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67화

-끼이이익!!

바퀴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아스팔트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자동차는 빠르게 가속하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필로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

경악과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

그저 입을 벌린 채 죽음을 몰고 다가오는 차량 앞에서 놀란 소동물처럼 눈을 뜨고 가만히 제자리에서 얼어 있는 것만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근

단 한 번의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렸다.

시간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필로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멈춰 간다.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겪고 있는 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흔히들 경험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오감이 예리해지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저기서 달려오는 자동차는 필로아도 익히 알고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전기차. 그것도 자동 주행 기능이 탑재된 부류 중 최신형.

백미러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식품과 텅 빈 운전석이 보였다.

운전자는 타고 있지 않다. 저건 아마 자동 주행 기능에 이상이 생겨 일어난 급발진.

필로아에겐 몹시나 익숙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필로아의 부모님은 자동 주행 시스템에 생긴 이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차는 절벽으로 떨어졌고, 필로아는 홀로 세상에 남았다.

이번에 자신의 차례가 왔을 뿐이다.

‘…조금 더, 마키나랑 있고 싶었는데.’

필로아는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은 마쳤다.

자신을 마지막 산 제물로 먹어 치운 다음엔, 더는 이런 불행한 사고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쉬운 건, 마키나를 더는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

다시는 마키나의 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마키나와 함께 같은 것을 바라보며 함께 걸을 수 없다는 것.

‘안녕.’

필로아는 연인을 향해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이에겐 이미 고개를 돌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마키나의 맑고 깊은 눈을 들여다보며 웃어 주고 싶었지만 돌진하는 필로아의 최후는 야속해서 조금의 유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로아는 짧았던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에 담기 위해 애를 썼다.

습기 찬 린딘의 공기.

매연의 냄새.

눈을 찌르는 조명.

귀가 먹먹해지는 대도시의 소음.

그리고.

맞닿은 마키나의 온기를.

‘응?’

필로아가 의식하지도 못한 찰나의 순간, 마키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필로아를 양손으로 밀쳤다.

“마키나…!!”

필로아의 몸은 차량의 진로를 벗어나 길가에 버려진 새것처럼 푹신푹신하고 탄력 같은 것이 전혀 없어 그녀를 튕겨내는 일 없이 포근하게 감싸는 침대 매트리스에 파묻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필로아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지긋하게 미소 짓던 마키나는―

-콰앙!

굉음과 함께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 * *

‘촬영 현장’ 근처에 세워 둔 검은색 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가슴을 졸이며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키나와 필로아가 있는 골목길에는 수십 대의 초소형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카메라는 빠짐없이 두 사람의 움직임과 촬영용 대도구, 소도구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연습했던 대로 마키나는 필로아가 차에 치이기 직전 미리 밀쳐 안전을 확보했고, 그대로 차에 치였다.

…라고 해 봤자 실은 정말로 마키나의 몸이 차량과 부딪친 건 아니었다.

마키나와 차량이 부딪치는 순간, 소도구 팀이 차량 앞 범퍼 안팎에 설치된 여러 종류의 폭약을 터뜨렸고, 결과 범퍼는 정말로 사람과 부딪친 것처럼 굉음을 발하며 추악하게 우그러졌다.

그렇다면 마키나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지난 2주 동안 마키나가 받았던 연기 훈련에 관해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 * *

1주일 전, 키키와이.

마키나는 매스터한트 감독이 대여한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명배우 플랫 샤펜도라에게 특별 개인 원격 지도를 받은 마키나는 벌써부터 상당히 능숙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했다.

이를 눈여겨본 플랫과 매스터한트 감독은 계획보다 일찍 마키나에게 실제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도구와 공간을 준비해 주었다.

스튜디오에 모인 스태프들은 이를 돕기 위해 파견 나온 것이었고.

“이건, 대체 뭡니까.”

마키나는 자신의 허리와 팔다리를 감싼 고정구와 연결된 단단한 금속제 와이어를 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긴, 액션 배우들의 전유물인 와이어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마키나에겐 영화를 보는 취미가 없었지만 최근 몇 번인가 필로아와 극장에 가 본 기억이 있었다.

필로아의 취향은 넓어서 멜로부터 코미디, 예술 영화, 그 외에도 화려한 CG로 범벅된 액션 영화와 피비린내 나는 누아르까지 선호하지 않는 영화가 없었다.

마키나는 필로아와 함께 본 액션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사람을 돕는 선한 인공 지능과 기계로 된 몸을 얻어 세계 지배를 꿈꾸는 악한 인공 지능이 대결을 벌이는 스토리가 영 불편했던 까닭이다.

다만, 지식은 지식이었고 마키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에 관한 정보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스펀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액션 영화의 촬영 기법 등 기술적인 부분은 진즉에 조사를 마쳐 둔 바 있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유독 이 와이어 액션이라는 건 마키나가 보았을 때 지극히 원시적이고 아이들 소꿉장난 정도의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기법이었다.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수법을 사용하는군요.”

<왜. 좀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야?>

“조금 상상했던 것과 달라 실망했을 뿐입니다.”

<어우. 말이 너무 심한데?>

마키나의 독설에도 영상통화 중인 플랫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에게 이만큼 까칠하게 굴었다간 욕을 바가지로 먹기 십상이지만 플랫은 이미 사전에 김지안 대리로부터 마키나의 성격과 특징 등에 관해 전부 들은 바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

이미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플랫 샤펜도라에겐 마키나는 투정조차 귀엽게 느껴지는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 분명 네 말대로 와이어 액션은 구닥다리 수법이야.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어째서 이런 오래된 수법이 아직도 효율을 중시하는 영화 촬영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걸까.>

“그러게 말입니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마키나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었다.

당장 까탈스러운 말을 뱉은 건, 자신에게 있어 인생을 걸어야만 하는 단 한 번의 시도가 저들의 눈에 얼마나 하찮아 보였으면 이런 기술력도 뭣도 필요 없는 원시적인 도구를 자신에게 부착하려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시키려 한 건 누구보다 어린 시절에 영화 업계에 몸을 담가 활동해 온 플랫과 로렐트리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감독인 매스터한트다.

당장 감독은 이 자리에 없고 플랫이 영상 통화로 스태프와 마키나를 지켜보고 있긴 한데, 그 둘이 이런 일을 시켰다면 분명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터.

“…….”

짧은 사고 끝에 결론을 도출해 낸 마키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할 기술이 등장하지 않았군요.”

<맞아. 정확하게 봤어.>

플랫은 마키나에게 와이어 액션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장인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영화라는 것이 역사에 등장한 이래로, 액션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폭넓게 애용되어 온 와이어를 사용한 촬영 기법.

사람의 몸을 극한까지 활용해야 하는 데에다 무수히 정해진 합을 따라 연습해야 하는지라 첨단 기계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배우와 스태프의 몸을 혹사시켜야만 하는 촬영장의 서커스.

영화인들이 거듭되는 촬영과 오랜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개량해 온 와이어 액션의 노하우. 그 오묘한 비밀을, 마키나는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와.”

스태프들이 줄을 당기자 마키나의 몸이 허공에 떴다.

그다음은 다시 다른 와이어 가 마키나의 방향을 조절하고 벽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마키나의 몸은 중력을 무시하고 벽에 90도 각도로, 지면과 수평을 그리며 일어섰다.

<그 자세로 한번 달려 보겠어?>

마키나는 플랫의 지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마치 발바닥이 벽에 달라붙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질주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는 마키나가 컴퓨팅 파워와 인공 의체의 출력에 기반한 탁월한 운동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도움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마키나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아래에서 와이어를 조절하는 여섯 명의 스태프가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굉장하군요. 원시적인 수단이라고 말씀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와이어 액션은 아름답군요.”

마키나는 스태프들이 줄을 조절하는 솜씨를 보고선 그들의 노련한 기술과 대응 능력에 감탄했다.

여러 가닥의 끈을 각각 잡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팀의 도움으로 마키나는 자신의 몸이 지닌 한계를 벗어난 동작을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느꼈다.

‘이건 마치….’

방금 경험한 일이 마키나의 존재와 지금 보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인해 성립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멋지군요. 혼자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 특히나.”

<에이, 벌써 배우 다 됐네. 정말로 데뷔할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매스터한트 감독님도 좋아하실 거야.>

“아, 아닙니다. 그런 건 도저히….”

플랫은 마키나의 연기 실력이 빠르게 느는 걸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마키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기에 배우가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겸허히 거절하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은 신분조차 불확실한 난민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영혼을 지닌 인공 지능으로서 당당히 법적으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 제대로 된 신분을 획득할 수 있다면 모를까.

<이거, 요즘은 사람 손 빌리지 않고 기계가 맡고 있거든. 와이어 따로 연결해서 컴퓨터로 제어하는 느낌인데. 이번에 스태프 여러분께 배운 다음 실제 상황에선 네가 직접 원격으로 디바이스를 조작하면 어떤가 싶어.>

“아….”

마키나는 그제야 왜 플랫과 매스터한트 감독이 자신에게 이런 경험을 시키는지 깨달았다.

* * *

사고 현장은 겉보기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차에 치인 마키나는 준비해 둔 인공 혈액을 뒤집어쓰고 가짜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유일한 진짜 상처는 봉합 가능한 수준으로만 찢어 둔 팔뚝이었는데, 그 사이로 스파크가 튀는 전자 부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필로아는 다친 마키나가 의식을 잃은 걸 보고 신음을 흘렸지만 이내 팔의 상처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전자 기기를 보고 신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현장에 구급차가 먼저 도착해 마키나를 실어 날랐다.

필로아와 마키나가 재회해 대화하게 되는 건, 예정대로라면 30분 후.

보호자의 신분으로 같이 구급차에 탑승한 필로아는 사전에 협의를 마치고 배우들을 배치한 가짜 개인 병원의 구급 병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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