을 들었다.

“집주인인 네가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우리 집에서 바로 집주인이라고 부르자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한숨을 거칠게 내쉰다. 모르는 척 서우가 다시 뇨끼를 집어 태윤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명의 바꿔 줄게. 네가 집주인 해.”

넣어 주는 대로 또 얌전히 단정하게 씹고 삼킨 태윤의 목소리가 으르렁대듯 낮았다. 당장이라도 내일 부동산에 가자고 할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잠시 생각하듯 그가 눈을 가늘게 뜬다.

“괜찮아. 그냥 은하 집에서 하자고 해도 돼.”

“네가 그 엿 같은 세레나데만 그 새끼랑 같이 협연 안 하는 조건. 그것뿐만 아니라 그냥 걔랑 같이 앉아 있는 것도 안 돼.”

그래도 한때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엿 같은 세레나데라고 하니 어쩐지 웃겼다. 왜 웃냐는 얼굴로 태윤이 바라본다.

“태윤아, 걔가 왜 나랑 그런 협연을 하겠어.”

“했잖아.”

그때 있었던 일이 어떻게든 태윤의 귀에 들어갔던 것 같다. 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한솔이를 데려와도 강태윤보다는 말이 통할 게 분명했다.

“강태윤, 너 진짜-”

“나랑도 해.”

“뭐?”

“나한테 고백했잖아. 짝 되고 싶었다고. 그럼 나랑도 해야지, 서우야. 그게 공평하잖아. 왜 그 짝을 주지형이랑 맞춰.”

유치했다. 왜 계산이 그렇게 되냐고 묻고 싶은데 태윤의 제안이 그녀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그와 얼렁뚱땅 협연이라니. 오랜 꿈이 이렇게 이루어져도 괜찮은 걸까. 장난하냐고 화를 내는 게 맞는데 제안이 너무 달콤했다.

서우가 망설이는 걸 보면서 태윤이 근사한 얼굴로 웃는다.

“그… 그때는 그냥 분위기가 그랬던 거고. 나 손 아픈 거 지형이도 이제 아는데 다시 그렇게 해 보라고 할 리가 없잖아.”

“네가 얼마나 엉망이든 상관없어. 내가 맞출게. 나는 그냥 너랑 하고 싶어.”

태윤의 얼굴은 무기나 다름없었다. 가볍게 꺼낸 이야기에 한 대 맞은 감각이 선득하다. 이제는 며칠 내도록 머리가 터질 듯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됐다.

“생각해 볼게.”

분명히 반대 입장이었는데 오히려 제 입에서 생각해 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자신만 긍정하면 여기서 가든 연주회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쩐지 강태윤의 큰 그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건?”

“응?”

“너랑 하고 싶다고 했잖아.”

이거나 먹으라고 뇨끼를 다섯 개나 집어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가 그대로 손목이 잡혔다.

부드럽게 태윤이 당겼다. 포크를 놓쳐 뇨끼가 그의 바지춤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하.”

회색 트레이닝 바지 위로 크림소스가 얼룩졌다.

“벌써 싼 것 같네.”

노골적인 말이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다. 섹스를 할 때마다 강태윤은 정도를 몰랐다. 제 귀에 속삭이는 저런 말들로 인해 서우는 매번 몸부림을 쳤다.

특히 제 귀에 혀를 깊숙이 넣고 여기 구멍도 좁다는 말에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태윤이 다리를 넓게 벌렸다.

반쯤 일어나 있는 서우의 시선이 아래 닿자마자 무섭게 트레이닝 바지 위가 부풀어 올랐다.

“이것 좀 봐, 서우야.”

무리하게 계속해서 잡아 올린다. 발끝으로 딛다가 이내 강태윤이 그녀의 손을 높게 들어 올리자 무릎이 식탁 위를 딛고 올라가야 할 정도였다.

이미 반쯤 일어나 있다가 그의 명백한 의도대로 올라갔다. 벌 받는 아이처럼 식탁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서우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강태윤과의 섹스는 여운이 길었다. 매번 체위도, 그와 나누는 음험한 이야기들도 달랐다. 배 속이 뜨거워진다. 그의 시선에서 자신은 이미 흥분한 모양새일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

태윤이 서우의 손을 가져가 제 아랫도리에 댄다.

질척한 뇨끼의 크림소스가 손바닥에 묻어 나왔다. 둥글게 태윤이 문질렀다. 단단한 것의 모양이 손바닥 아래 선연하게 만져진다.

“밥 먹는 중이었잖아.”

“그래서 싫어? 여기에 네가 이렇게 싸질러 놓고.”

난잡한 혀가 움직인다. 의도를 갖고 일부러 싸질러 놓았다고 그가 표현했다.

강태윤은 이런 쪽으로 천부적이었다. 서우의 손목을 잡고 계속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린다. 온통 질척하게 잔재가 만져져서 어쩐지 허리 아래가 오싹했다.

“아, 서우야.”

붉은 입술을 벌리면서 태윤이 짧게 신음을 흘렸다. 분명하게 서우의 이름을 부르면서.

매번 제 입으로만 뱉던 게 그의 입에서 들리자 탁하게 갈라져서 더 음험한 소리가 됐다. 태윤이 아래를 비비던 서우의 손을 들어 올려 거기에 입술을 묻었다. 하얀 크림을 있는 대로 핥아 먹고선 손을 뗐을 때였다.

그렇게 음식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먹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방탕해졌다.

“이쯤 되면 넘어와야지. 응?”

야살스럽게 휘어진 눈가를 한 강태윤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입술에 하얀 크림을 묻힌 채 느리게 혀를 핥는다. 꼭 정말 그가 싼 정액을 먹어 치우는 걸로 보인다.

“…내일부터 같이 매일 식사할까.”

서우가 결국 말을 꺼냈다. 태윤에게 매일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한다. 그의 느린 웃음이 진해졌다.

“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

하나씩 같이하다 보면 언젠가 태윤이 말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머물게 되리라.

“네 마음대로 해.”

“알았어. 그러면 내일부터….”

심술궂게 대답하면서 입술은 좋아 죽는지 호선을 그린다. 붉은 혀가 크림소스를 핥아 먹었다.

태윤이 한발 서우가 다가왔음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이렇게 대놓고 꾀어내는 저를 외면하면서 내일 이야기나 하고 있는 그녀에게 태윤이 욕망을 숨기지 않고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연다.

“서우야, 여기 앉아 봐. 다리 벌리고.”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를 올라타라고 종용한다.

그 여우 같은 모습을 보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의문을 그녀가 참지 못했다. 강태윤이 이렇게 숨기는 거라곤 없는 남자라면 어쩌면… 은하의 의미심장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윤아,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래.”

“회사. 우리 회사 온 거 우연 아니지.”

제 옷들을 그렇게 샀던 그를 회사에서 다시 만난 게 우연이 아니리라.

“거기가 쓰레기통이라도 난 갔을걸.”

쓰레기통이라니. 회사 사정이 쓰레기통이 맞긴 해 반박하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강태윤의 마음이 무겁고, 또 한없이 자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 고개를 들 수 없어서다.

그가 두 손으로 슬금슬금 식탁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우의 엉덩이를 감쌌다. 그대로 내려 제 허벅지에 앉힐 셈이다.

“너 때문에 진짜….”

왜 강태윤이 갑자기 자신이 계약직으로 있는 회사에 온단 말인가. 은하도 아는 걸 저만 몰랐다.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 리 없다.

우연은 그와 만났던 처음뿐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고, 결국 운명이 됐다.

서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태윤의 목 뒤에 손을 감았다.

그리고 기꺼이 제 운명에게 끌려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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