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145화

경매가 시작된 건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기묘할 정도의 열기를 보이는 참가자들.

반면, 초반에 출품된 매물의 경매가는 주최인 리베르토티 정부가 예상한 만큼 상승하진 않았다.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물욕 이상으로 재밌는 구경거리에 돈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독재자의 유산을 낙찰하기 위해 온 사람들조차 원래 계획보다 지출을 줄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가 바로 경매 참가자들 사이에 도는 어떤 웹 사이트의 주소.

<크로노 급 우주 전함 머큐리 유니콘의 낙찰자 예상>

<72번 푯말 바리타스 제2우주군 군단장>

<49번 푯말 아비아노 측 대리인(상세 불명)>

<기타>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은 제각기 세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돈을 걸었다.

범차원 세계 각지에서 모인 베팅 액수의 합계는 이미 우주전함의 예상 낙찰가를 아득히 넘어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주최 측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드문드문 올라오는 입찰 푯말을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야.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건 없어. 분명 초반에 입찰이 줄어든 만큼 후반에 만회할 수 있을 거야.”

경매를 기획한 리베르토티 행정부는 애써 희망적인 관측을 하며 영상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경매가 후반으로 넘어가며 예상 낙찰가가 높았던 매물들이 모두 기대 이하의 액수로 낙찰되거나 유찰되자, 그들의 표정은 빠르게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전함의 낙찰가도 예상보다 적어지는 건….”

“그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저희도 국가예산을 베팅해 보는 건 어떨까요.”

“헛소리. 누구 권한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애초에 예산을 저런 곳에 베팅한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야당과 국민에게 총공격을 받을 게 뻔한데.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 자네가?”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품고 있던 기대감은 토막 나고, 실망과 초조감이 배로 부풀어 올랐다.

이대로 가면 경매가 끝나도 독재자가 낭비한 혈세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경매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절망은 커져갔고, 그만큼 베팅 사이트에 집계된 판돈은 늘어났다.

본래는 입찰에 사용되었어야 하는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장 전자전 부대에게 기별을 보내 베팅 사이트를 셧다운 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보았지만, 들키는 순간 범차원 세계 전체가 리베르토티를 비판하고 나설 것이다.

무엇보다 리베르토티 정부는 고작 두세 시간 내로 이런 중대한 일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에 대고 기도하는 것뿐.

부디 그들의 마지막 희망인 우주 전함만이라도 예상 낙찰가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에 낙찰되기만 바라는 것 말곤 없었다.

다행히도, 하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었다.

“베팅 마감되었습니다.”

베팅 사이트를 주시하던 리베르토티 내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침내 시작된 우주 전함의 경매.

“입찰, 시작되었습니다.”

긴장된 얼굴로 화면을 주시하던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차례차례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우성치며 푯말을 들어올리는 참가자들.

놀랍게도, 바리타스의 우주군 중장과 아비아노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가면 쓴 홉고블린 외에도 수많은 참가자가 입찰을 진행하며 적극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들 중 리베르토티 정부가 심어둔 인사이더는 고작 네 명뿐.

낙찰가를 끌어올릴 배우로서 참가시킨 사람들이었는데, 막상 돈 주고 고용한 대리인들은 몇 번 푯말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번호를 어필하는 사람들에게 파묻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총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간과하고 있던 건 바로 사람들이 앞선 매물에 입찰하는 일 없이 자금을 아껴두었던 두 번째 이유였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축제를 진심으로 즐기길 원했다.

그들은 베팅에 참가해 짜릿한 도박의 스릴을 맛보고 싶어했으며, 또한 경매장이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바리타스 제국과 아비아노 공화국의 싸움을 지켜보며 팝콘을 뜯고 싶어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범차원 세계의 강대국 중 하나가 휘청일 정도의 자금이 소모되는 경매.

낙찰자는 취소가 불가능하고 낙찰가의 50%를 선금으로 바로 지불해야만 한다.

나머지 잔금을 치르는 건 고작 일주일 뒤.

아비아노가 낙찰하든, 바리타스가 낙찰하든 국고가 거덜 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입찰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욱 큰 팝콘을 뜯을 수 있는 방법.

운 나쁘게 저 둘의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을 입찰하지 않는 이상, 폭탄 돌리기가 자신의 희생으로 끝날 일은 없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경매를 주최한 리베르토티 정부가 분수를 넘어선 입찰을 제지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미리 참가자들의 가용 예산의 범위가 전달되어 있으니까.

리스크라곤 하나도 없이 남이 X되는 꼴 보기엔 최적화된 상황.

경매장에 모인 참석자의 숫자는 세 자리수에 달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178번 590억 굴덴! 입찰 더 없으십니까?!>

<610억 굴덴!! 좋습니다!! 더 계신가요?>

흥분한 진행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십 명이 푯말을 차례대로 들어올린다.

10억씩 오르던 입찰 단위는 입찰가가 1,000억 굴덴을 넘어서자, 25억으로 바뀌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가격. 바리타스를 대표해 리베르토티를 방문한 우주군 군단장은 머뭇대면서도 몇 번인가 푯말을 들어 올렸지만, 처음부터 자신이 아비아노의 대리인이라고 밝힌 사내는 단 한 번도 푯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끼고 가격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

“이 상황을 예상하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군요.”

“스스로 가격을 올려 목을 조이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일까요.”

“아비아노의 운명이 걸려있는 경매야. 분명 조금 더 기다렸다가 적극적으로 상위 입찰을 시작하겠지.”

장관들의 예상대로 가면 쓴 홉고블린은 낙찰가가 8,000억 굴덴을 넘어설 즈음 천천히 상위입찰을 시작했다.

회장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예산 부족으로 나가떨어진 시점.

범차원 세계의 귀족으로 취급받는 진짜 부유층들 역시 비슷한 타이밍에 서서히 푯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가격 상승폭은 더욱 가속되어 최소 입찰 단위는 어느덧 200억 굴덴까지 올라갔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어.”

모니터를 주시하던 총리의 입에서 아까와는 전혀 다른 발언이 튀어나왔지만, 장관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우주 전함, 그중에서도 크로노 급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의 건조 비용은 4조 굴덴을 훌쩍 넘어간다.

게다가 이번에 매물로 나온 전함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차원 결계 무효화 역장 발생 장치가 달려있고, 그 외에도 탑재된 화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어지간한 규모의 전장에 투입되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비아노와 바리타스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궁극 병기.

이게 누구의 손에 건너가는지에 따라 바리타스 제국이 위치한 차원의 세력도가 변해버릴 수도 있는 물건.

입찰가가 최소 3조 굴덴을 넘어서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2조! 2조 굴덴입니다 여러분! 추가로 입찰하실 분은 안 계신가요?!>

초반보다 조금 속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참석한 이들은 꿋꿋하게 푯말을 들어 상위 입찰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까진 바리타스 우주군 군단장은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

서슴없이 이때다 싶을 때마다 푯말을 들어 올려 상위 입찰을 점하는 군단장의 얼굴에선 베테랑의 노련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연 우주의 노호老狐라고 불리는 사내. 무수한 사선을 넘어선 노장은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데에 도가 튼 자였고, 아비아노의 대리인이라고 처음부터 신분을 밝힌 홉고블린의 페이스를 지켜보며 절제된 입찰을 이어갔다.

그렇게 어느덧 4조 굴덴을 넘어간 입찰가.

이때부터 서서히 총리를 비롯한 내각 구성원들의 입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앞서 판매한 매물들의 낮은 낙찰가를 전부 전함이 만회해줄지도 모르는 상황.

이미 경매가 시작된 이상 아비아노와 바리타스 어느 쪽이 낙찰해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교 관계가 악화되며 생기는 리스크를 넘어서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바리타스가 가져가도 된다고 마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동안 수리를 핑계로 경매를 미루고 또 미뤄왔던 탓일까, 여유로운 척 하고 있지만 바리타스 우주군이 황제와 의회에게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을 거란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바리타스는 반드시 이번 경매에서 전함을 확보하려 할 터.

아비아노 역시 이번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나라가 통째로 날아가게 된 상황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함을 낙찰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아비아노의 공영방송은 경매가 진행되는 회장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아비아노의 전 국민이 TV 앞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대리인이, 최대한 싼 가격에 전함을 매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일 과도한 예산을 지출해 국가가 파산하게 된다면 차라리 바리타스의 지배를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어느 쪽이든 일단 4조 굴덴까지 값이 올라온 이상, 크게 손해는 보지 않겠군.”

총리의 말대로 입찰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5조를 넘어 6조, 6조를 넘어 7조 굴덴까지.

입찰가는 마침내 독재자가 초기에 전함 주문을 위해 지불한 가격을 넘어섰다.

“이대로 조금만 더 오르면 손실을 만회하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걸세.”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기대.

입찰가는 그들의 희망을 담고 더욱 가파르게 치솟았다.

<8조 9400억 굴덴! 더 계시지 않는다면 경매를 종료하겠습니다! 하나! 둘!>

<9조 굴덴! 9조 굴덴 나왔습니다!!>

여전히 바리타스와 아비아노 외에도 입찰자들이 푯말을 들어 올리는 상황.

이미 내각 관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하고 있었다.

슬슬 페이스를 올릴 생각인지 과할 정도로 빈번히 푯말을 들어 올리는 바리타스 측과 이에 질세라 응하는 아비아노 대표.

입찰가가 14조 굴덴을 넘어선 즈음엔 두 사람 외엔 상위 입찰을 시도하는 자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리베르토티 측은 알지 못했다.

바리타스 우주군 군단장의 목적이 가격을 한껏 끌어올려 아비아노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한다는 사실을.

<18조 2000억 굴덴!>

마침내 맞이한 운명의 순간.

바리타스 측은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예산 한도까지 입찰을 시도했고.

<18조 2000억 굴덴! 더는 없습니까?! 하나! 둘―>

그동안 숨 쉴 틈도 없이 입찰을 받아치던 아비아노 대표가 다시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턱 끝을 들어 올렸다.

<…………셋.>

그 모습을 본 진행자는 예상치 못한 흐름에 잠시 벙 쪄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찰 종료를 선언하고 망치를 두드렸다.

-쾅!

<크로노 급 우주 전함 머큐리 유니콘 호가 낙찰되었습니다!>

<바리타스 제국을 대표해 경매에 참석하신 제2우주군 군단장 멜서스 중장님께 진심에서 우러난 축하를 드립니다!!>

화면 너머에서 쏟아지는 우레 같은 박수.

총리의 집무실에서도 함성이 일었다.

“만세!!!!!”

어째서인지 화면에 비춘 군단장의 얼굴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지만, 리베르토티의 총리와 장관들이 알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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