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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200)

잠재력을 보는 은행원 013화

펠룩스가 전속 운전기사의 계좌에 숨겨둔 돈을 모두 회수한 우린 콜로닌 은행 행원들에게 감사를 전한 다음 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 운전기사가 펠룩스의 연인인 걸 눈치채지 못한 건 비단 그가 남장을 하고 다녀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2주 동안 나는 에이펙즈 엔지니어링의 임직원 전원을 상대로 직무권능을 사용했지만 운전기사는 펠룩스가 개인적으로 고용했던지라 이름을 알지 못했다.

뭐, 결국엔 붙잡았으니까 이젠 아무래도 좋지만.

이번에 15억을 회수할 수 있던 데엔 콜로닌 은행의 도움이 정말로 컸다.

사무실 직원들은 물론 운전기사 역시 그쪽 은행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효과적으로 덫을 놓을 수 있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이대로 돈 들고 튀게 둘 순 없죠. 놈들을 잡을 방법이 있다면 협조하겠습니다.’

내 아이디어는 델 몬테 지점장을 통해 콜로닌 은행 본점의 대외협력팀에 전달되었고, 펠룩스에게 20억 굴덴을 뜯기기 싫었던 콜로닌은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펠룩스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건설회사가 도산하면 거래처들 역시 연쇄 도산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짓을 하고도 포독스 거리를 활보할 배짱은 놈에게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그들이 곧 다른 차원이나 국가로 도망칠 거라고 예상했다.

‘확실해요. 두 사람 사이에 같은 색깔의 화살표가 보여요.’

린딘 공항에서 두 사람에게 직무권능을 사용한 밀라의 증언을 들은 우린 다음 비행기를 타고 그들의 뒤를 추적했다.

그렇게 펠룩스와 운전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라라비아로 날아와 하룻밤을 보냈고, 우린 15억을 성공적으로 회수할 수 있었다.

<손님 여러분, 린딘까지 가는 후리텐항공 HUR 808편 곧 출발하겠습니다. 기내에서 승무원의 업무를 방위하는 행위, 전자담배를 포함한―>

이륙을 앞둔 차원항공기 비즈니스석.

12월 3주차.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있어서인지 다양한 장르로 편곡된 캐롤이 흐르는 기내.

나와 지점장, 프레드 선배는 한 줄로 나란히 앉아 웰컴 드링크로 목을 축였다.

“설마 전액 회수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실패했다면 서부 포독스 지점의 평판에도 적잖게 타격이 갔을 텐데 김지안 계장 덕에 무사히 넘어갔군요.”

지점장은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지안 씨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65억의 손해를 냈을 테고, 지점 전체가 경질을 당했을 겁니다.”

프레드 선배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지점 식구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전산관리과랑 인사부 동기들한테도 신세 졌고··· 알리샤 고객님이랑 타행 분들도 협조해주셨으니.”

15억은 은행 전체의 예금액을 고려했을 때 엄청 큰 금액은 아니다 보니 회수하지 못해도 은행의 명성에 크게 타격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기꾼에게 돈을 뜯기게 둔다는 사실 자체가 한 명의 뱅커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담당한 대출 안건이 아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움직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이것 하나뿐이었다.

“한참 신입 행원으로서 경험 쌓을 시간에 바쁘게 돌아다니게 만든 점, 지점장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점장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쓰리긴 했다.

이번 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탓에 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그만둔 행원이 남긴 짐을 치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든 거지 은행 전산에 기록되는 수익을 낸 건 아니었다.

신경 끄고 랩 어카운트나 다른 상품을 창구에서 열심히 팔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다차원 출장소라는 고속 출세로 통하는 좁은 문을 노릴 수 있었을지도?

“······.”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기회를 놓친 게 아닐까 싶었다.

분명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그래도 뱅커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엔 만족하고 있다.

고객의 자산을 지키는 것도 나의 일.

이 이야기가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갓 입행했을 땐 상상도 못했을 일을 해낸 건 달라지지 않는다.

“안심하세요. 저는 지안 씨가 은행과 고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했는지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건지 델 몬테 지점장은 샴페인을 주문해 나와 프레드 대리에게 한 잔씩 따라주며 말했다.

“추심 과정에서 김지안 계장이 보여준 활약을 기여도 산정에 적극 반영할 예정입니다. 인사고과는 물론 인센티브 역시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보답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안 씨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건 제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저도 맡은 일을 다했을 뿐인데요 뭘.”

내 말을 듣고 프레드 선배와 지점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면서까지 추심하는 건 은행원의 일이 아닐 텐데.”

“그쵸. 불륜 상대 조사하는 것도 그렇고.”

뭐지. 지금 나 멕이는 건가.

“오해하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김지안 계장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도 제가 홀로 책임을 질 생각입니다.”

웃음을 그친 지점장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먼저 불법을 저지른 건 저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은행을 만만하게 보는 놈에겐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드러운 합성 음성의 음량이 줄어들었다.

“탈법적,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부득이하게 저질러야 할 땐 절대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요.”

“현직 은행원이 해도 되는 소립니까 그거···.”

“저는 실용적인 수단을 추구하는지라.”

지점장은 웃고 있었다.

차가운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뚱이와 머리통만 보면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사람다운 구석이 튀어나온다.

“기억해주세요. 어디까지 저질러도 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아니면 언젠가 선을 넘게 될지도 몰라요.”

“······.”

그러다가 또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하고.

“다른 점포에서 일하게 되어도 이것만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지점장은 내게 작게 윙크하곤 다시 정면의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틀은 건 영원한 크리스마스 명작 영화 <7번가의 기적 같은 피자 선물>.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삽입된 광고는 차원신용광고의 새로운 예체능 종사자 우대 대출 <플랫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플랫 샤펜도라가 기용된 그 광고 말이다.

“…부행장님 작명 센스 구린 거 같지 않아요?”

“전적으로 동감이야.”

새 블록버스터 영화 주연으로 발탁되어 주가가 다시 상승 중인 배우를 저런 식으로밖에 써먹지 못하다니.

하여튼 웃대가리들도 참 감각이 없다.

그나저나 방금 지점장님이 말한 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다른 점포라니.

“근데 지안 씨, 아까 펠룩스 자식 협박할 때 알리야 씨한테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도 보내라고 말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내 고민은 갑작스러운 프레드 선배의 질문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건…가족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틀린 말은 아닌데 알리샤 씨가 이번에 도움 많이 주긴 했잖아. 조금 차가운 거 아니야?”

“도와주신 건 사실입니다만 전남편에게서 받아내지 못한 양육비를 제가 대신 뜯어냈다고 알리샤 씨가 기뻐하셨을까요?”

“그건···.”

프레드 선배는 말꼬리를 흘렸다.

그 역시 직감적으로 알고 있을 거다. 우리가 협박을 통해 양육비를 뜯어내 봤자 그녀가 기뻐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런데도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와 단서를 준 그녀에게 부채 의식을 느끼고 있는 탓에 저런 말을 꺼낸 거겠지.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네.”

나는 알리샤를 도울 생각이다.

다만,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건 차원신용금고다.

그러니까―

“나쁜 놈 조질 땐 장외난투를 벌이더라도 준법 시민을 돕는 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답은 김지안 개인이 아니라 은행 차원에서, 은행원의 신분으로 해야만 한다.

분명,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일 것이다.

* * *

48시간 후.

우린 포독스 시 중심부의 모 카페에서 알리샤 나볼리와 다시 한번 만남을 가졌다.

“고객님께서 제공해주신 단서 덕에 무사히 15억 굴덴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나와 델 몬테 지점장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알리샤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모든 장사는 신뢰에서 시작되니까 은행과 거래처엔 절대로 폐 끼치지 말라고 아버지가 늘 말했거든요.”

“훌륭한 아버님을 두셨군요.”

알리샤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이었어요. 가족에게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버님께서 알리샤 고객님께서 하신 일을 아시면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나는 가방에서 그녀가 준 재무제표와 총계정원장을 꺼내 돌려주었다.

“다 해결된 지금 이런 얘길 하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입김이 닿는 직원이 구해주었다고 말씀하셨죠?”

“네.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였으니까요. 저도 오랫동안 일했고요.”

그녀가 어째서 전남편이 벌인 악행의 증거를 우리에게 가져왔는지 이해가 갔다.

펠룩스가 은행에 폐를 끼친 게 미안했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그의 횡령 탓에 아버지의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책임감을 느낀 거겠지.

“결혼할 때만 해도 그이가 저렇게 변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설마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의도치 않게 폐를 끼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알리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사과할 일이 아닌데도 펠룩스 같은 쓰레기보다 훨씬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앞으로의 예정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셔도 될까요.”

지점장이 묻자 알리샤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고 차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분간은 거래처에게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에요.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급으로 대표이사직을 맡을 예정입니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예. 감사하게도 이사님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해주셔서. 업무 이해도라면 문제없습니다. 실무와 관리 모두 20년 동안 경험해 봤으니까요.”

고개를 든 알리샤의 눈은 자신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눈.

플랫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아버지가 남긴 회사를 짊어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다니.

저런 강인한 의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이에겐 정식으로 소송을 걸려고요. 아마 제가 무서워서라도 당분간은 다른 차원에 숨어 지내겠죠.”

전남편이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자신은 딸에게 떳떳한 어머니로 남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알리샤의 얼굴에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한 번 최종부도를 내서 신용을 잃어버린 회사를 책임지겠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니다.

나는 전적으로 그녀의 각오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었다.

아마도 지점장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어요.”

알리샤는 넌지시 나와 지점장에게 시선을 던지며 질문했다.

“불륜 상대가 운전수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면 바로 사해행위취소권을 행사하는 쪽이 빠르게 회수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굳이 라라비아로 유인하신 거죠?”

질문에 답한 건 델 몬테 지점장이었다.

“사해행위취소권은 일종의 리셋 같은 거라서 말이죠. 은행이 이미 완료된 거래까지 취소시켜가면서 추심하는 건 주위에서 봤을 때 썩 모양새가 좋지 않거든요. 다른 업체에서 지레 겁을 먹고 대출을 받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니···.”

“무엇보다,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밝혔다간 펠룩스 씨가 감방 신세를 면하지 못할 테니까요.”

내가 보충하자 알리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가 범죄자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신 거군요.”

“무엇이 고객님께 가장 최선일지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완벽한 복수를 수행하고 싶었지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은행의 슬로건이 발목을 잡았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는 차원신용금고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

나는 자신이 은행원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알리샤 씨가 민사 소송으로 펠룩스를 그로기 상태까지 두들겨 패는 걸 관전하면 복수심도 채워지겠지.

“배려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야말로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다고 인사하곤 있지만 알리샤 씨에겐 미안하기만 할 따름이다.

에이펙즈 엔지니어링은 최종부도를 낸 탓에 어음과 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당좌예금계좌가 정지되었다.

그나마 부도 30일 이내로 콜로닌 은행과 차원신용금고에게 15억과 20억 굴덴을 갚았으니 당좌거래정지처분해제를 신청할 순 있겠지만.

그동안 같이 일해온 이들에게 신용을 잃은 이상 알리샤는 당분간은 거래처 사장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주거래은행이었던 콜로닌 은행 역시 예전처럼 쉽게 대출을 허락해주지 않을 테고.

요약하자면, 알리샤의 앞에는 여전히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은행원인 나는 저들을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펙즈 엔지니어링의 나볼리 대표님. 괜찮으시다면 당행을 귀사의 주거래은행으로 선정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내 제안이 생각도 못 한 것이었는지 알리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콜로닌 은행이라면 몰라도 당행은 여기 있는 서부 포독스 지점장과 본점 간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표님께서 채권 회수에 협조해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자 옆에 앉아있던 지점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급으로 회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일하신다는데 저희가 협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따님의 학자금 대출은 물론 신용 대출, 그리고 에이펙즈 엔지니어링의 운전 자금까지, 대출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당행을 파트너로 삼아주신다면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객의 믿음 없이 은행은 존재할 수 없다.

은행을 신뢰해준 고객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하는 건, 역시나 똑같은 신뢰 아닐까.

다른 은행이, 거래처가, 알리샤와 에이펙즈 엔지니어링을 믿을 수 없다고 관계를 끊더라도.

우리는, 차원신용금고는 우릴 믿어준 그녀에게 몇 번이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알리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대출과 상환이 그리는 둥근 고리 속을 순환하는 건 돈이 전부가 아니다.

믿음을 받고, 다시 믿음을 준다.

수신受信과 여신與信은 은행과 고객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었다.

“감사는 저희가 해야죠.”

뭐, 감상적인 건 차치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타행과 거래하던 우수 고객을 데려올 수 있으니 차원신용금고로서도 나쁠 건 없겠지.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회사를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눈물을 훔친 알리샤는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카페를 나섰다.

“앞으로 쉽지 않을 텐데, 나볼리 대표님이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지점장은 유리창 너머로 작별을 고하는 알리샤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저는 알 것 같은데요?”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직무권능을 사용했다.

대상은, 알리샤 개인이 아닌 중견 건설회사 에이펙즈 엔지니어링.

머리 위에 보이는 저울의 팔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욱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접시 위의 구슬 역시 새하얀 광택을 되찾았다.

“분명 잘 해낼 겁니다.”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난 회사의 미래는, 그 잠재력은 충분히 기대할 만한 것이었다.

저런 이들에게라면 몇 번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 은행원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

“내기해도 좋아요.”

대출. 그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믿음의 증거니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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