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_
끔찍한 고통 속에서 깨자마자 누군가 저를 추슬러 엄마의 장례식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엄마를 잃은 슬픔보다 은하의 귀에 들려오던 건 윤서우에 대한 끔찍한 소리들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윤서우가 엄마를 죽게 했다고 수군댔다. 손가락질했다.
검은 머리 짐승은 이래서 거두는 게 아니라고, 결국 은혜를 원수로 갚은 짐승만도 못한 계집애라고 속삭였다.
은하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의 말마따나 서우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위로하며 윤서우의 배은망덕함을 욕하는 사람들의 입만 보였다.
태윤이 그 사람들의 멱살을 잡아끌고 내치는 걸 보면서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입 한 번 벙끗하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왜 죽었으며, 서우는 왜 이곳에 없는지.
왜 사람들은 전부 윤서우의 잘못이라고 여기는지.
그러다 문득, 데리러 가자고 한 게 자신이라는 걸 밝히면 이 사람들이 윤서우를 보는 시선이 그대로 저에게 돌아올 것 같았다. 은하가 몸을 떨었다. 다들 그녀의 경련이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사고예요!”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냈다.
주 회장이 침음을 삼켰다. 서우를 모질게 끊어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엄마까지 잃은 제 손주에게 어떤 나쁜 소리도 더 얹고 싶지 않았다. 서우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은하의 죄책감을 자극할까 두려웠다.
주 회장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내가 가자고 했어요. 언니 데리러 내가 가자고 해서….”
“그만. 그만해라.”
“외할아버지, 거기서 사고가 났어요.”
은하가 울먹였다. 말이 울음과 뒤섞여 새어 나온다.
“그만!”
무심코 넘겼다. 은하가 제 어미를 졸라 밖으로 나가는 걸 주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운전을 조심하란 말을 못 한 게 못내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블랙박스 영상에서 내내 싸우던 소리를 듣고, 주 회장은 그걸 숨겼다.
관련자들의 입을 모두 막았다. 살아남은 손녀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살았으면 해서였다.
은하는 왕따를 당했던 뒤로 사람들의 시선과 소리에 민감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내가…!”
윤서우가 오면 다 말해야지.
언니가 오면 전부 말해야지. 사람들한테 언니가 아니라 내가 엄마에게 가자고 졸랐다고 말해야지.
자신을 바라볼 시선들이 무서워서 죽을 거 같은데 몸이 떨리는데 빨리 언니가 와서 안아 줬으면 좋겠다.
저를 지켜 줬을 때처럼 저 날 선 시선들 속에서 꼭 끌어안고 대신 막아 줬으면.
언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끝까지 오지 않았다. 발인의 마지막 날까지도 오지 않아서 은하는 해명할 기회를 잃었다. 스스로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이건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은 윤서우 탓이라고. 진짜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오지 않은 거라고 합리화했다.
“흐읍… 흡….”
사람들 말처럼 언니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야.
나는 고아가 됐어.
애초에 내가 엄마를 그렇게 졸랐던 것도 언니 때문이었으니까.
엄마가 죽었던 장소에 자신도 모르게 가서 도로로 뛰어들려던 그녀가 겨우 살아남았을 때 살기 위해 그렇게 덮어씌웠다.
전부, 윤서우가 잘못한 거라고.
용서 안 해야지.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뻔뻔하게 내 앞에 다시 나타나다니. 몇 번이고 말로 창을 만들어 가슴을 찌르고, 칼로 베어서 난도질을 해 놔야지.
자신이 힘들었던 만큼 윤서우도 힘들었으면 했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그 가족을 잃은, 엄마와 윤서우를 동시에 잃고 겨우 헤어 나왔는데 언니 혼자만 그렇게 멀끔한 얼굴로 살면 불공평하다.
“제발… 내가 아니라고 해 줘요.”
은하가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윤서우의 손이 그리된 게 제 탓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고 빌었다. 주 회장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제 친구들이 그랬다.
윤서우가 자신을 보는 눈에 사랑이 담겨 있다고. 언젠가부터 그걸 위선으로 바라봤을까.
윤서우는 변한 게 없었는데.
전부 제 잘못이었다. 엄마가 죽고, 윤서우의 미래가 죽어 버렸다. 잘난 제 다리 하나에 윤서우의 인생이 망가졌다.
“으으… 으….”
은하가 마구 제 다리를 긁었다. 서우가 비가 오는 날에 짜증을 내면 당연하게 가져가 꾹꾹 주물러 주던 그게 그렇게 원망스러웠다. 어떤 마음이었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 미움이나 원망이 없다.
그 눈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은하야!”
다리를 긁던 은하를 보며 주 회장이 빠르게 다가왔다. 손에 핏물이 줄줄 묻어 나온다. 은하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소파의 브라운 시트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
배부르다고 했는데도 그의 포크가 제 입가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서우가 못 이기는 척 입을 벌렸다. 먹기 좋게 작게 나누어진 고기 조각이 밀려들어 왔다. 자신의 입이 닿은 걸로 그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고기를 썰어 먹는다.
“다른 사람이랑 침 섞는 것도 싫어할 것처럼 생겨선.”
강태윤은 왠지 결벽증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남과 닿는 것도 싫어하고, 깔끔한 사람.
“그게 싫었으면, 내가 그렇게 허겁지겁 네 입술부터 빨아 먹진 않았겠지.”
그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하자 테이블에 양팔을 기대고 보고 있던 서우가 순간 뒤로 몸을 물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강태윤이 픽 웃는다.
아까부터 가방 안에서 휴대폰이 가끔 울렸는데 꺼내지 않자 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희주겠지, 뭐.”
“그래.”
강태윤을 보내고 받아도 충분하리라.
또다시 휴대폰이 울려 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엔 테이블 위에 놓은 그의 것이었다.
휴대폰 끝을 손가락으로 잠시 그가 두드린다. 받을지, 말지, 가늠한다.
“받아 봐. 업무 연락일 수도 있잖아.”
“본가야.”
“그럼 더 받아 봐야지.”
서우가 급하게 말했다. 오늘 노부인을 만나고 온 날이라, 혹시 그녀에게 어떤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지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네. 강태윤입니다.”
통화를 받는 내내 태윤의 시선이 서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딘지 약간 긴장한 모습의 그녀를 관찰하듯 바라본다.
“바로 가죠.”
그가 통화를 마쳤을 땐, 이미 서우가 가방을 챙겨 들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데려다줄게.”
“아냐. 난 여기서 택시 타면 돼.”
그의 표정으로 봐선 어떤 일인지 알 수 없어서 조금 초조했다.
“가서 급한 일이면 연락 줄게. 김 비서 올 거야. 그 차 타고 가.”
“뭐 하러 그래. 그냥 내가 가는 게 나아.”
연락은 본가에서 왔다. 은하가 본가에 거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태윤은 결국 누렇게 곪아 있던 것이 터졌다는 걸 본능으로 깨달았다.
어떤 수모를 당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본가에 생겼을까 봐 걱정을 놓지 못하는 서우에게 그가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태윤의 말에 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은 전부 제 몫이었다. 윤서우의 마음을 더 이상 짓밟아서 끌어올 수 없다.
기어이 윤서우를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태윤이 제 차가 주차된 곳으로 갔다.
***
택시를 타고 서우가 목적지를 바꿨다.
늦은 시간이라도 이걸 본다면 주지형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오라는 희주의 문자였기 때문이다. 한 번 가 봤기에 어디에서 묵는지 알고 있다.
호텔에 도착해서 서우가 곧장 스위트룸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스위트룸 앞에서 벨을 누르자 희주가 문을 열어 줬다. 안으로 들어가자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화를 삭이고 있는 지형이 보인다.
희주의 얼굴도 상기된 채라 둘이서 뭔가 언쟁이 오간 듯했다.
“내가 못 올 데 온 거야?”
“아니야. 네 이야기 하고 있었어.”
“내 이야기?”
서우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자신의 이야기로 싸우고 있었다는 둘을 바라봤지만,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소파에 앉아 눈치만 봤다.
“지형이 곧 공연 있는데 피곤하게 왜 그래. 무슨 이야길 꺼냈길래 쟤가 화가 나.”
“아, 진짜!”
희주에게 물어보자 지형이 화를 냈다.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따지듯이 묻기 시작했다.
“희주 누나한테 서우 누나가 원래 걔들 무리에서 그런 취급 받냐고 물어봤어. 됐어?”
“뭐 그런 걸 가지고.”
“누나는 귀 없어? 대놓고 욕하잖아. 다들 학교 다닐 때 누나가 얼굴도 예쁘고 음악도 잘하니까 질투 나서는. 일부러 보란 듯이 까고 다니는 거야.”
씩씩거리는 주지형을 보면서 서우가 풉, 하고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