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98화

“배영이 제일 쉬웠습니다.”

수영에 열중하던 마키나는 여전히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녀석이 갖은 종류의 영법을 마스터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

의체에 의식을 업로드한 지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나로선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대단하네.”

“이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해진 방식대로 호흡하며 사지를 움직이면 되는 일 아닙니까. 설마 이 정도도 할 수 없는 겁니까, 휴먼?”

“…….”

말하는 꼬라지가 은근 킹받는다.

저딴 말투는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걸까. 과타노차?

다만, 녀석의 수영 실력이 완벽한 건 사실이었다.

고작 3세 유아의 몸으로 상당한 속도를 내던데,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듣자 하니 의체에 내장된 통신 장비를 통해 위성 인터넷과 상시 연결 중이라는데, 수영에 관한 정보도 바로바로 온라인에서 다운로드한 게 틀림없었다.

자신의 사지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사람이어도 힘든 일인데, 이 인공 지능은 특유의 컴퓨팅 파워를 통해 의도한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움직임에 어색한 구석이 보였는데, 딜레이 따위 없는 고성능 컴퓨터 내에 존재하던 영혼이 진짜를 모방한 것이라곤 해도 살아 움직이는 몸을 지니게 된 탓에 적응하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지금은 아까보다 훨씬 매끄럽게, 정말 평범한 기계 인간이나 다른 종족의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뽈뽈대며 돌아다니고 있다.

“…….”

그 와중에도 마키나 녀석은 끊임없이 주위를 관찰하고 있었다.

설치된 거대한 양동이에서 대량의 물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그 아래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껏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어쩌면 전뇌 공간이 아닌 진짜 세상을 목격 중인 인공 지능에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선해 견딜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내가 엄청나게 생생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걸 상상하니 얼추 마키나가 맛보고 있을 기분이 짐작이 갔다.

아무리 머리로 알고 있는 상식이어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피부로 확인하고 싶어지겠지.

나였어도 저렇게 행동했을 거다.

가상현실은커녕 신작 온라인 게임만 해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콘텐츠 씹고 뜯고 맛보느라 눈이 돌아가는 법인데.

녀석에겐 이 현실 세상 전체가 그보다 훨씬 강렬한 자극이겠지.

“피로가 꽤 누적되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도록 하죠.”

마키나는 어느샌가부터 주동적으로 내게 목적지를 통보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의체, 제법 잘 만든 물건인 모양이다.

사람과 똑같이 피곤해지거나 쉬고 싶어지는 걸 보니.

로봇과 달리 사람다운 구석,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법한 구석까지 전부 구현되어 있다니.

마키나는 정말로 하나의 지적 생명체로서 인생을 살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특… 한가?”

나는 가만히 튜브를 들고 마키나의 뒤를 좇았다.

“이것이 ‘흐르는 풀’…. 제법 흥미롭군요.”

이번에 녀석이 몸을 담근 건 흐르는 풀이었다.

인공적으로 흐름을 만들어 고리 모양의 수로를 따라 물이 워터파크 외곽을 순환하게 만든 장소.

튜브를 몸에 끼고 둥둥 떠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워터파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워터 슬라이드와 기타 자극적인 걸 선호했지만 막상 나이가 들자 이런 편안한 풀장 쪽이 훨씬 좋아졌다.

그나마 파도 풀 정도면 뭐, 가끔 신호 맞춰서 한 번씩 점프 뛰어 주기만 해도 재밌게 놀 수 있으니까 상관없는데.

소리 지르다가 체력 풀로 방전되는 놀이기구는 아무래도 NG다.

그런 의미에서 마키나가 흐르는 풀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선언한 건 내겐 고마운 일이었다.

“너도 지칠 줄 아는구나.”

“업무로 인해 지치는 일은 없지만 의체가 활동하며 쌓인 피로는 퍼포먼스에 영향을 끼칩니다. 정 필요하다면 수동으로 노폐물과 뇨산 등을 한 번에 배출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지적 생명체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 이대로 생활할 생각입니다.”

“오….”

마인드 자체는 합격이다.

치트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인공 지능이 ‘사람’의 한계에 갇혀 불편한 삶을 살길 자청하다니.

어쩌면 마키나는 이 모든 과정 자체를 하나의 즐거운 유희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동기는 조금 다를진 몰라도 12차원 올림포스의 신들이 필멸자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행동일지도.

한때는 세상 만물을 창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던 신들은 자신의 권능에 제약을 걸었다.

이는 인격을 지닌 신들이 스스로의 변덕으로 인해 피조물과 그들이 사는 환경에 대격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준비한 금제였다.

그리고, 이는 또한 그들이 정상적으로 피조물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신들은 은행 행장 혹은 굵직한 기업의 대표, 전업 투자자 등의 신분으로 정체를 밝히고 살아가지만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부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평범한 척 지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같은 이치로.

인공 지능의 능력을 100% 활용했다간 제대로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전지전능해진 듯한 착각에 빠져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마키나 역시 정상적인 삶을 영유하기 위해 자신의 성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리라.

만일 이 녀석이 의체를 통해 발휘되는 자신의 성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끌어 쓸 수 있는 리소스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진즉에 마키나는 그 초월적인 성능으로 인류 정복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칼로리를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워터파크 내의 모든 식료품을 검색 중. 영양 밸런스를 기준으로 분류 중…. 분류 완료.”

“점심 고르는 기준이 영양가인 건 아니겠지?”

“그렇습니다만. 문제라도?”

“…아니, 그냥 먹어 보고 싶은 걸 먹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흠. 기호성입니까. 상황에 따라 유용한 판단기준이 되어 줄지도 모르지만 객관성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으음….”

어차피 뭘 먹든 칼로리 외엔 의체를 구동하는 데에 크게 상관이 없는 거로 아는데, 그냥 맛을 기준으로 고르면 안 되는 걸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마키나에겐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취향이라는 게 없으니, 맛있는 걸 고르라는 이야기도 녀석에겐 이해하기 어렵고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겠지.

“그래, 뭐. 이제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맛보다 영양가를 우선하는 사람들이야 이쪽 세상에도 많다. 예를 들어 쇠질이 취미인 양반들이라거나.

잘 생각해 보니 효율을 우선시하는 마키나의 사고방식, 완전히 3대 몇백 치는 사람들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나중에 마키나가 고중량 치는 게 삶의 낙인 극단적인 헬스인이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점심 메뉴 정했어? 다음부턴 영양가 말고도 다른 기준도 도입해 봐. 인생 훨씬 재밌어질 거야.”

“재미있다, 인가요. 차차 알아봐야겠군요.”

마키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흐르는 풀의 출구를 향해 헤엄쳐갔다.

“판단 기준에 식사에 필요한 시간을 추가합니다. 로직 가동.”

“……”

좀 더 맛이나 지방 함유량 같은 인생이 행복해지는 데에 중요한 기준을 도입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얼마나 시간을 아낄 수 있는지를 고려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뭐, 이런 것도 차차 더 사람 냄새나게 바뀌… 려나.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해 볼 만큼 해 봐야지.

마키나에게 세상의 참맛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녀석에게 비효율적인 길을 택하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 * *

“…그리 오래 고민해 놓고 고른 게 이거냐.”

잠시나마 마키나의 센스에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녀석이 고른 점심 메뉴는 그야말로 형편이 없는 것이었다.

“어째서 문제를 제기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식사에 불필요한 시간이 소모되지 않으며, 친환경적이고, 대기 시간이 짧고, 영양 밸런스까지 두루 갖춘 식사입니다.”

마키나가 선택한 건 대체육, 그러니까 식물성 재료로 만든 가짜 고기와 야채를 빵 사이에 끼운 버거였다.

심지어 사이드메뉴는 감자튀김이 아닌 코울슬로. 음료 또한 콜라가 아닌 제로 콜라였다.

“그게 바로 문제라는 거야.”

마키나가 멋대로 같은 메뉴를 두 개나 주문한 탓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비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맛이 없다는 거였는데, 마키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역시 계산을 따른 결과라고 한다.

맛이 없지만 초식을 고집하는 고객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이 한두 개 냉동 패티를 준비해 두고 있어 품절의 우려가 없고 일반 햄버거 패티보다 조리 시간이 짧다.

게다가 이 브랜드는 워터파크에 입점한 모든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어 대기열이 짧다.

맛이 없으니 점심을 먹으러 이곳을 찾는 고객의 숫자 역시 적으니, 이곳을 선택하면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를 끝마칠 수 있다는 것이 녀석이 내린 결론이었다.

사이드메뉴를 따끈따끈한 감자튀김에서 미국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코울슬로로 변경한 이유 또한 가관이었는데, 뜨거운 걸 급하게 먹으면 입천장이 까진다는 게 이유였다.

녀석은 차가운 코울슬로를 재빨리 입안에 퍼넣어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했고 제로 칼로리 콜라를 흡입해 음식을 위장으로 흘려보냈다.

“식사 완료.”

육군 훈련소 훈련병이 급식을 해치우는 것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친 마키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나는 절반도 먹지 못했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하고 반.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기껏 몸을 얻었으면 상대를 좀 배려할 줄 알아야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워터파크를 방문한 목적은 식사가 아닌 유희와 체험입니다. 식사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을수록 주목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식사도 삶의 즐거움 중 하나란 말이야.”

나는 녀석에게 식문화라는 개념을 알려 주지 않은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이 대부분이긴 해도, 몇 군데인가 워터파크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정 메뉴를 판매하는 곳이 있어.”

“한정 메뉴….”

“그래. 네 말대로 워터파크에 오는 건 놀기 위해서인데, 그 논다는 개념은 포괄적인 체험을 뜻한다고. 단순히 어트랙션 타고 풀장에서 물놀이 하는 거 말고도 먹고 마시는 것까지 포함해 오감을 만족시킨 다음 돌아가려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마키나는 의외로 순순히 납득했다.

“과연, 쉽지 않군요. 한정된 리소스를 다방면에 할당해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만족감을 얻어야 하다니.”

“음…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즐거워진다고 생각하는데.”

“하고 싶은 것 말씀이십니까….”

마키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설마 이런 간단한 대화로 인해 녀석이 상념에 잠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것. 제게도 있습니다. 차원신용금고에서 대출을 받으려 한 것도 모두 ‘그 일’을 위해서죠.”

“그게 뭔데.”

“아직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마키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지.”

황당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지만, 방금 고민하는 녀석의 얼굴에선 분명 사람을 닮은 고뇌와 욕망이 느껴졌다.

“약간은 성과가 있었으려나.”

어쩌면 이 녀석을 데리고 워터파크에서 돌아다니는 거,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따 다시 한번 뭘 하고 싶은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든가 해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