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72화
식을 치르고 석 달이 지난 후.
아디젠과 미놀리 부부는 린딘 외곽의 상점가에 작은 가게를 차렸다.
예산의 관계로 이렇다 할 홍보는 하지 않았지만 SNS에서 입소문이 난 점포 앞에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후리텐의 내로라하는 두 제과 명가의 막내들.
양가가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초콜릿 제작 노하우를 보유한 그들이 만든 과자가 맛이 없다면 먹은 사람의 혀가 이상한 거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영업하고 있습니다.”
“다 두 분의 실력이 출중해서 가능했던 거죠.”
내가 가게를 찾은 건 오픈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에 약속을 잡았던 내가 도착했을 때, 차원신용금고가 보낸 화환은 여전히 가게 앞에 전시되어 있었다.
날 환대하는 신혼부부는 몹시나 행복해 보였다.
손가락에 군데군데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걸 보니 종업원 없이 둘이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게 여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리할 때 약품 냄새가 스며들지 않도록 향이 없는 반창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손을 향한 시선에 담긴 뜻을 오해한 듯 아디젠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고생이 많으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가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내부에 배치된 기기와 인테리어에는 적지 않은 공이 들어가 있었다.
공사가 진행되던 당시에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부부는 직접 페인트칠을 하거나 못을 박는 등 힘을 쏟았고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본래 신혼집에 비치해 두었던 물건들까지 전부 가져왔다.
오픈을 준비하는 석 달 동안 차후 가게가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도록 최대한 절약하며 살았다는데, 어떻게든 고정 고객층을 확보해 장사가 잘되고 있는 듯해 안심이 되었다.
뭐, 이 둘이 잘 해낼 건 처음에 직무권능으로 확인했었으니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기대했던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는 모양이다.
“응원차 찾아뵈었는데, 제 쪽이 좋은 기운을 받고 가게 된 것 같군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지안 씨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청하는 아디젠의 눈에는 진실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은행원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
감사를 받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는 실감에서부터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나도 두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축복을 건네고 가게를 나섰다.
저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행운아지만 부모에게 그 어떤 지원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야, 저 둘은 남들보다 유리한 출발선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이 칼자루를 쥔 상황에서도 양가 부친들에게 자신들의 혼례에 참석해 축하해 달라는 것 외의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은 각오와 마음가짐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착실히 납부되는 원리금은 신뢰의 징표.
은행은 다시 한번 고객의 삶이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밀라에게 선물할 초콜릿을 들고 린딘 중심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저녁 뭐 먹지.”
나는 1박 2일의 린딘 출장을 나온 참이었다.
저번에 모처럼 휴가를 써 3-1차원에 다녀온 이래로 처음 키키와이섬 밖에서 묵게 되었다.
다만, 급하게 정해진 출장이었던 만큼 음식점을 예약하지 못한지라 저녁은 적당히 본점에서 일하는 동기들이나 만나 근처에서 한 끼 먹을 생각이었다.
오늘 미친 듯이 달린 다음 내일 점심 프레드 선배랑 해장하고, 그다음 키키와이로 돌아가 반나절만 일하면 즐거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
주말엔 지구에서 가져온 콘텐츠들을 소비할 예정이다.
내 급여는 이쪽 세상의 화폐인 굴덴으로 지급되지만, 원하는 경우 얼마든지 환전이 가능했고, 나는 이 돈으로 서울에서 만화와 영화 블루레이, 게임까지 알뜰하게 사서 돌아왔다.
영화 중 몇 편은 이미 전부 봐서 프레드 선배에게도 빌려줄 예정이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꼼짝없이 싱글 플레이만 하게 생겼네.”
아무리 전자 기기 사양이 비슷하다 해도 이쪽 세상에 서버가 없는 한 멀티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그냥 집에 누구 불러서 거치형 게임기 한 대로 노는 수밖에 없나.
“…는 개뿔. 게임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화라면 모를까, 게임은 한번 빠지게 되면 업무에 관해 공부할 시간이 모조리 날아갈 거다.
아무리 요즘 행내에서 내 평가가 좋다고 해도 방심하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일단 나는 표면상으로 구D 우두머리인 오커스 행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거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선배에게 듣자 하니 저번 나노이 관련 대출이 진행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엘라마가 이사회 앞에서 일장연설을 했다지 않나.
아마 구C와 구E 입장에서 보면 내가 엘라마가 키우는 후계자처럼 보일 거다.
어느 한쪽에 얽매이는 일 없이 세 파벌의 싸움을 막는 쿠션이 되어 달라고 부탁받았는데, 사실 지금 내가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비슈티 과장이 날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거 같은데, 아직 엄청 체감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을 뿐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겠지.
한편 구C의 에이스 라즈마 과장은,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언데드가 되기 전의 종족도 모르겠을뿐더러 라즈마란 사람 자체가 감정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적었던지라.
심지어 그가 맡고 있는 프라이빗 뱅킹 창구는 마치 육지의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물론,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번 그가 담당한 창구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비주얼을 생각하면 그들이 내 근처에 오지 않았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고.
사실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절반은 누가 봐도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이 문제였다.
아니, 절반이 아니라 6할 이상인가.
“평범한 부자가 아니었어….”
실내에서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 쓴 수상한 거한부터 시작해 위험해 보이는 문신이 손등에 새겨진 여성까지.
절대 일반적인 업계에 종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라즈마의 고객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속내를 감춰 봐도 라즈마는 몇 번이나 내가 품은 불안감을 간파해 내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시길’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맞는 말이라 반박이 불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고객만이 아니라 언데드가 되어 표정조차 지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아 좀 불편했다.
“그러고 보니 언데드에 관해선 아는 게 없네.”
그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요즘 들어 계속 구C 행원들에 대해 품은 편견이 실은 잘못된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이거로 주세요.”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서점에 들러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이쪽 세상의 다양한 종족과 그들의 문화에 관해 알아보는 건 내가 평소에도 하는 일이다.
오늘 밤은 잠을 조금 줄여서라도 언데드에 관해 알아보든가 해야겠다.
* * *
서점에 들른 김지안이 본점에서 근무하는 세 동기들과 모임을 갖고 있던 동안 구C의 실세이자 베테랑 프라이빗 뱅커인 엑토플 라즈마는 휴가차 후리텐 북부의 고향을 방문 중이었다.
오래전에 목숨을 잃은 그에게 이미 가족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라즈마는 딱히 이를 슬퍼한 적이 없었다.
인간적인 감정의 대부분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그가 여전히 언데드로 남아 이승에서 생을 이어 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먼 옛날에 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음 방문은 언제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언덕에 서서 멍하니 불이 켜진 고아원 건물을 내려다보던 그에게 젊은 여인이 말을 걸었다.
“이르면 다음 달 정도가 될 것 같군요.”
“아이들이 라즈마 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잘됐군요.”
라즈마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여인은 딱히 민망해하지 않았다.
이미 라즈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던 까닭이다.
그녀는 저기 보이는 고아원을 관리하는 원장이었다.
라즈마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먼 옛날에 떠나보낸 친우의 후손.
이따금씩 고아원을 찾아 큰 액수의 기부를 하는 것이 라즈마가 업무 외에 유일하게 집을 나서는 목적이었고, 그 선행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선행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운영 비용이 모자란 고아원에 상당한 양의 현금을 가져와 고아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라즈마에 있어 이러한 행동은 오래된 습관 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의 기억력은 완전에 가까웠지만, 어째서인지 이 고아원에 관한 것만큼은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친구의 얼굴도, 그와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을 나눴는지도, 심지어는 이 고아원을 후원하는 이유조차도.
라즈마는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심지어는 딱히 고아들이 자신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부를 이어 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기계적으로 자신과 이 세상을 잇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은행원으로서 고객을 대하는 데에 있어 인간성은 필수 불가결한 자질이었다.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순간, 그 어떤 구C의 베테랑 행원도 프라이빗 뱅커의 자격을 잃게 된다.
은행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최소한 고객이 보기에 피가 흐르고 영혼을 지닌 ‘사람’이었지 멍청하게 지시받은 일만을 수행하는 기계나 시체가 아니었으니까.
엑토플 라즈마의 정체성은 은행원.
그는 육체도 감정도 잃은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번 달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할 일이죠.”
그렇기에, 방금 한 고아원의 존재에 감사한다는 말만큼은 진심이 약간이지만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다만, 그다음 던진 질문은 평소처럼 예의상 물어본 질문에 지나지 않았다.
차가운 시체가 아닌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준비한 사회성의 가면.
라즈마는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뛰어난 기억력 탓에 그들의 이름과 특징이 멋대로 머리에 새겨졌을 뿐.
“덕분에 모두 건강합니다. 한 명 빼고요.”
“…….”
“레이니. 기억하시죠?”
-끄덕
라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 불치병을 앓다 죽은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가 있었다는 걸.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서류에 붙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원장은 수술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라즈마는 평소보다 많은 돈을 기부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술이 실패해 죽었다는 사실 말고는 딱히 들은 게 없던 까닭이었다.
어쩌면 원장이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자신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꿰뚫어 보고 탓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즈마는 자신이 도리를 다했으니 그런 얘길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원장이 다음으로 꺼낸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도저히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길래, 언데드화 시술을 진행했어요.”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언데드가 되었단 말입니까.”
“아예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본인도 동의했어요.”
라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릴 적 사망한 자식을 부모가 되살려 그대로 언데드인 채로 키우는 건 6-2차원에서 꽤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다만, 어린 고아가 언데드가 된 걸 처음 봐서 놀랐을 뿐이다.
부모의 동의 없이 본인의 의지만으로 사후에 시술을 받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없을뿐더러 공짜로 수술을 진행해 주는 의사 역시 찾기 어려운 법이니까.
“다행히도 시술 자체는 잘 끝났는데….”
그렇게, 레이니에게 라즈마가 아주 작은 관심을 보인 다음 순간.
“영혼이 정착하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해서 말이죠. 학계 최고의 권위자인 선생님이 레이니를 구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어요. 자기 스승이 오랫동안 연구하던 분야라고 하던데, 이번에 차원신용금고에서 연구 자금을 빌릴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혹시 이미 알고 계셨나요?”
원장의 입에서 또다시 흥미로운 주제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