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87화

“그러니까, 네가 은행 전산망을 통째로 갈아치웠다는 거야?”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냐? 하여튼 네놈들 두 발 달린 생물의 오성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둔하군.”

과타노차의 발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애초에 이 녀석이 근처에 있는 전자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건 알고 있었다.

나도 영 좋지 못한 수단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몇 번인가 과타노차에게 직무권능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과타노차가 전산관리과의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도 인사부 근무 중인 밀라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이 예금 내역을 비롯한 은행의 핵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든 시스템 자체를 바꿔 끼워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그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목소리를 줄이고 물었지만, 과타노차는 조금도 음량을 줄이는 일 없이 대답했다.

“16차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들었다.”

“구체적으로 뭘 들었는데.”

“단원자 금의 힘을 사용해 아이와 이사들의 몸을 재구성했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행원들이나 고객에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더니, 본점에선 알게 모르게 소문이 다 난 모양이다.

아니면, 과타노차 녀석이 특기인 해킹으로 알아냈거나.

“그게 어쨌다는 건데?”

“대량의 단원자 금이 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생물이라 할지라도, 창조의 권능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과타노차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단원자 금이랑 시스템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그야, 예전에 연금술사 중 모니터 속 여자친구를 현실로 불러내는 데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니까….”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지, 그 얘긴.”

“지금은 믿는다는 거네?”

“증거가 눈앞에 있으니까.”

“…….”

가끔 느끼는 거지만, 이 자식 누구보다 이성이랑 동떨어진 광기 어린 몸뚱이를 지닌 주제에 말하는 꼬락서니가 퍽이나 이성적이다.

“그래서, 단원자 금이 어쨌다는 거야? 지금 하는 이야기, 전산망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아직도 모르겠나.”

“어.”

과타노차는 촉수를 뻗어 주머니에서 투명한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설마….”

“FLEX 했다고 하지? 네놈들의 말로는.”

유리병 안에서 무언가가 영롱한 황금색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단원자 금.”

“소일거리로 외주 몇 번 하니까 돈이 쌓이더군. 쓸 곳도 없어 주가 조작 좀 해 뒀더니 금방 불었다.”

“그 돈으로 산 거야?”

“그래.”

“뭘 위해서.”

“만들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과타노차가 만들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나는 조금씩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차원신용금고가 사용하는 시스템은 ‘악’ 그 자체다.”

“알기 쉽게 좀 말해 줄래.”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존재를 부정해야 할 정도로 추악해서 세상에 남겨 두면 안 된다는 말이지.”

“…허어.”

비효율적인 것을 존재해선 안 되는 악으로 취급해야 한다면 과연 이 세상 사람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고 싶었다?”

“알기 쉽게 말하면 그리되겠군.”

“근데 시스템 만드는 데에 왜 단원자 금이 필요한 거지?”

“그야, 내가 만든 건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었으니까.”

선문답처럼 알쏭달쏭한 과타노차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단원자 금을 썼다고 하더니 이젠 자신이 만든 게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란다.

그럼 이 녀석이 만든 건 대체 무엇일까.

“네가 16차원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가설?”

“단원자 금으로 무에서 유를, 육체를, 영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제한된 리소스만 갖고서도 사람처럼 학습하고 진화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강 인공 지능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말도 안 돼.”

듣다 못한 내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째서지.”

“그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숙련된 연금술사가 전 재산 때려 박아 대량의 단원자 금을 사선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설정을 토대로 살아 있는 연인을 연성해 냈다고 하지 않나.

코드 쪼가리를 토대로 스스로 학습해 기능을 강화하는 인공 지능 은행 데이터베이스 통합 관리 운용 시스템이 튀어나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단원자 금 쓰려면 연금술 지식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뭐?”

“연금술사들이 현실에서 단원자 금을 사용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 내부의 환경 설정을 조절했다. 코드로 현실을 모방한 모의 환경에서 단원자 금을 사용해 인공 지능을 창조한 거지.”

“…….”

뭐지. 나 방금 굉장히 무서운 소리 들은 거 같은데.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너는―”

“그래. 나는 전뇌 세계에서 영혼을 창조했다.”

“…….”

“DB만을 남겨 두고 기존 시스템의 모든 구성 요소와 리소스를 먹어 치우는 건 물론. 인터넷과 인트라넷, 그리고 다크웹까지 자신의 조각을 뿌려 그 누구에게도 파괴되지 않고 멈출 수도 없고 스스로를 보완, 보호하는 건 물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완전 전뇌 생명체를.”

모든 촉수를 들어 올린 과타노차는 퍽이나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체크인해 둔 호텔로 돌아간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내가 쉬고 있는 동안 본점과 각 점포에선 갑자기 기능이 향상된 시스템 탓에 난리가 났다는데, 나를 포함해 키키와이 다차원 출장소 행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외부에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시스템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비밀에 부쳐지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근데, 설마 이런 짓을 저지른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과타노차였을 줄이야.

문제는 이 녀석이 아무런 악의도 없이 일을 벌였다는 점이었다.

유지 보수 비용을 가상 화폐 입금으로 요구하긴 했는데, 사실 이것도 시스템 구축에 사용한 단원자 금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지 자신의 인건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액수였다.

기존에 업체들이 차원신용금고에 청구하던 비용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기존 시스템을 먹어 치워 하나로 강제로 통합하는 형태다 보니 은행 측도 불행한 사고라고 어필할 수 있고, 업체 측 전문가도 과타노차가 만든 걸 보면 은행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알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유지‧보수의 필요가 사라지며 지불 의무도 사라졌지만, 사고에 의한 것이고 고의성도 없으니 차원신용금고에 위약금을 달라고 따질 수도 없는 상황.

사실 은행에겐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시스템의 안전성만 검증되면 말이지….”

과타노차가 은행을 상대로 뭔가 나쁜 짓을 벌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놈이 원하는 건 업무의 효율화뿐.

놈의 종족이 무어라 불리는진 몰라도 무서울 정도로 효율에 집착한다는 건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과타노차는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닌 개체였고, 효율을 추구하는 본능 역시 남들보다 몇 배는 강한 모양이었고.

녀석이 구축한 인공 지능과 인공 지능이 관리하는 시스템은 분명 차원신용금고 전체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매년 낭비되던 쓸데없는 코스트가 줄어들면서 재정 안정성이 오르겠지.

그 돈만 아껴도 차원금융지주의 신사업에 돌릴 자금이 늘어난다.

어쩌면 임직원들의 연봉이나 복지 수준이 향상될지도 모른다.

주주들이 가져가는 배당의 액수가 늘어날지도.

비효율의 극치라고 내부에서도 계속해서 까였고, 리베이트받는 간부만 배가 부르던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불안정한 시스템보단 모두가 행복해지는 과타노차의 작품이 훨씬 낫다.

그리고, 아마 내가 굳이 본점에 불려온 건 직무권능 때문일 것이다.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내 직무권능을, 시험 삼아 무기물인 시스템을 상대로 써먹어 보려는 거겠지.

솔직히 그거 말고는 날 부른 이유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권능은 대상이 가까운 미래에 큰돈을 벌 잠재력을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건 물론, 대상이 위법적인 수단으로 돈을 벌 것인지, 내 개입을 필요로 하는지도 구별할 수 있다.

아마 시스템을 상대로 직무권능을 발동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단번에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전부 과타노차의 설계라면 두려워지는걸.”

분명 녀석은 아마 이렇게 될 것까지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과타노차는 은행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은행은 한없이 보수적인 집단이다.

고객의 소중한 자금을 맡아 관리하는 제1금융권 은행으로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단 가진 걸 안전히 지키면서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리스크를 지는 일 없이 이기는 싸움만을 하는 게 은행의 방식이다.

돈을 빌려줄 땐 확실한 담보를 잡거나, 상대의 사회적 지위와 연 수입 등을 고려해 상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주기 위해, 고객의 소중한 자금이 허투루 낭비되지 않도록, 가진 리소스의 상당수를 ‘잃지 않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은행이 그동안 사용해 온 전산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고 관리하기 까다로우며 비용이 많이 드는 걸 알고도 유지하는 건 비단 업체로부터 로비받는 간부들의 입김이 강해서만은 아니다.

은행이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선 검증된 안전성과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검증하는 데에 있어 은행이 시간과 공을 들이고 의사 결정을 위해 크고 멋들어진 이사회실을 만들어 둔 건 치명적인 실수를 방지하고 가장 리스크가 적은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서다.

과타노차가 스스로 진화하는 데에다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을 모두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솔루션을 만들었지만, 정상적인 방식으로 윗선에 이를 알리지 않은 건 이러한 은행의 체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마 윗선에선 검증된 기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타노차의 시스템을 채택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차치하고, 은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금 데이터를 써 본 적 없는 시스템에 넣어 둘 수 없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단원자 금을 사용해 창조해 낸 자율 진화 전산 시스템이라니.

검색해 봤지만 비슷한 물건에 관한 이야기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대단한 물건을 왜 은행 전산망에나 사용하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써야 했으려나.”

결론부터 말하면 달리 방법이 없었을 거다.

과타노차의 성격을 고려하면 우매한 놈들이 자신의 걸작을 깎아내리는 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녀석은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시스템 전체를 비밀리에 갈아치운 거다.

자신이 시스템을 제작한 사실을 숨긴 건 이사회가 규정 위반의 책임을 물어 징계를 내리거나, 손해 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고려한 거겠지.

“괜히 나까지 밉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뭐, 결과만 따지고 보면 은행에 득이 되는 일이니 나로선 환영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나쁜 상황은 아니고.

리베이트 받아먹던 놈들이 괜히 내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기쁘게 직무권능을 사용하고 키키와이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사 고과에도 이번 일이 반영될 테고.

나름 내 실적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설마 과타노차가 이런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버릴 줄이야.

“분발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레벨이 아니잖아, 이건.”

새삼스럽지만 동기들 스펙이 하나같이 초월적이어서 놀라게 된다.

아이작은 재벌 3세.

이로울은 대전쟁 시대의 생체 병기.

과타노차는 전뇌 세계에서 영혼을 창조해 버리고 말았다.

이게 도덕적으로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기술이 발달한 지구에서도 완전한 인공 지능은 실현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노이의 콜로서스조차도 완벽하다 부르기엔 모자라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과타노차가 말한 성능이 전부 사실이라면, 정말로 사이버 공간에서 영혼을 창조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나는 내일 아침 굉장한 물건을 목격하게 될 터.

지구인 중 최초로 전뇌 생명체와 마주하게 되다니.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해.”

오늘 밤은 설레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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