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발자국 (46)화 (46/70)

046_

서우가 눈을 뜬 건 새벽녘이 다 돼서였다.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겨울의 비는 그칠 만한데 쏟아져서 서우는 눈을 뜬 채로 가만히 그걸 바라봤다.

머리가 어쩐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멍했다.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그냥 빗소리가 듣기 싫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허억, 헉, 하, 흐으… 흐….”

통증이 찾아온 건 그다음이었다. 온 손가락이 부러지는 통증에 서우는 이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떨리는 두 눈이 제 손을 내려다봤다.

양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부목이 덧대어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다 응급실에 서서 선생님의 얼굴 위로 하얀 천이 씌워지는 걸 봤던 게 기억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손의 상처보다 더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서우가 침대에서 발버둥을 쳤다.

“고통이 심할 거라고 하더구나.”

어두운 병실에 저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다가와 무통 주사의 링거액을 좀 더 조절해 준다. 서우의 젖은 눈이 상대를 향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와 어둠이 구분되지 않았다. 저토록 새까만 옷이 불길하게 다가와서 고통에 겨워 입술 사이로 침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으…. 선생님, 선생님이….”

주 회장이었다. 한순간 나이 들어 노쇠해진 얼굴을 한참이 걸려서야 알아봤다.

지독한 악몽인지도 모른다. 서우가 현실을 부정했다. 두 손을 덜덜 떨면서 제 손과 주 회장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늘이 발인이란다.”

사흘을 정신을 잃고 있었고 어긋난 손가락들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몇 번이나 서우가 중간에 깨어났는데 다시 잠들었다. 주 회장이 그렇게 만들었다.

“은하는, 괜찮나요.”

1톤이 훌쩍 넘는 나무들이 더미로 보닛 위에 쏟아졌다. 그 아래 깔린 은하의 발을 서우의 저 손이 감싸지 않았다면 주 회장은 딸을 잃고, 손녀의 다리 또한 잃었을지도 모른다.

위급한 수술은 아니라 장례를 치르고 수술을 받겠다는 은하는 장례식장에서 혼절을 일삼고 있었다.

죽은 딸은 아픈 아이도 아니었고, 이렇게 허망하게 사고로 갈 아이도 아니었다.

처음 깨달은 주 회장의 감정은 당연히 윤서우에 대한 분노였다. 이게 뭐라고 그 비 오는 날 기어이 가서 사고를 낸단 말인가.

“제가… 가서….”

옆에 있어 줘야겠다고 서우가 고통 속에서 말했다.

태윤이가 그래도 정상적으로 살려면 이 아이가 필요하다고, 데리고 있겠다던 딸아이가 떠올랐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차피 입양할 것도 아니니 데리고 있다가 불안정한 태윤이 괜찮아지면 멀리 보내겠다고 했다.

제 딸이 그리 좋은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걸 주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제 핏줄인데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똑같이 사랑스러웠다. 세상 모든 걸 해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게 했다. 회사를 물려주는 것 말곤 손에 무엇이라도 쥐여 줬다.

그게 잘못됐다는 걸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건 사위가 자살하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딸을 봤을 때였다.

사위의 자살이 딸 때문은 아니라고 믿었다.

아비의 본능이 그렇게 시켰다. 심약하던 그가 궁지에 몰려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도 자신은 제 딸의 편이었다.

그런데 태윤이 말문을 닫았고, 은하는 제 어미의 눈치를 심하게 살폈다.

“네가 거길 어디라고 간다는 게냐.”

고통에 찬 서우의 눈이 주 회장을 바라봤다.

“저는… 전….”

“내 딸이 너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 네가 무슨 염치로 거길 가 내 아이들의 얼굴을 본단 말이야.”

서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선생님이 왜 거기 오셨는지 몰라요. 제가 괘, 괜찮다고, 비가 그치면 간다고…. 선생님이 왜 거기에….”

“너 때문에… 왜 내 딸이….”

어린아이처럼 주 회장이 흐느꼈다. 꾹 참고 굳건하게 서 있던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오늘을 기점으로 딸은 차가운 땅속에 묻힌다. 겨울이라 그 얼어 있는 땅에 아이를 묻어야 하는 게 못내 마음에 맺혔다.

주 회장이 비틀거렸다. 고통으로 잔인하게 찢긴 눈에서 끝없이 흐르는 그의 슬픔을 보자 서우가 혀를 깨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제 딸이 그저 늙은 제 두 눈을 가렸을 뿐.

아이들과 딸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 회장은 그냥 뒀다. 극단적인 딸의 성격이 혹여라도 남편을 따라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서다. 그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가족 관계에서 윤서우가 들어왔다.

아이는 필사적이었다. 버림받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스럽게 굴면서 가족 안에서 균형을 잡았다.

히스테릭하던 제 딸의 눈에도 예쁜 짓만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제법 예쁘게 보인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실어증에 걸렸던 태윤이 말을 다시 하게 되고, 항상 무서워서 침대 밑에 들어가서 자던 은하가 윤서우와 함께 침대 위에서 자고 웃음을 되찾았다. 그것만으로 주 회장은 윤서우를 어여쁘게 봤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다친 손을 부여잡고 윤서우가 침대에서 무릎을 꿇었다. 링거를 맞고 있는 손에서 역류한 피가 보였다.

“다시는 나타나지 말거라. 네가 지금까지 거두어 준 은혜를 알면 은하를 위해서 사라져야지.”

생각해 본 적 없는 단호한 말에 서우가 빌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평생 제 어미 눈치를 보고 살아온 애들이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혈육마저 잃은 애들에게 네 존재가 무엇이 될 줄 아느냐.”

서우가 멍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은하는, 은하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본단 말인가.

은하는 항상 은한데, 강태윤은….

“너 때문에 어미를 잃어 놓고 네 손을 잃게 했다는 죄책감에 내 손녀는 평생 가슴을 치겠지.”

깜박이는 서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확신할 수 없었다.

“아… 아….”

“나는 내 손주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네가 키워 준 은혜라는 걸 아는 아이라면 그런 짐은 부모를 잃은 내 손주들에게 지워선 안 되지.”

“회장님! 제가….”

더 잘할게요.

서우의 말이 목에서 미처 나오지 못했다. 주 회장이 손자 녀석인 강태윤을 떠올렸다.

마음은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 아이로 인해 시작된 강태윤의 마음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둘이 그리 좋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그래서 너와 강 서방 결혼에 반대를 안 하지 않았어.

내가 그 가난하고 돈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얼마나 그 남자의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살았는데요. 그런 애들은 어쩔 수 없어요. 마지막까지 비겁하잖아요. 그 꼴을 볼 것 같아요?

서우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 회장이 둘이 좋다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었다.

그때부터 이 아이가 이상하게 태윤의 짝으로 보여서 더 마음이 갔다. 제 딸이 펄쩍펄쩍 뛰면서 반대해도 언젠가 태윤의 고집을 꺾지 못해 받아들일 거라 여겼다.

그런데 주 회장에게 그게 딸과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죽은 어미의 짐을 벗어 버린 태윤이 이 아이를 그래도 품겠다고 말하면, 어찌 될까.

모두가 윤서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걸 아는데 어떤 손가락질을 받고, 은하는 또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주 회장은 정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윤서우도 제 인생을 찾아야 하고, 딸이 남긴 마지막 핏줄인 손주들에게도 흠 하나 없는 길을 열어 주고 싶었다. 이런 관계는 애당초 무너지기 마련이다. 보지 않아도 훤했다.

증오와 애정으로 얽히고 결국 셋 다 독을 품고 살아간다.

윤서우 때문에 제 딸이 죽은 이상 그건 당연했다.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관계였다.

“읍….”

“아가.”

주 회장이 서우를 불렀다.

아주 아기 같은 아이가 제 집에 들어왔다. 무너지기 직전이던 딸아이의 가정을 바로 세웠다.

그럼에도 이 아이 때문에 딸을 잃었다는 생각에 괘씸하고 화가 나면서도 주 회장은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하영이, 너한테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 게다. 내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며 주 회장이 무릎을 꿇었다.

싸늘한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서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 회장의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아아, 자신이 나타나면 은하는 이런 마음으로 평생 절 보게 되겠구나.

저를 실컷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제 손을 평생 죄책감 삼겠구나.

“은하는 모른다. 그 애는 몰라. 내가 말하지 않았어. 네가 이렇게 된 걸 모른다.”

“네… 네.”

“은하를, 내 손주가 너 때문에 그래도 많이 다치지 않았다. 내 손주를 지켜 줘서 고맙다. 고맙다, 아가.”

아가.

잔뜩 주눅이 든 채 눈치를 보며 주 회장의 저택에 들어갔던 어린 첫날, 그가 조용히 소리도 내지 않고 어딘가로 가는 서우를 불러 세우며 한 말이었다. 꼭 그날의 어린 저처럼 부르는 주 회장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도 옆에 있고 싶다고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